타락한자와 헌신 된자
타락한 자와 헌신된 자
삼상2:12-36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 속에서 엘리의 아들들과 한나의 아들의 미래가 대조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니하스, 그리고 한나의 아들인 사무엘은 같은 시대에 살았고,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 두 부모의 아들들의 미래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같은 시대에 경건한 두 부모 밑에서 자랐던 아들들의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Ⅰ.우리는 바른 하나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12절).
엘리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의 아들들은 태어날 때부터 제사장 가문에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성소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많은 것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이어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고 있었습니다(13절).
그런데 성경은 \"엘리의 아들은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으면서 자라왔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아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헬라인과 히브리인 사이에 \"안다\"는 말에는 개념의 차이가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지식적으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삶에 개인적으로 체험하여서 내 것으로 받아들인 것을 \"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만 내가 아버지 하나님을 분명히 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죄인 되어 있음과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되신 사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임으로 나의 모든 죄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사하여졌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 할 때 만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 자체는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엘리의 아들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불량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절). 오늘날에도 엘리의 아들들처럼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고, 어렸을 때부터 교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전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채 구원받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과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둘 다 경건한 부모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가 되었고,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하나님께 헌신된 쓰임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까? 하나님께 헌신되지 못한 채 타락된 삶을 살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 채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여 아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삶이 멈춰지고 단지 하나님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만 알면서 살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변화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는 것이 되도록 합시다(빌3:8).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우리의 삶은 변화되어지며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관찰1.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던 엘리의 아들들을 하나님은 뭐라고 칭하였습니까?(12절)
Ⅱ.우리는 바른 습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13-16절).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으며, 인격은 운명을 낳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예배에 오신 분들은 참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지만 우리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곳에 와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좋은 예배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습관을 좇아 기도 하셨습니다(눅22:39).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몸에 벤 기도의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개인 경건의 시간을 갖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습관이 우리 생활 속에 베어 있다면 그 거룩한 습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변화되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교회에 올 때 정시에 오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니, 조금 일찍 와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더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며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복된 예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설교시간에도 말씀을 집중하여 듣는 습관을 갖는 성도님들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정말 듣고자 믿음으로 화답하여 그 말씀을 듣게 될 때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여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삶이 주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습관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너무나도 잘못된 일을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백성들이 정성껏 가지고 온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그 고기를 먹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자기 마음대로 날 것을 먹는 일을 습관적으로 행하였고 있었습니다(13-16절).
우리가 그릇되고 잘못된 습관을 가지게 되면 결정적으로 우리는 타락한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교회당에 나와서 자리에 앉아 있다 할지라도 예배 속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일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잘못된 습관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아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살았기에 타락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일관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습관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자랐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11,18,21,15절). 사무엘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좋은 습관을 가지고 변화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사무엘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삽시다.
관찰2. 엘리의 아들들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까?(13-16절)
Ⅲ.우리는 바른 예배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17절).
누구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는 사람은 타락된 삶을 살게 됩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 예배를 드렸을 때 가인은 그릇된 태도와 제물을 드림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지 않자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가인은 예배를 드리는 일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예배를 멸시하였기 때문에 타락된 삶을 살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에 실패하면서도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진정과 신령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전 존재를 드려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즉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온전한 예배를 드렸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예배를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예배를 드리게 되면 우리의 삶 속에는 혁혁한 변화가 주어지게 됩니다.
올바른 예배는 내가 하나님 존전에 있다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0장 33절 말씀은 예배를 드리는 자의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른 예배는 내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순종하여 부복하고 있다는 의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삶 속에서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사무엘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섬겼습니다. 온전한 예배를 우리가 드리기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하나님 존전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예배를 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30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관찰2. 엘리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여기고 있었습니까?(17절)
Ⅳ. 우리는 바른 도덕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22절).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되면 영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타락하게 될 때 제일 먼저 나타나게 되는 현상은 육신의 정욕을 좇아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 채 그릇된 습관을 가지고 살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기쁨을 얻지 못하게 되면 세상적인 쾌락을 통하여 기쁨을 얻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속에서 감격과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정욕적인 삶을 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깊이 알아 가기로 작정하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능히 보호하시고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백성들이 드린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을 착취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에 눈이 어두운 채로 살았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고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이성문제를 일으키면서 타락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는 많이 들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 존전에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하나님께 헌신되어 위대하게 쓰임을 받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타락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바르게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녀교육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엘리의 결정적인 문제는 제사장 직분을 제대로 감당치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의 결정적인 문제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하나님보다 아들들은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산 것이었습니다(29절).
엘리는 아마도 자신의 자녀들이 사무엘보다 더욱 훌륭하게 쓰임 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하나님에 의해서 놀랍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떠한 훈련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응석받이로서 무분별하게 성전에서 그릇된 일을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만일 엘리가 사무엘을 훈련시키듯이 그의 아들들을 훈련 시켰다면 훌륭한 아들들이 자기 밑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는 하나님 보다 아들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아들들의 잘못을 징계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훈련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을 방치하고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랬을 때 아버지 엘리가 쌓은 모든 업적이 아들 대에서 모두 허물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엘리의 아들들과 한나의 아들을 통하여 중요한 교훈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같은 교회에서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지만 우리들의 미래도 서로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30절).
만일 우리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바른 습관을 가지고, 바른 예배를 드리면서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이유는 사무엘처럼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여 쓰임 받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다시금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서 사무엘처럼 쓰임 받는 남은 생애가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