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는 바울의 헌신

최선을 다한 바울의 헌신/고후11:16-33

최선을 다한 바울의 헌신
고후11:16-33





제가 얼마 전에 \\\"크리스찬 리더쉽 개발\\\"을 위한 편지라는 것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편지에는 재일교포 3세로서 세계적인 사업가로 성장한 손정의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디어의 황제라고 불리는 루퍼트 머독과 함께 \\\"E 밴처스\\\"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게이츠와 함께 \\\"Key point Japan KK\\\"라는 인터넷 전자상거래회사를 설립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그가 작은 체구의 한국인으로서 배타심이 강한 일본 사회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세계적인 사업가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낮선 일본 땅 에서 그토록 엄청나게 성공을 할 수 있게 하였을까? 라는 부분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편지에는 손정의라는 사람이 그렇게 큰 성장을 거둔 그의 성공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첫째: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와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서 광부 생활을 시작으로, 날품팔이, 행상 등으로 어렵게 살아간 그런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 어려운 미국 유학생활 중에 인터넷을 통한 공간도로, 즉 Space Rode 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디지탈을 통한 혁명을 꿈꾸고 사업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즉 그에게는 뚜렷한 사업의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뜻을 정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일단 나에게 어떤 것을 행할 뜻이 생기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Vision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뜻이 정해지니까? 그들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아니 하였고 결국 그 왕의 진미를 먹은 사람들 보다 더 지혜로웠고 더 아름다웠고 더 철저하게 믿음의 목표를 성취할 수가 있었던 것 입니다. 이 손정의라는 사람이 이런 목표가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목표를 향해 꾸준하게 달릴 실천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뜻을 세운들 그것을 성취할 실천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터넷을 통한 혁명을 꿈꾸던 손정의는 24살의 어린 나이에 \\\"Japan Soft bank\\\"라는 직원 2명 있는 작은 회사를 설립하고서는 최선을 다하여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사치하지 않았고 사업이 잘된다고 교만하지 않았고 사업이 잘 되면 될수록 그는 정직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맡은 일을 잘 감당하였다 고 합니다. 그 결과 21년이 지난 오늘에는 7,000명의 종업원과 4조엔이 넘는 막대 한 자본력을 갖춘 대 기업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는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나를 사용하실 것이다\\\" 라는 희미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사용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믿음의 확신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추진력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그는 고난도 역경도 극복해 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가 성공한 인물로서 화려한 \\\"Spot Light\\\"를 받지마는 그의 성공 뒤에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 있었다고 합니다. 재일교포 3세로서 당하는 신분의 차별이 어린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가 성공을 거둔 뒤에 단 한번 대중 연설을 통해서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꼭 성공을 거두어 다른 많은 재일 한국인들이 자신을 바라 보고 힘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였답니다. 결국 그는 고난을 뛰어 넘어 큰 성공을 거둔 그의 삶의 모습은 오늘 이 낯 설은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손정의라는 사람이 그렇게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둔 그일 뒤에는 한가지 목표를 정하여 그것이 성취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한 열정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소망한 꿈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는 목표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여러분 자신들이 있는 그 믿음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귀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 믿음의 목표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이라는 사람을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바울! 그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가문적인 배경과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어쩌면 그는 완벽한 조건의 이스라엘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로 태어났고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을 만큼 율법에 충실한 가정에서 성장을 하였으면 나중에는 가말리엘이라는 그 당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율법선생에게서 율법을 배운 그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당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 정말 모든 조건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무려 다섯 번이나 맞았는데 이 매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매질입니다. 40번을 다 때려야 하지만 그들이 은혜를 베푼다는 이유로 하나를 면제해서 39번만을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매를 195번이나 맞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은 태장을 맞았는데 이 태장은 너무나도 끔찍한 채찍질입니다. 그 끝에다가 납이나 동물의 뼈를 달아서 때리기에 한번씩 맞으면 살점이 뜯겨서 나간다고 합니다. 이런 엄청난 채찍질을 세 번 맞았다는 것입니다. 또 돌로 한번 맞아서 제자들이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다 버린 적도 있고 전도여행을 하다가 세 번이나 배가 파선하여서 일주일을 표류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들의 위험과 자지 못함과 주리고 목마름과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만족하던 그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이 지내던 그 사람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뒤에는 매를 맞기도 맞고, 굶기도 하고, 배가 파선해서 죽을 고비도 넘기고 강도들의 공격과 잠잘 곳이 없어서 이리 저리 헤매기도 하였고 추웠고 배가 고팠고... 아뭍튼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고 그는 자신의 믿음의 뒤안길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런 어려움도 무릅쓰고 최선의 노력으로 헌신하였음을 자랑하기 위해서 입니까? 바울은 자신만큼 주님을 위하여 깊이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이런 고난의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감당한 복음전파의 사역이 힘들었으니 자신을 좀 알아달라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으로 인하여 당하게 되었던 고난을 이야기함으로 더 많은 헌신자들이 위로 받고 용기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이르러 바울이 가르친 복음을 훼방하는 거짓선지자들을 경고하기 위해서 그는 이런 자신이 고난 당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헌신을 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복음을 위한 헌신이었다는 것입니다.
롬1:14절에서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다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빚진 자의 마음\\\" 바로 복음 안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진 바울이었기에 그는 일 평생을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고 그가 당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세 번의 전도 여행을 통해서 많은 곳에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를 통하여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은혜를 경험하였던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의 사역을 보면서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복음 안에서 빚진 자였습니다. 담대히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이 되었던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고, 또 다메섹에 있다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서 대 제사장으로부터 구인영장을 발부 받아서 적어도 예루살렘에서 240Km나 떨어진 그 먼 곳까지 달려갈 열심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강렬한 빛 가운데서 주님을 발견하고 3일 동안 흑암 속에서 기도함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오히려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도로 택함을 받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은혜를 그가 경험하였기에 그는 스스로를 부르기를 \\\"죄인 중에 괴수\\\"요, \\\"만삭이 되어 태어나지 못한 그런 사람\\\" 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은혜가 바울로 하여금 복음에 헌신을 하도록 하였던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어떤 은혜가 있었습니까? 우리에게는 복음 안에서 어떤 감격의 모습이 있었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그 은혜를 경험하였기에 그는 평생을 복음을 위하여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 그것이 그에게는 삶의 목표였고 믿음의 목표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어려워도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증거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복음은 바로 나의 존재의 목적이요 살아갈 방향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갈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헌신되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소원합니다.

