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의 기본자세

기도자의 기본자세, (사55:6-7절),

하나님께서는 고통(苦痛) 중에 있는 유다 백성(百姓)들로 하여금 죄(罪)의 결과(結果)가 얼마나 무서운 가를 알게 하시며 죄(罪)를 회개(悔改)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무엇보다도 긍휼함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기도를 해야 하는 점에 대해서 본문을 중심해서 기도하는 자의 기본 자세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찾아야 합니다.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끈끈한 교제의 줄을 그들이 놓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회복을 원한다면 힘으로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인간은 항상 무엇을 찾기 위하여 간단없이 활동(活動)하고 노력(努力)합니다. 다 무엇을 찾기 위하여 분주히 다닙니다. 빵, 돈, 지식, 사랑, 향락, 권세, 명예 등을 찾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일생에 첫째 되는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을 찾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은 기도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렘29:13절에 너희가 진실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로써 만날 수 있고,
진리 안에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시145:18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마7: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는데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우리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눅11:3절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성전은 기도하기 위해서 세워진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을 성산이라고도 했습니다.

대하7:16절에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했는데 대하7:15절에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여 은혜받고 하나님을 만나 복되게 사는 자가 되기 위해 주를 만나기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할 때에 찾으라 여기 만날 만한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때라는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한데 하나님을 만난 자가 심히 적은 것이 아쉬운 것 뿐입니다.

성경에 보면 위대한 역사를 이룩한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위대한 인물은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등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난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서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떠나면서 도중에서 하나님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야곱도 역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후 얍복강 언덕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으며 동녘에 해가 뜰 무렵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개명을 받았습니다. 선지자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데 선지자 이사야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6:1-3절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로 사도바울을 들 수가 있는데 그는 원래 기독교를 굉장히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다메섹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때 새사람이 되어 사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을 만난 자 모두 위대한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으며 우리는 모두 축복(祝福)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 복을 받는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고로 주를 만나기를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3.불러야 합니다. 6절에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된 원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 원인은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온갖 우상 숭배와 탐욕으로 더러워진 유다 백성과 함께 거하실 수 없으심으로써 유다를 떠나셨고 그로 인해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나 계십니다. 더욱이 주를 믿는 자들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 하나님을 부르지를 아니해서 만나지 못했고 만나지 못했으니 신을 믿는 신앙(信仰)이 확신(確信)이 없습니다. 이는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9:27절에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 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子孫)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했습니다.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그의 딸을 살리신 후 그곳을 떠나가실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한데 예수께서는 그들의 간구를 일단 무시하고 가버나움에 (자신의 숙소) 집으로 들어갔으나 그 소경들이 계속 따라오면서 부르므로 소경들의 눈을 고쳐 주시었습니다.

눅18:5절에서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비록 재물과 권력만을 알고 공의는 잊은 재판관이지만 과부가 계속 귀찮게 하므로 결국 그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눅11:8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빵 세덩이를 얻을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친구였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부대 조건을 초월한 강청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강청에 해당되는 헬라어 \"아사이 데이아\"는 부끄러움도 없는 파렴치한 행위 때나,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성가시게 구는 것이란 뜻을 지녔습니다.

기도하라는 교훈이니 우리는 많이 주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가까이하면 우리들의 소원을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4.악한 길을 버려야 합니다.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여기서 탐심과 우상 숭배가 습관화된 유다 백성들이 그 삶을 청산할 것을 촉구합니다. 회개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로 시작하되 손과 발까지도 이어져야 합니다.

이는 회개가 종교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성도의 삶 전체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회개한 사람은 윤리 도덕적으로도새롭게 태어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인정을 받으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인격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진실된 신앙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버리기를 잘해야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십니다.

사도 바울이(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을 그리스도를 얻고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알고 주를 따르매 있어 과거의 자기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을 모두 버리었습니다.

우리도 이 바울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훌륭한 조상, 가문, 학벌, 지식, 명예, 지위, 재물, 권력 등등 이것들이 다 소중하지만 주를 따르며 그를 섬기는데는 버릴 줄 알아야지 그냥 가지고는 좋은 주의 일군이 되지를 못합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는 것 빨리 버리는 것이 빨리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마19:29절에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습니다.

5.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다 잃어버린 바가 되었다고 합니다.

죄 가운데서 잃어버린 바 되었고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 된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에 와서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진수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두팔을 벌리시고 모든 죄인들로 하여금 오라고 부르십니다. 렘3:1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패역한 이스라엘아 돌아 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고,

렘3:1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패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의 남편임이라고 했고, 렘31:8절에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여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반역자라고 하며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음란한 여자가 남편을 배반하고 가정을 버리고 나간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돌아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心情)은 우리의 죄(罪)를 벌하거나 정죄(定罪)하거나 심판(審判)하려고 노한 얼굴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이 쫓아올 때 수치(羞恥)를 준다던가 부끄러움을 준다던가 책망(責望)을 하려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사54:4절에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청년 때의 부끄러움을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그럽게 포용력있는 풍성한 사랑인 것입니다. 사55: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여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더라도 주께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백성은 다 주께로 돌아와야만이 금생과 내생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6.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7절에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생각은 사람의 인격을 좌우합니다. 잠23:7절에 생각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행동을 낳습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의 생명까지도 좌우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거룩케 되기를 바란다면 육의 더러운 생각들을 제해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자라 우리의 가치관과 육체를 지배하기 전에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고후5:17절에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적인 생각을 십자가에 못박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면 의와 진리를 입은 거룩한 새사람으로 변화시킴을 받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우리의 육적인 생각을 십자가에 못박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면 새롭게 된 심령이 우리를 의와 진리를 입은 거룩한 새사람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주님의 요구는 바로 이 변화된 상태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잠16: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께로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경영하여 치부하려고도 하니,출세를 하려고 해도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성사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그가 주시고자 할 때만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사사로운 생각을 버리고 절대자 주님의 말씀만 순종하며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영육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7.가까이해야 합니다. 6절에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며 언제나 어디나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모르고 삽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구나 생의 위기를 당합니다.

누구나 질병을 앓게 됩니다. 그럴 때 인간의 허약성과 제한성 무능을 깊이 느끼면 자연히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병이 위독해서 사망에 직면하게 될 때에는,
더욱 인생의 깊은 뜻을 더듬게 됩니다. 그래서 병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가까이함을 필연적(必然的)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아니하면 영, 육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좌절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信仰)으로 승화(昇華)시켜 오히려 더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고후12:5절에 나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표현한대로 육체의 가시인 중병으로 인해 무척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중병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세번이나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한 고백은 고후12:9절에 도리어 크게 기뻐하므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후12:10절에 약한 것들과 능력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약할 바로 그 때 주님을 더 가까이 할 수 있기에 주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주어짐으로 자신이 더 강해졌다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에 접할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약할 때 위기에 곤란할 때 주님을 찾기보다는 평시에 에녹과 같이 늘 함께 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기를 당하지 아니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聖徒)들은 예수와 늘 함께 하는 생활(生活)을 해야 합니다.

주님은 함께 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좋은 편을 택했다고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눅10:42절에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면서 바빳습니다.

마르다는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턱밑에 앉아 말씀듣는 일에 열중인 마리아를 오히려 칭찬했습니다.

세상의 복잡한 생각에서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길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함 받는 복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