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기쁨 막1:14-22
Dedication. 주님을 향한 헌신의 정신. 란스 헤브너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헌신의 참된 의미를 얘기하면서 헌신은 85%로 만족할 수가 없다.\" 이런 광경을 상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가 한 남편이나 아내를 향해서 서로를 향해서 자기 남편을 향해서 자기 아내를 향해서 여보 내가 당신에게 적어도 85%는 성실할께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와서 여보 내가 전체는 못해도 85%는 당신을 향해서 성실할께요. 85% 그 말은 매우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15%는 땡땡이치겠단 말이예요. 만족하시겠어요? 만족, 15%가 문제죠. 15% 그 15%가 시험듭니다. 헌신은 85% 일 수가 없습니다. 헌신은 100%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사랑이란 전체와 전체를 바꾸는 것이예요. 100%와 100%를 바꾸는 것이예요. 85%와 15%의 결 합이 아니예요. 전체와 전체를 맞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어떻게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 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다음이 뭐예요. 그 다 음도 몰라요? 그 다음에 다시한 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외아들을 주신 사랑. 외아들을 주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가장 소중한 것. 더 정확하게 말할까요? 전부예 요. 옛날 고대시대에, 옛날 시대에 지금도 그렇지만 외아들을 가지고 있는 부모에 대해서 외아들은 전쳅 니다. 그의 생명입니다. 그 전체를 주었단 말이예요. 하나님은 전체를 주었다. 자기 전체를 내어 주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 전체를 내어 주었습니다. 십자가에게 피흘리신 주의 사랑, 그것 은 전체를 내어 주신 것이예요. 그의 피 흘리심, 그의 내어주심, 그의 몸이 그의 100%가 십자가에서 깨 지고 피 흘려 그 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 다고 여러분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이100%의 사랑에 빚지고 있는 자, 그 분의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정당한 응답은 어떤 응답이어야 할까요. 100%를 드리는 것이예요. 100%를 드리는 것이예요. 전체를 드 리는 상징 내가 얼마를 드리든지 내가 뭐 100원을 드리든 1000원을 드리든 10000원드리든 그러나 드릴 때의 심정이 하나님 이것은 나의 전체를 상징합니다. 내 전체를 상징합니다.
1. 평범한 그리스도인인가? 헌신된 그리스도인인가? (14-22절)
오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두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과 평범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그리고 기쁜소식을 믿으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을 어 쩌면 여러분중 다수가 이 부류에 속하겠지만 평범한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 신앙생활할 때 심심치 않게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적당히 믿으라는 말입니다. 네가 무슨 목사 냐? 적당히 믿어? 이러한 말들은 우리가 더 이상 주님이 요구하시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이 비정상적 인 것이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만족하고 안주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보니까 그 이상을 생각하며 \'적당히\'라는 믿음을 뛰어넘어 살았던 몇몇사람에 대한 이 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쁜소식을 전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부류를 헌 신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올 한해 여러분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길 작적하셨습니까? 아니면 헌 신된 그리스도인이길 작정하셨습니까?
#불란서 전쟁 때 오른팔에 총탄을 맞은 어느 사병이 육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결국 그 팔을 자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술하기 직전에 군의관이 \"안타까운 일입니다마는 당신의 팔은 이제 잃어버 리게 되었소\"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 사병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팔을 조국에 바쳤습니다\"고 말했습니다.
2. 헌신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헌신이란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사건속에서 그 의미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재물이나 명예, 혹은 권력을 낚는 어부가 되는 일에 자기를 전폭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가치를 알고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자신을 헌신할 사람은 너무나도 드뭅니다. 베드로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당시 그의 장모가 위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따르는 것이 쉬운일 이 아니었습니다(30). 요한과 야고보 역시 아버지 세베대가 선주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장차 유산이 될 배와 인부를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20). 하지만 그들은 이같은 어려 움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이와같은 헌신된 당신을 좇을 사람 낚는 어부를 부르고 계십니다. 올 한해 여러분은 어떠한 신앙인으로 사시길 원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헌신이란 것은 일종의 희생과 포기입니다. 내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것을 부여잡는 것입니 다. 그런데 우리가 헌신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 직 분을 받은사람들은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주고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받으려고만하니까 매일 서운하지 요. 헌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주어야 믿음도 성장합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아이 라고 합니다. 신앙도 헌신하는 생활 없으면 매일 아이같아서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로 대접이나 받으려 고 합니다.
