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겔렙의 헌신 수14:6-12 여호수아는 훌륭한 지도자였다면, 갈렙은 그 지도자를 보필한 훌륭한 참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가 은퇴하고 가나안의 남은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수13:1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고 하시며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 두령들, 재판장들, 유사들을 불러모으고 은퇴를 선언하고 갈렙에게 남은 땅 정복을 인계하였습니다. 갈렙은 40세에 소명을 받고 12정탐군으로 가나안을 여호수아와 함께 정탐하고 돌아온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45년간이나 여호수아의 그늘 밑에서 무명인으로 충성을 하였습니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역사 중에서 여호수아는 군대 장관으로, 모세의 후계자로 그 이름이 크게 나타났습니다. 갈렙은 숨은 일꾼이었습니다. 화려한 여호수아의 뒤에 감추어진 인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얼굴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이름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무명의 용사로 충성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유명한 인물이 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무명의 갈렙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뒤에서 그 지도자를 도우는 갈렙같은 인물은 더욱더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갈렙에 관해 세밀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본받아 살아야 될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1. 갈렙의 인격과 그 배경 갈렙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똑같이 모세를 받든 종입니다. 계급의 차이가 없이 똑같이 모세를 받든 종입니다. 가나안 정탐을 위하여 12지파의 정탐꾼중의 한 사람으로 뽑힌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분네의 아들로 에브라임 지파를 대표해서 뽑혔습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로 뽑혔습니다. 40일 동안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10지파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불신앙의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민13:30에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하였으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면서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모면케 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갈렙은 담대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신1:36에 모세는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평가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도 보니 갈렙은 그 마음에 성실한 대로 보고를 했다고 했습니다. 갈렙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믿음 앞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갈렙은 믿음으로 성난 군중들을 안돈 시켰습니다. 믿음으로 안팎의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모세가 죽고 난 뒤에,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발탁되었습니다. 동료였던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어마어마한 영광을 얻고 할 때에, 갈렙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받들었습니다. 그는 아무 영광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만, 여호수아와 똑같이 일하였고, 수고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대 지도자가 될 때에 성경 어디에도 갈렙이 나타난 적이 없고, 갈렙이 자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호수아를 조용히 섬겼습니다. 그러니 갈렙은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 문제가 무엇입니까? 앞선 사람을 돕지 않고 시기하고 질투하는데 있습니다. 사단은 바로 이 부분을 이용하며 공격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꼭 기억합시다. 믿음의 사람은 묵묵히 섬기는 사람입니다. 네가 언제 ㅇㅇ됐다고 나를 이렇게 무시해!! 하면서 화를 내는 것은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등용될 때 갈렙은 뒤에서 여호수아를 최선을 다해서 받들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뒤에서 뒷받침하는 인물이 오늘의 갈렙입니다. 교회에는 갈렙 같은 중직자가 필요하고,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면 일이 이상하게 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일평생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헛점과 빈틈이 생길 때 사탄이 역사합니다. 일하면서 명예심이 앞서면 안됩니다. 앞선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이 찬송이 정말입니까? 모든 존귀 영광은 주님이 받으시고, 멸시받을 일, 천대받을 일은 제가 받겠습니다. 이런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2. 갈렙의 신앙 수13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은퇴를 하게 되었으나 아직 점령하지 못한 가나안 땅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남은 땅을 아홉 지파 반에게 나누어 주리고 하였습니다. 루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을 이미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원래 기업은 하나님이 분배를 해 주십니다. 그런데 기업을 요구한 두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요단 동편을 얻은 두 지파 반입니다. 이들이 요단 동편을 요구할 때 상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을 전제로 요단 동편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갈렙이 요구한 것입니다. 갈렙에게는 그 믿음을 보시고 기업을 주시겠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신1:36에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약속을 믿고 기업을 요구했습니다. 수14:9에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수14:8에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라고 했는데 <온전히>란 말씀은 전 마음을 다하여 믿었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약속을 믿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갈렙의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진짜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갈렙은 책임감이 있는 신앙인입니다. 수14:10-11에 보면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년세가 85세였지만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제1세 국민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고 여호수아도 늙어 은퇴하게 됩니다. 갈렙만이 유일하게 살아 남았습니다. 그에게 강한 생의 애착이 있었을 것이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하면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바치려는 사명감이 불탔던 것입니다. 갈렙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도, 건강도 바치려는 각오를 가졌습니다.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이라고 하면서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회피하려고 하고 모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기회 지나고 나면 아이고 잘됐구나 하는 심리를 버려야 합니다. 빠지고 나면 안타까워하고 할 일을 찾아서 하려는 책임감이 있는 일꾼이 됩시다. 갈렙이 감당하려고 하는 일은 <싸움에나 출입>입니다. 싸움은 아낙자손을 무찌르고 가나안의 7족속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출입은 지도자로서의 지휘권을 말합니다. 갈렙은 생명도, 건강도 가나안 정복을 위해, 사명을 위해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내 소질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야 합니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느냐? 왜 공부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려는 고상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음악으로, 정치가는 정치로, 교수는 가르치는 일로, 자본가는 자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맑스 웨이버는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정책이란 논문에서 자본가는 자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 벌어서 내 식구, 내 가정, 내 인생의 복락을 위해 쓰려는 사람은 천민 자본주의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모든 걸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갈렙은 이렇게 힘들어서 얻은 헤브론이란 기업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자기와 그 가족이 대대로 거기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까? 자자손손 유산으로 넘겼습니까? 아닙니다. 수21:11에 보면 \"헤브론과 그 사면들을 그들에게 주었고\" 라고 했는데 이 말은 기업이 없는 레위 인들에게 평원, 살만하고 쓸만한 곳을, 제일 좋은 것을 제공했다는 말입니다. 또 수20:7에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갈렙이 헤브론을 도피성으로 구별하여 내 놓았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도 갈렙같은 헌신자가 됩시다. 부패와 혼란이 어디서 생깁니까? 왜 불신풍조가 일어납니까? 책임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남의 일을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3. 힘든 일을 감당하고 처리한 신앙인. 수14:12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고 했습니다. 이 산지는 헤브론이데 수14:15에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고 했습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850m의 성읍인데 그전엔 기럇 아르바 라고 불렀습니다. 기럇 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인데 \'아르바\'는 아낙 자손의 조상으로아낙 족속의 위대한 영웅이었습니다. 아르바가 자기 이름을 딴 견고한 성읍을 창건하여 그 성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이곳은 고대 가나안의 문화, 정치 중심지였습니다. 민13:33에 보면 12정탐군이 그곳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네피림은 거인들을 말합니다.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는 산악지대로서 철병거로 무장한 아낙 자손의 요새인데 불가침의 성읍입니다. 갈렙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어려운 일을 내가 감당하겠습니다는 겁니다. 갈렙은 루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요구한 요단 동편 비옥한 땅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힘들고 어렵고 고생스러운 걸 요구했습니다. 가장 힘들고 무거운 짐을 내가 지겠습니다. 땀을 흘려야 하고 피를 지불해야 하는 일을 내가 감당하겠습니다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지교회에도 갈렙같이 어렵고 힘든 일, 고생스럽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제가 말씀을 따라, 교회 평화를 위해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감당하겠습니다는 장로님들, 집사님들, 권사님들이 많기를 원합니다. 갈렙의 헌신으로 비로소 평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수14:15에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의 평화는 한 늙은 갈렙이 투혼을 발휘하여 헌신할 때, 아낙 사람을 이기고 그 땅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성지교회의 평화는 지금 여기 계시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갈렙같은 신앙으로 헌신할 때 이 평화는 이루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