둘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행16장에 보시면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을 하면서 실라와 함께 빌립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였습니다. 하루는 어느 곳을 지나다 보니 한 여자가 귀신에게 사로잡혀 점을 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자신을 이용하여 주인이 돈을 벌고있음도 잘 모르고 있는 그런 형편이었나 봅니다. 바울과 실라는 즉시 그 가련한 여자 종을 귀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던 것 입니다. 이에 분노한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는 그런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가만히 보면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의 뜨거운 마음을 발견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그 여자 종을 고쳐 줄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영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바울이 가졌던 것처럼 그런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는 그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주인의 재물을 훔쳐서 도망한 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 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그종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의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결국 바울은 그의 영혼을 사랑하여 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종은 바울이 전한 복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종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네시모입니다. 바울은 이 오네시모를 말하기를 \\\"내가 복음 안에서 낳은 자식\\\"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오네시모. 주인의 재물을 훔쳐서 도망을 쳤던 그 종을 위하여 바울은 친히 그 주인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그 종 한 사람을 위하여 바울은 친히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서 저를 용서하라고 부탁을 하였고 혹시 저 오네시모가 너에게 재산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이 있다면 내가 갚아 줄 테니까? 따로 계산을 해 놓으라고까지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을 빌레몬서를 통해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그런 일입니다. 도데체 그 종 오네시모와 바울이 무슨 관계입니까?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바울은 그와 관계를 맺습니다. 바로 영혼을 사랑하였기에 말입니다.

2월 헌신의 달을 지내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 처럼 복음 안에서 다른 영혼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볼 때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라는 종의 영혼을 사랑하여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의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도움을 준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영혼을 사랑한 다는 것은 바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영혼을 섬긴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하나님 나라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복음 안에서 먼저 된 우리가 따뜻한 마음을 가져 봅시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경험한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보십시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섬기는 것일 것입니다. 연약한 지체를 서로 돌아보는 것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셋째: 주어진 직분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대적하는데 그 첫 번째 주된 잇슈는 \\\"네가 어찌하여 사도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사도란 말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인데 이는 주님으로부터 제자로 부름을 받고 함께 생활 하면서 가르침을 받은 뒤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을 사도 즉 \\\"apostle\\\"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의 일꾼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후 하늘로 가신지 한 5년 뒤쯤인 A.D 35년경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사실 바울은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를 말하기를 사도라고 불렀던 것을 우리는 그의 서신서를 통하여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이 직분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바울 만큼이나 자신의 직분에 강한 집착을 보인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고린도 전서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불림을 받은 나 바울은\\\" 이라고 기록이 되어있고 또 갈1:1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그는 많은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직분에 대하여 도전을 받았으나 그는 그럴 때 다 자신의 직분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 라고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바울 그는 자신이 감당하는 직분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직분임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 직분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가진 그 직분은 누가 무엇 때문에 주신 직분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왜 여러분들을 그 직분의 자리에 있게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있는 그 자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엄청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2월 헌신의 달을 지내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신앙의 옷깃을 여미는 신실하신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바울과 같이 자신이 맡은 직분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온 정성을 다할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 헌신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귀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