참된 헌신은 희생의 정신이 깃들여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물을 가르쳐서 그 제물을 영어로는 sacrifice라고 그래요. Sacrifice. 아마 이 sacrifice 라는 단 어가 다른 말로 번역하면 뭡니까? 이게 바로 희생이예요. Sacrifice. 다른 말로 말하면 그것은 희생이라 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물은 곧 희생입니다. 히브리어로도 같은 뜻이예요. 제물이 바로 희생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왕의 케이스가 생각이 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왕,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보다 존경했 던 왕이죠. 그러나 그 젊은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에게 추적당하고 쫓겨다니면서 많은 생 명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어느 날 다윗왕이 아리우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예루살렘의 높은 언덕 에 있는 타작마당에 도달하게 되었어요. 자, 타작마당에 딱 올라가서 보니까 예루살렘의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다 내려다 보입니다. 아주 전망이 좋은 곳이었어요. 다윗은 기분도 좋았습니다. 자기 마음 속 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이 좋은 곳, 전망도 좋은 곳,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싶 다. 이런 멋 있는 경치를 보았을 때, 아름다운 자연을 보았을 때,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야! 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싶다, 찬양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드십니까? 다윗의 마음이 그런 마음 이었을거예 요. 타작마당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어요. 제사를 드릴려면 구약시 대에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 말이죠. 자, 그런데 다윗왕이 이제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리겠 다고 그러니까 주인편에서는 왕이 자기 집에 찾아 오신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놀라운 사실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이 그 장소가 바로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그 자리가 됩 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이스라엘의 성지를 방문하면 예루살렘 한 복판에 있는 예루살렘 시내 전경을 내 려다 볼 수 있는 소위 dome of the rock 바위 성전 모슬람 모스코가 있는 곳이 그 장소예요. 바로 그 곳입니다. 거기에 딱 서 보니까 자기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으로 충만하고, 그리고 주님을 예배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고, 그런 감동으로 꽉 찼단 말이죠. 하나님앞에 내가 제물을 드리고 싶다. 그 런데 제물이 없었어요. 그걸 알아채린 그 주인 아리우나가 왕이시여 걱정하지 마십시요. 여기에 제물이 있습니다. 소와 양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제물로 제공 할려고 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때 다윗이 이 렇게 말합니다. 사양하면서 그러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명한 대답을 합니다.
