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자의 하나님

헌신자의 하나님/롬12:1-2

헌신자의 하나님
롬12:1-2





어떤 남자가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신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고 싶고 모든 것을 다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결혼하기 전에 자기 어머니가 항상 따뜻한 물을 떠서 아버지의 발을 씻어주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 때마다 행복해 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결혼하면 그런 행복한 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자기 아내는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 발을 좀 씻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밖에 놀라운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이 신랑은 기대하기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따뜻한 물을 받아서 하얀 수건을 들고 그 부드러운 손으로 발가락 사이사이를 간지리면서 그것도 행복에 취한 얼굴로 닦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정색을 하며 하는 말이 \\\"어떻게 더러운 발을 남에게 씻어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에 남자는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서로 큰 싸움이 되어 이혼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입니다. 이 남자의 말은 이렇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고받은 부부 사이인데 발 좀 씻어 주지 못할 것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내의 말은 이렇습니다. 부부도 예의가 있는 법인데 그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결혼을 해서 오래 살았다면 몰라도 이제 신혼에 어떻게 그런 것을 요청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왜 설교 초두부터 냄새나는 발가락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의 얘기는 부부간의 관계니까 누가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 주님과 우리의 관계로 생각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나에게 헌신한 사람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또 아내는 남편에게, 주인은 일꾼들에게, 지도자는 국민에게, 국민은 지도자에게 나만 알아주고 나만 보고 나만 위하여 나를 최고로 여기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인이 종업원을 고용할 때 나에게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나를 해롭게 하고 나를 무시할 사람을 고용할 바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잘나고 똑똑한 것은 나를 이롭게 하고 나에게 헌신하는 것이 전제 된 후의 일입니다. 어떤 소년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을 면담하던 고용주가 말했습니다. \\\"내가 보니 너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을 것 같구나? 너는 아마도 운동이나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아서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도 이곳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다른 일에 네 마음을 기울일까 걱정스럽다.\\\" 그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야구를 좋아합니다. 제가 야구 경기를 할 때는 전심을 다해서 하지요. 그렇지만 저는 지금 직장이 필요하여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나누어질 만큼 미련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국 그 소년의 말을 들은 주인은 그를 채용하였다고 합니다. 정치인들을 보십시오. 어느 정권이든 자기 사람을 고용하려고 합니다. 자기 사람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나에게 헌신할 사람을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그것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또는 그럴 권리가 있든 권리가 없든 상관없이 사람마다 나에게 헌신할 사람을 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헌신\\\"이란 말조차 생소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헌신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사랑하는 것을 드리라고 하고,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할까봐서 그렇습니다. 헌신하면 나는 없어지고 나는 비고 나는 가난하게 될까 두려워서 성령의 내적 권고가 있어도 이를 외면하고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한 전도자와 완전한 헌신의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의 말입니다. \\\"나는 도저히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것이 두려워요. 내가 헌신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참으로 비참한 선교지로 보낼까 두렵거든요.\\\" 그 전도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느 춥고 눈 오는 날 아침에 한 마리 작은 새가 얼어붙은 채 당신의 창밖에 찾아와 유리를 쪼으며 당신의 도움을 구한다고 생각합시다. 만일 이 무력한 어린 새가 당신에게 자신을 다 맡길 때 당신은 당신의 손안에 있는 새를 움켜쥐어 눌러버리겠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피난처가 되어 따뜻하게 해주고 먹이를 주고 보호하시겠습니까?\\\" 그 후 이 아가씨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대화했던 전도자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셔서 선교지로 보내셨어요. 내 마음은 지금 기쁨과 감격과 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신다는 것조차 모르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신해 본 일도 헌신에 대하여 생각도 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고 귀하고 높아서 드리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적고 천하고 추한 것도 드리지 못하는 것은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500억쯤 되어 드리지 못한다면 몰라도 500원짜리 가지고 드리지 못하는 것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젊고 싱싱한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늙고 추한 사람으로서 이기적이고 욕심에 찬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에게 헌신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헌신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헌신이라고 할 때 세 가지를 살펴보아야 생각합니다. 첫째, 헌신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헌신하느냐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 중에 \\\"간신배 나라의 충신은 충신인가 간신인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신배 나라의 충신은 간신배이지 결코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공산권에도 헌신자가 있고 히틀러에게도 헌신자는 있었습니다. 신문에서 어떤 정치인을 소개하면서 그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헌신자\\\'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앞서 박정희 정권에 헌신한 사람을 보았고, 전두환 정권에 헌신한 사람도 보았습니다. 