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공의로움에 감사기도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감사기도 , (렘32;16-25절)

예레미야는 유다인들이 그 땅에서 추방당하려는 즈음에 그 자신이 예루살렘에 죄수로 있을 때 밭을 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매우 곤혹스러운 중에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한 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밭을 사라고 하신 이유는 유다 백성이 죄악으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당신께 대한 진실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 땅에서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그분이 공의로우시지만 공의뿐 아니라 무한히 넓은 사랑도 가지고 계심을 발견하므로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평안(平安)하며 기쁨과 소망(素望)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確信)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같은 믿음에 소유(所有)의 기도(祈禱)에 대해서 생각하며 은혜(恩惠)를 나누고자 합니다.

1.은혜를 천만인에 갚으심에 대한 기도입니다. 18절에 주의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예레미야가 기도를 하게 된 동기는 그는 하나님의 크고도 넓으신 은혜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은혜를 다소나마 깨닫고 보니 자신이 살고 있는 것과 모든 인류가 생존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는 벌써 죄로써 죽어 없어져도,

몇번이고 죽어 없어져야 하는데도 인간들을 살리시고 특별히 자기 같은 사람에게 세인들을 향하여,외치게 하시고 사명을 주심에 대해 생각하게된 것에서 기도하는 중에 더욱 그 은혜를 알고서 한 말이며 그러므로 천만인에 은혜를 베푸심을 더욱 감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우리도 예레미야 같은 깨달음의 은혜가 있어야 함은 이는 곧 주의 사랑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그치는 것은 이 하나님의 원대하신 은혜를 깨닫지 못함이오니,

우리도 예레미야같이 그 은혜를 천대에 베푸시며 오늘날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그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그 행위대로 보응하심에 감사의 기도입니다. 19절에 주는 모략에 크시며 행사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그 길과 그 행위에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전능한 우주의 창조자이며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며 범죄한 자를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역설하면서 그의 공정성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공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의로워서 죄인들에게는 중벌로 다스리시고 의롭게 행하는 자에게는 사랑과 축복으로 보상을 하십니다. 그리고 개인의 실력에 따라서 행위에 대해 다 보상하시나니 이익을 남긴 자에게는 그에 해당하는 보상과 이익을 남기지 아니하고 나누어 준 그대로 가져온,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더이상 재능(才能)이 없는 줄로 여기시고 아주 영원(永遠)한 벌을 내리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聖徒)들은 은혜(恩惠)와 은사(恩師)와 사랑 사명(使命)을 받은 것에 대해서 늘 감사(感謝)하며 공의로운 하나님께 상급(賞給)이 있도록 더욱 노력(努力)하며 힘써야 하겠습니다.

3.애굽에서 큰 능력을 행하심에 감사의 기도입니다. 20절에 주께서 애굽 땅에서 징조와 기사로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의인 중에 그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징조와 기사와 강한 손과 드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당신의 백성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시기 위해 행하신 기적들을 살펴보면, 첫째, 강물이 피로 변하게 하시고(출7:14-25), 둘째, 강물에서 개구리가 올라와 애굽땅에 덮이게 하시고(출8:1-7), 셋째, 티끌을 쳐서 이가 되게 하시어 애굽 온 땅에 덮이게도 하시고(출8:16-19),

다섯째,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에게 악질의 병으로 재앙을 내리고(출9:1-9), 여섯째, 사람과 짐승에게 임하는 독종의 재앙이 임하게도 하시고(출9:8-12). 일곱째, 사람과 짐승 식물에 피해를 주는 우박의 재앙이 임하게도 하고(출9:22-26),

여덟째, 메뚜기를 동원하여 식물을 갉아먹게 하는 재앙을 내리시고(출10:12-15), 아홉째, 온 지면을 어둡게 하여 사람들의 활동을 제동시키는 흑암재앙을 내리시고(출10:21-23), 열번째, 사람과 짐승의 처음난 것을 멸하는 재앙을 내리시고(출11:4-9, 12:29-36).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적과 기사들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셨음을 예레미야는 이에 대한 그의 권능의 행사에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갖가지의 기적을 통해 얻는 것이 없어도 주의 능력이 임하는 역사를 접하게 되면 이 예레미야같이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다수 신자들이 자기의 이기심만 가지고 자기와의 관계없으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아니하는 것도 신자로써는 좋은 태도가 못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4.선민을 구원하심에 대한 기도입니다. 21절에 주께서 징조와 기사와 강한 손과 드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하나님은 애굽에서 갖가지 기적을 나타내심은 불신자 바울에게 신의 존재를 보이심도 있었지만,

다른 면에도 있었으니 애굽에서의 400여년 동안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인들과 같이 우상이나 섬기며 세상의 것에만 만족을 얻으려고만 했지 종살이를 하면서,
이 노예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탈피하며 그리고 이 탈피에 있어서 자기들의 자력으로는 되지 아니하니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아니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영적으로 마비된 상태가 되어 자기들의 처지를 탈피하려는 태도가 없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보이시며 따라 나와 구원 얻기를 소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랑 많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죄악 많은 세상에서 우리들을 지명하여 불러내시고,

사43:1-3절에 갖가지의 은사와 성령을 주시며 구원키 위해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百姓)들과 같이 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결국에 있어서 영육이 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5.선민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십니다. 23절에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가나안에는 아낙 자손 들이 농토를 경작하여 지상의 부를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한데 하나님은 그들을 내어 몰아 내시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그 땅을 차지하신 것입니다.

