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기전에 먼저용서하자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용서하자 (막11:23-25절)

엡4: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합니다.

골3:13-14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습니다.

마18:35에\"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합니다. 성경은 한결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서로 용서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강조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 신앙인들에게 용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밤에 하나님께 응답 받은 기도를 하려면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고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들 역시 남을 용서해야 하겠습니다.

1.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24절).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누구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하고 있는 기도의 대상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우리들의 아픔과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이런 문제를 과연 하나님은 해결하실 수 있을까”하고 의심하면 기도 응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했으면 믿어야 합니다.

믿고 구해야 합니다. 믿지 못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님께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요나서 3:5절에 보면“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고 했습니다. 본문 막11:23절에서도“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했습니다.

이런 말씀도 그냥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산도 들어서 바다에 빠뜨릴 수 있다는 그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전혀 다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보시면“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믿음으로”라는 말이 무려 20번이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구약 모든 인물들이 “믿음으로”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ale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믿음 없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높게 믿음으로 계획을 세우시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2.우리들의 “기도할 때”는 언제입니까?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기도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기도하는 일을 쉬는 죄를 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삼상12: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 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왜 기도를 쉬는 것이 죄가 됩니까? 기도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죄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일을 쉬면 안됩니다. 이런 결단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여호와 앞에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내가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만 기도하고 그 어려움이 해결된 이 후에는 기도하는 일을 쉬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려움이 없고 평안할 때는 제법 기도를 잘 하는데 좀 어려움이 온다고 해서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기도하고 찬송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범사가 기도 생활을 통하여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런 기도를 드리는 기도 시간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형제의 기도 시간이 언제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기도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답변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나에게 기도 시간이 언제이냐고 질문하면“예, 저는 몇시 몇시에 기도를 드립니다”라고 떳떳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빌1:4절에서“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가 정확히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매일같이 기도의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6:10절에“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합니다.여기“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기도했습니다.

2.기도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역시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은 해당이 없습니다. 축복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데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이런 상황을 한번 가정해 봅시다.

어떤 장로님이 집사님과 관계를 맺으며 사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장로님에게 재산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그때 장로님은 그것을 용서해 주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고소를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장로님이 주일 예배 대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 겠느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남의 재산에 손실을 가져온 그 집사님 역시 문제입니다. 그러나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아니면 정당한 상거래의 질서를 위해서 고소한다는 그런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우리 신앙의 눈으로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혹은 성경은 그런 식의 기도 생활을 용납하고 있습니까? 마6:14-15절에“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면 그것을 조건으로 삼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용서해 주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을 용서해 주지 않는 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봐야 그것이 어찌 응답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긍휼을 구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지를 못합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의 정신이 없습니다. 내가 비록 재산의 손실을 본다고 할지라도 남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재산적인 손실은 나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서 상대를 용서하고,긍휼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얼마나 억울합니까?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그 재산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 아픈 상처를 도려내는 한이 있더라도 용서해야 되고 하나님께 호소하여야 합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하 25:9절에 있는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주실 수 있습니다.

대하25:9절에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실패하고 나만 당하는 것 같지만 그 억울함을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면 그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남을 용서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신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내가 남을 용서해 주는 그 행위를 조건으로 보시고 나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물의 사함을 받고. 용서를 받는 자들은 남을 용서해 줄 수밖에 없는 겸손한 자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해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어떻게 용서가 됩니까?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용서의 본질을 깨닫고 내가 그런 용서를 받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남을 정죄하겠습니까? 남을 용서해 주지 못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사죄의 은총을 못 깨닫는 자입니다.

마 18:21-22절에 보면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를 용서할 때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일곱 번 정도면 예수님께 칭찬을 들을 줄 알고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490번만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용서하는 일은 무제한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혹은 나의 실수로 잘못을 범했습니까?

그 모두를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 내어 놓으십시오. 먼저 형제를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가 안 되면 다른 기도하지 마시고 먼저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을 나에게 달라고 기도를 하십시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무슨 기도를 합니까?

4.축복 받는 비결과 기도입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 비결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가까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비결들이지 특정한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가진 것이 없어도, 배운 것이 없어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도 그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 보시지 않습니다. 그런 이력서 하나님께 내어놓아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는 나의 당한 현실 속에서 가진 자이든 못 가진 자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됩니다. 다같이 사사기 7:2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할 때, 범죄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 팔아 버렸습니다.

미디안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기드온을 통하여 미디안에서 구원해 내게 합니다. 그때 기드온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3만 2천명이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은 다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많은 군사를 통원해서 이스라엘이 이기게 되면 그들이 자긍하여 자기들의 손으로 미디안을 이겼다고 할까 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으로 이기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승리와 축복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재력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삼상17:47절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라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담대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을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남을 용서하라고 했으니까 다른 이유를 달지 마시고 용서해 보는 것입니다. 나는 용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 하나님께서 용서하라고 했으니까 그 말씀에 의지해서 용서해 보는 것입니다.

기도에로 초대 오늘 이 시간에 꼭 실천해 봅시다. 꼭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각자에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사람은 형제를 용서해 주는 사람이라고 했사오니 용서하게 하옵소서.

축복 받은 비결이 기도에 있음을 알게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 합시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면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하면 안됩니다.

먼저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먼저 남을 용서하지 못한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회개합시다. 먼저 우리가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용서하고 회개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