단종에게 헌신한 사람들이 사육신이요 생육신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헌신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주저함 없이 헌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많은 곳에서 처음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는데(출 23:19, 민 28:26, 잠 3:9, 겔 44:30, 겔 48:14), 이는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19에서는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48:14에서는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처음 것을 내가 먼저 쓰고, 그것으로 내 자식을 위하여 사용하고, 내 사업을 위하여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죄 없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산다고 하였습니다. 아예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6:19-20). 또한 고린도후서 5:15에서는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큰 헌신이 있어도 그 대상이 주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투자이지 헌신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헌신의 대상인 주님을 모른다면 순교를 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순교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위대한 직임을 주시면서 먼저 물으셨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의 양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이요, 주님 사랑이 양을 먹이는 전제요 조건이란 말입니다. 주님 사랑하지 않고 하는 목양은 사업이요 투자입니다. 그런 목사는 삯군입니다. 우리 헌신의 대상은 인간이 아닙니다. 부패한 정권도 사악한 독재자도 아닙니다. 믿지 못할 인간도 아닙니다.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에게 헌신하시지 않겠습니까? 둘째, 헌신에는 일이 있습니다. 대상이 없는 헌신도 없지만 사역이 없는 헌신도 없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였다고 하여도 그 헌신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면 그는 헌신자가 아닙니다. 누구에게 헌신하였느냐가 중요하지만 무슨 일을 헌신하였느냐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를 위하여 헌신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8월달에 96세로 소천된 고(故) <버서 홀트> 여사에게 고아와 장애아의 해외입양에 헌신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작년 11월 8일에 죽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프리모 네비올로>(76)씨를 가리켜 육상발전을 통해 올림픽운동에 헌신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치인들만큼 헌신이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과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라고 말합니다. 군인들을 가리켜 국토방위에 헌신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볼 때 나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헌신했는가, 무엇을 헌신할 것인가를 선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헌신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그리스도의 큰사랑을 깨달을 때, 또 기도하고 응답을 받을 때, 또는 어려운 일을 당했다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해결 받았을 때 헌신을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사경 속에 있다가 기도로 살아난 사람들, 망했던 사업이 기도로 기적적으로 회생되었을 때 소위 새로운 사명을 찾고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니 기도 응답이 없을 때 헌신해 보세요. 그 헌신이 기도 응답의 조건은 아닙니다. \\\"나에게 이렇게 해주시면 내가 이렇게 하겠으니 주십시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로 소원을 가지게 하는 뜻은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고 또 우리로 헌신하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헌신과 서원이 있는 기도가 응답이 잘 되는 것입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그가 아들이 없을 때 기도하고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가 바로 사무엘입니다. 식물인간에서 기적으로 회생한 사람이 선교사로 헌신합니다. 일생동안 병과 싸우며 늘 약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당신이 하시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당신이 가시고자 하는 곳은 어디든지, 당신이 하시고자 할 때는 언제든지\\\"라고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헌신은 사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음악인은 음악으로 헌신하게 되고 사업가는 사업으로 헌신하게 되고 의사는 의술로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은 한때 시키고 방송국의 편성자로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였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예수를 믿었지만 돈과 인기를 얻게 되자 예수님을 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젊은 전도자의 설교를 듣고 나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 믿은 예수님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은 진리는 \\\"나는 돈도 인기도 얻었지만, 내 인생의 목적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밤 그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 자기 일생을 하나님께 다시 바치기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때 방송국에서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다시 계약을 체결한다면, 지금까지 받았던 돈의 배 이상을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그 때 그는 대답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오늘 밤 저는 제 목소리를 주님 앞에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제 목소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이 전화를 끊고 난 후,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떠올라 작곡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바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라는 찬송입니다. 