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탄식기도*로마서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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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주님 앞에 어떤 청년이 찾아와 하는 말이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하고 심각한 간청을 드렸다. 그때 주님 하시는 말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 하니라\"(눅12:14-)하신 말씀으로 일언지하 거절하셨다. 유치원 어린아이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사고 싶은 것은 아주 중대하고 큰일일 수 있다. 그것을 갖지 않으면 불행해지고 심지어 죽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까지도 그렇게 중대하고 큰일이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사업이 잘 되어야지 만약 아차 했다가는 큰일이요 온 가족에게 큰 불행이 닥치고 급기야는 자살까지도 아니 집단자살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유치원생의 장난감 불행이나 죽음과 같은 차원에서 하나님은 보신다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다. 「우리의 연약함」이 무엇인가? 그것은 뒤따라 나오는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꼭 빌어야할 것을 빌지 아니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이라는 말이다.(άσθενεία :아스데네이아는 실제는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를 「병」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 성령께서 마땅히 빌 바를 알지도 못하는 심각한 병자를 위하여 대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이 성령은 분명 보혜사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사람 차원이 아닌 하나님 차원과 수준에서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께 간구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따라 나오는 27절은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그러면 성령의 탄식기도, 즉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마땅히 빌 바」는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성령은 앞에서 말했듯이 보혜사 성령 곧 우리 구주 그리스도 성령이시다. 그분은 육체는 세상에 계실 때 우리에게 기도를 직접, 그리고 한번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그것도 마지막에 한번 구체적인 기도와 간구를 해 주셨다. 전자는 우리가 잘 아는「주님기도」(주기도문)요 후자는 요한복음17장이다. 전자는 우리가「마땅히 빌 바」요 후자는 우리가 마땅히 빌 바이지만 알지도 못하고 있는「빌 바」이다. 그것은 또한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심(27절)\"이기도 하다. 빌지는 못한다 해도 알고는 있어야 할 내용이 바로 요한복음 17장, 소위 저 유명한 유언적 다락방 강화를 마치신 다음에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로 시작하신 주님의 「중보기도」이다. 그 기도의 성취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길(롬8:21)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기도가「우리의 마땅히 빌 바」이기 때문에 빌어야 하지만 우리의 보혜사께서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병자인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셨고, 또 주시므로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중대한 기도 내용을 간략하게 한마디로 설명해 버린다면 그것은 곧 그 기도에 대한 불경이요 요한복음17장 말씀에 대한 경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도 없지마는 할 수 있다 해도 그래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쨌든 기도는 하나님 차원이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새겨야하며 그러려면 우리가 교회 문을 들어서자마자 기도부터 하려고 덤벼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일, 즉 연구하고 묵상하며 새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취여부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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