이는 참 너무나 편벽된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이같은 섭리를 저버린 백성들이 있었으니 이 또 한심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의 감사를 알지 못하고 사는 백성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의 도우심을 감사하며 사는 자 심히 적은 것을 보게 됩니다. 참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세상것 잃어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하심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6.불순종은 재앙으로 임합니다. 23절에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주의 도에 행치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일을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주의 도에 행치 아니하며 주께서 행하라 명하신 일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배은 망덕한 행위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라는 명령(레11:7)이 있었으나 그들은 전혀 그 명령을 순종치 않았습니다.(느9:26, 단9:10-14). 이와 같이 오늘날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축복을 잊고 육신적인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눅15:13).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결국 그들이 거하는 곳에서 부자는 고사하고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그곳이 주님이 특별히 복지로 주관하셨는데 그 뜻을 저버렸기 때문에 큰 불행을 당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자는 결국에 있어 이들과 같이 큰 불행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7.주의 말씀대로 된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입니다. 24절에 보옵소서 이성을 취하려 하는 자가 와서 흉벽을 쌓았고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이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바 되었으며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예루살렘성이 포위되었고 또한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함락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있었던 때는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서 시드기야 11년까지의 일이었습니다.(왕하25:1-3).

이와 같이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극심한 진노는 어느 누구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레26:17, 신28:15, 스9:1, 에1:8). 하나님은 자기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흥하던 나라가 삽시간에 망하게도 하시고,(소돔과 고모라성) 망하여 가던 도성도 흥하게 하십니다.(니느웨성).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이 움직임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 역사하심은 창조사에서 너무나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은 말씀으로 지으시고 다만,

인간들은 흙으로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생기를 코에 부어 넣으사 생령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에 말씀으로 지었다고 하는 것을 성서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 예레미야는 자신이 기도를 통해서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감사의 말을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능력의 역사하심은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써 백부장같이 하인의 아들의 병도 고칠 수 있는 말씀의 능력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롬9:3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骨肉)의 친척(親戚)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이 구원만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져도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해서 인도해 주심에 감사 기도한 것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참으로 민족을 위해 복음 전도자요 애국 애족한 자들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같은 점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이땅에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기를 소망하고, 오! 주여 어서오시옵소서! 하고 영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합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주의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밤낮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해드리는 삶입니다. 하루 하루 소망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드리는 기도
단6:10-15절, 197.202.369장.
다리오는 벨사살이 변사한 뒤를 이어 바벨론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단5:31). 그가 왕위에 등급하여 체제가 정비되어져 가는 중에 방백들의 요청이 있었는데 삼십일 동안 왕 외에는 누구든지 무엇을 구하는 행위나 숭배를 못하도록 금령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다니엘은 포로였으나 지배자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서 그들을 다스리게 되자 시기를 받게 되었고 저를 넘어뜨릴 꼬투리가 없었습니다. 이에 방백(方伯)들은 다니엘이 하루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을 꼬투리로 삼아 넘어뜨리려는 생각으로 다리오 마음의 교만(驕慢)한 왕(王)을 이용하여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났고 오히려 다니엘을 참소했던 자와 그 가족들이 사자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더 높은 지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자를 구원하시고 그런 자들을 통하여 당신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예루살렘을 향한 기도의 제단입니다. 10절에 그는 자기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 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끓고 기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어인이 찍힌 조소의 금령을 어기면 어떤 결과가 닥치게 되는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한 의무를 계속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을 통해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으로만 믿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면 상황에 따라 외적인 모습은 바뀌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롬10:10)한 것입니다.
첫째, 성전을 사모해서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리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 드린 것은 곧 성전을 사모해서 드린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청결케 하신 후 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개개인의 신앙생활이 구김살 없이 건전하게 자라며 우리 한국 교회가 건전하고 활기 있게 발전하려면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한 것처럼 교회를 사모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여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다니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의 최후 승리의 놀라운 광경을 제시받아 예언한 선지자이며 계21:22절에서는 하늘나라를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지상의 예루살렘인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의 내용이 이 땅위의 생활에 국한된 것이면 저속한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며 드린 기도는 끊어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밑거름이 되었고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드린 기도는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보호해 주신 특별한 은혜와 하늘나라의 최후 승리의 찬란한 광경을 계시 받아 예언할 수 있는 영광을 입게 되었습니다.
2.쉬지 않고 계속된 기도의 제단입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 였습니다. 30일간은 왕 외에는 아무에게도 기도하지 말라는 금령이 내려졌고 만일에 이 금령을 어기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조서가 내렸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 같으면 30일 동안은 기도하는 일을 쉬었다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어느 때나 어디서든지 기도를 하였습니다.
건전(健全)한 성도들은 기도생활(祈禱生活)을 일상 생활화한 사람들입니다. 병든 사람의 호흡 상태가 고르지 못한 것처럼 영적으로 병든 신자들은 아쉬운 일이 있어야 기도하고 평상시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어떤 청년이 개혁자 마틴루터에게 어느 때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항상 기도하라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총리대신의 자리에 있으므로 신간에 쫓기는 생활을 했지만 하루에 세번씩 기도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한 때의 밥은 굶고 지낼 수 있어도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목적이 있는 기도의 제단입니다. 목적이 없이 기도하는 것은 이방인의 기도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 가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단1:8절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였다는 말씀이 있고 단9:3절에는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역경 중에서 우상을 섬기는 일에 참예하라는 억압을 받았을 때나 국무총리로서 부귀를 누릴 때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경건하게 살 것을 결심했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기도하기로 목적을 세우고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목적을 놓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복음 전파를 위한 목적을 놓고 기도합시다. 다니엘이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세속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우상숭배하는 죄에 동참하지 않으므로 이방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했습니다. 그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다니엘이 꿈을 해석했을 때 느부갓네살 왕이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단2:47)고 했습니다. 사자굴에서 살아났을 때에 다리오 왕이 내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단6:25)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직접으로 간접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이방에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둘째, 주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한 기도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와 능력을 요구했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기도하여 어떠한 역사나 축복 기적을 바라면서 기도를 합니다. 한데 그 요구 조건들을 모두다 자기 개인의 영광이나 유익이나 보려고 기도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는 바람직한 기도가 못됩니다. 우리 모두의 기도를 하는 목적중에 주님 영광 위해서 기도하는 자세로 바꾸어져야 할 것입니다.
4.목숨을 걸고 기도한 제단입니다. 평소부터 하루 세번씩 기도하던 다니엘이지만 자기를 시기하여 죽 이려는 음모가 진행되어 이를 잘못 받아들인 왕이 조서까지 발하였으니 이 때에도 다니엘이 기도를 계속하면 자신은 꼼짝없이 사자굴에 던짐을 받을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기도를 계속하였으니 비상한 각오를 하고,
목숨을 내걸어 하는 기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참으로 큰 힘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었으니 그 기도는 과연 간절(懇切)하고 진실(眞實)하며 뜨거운 눈물의 기도(祈禱)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구하기는 하면서 이 다니엘과 같이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해 보았습니까? 그렇지도 못하고

