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것을 가르치라
가르칠 것을 가르치라
잠22:6
● 우리가 주일학교 교사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서 무엇에 헌신해야겠습니까? 교사는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것에 헌신해야 합니다. 비단 주일학교 교사들만 가르치는 일을 합니까? 아닙니다.
구역을 맡고 있는 구역장님들 또한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더불어 한 가정에서 부모 역시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걸음을 먼저 걸으신 분들이 늦게 신앙의 길에 들어선 분들을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일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특별히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가르치라 = 훈련시키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6)
여기서 “가르치라”는 말씀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가르치라”는 원문의 의미는 “가르치다”는 의미와 더불어 “훈련시키다. 헌신하게 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훈련”의 의미가 더 담겨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도 \"가르치다\"라는 단어인 \"Teach\"라는 단어 대신에“훈련”이라는 의미의 단어인 “Train”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훈련시킨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몸에 배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는 어린아이들이나, 학생들 또는 청년들이 몸에 배이도록 훈련시키는 일이 주일학교 교사들이 헌신해야할 부분입니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은 지식의 가르칩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사들은 몸에 배이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시키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교사가 먼저 가르치려고 하는 것에 전문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골프선수인 타이거 우즈와 아마추어 골프 선수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얼마나 골프에 대해서 전문가냐 하는 것과 그것이 얼마나 몸에 배어 있느냐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1.1 무엇을 가르치느냐
문제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무엇을 몸에 배이도록 훈련시키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땅히 행할 일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런데 무엇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까?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공과공부를 하며 성경공부를 합니까?
▶ 성경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이유를 디모데후서3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 어떻게 할 때요? 성경을 가르칠 때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는 것입니까?
▶ 아담을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노아를 가르치고, 아브라함을 가르치고, 왜 다윗을 가르치고, 바울을 가르칩니까? 왜 어려움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도록 가르칩니까? 왜 감사하라고 가르칩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늙어서도 떠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잠언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9:10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우리가 가르쳐야할 마땅히 행할 일이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더불어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기록한 전도서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1.2 하나님을 경외 = 코람데오
교사로서 우리가 가르쳐야할“마땅한 행할 일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성경을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경외”라는 단어 자체는 “두렵고 떨림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공포가 아니라 존경의 두려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늘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칼빈 선생님은 “코람데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인데, 칼빈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있다는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한 마을에 고아로 자란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 던 형제들이었습니다. 몇 칠을 굶었는지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동네 어귀에 있는 과수원 있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데리고 과수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일렀습니다. “여기서 누가 오나 잘 보고 있다가 누가 오면 형에게 소리쳐” 그리고 형은 과수원 주인 몰래 사과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소리칩니다. “형 누가 보고 있어” 그러자 형은 가지고 있던 사과를 팽개치고 동생을 손을 잡고 막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달린 후에 숨을 몰아쉬며 동생에게 묻습니다. “누가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 교회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보고 계신다고”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이들이 늙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훈련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모든 교사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헌신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사로 헌신되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 무엇보다 주일학교 교사는 경건에 이르기를 날마다 애써야 합니다.
딤전4:7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하기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셨습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칼빈선생님은 말씀하기를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경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늘 인식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경건이 내 몸에 배일 때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훈련시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가르치는 교사가 어설프면, 아이들도 어설픈 신앙이 배일 수밖에 없고, 어설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세상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기가 어설프다는 겁니다. 어느 곳에 써야할지 고민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 콩나물 무침을 할 때 어떻게 합니까? 먼저 콩나물을 잘 삼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콩나물을 삼다가 자꾸 뚜껑을 열다보면 콩나물이 어설프게 익어 비린내가 납니다. 그러면 먹을 수 없지요.
날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셔서 하나님을 경외 하는 삶을 사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아이들이 되도록 훈련시키시는 교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사로 헌신되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2. 나에게 배움을 받는 아이들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잠27:23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영어 학원이 있습니다. 학원에 오면 왔다고 핸드폰으로 문자가 옵니다. “귀댁의 자녀가 몇 시 몇 분에 등원했습니다.” 학원이 끝나고 나오면 또 문자가 옵니다. “귀댁의 자녀가 몇 시 몇 분에 수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자주 원장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아이들 실력이 어느 정도입니다. 수업태도는 어떻습니다. 일이 있어서 빠지게 되면 바로 전화 옵니다.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물론 원장 눈에는 우리 아이들이 돈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열심을 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주일학교 교사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영혼을 다루는 고귀한 분들입니다. 비록 학원 원장처럼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들의 모든 것을 부지런히 살피며, 그 아이를 늘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전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심방가지 않겠습니까? 건강은 어떤지, 영적 상태는 어떤지, 가정환경은 어떤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않겠습니까?
▶ 이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 취해야할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아비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부지런히 아이들을 살피며, 마음에 두시는 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교사헌신예배로 오후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늙어서도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땅히 행할 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들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교사들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경건에 이르도록 날마다 애를 쓰는 것”이고,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부지런히 살피며,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훈련시킬 때에 분명한 것은 나에게 배운 아이들이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게 교사의 보람 아니겠습니까?
교사로서 바르게 헌신하셔서 많은 믿음의 인재들을 양성하시는 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