사무엘하 24장 24절에 보면. 따라서 하세요. 내가 값을 주고,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이런 응답을 했어요. 다시 말하면 나는 공짜 로 주는 그것으로 바치지 않겠다. 제물에는 내 정성이 있어야 되고, 내 땀흘림이 있어야 되고, 내 희생 이 있어야 한다. 내가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겠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응 답이었어요. 다윗의 희생의 정신입니다. 여기 아름다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준 헌신 정신의 소중 한 전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 참된 헌신이라는 것은 전체를 드릴 수 있는 정신이어야 합니다. 참된 헌신은 전체를 드리는 정 신에 근거한 것이다. 전체를 드린다. 진정한 헌신은요 다 드리는 것이예요. 다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분 은 쇼크를 받아 가지고 전 재산 다 바쳐라하는 모양이다. 헌신 정신은 전체를 드리는 정신에 근거한 것 이어야 한다. 정신이라는 말에 위로가 되죠? 다 드려라. 그러면 굉장히 긴장이 될텐데 전체를 드리는 정 신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전부를 드리는 정신.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마르틴 로이드 존스라는 분이라는 분의 책을 읽다가 이 장면을 보고 내가 얼마 나 웃었는지 몰라요. 영국의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데 그 소가 새끼를 낳았어요. 송아지를 낳았어요. 두 마리를 낳았어요. 농부가 너무너무 기뻐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 송아지 새끼 두 마리 낳고서 너무 감사해 가지고 자기 부인보고 이 농부가 말하기를 여보 여보 송아지 새끼 두마리야 우리 하나는 주님의 것으로 하고 주께 드리십시다. 마누라도 아멘 동의했습니다. 얼마 후에 송아지 새끼 한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 돌아가셨어요.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농부가 울상이 돼갖고 방안에 있는 자기 와 이프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큰일났다고. 뭐가 큰일났어요? 하니까 주님의 송아지가 죽 었어. 주께 드린 송아지가 죽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제 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신 분이 있어요. 무슨 소리하나. 다 주의 것이예요. 이건 주님의 것, 이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내 전체가 주님의 것이다 100% 주님의 것이다. 이게 헌신의 정신입니다.
영국의 캠브리지대학의 시티 스터드라는 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부도 잘 했어요. 학교에서도 톱을 달리는 학생이었고 크리캣이라는 운동선수였어요. 그 운동으로서 영국 전체의 골드메달을 따기도 했습 니다. 보장된 출세의 길이 그 앞에 열려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캠퍼스집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가기로 선포했습니다. 학교 당국자들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장된 출세길. 돈과 그리고 명예와 권력과 그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의 길에 나 서자 누군가가 와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이것은 자네에게 지나친 희생이 아닌가 이때 시티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크리스챤 지성들에게 굉장한 챌린지가 되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 는 그의 길을 선교사로 떠나는 마당에서도 한마디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 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정 신인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로 만족해서도 안되고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는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한 평생 내가 정말 그 리스도의 제자로 따라 간다면 그 헌신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3. 헌신의 기쁨과 축복(29-31)
본문에는 조건없이 헌신하는 사람의 모든 염려를 말하지 않아도 책임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데 의사인 누가는 \"중한 열병에 붙들렸다\"(눅4:38)는 표현 으로 그녀의 위중한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미리 부탁드리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찾아가셨 고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믿음으로 헌신하는 사람을 온전히 책임지십니 다. 우리가 왜 망설이는가? 그것은 근심과 염려 때문입니다. 어떤사람은 나는 재능이 없어서, 시간이 부 족해서, 건강이 않좋아서, 물질이 없어서, 자녀 때문에 --- 그러나 헌신할때에 시간도 주시고 건강도 주 시고 물질도 주십니다. 당신의 일하는 사람들은 책임져 주십니다.
4. 헌신자의 자기관리(32-39)
우리는 저녁늦게까지 치유사역을 하셨던 예수님께서 새벽 오히려 미명의 시간에 기도하러 나가시는 모 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일이 많다는 이유로 기도를 등한히 여기고 있습니다. 무엇보 다 헌신자가 자기관리를 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길 원한다면 기도생활에 성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일 이 바쁠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인도함이 없으면 헌 신자는 금방 고갈되고 맙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보시면 제자들 은 다가와서 \"모든사람이 주를 찾나이다\"하고 인기있을때에 이곳에서 사역을 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그리고 덧붙 이시기를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하셨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사명과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인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뻐하며 하는 일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님 의 뜻대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의연히 그곳을 떠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는 것이 참된 기도의 결과입니다.
[헌신과 도전]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뉴욕시에 어떤 사람의 청동상이 있는데 그의 팔다리가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상 밑에는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원통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영혼까지 구원받았으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헌신자를 예수님은 책임져 주십니다. 헌신자는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올한해 여러분은 어떠한 자세로 신앙생활하기로 작정하십니까? 모두가 헌신자로 드려질 수 있기를 초청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