무엇을 얻으려고 했다면 이제 곧 회개(悔改)하고 진실(眞實)되며 정중하고 내 모든 것을 내 맡기는 기도를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곳에 주님이 역사(役事)하리라고 믿습니다.

5.사자 입을 막은 기도의 제단입니다. 이에 왕이 명하여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으며 왕 이 다니엘에게 이르기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에 돌을 굴려다가 사자굴 아구를 막고 왕의 어인을 찍어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을 처치한 일을 고치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왕은 환궁하여 밤새도록 금식하며 그 앞에서 기악을 그치고 잠도 이루지 못하여 번민 고통하였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달려간 왕은 슬픈 기색으로 소리질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니라라고 하였으니,
왕이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부르짖은 것이 사실입니다. 천만뜻밖에 사자굴 안에서 다니엘의 대답은 명랑하였습니다. 왕이여 원컨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의 입을 봉하고 나를 상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나타나 명백한 증거가 되고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심히 기뻐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하매 올리니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은 신앙심의 결과입니다. 이에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하던 자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넣으니 굴 밑에 닿기전에 사자가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 부수뜨려 먹었던 것입니다.
6.참소자들로부터 승리의 제단입니다. 24절에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 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밑에 달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수뜨렸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져서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던 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계획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는데 야만적인 법을 고안한 자들은 그 법에 의하여 심판 받는 것이 정당합니다. 유다 백성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던 바사의 하만도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장대에 자신이 달려 죽는 결과를 맞이하였습니다.(에 7:9-10절).
다니엘이 참소자들을 멸망당하라고 기도는 하지 아니했지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고로 거짓된 것들을 다 벌하시므로써 다니엘은 승리의 쾌거를 얻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적이 되는 마귀의 권세 불의 권세를 이길 수 있도록 기도의 생활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기도하는 자는 언젠가는 승리의 그날이 오고 마는 것입니다.
7.하나님의 의를 의지한 제단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칭하여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 님의 의에 의지하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단9:13절에 우리 범죄로 말미암아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니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단9:18절에 주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주의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주 자신을 위하여 행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단9:20절에 내 죄와 및 내 백성의 죄를 자복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스스로 신령하다 하고 은사를 받았다고 하며,
자신의 기도는 더 잘 상달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교만한 죄를 범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장점은 자랑하는 바리새인보다 자기의 죄를 자복하는 세리가 더 의롭다는 뜻을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시1:3절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것처럼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형통은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의 형통입니다. 물질적 번영 그리고 영적 번영 등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처럼 신앙의 모범은 복음의 불모지에 복음의 불이 붙게 하고 참된 신앙의 소유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물가의 나무처럼 매사가 형통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이 좋은 다니엘이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는 죄를 짓지않고 기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이 기도가 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