그가 바로 빌리 그래함 곁에서 음악을 돕고 있는 <죠지 베브리쉐아>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헌신은 주로 자신의 일터에서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이 일에 종사하다가 사명을 깨닫고 그 일을 떠나 저 일을 하기도 하고 때로 선교사나 목사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 선배 목사님 중에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사역하신 서만수 선교사님이란 훌륭한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선교사가 헌신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26세의 유망한 청년이 미국 유학을 앞에 두고 1963년 병원에 갔다가 \\\"농립성결핵\\\"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때만해도 결핵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가 점점 더 심해졌고 의사도 더 이상 가망 이 없다는 최종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러자 \\\"집에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느니 산 속에 들어가 조용히 사라져 버리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생각하고 어느 기도원을 찾아갔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기도원에서 6개월을 기도한 후 전보다 더 건강한 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집안의 반대가 완강했지만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었고 \\\"덤으로 받은 내 인생, 당연히 주님께 헌신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여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헌신에는 사명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헌신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도 있습니다. 오히려 목사나 선교사가 되려는데 하나님은 그를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다시 보내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 웰치(Welch)라는 포도즙을 먹어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도즙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즙은 웰치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원래 이 분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려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신체검사를 해보니 자기 부인이 아프리카 기후에 견딜 수 없는 체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실망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결심을 하였습니다. 선교사로 가지 못한다면 돈을 벌어서 선교사의 일을 돕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치과 의사로서 부업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일을 하였는데 알코올이 전혀 없는 교회 성찬용 포도즙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그 사업을 물려받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돈을 쓰겠다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위대한 웰치 포도즙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버는 돈마다 10의 5정도를 다 선교 사업을 위하여 드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헌신은 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로 직장에서, 시장 바닥에서, 교단에서, 농장에서 말입니다. 내가 울고 웃은 그곳 말입니다. 내가 매일 가장 많은 시간과 관심을 기울이는 그곳에서 말입니다. 셋째, 헌신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헌신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진실에도 사랑에도 다 정도가 있습니다. 조금 사랑하고도 사랑이라고 합니다. 적은 헌신도 헌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몸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말은 몸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니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6:19-20). 여기에서 몸이라고 할 때 마음을 제외한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을 때 이것은 정신은 드리지 않아도 되고 몸만 드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전체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부를 드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두 가지로 보면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최선의 것, 최고의 것으로 드리려는지 아닌지를 보면 그가 헌신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좋은 것은 내가 먼저 쓰고 남거나 허술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헌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최고, 최선의 것을 정성으로 드려야 합니다. 영국의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처음 1년에는 300달러를 받았을 때에는 20달러밖에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600달러를 받게 된 때에는 320달러를 헌금했고, 그 수입이 1200달러가 되었을 때에 920달러를 드렸습니다. 웨슬레가 죽었을 때 재산 목록을 보면 옷, 서적, 마차 한 대 뿐이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24만 달러를 주님께 바치면서도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름답게 느껴집니까? 그런데 남에게는 아름답고 나에게는 두렵습니까? 웨슬레는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불쌍한 사람이었고 역사 속에서만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그 당대에도 후대에도 부족함이 없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묻고 계십니다. \\\"너는 어떻게 그에게 감사를 하느냐\\\" \\\"너는 그를 위해 무엇을 버렸느냐?\\\" \\\"재물로써 단지 물질만 드리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을 바치라. 너의 자유와 욕망과 의지와 너의 마음과 생애까지도 맡기라.\\\"고 말입니다. 시편 119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119:10절),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145절),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69절). 그는 하나님을 찾든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든지 혹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든지 전심으로 하겠다는 것이요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을 원하십니다. 영국 정부가 중국에서 크게 전공을 세운 <골든> 장군에게 많은 상금과 직위를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모든 것을 다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33회 교전이 기록된 금메달만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물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메달을 찾았으나 아무 데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흉년이 심하던 해에 멘체스타에 보내 그것을 녹여 판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사주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메달을 보낸 날에 그의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마지막 물건을 오늘 주 예수께 바쳤다.\\\"라고 말입니다. 가장 귀한 것, 가장 귀한 부분, 가장 귀한 시간을 가장 귀한 분에게 바치는 것, 이것이 헌신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 앞에서는 부족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헌신으로 주의 사역을 이루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펌프를 아십니까? 펌프에는 반듯이 먼저 물을 부어야 합니다. 물이 아까워서 붓지 못하면 절대로 많은 물을 얻지 못합니다. 내 헌신의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할 때 수천만 바가지의 물을 얻게 됩니다. 15000여명의 사람에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는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헌신의 물을 넣고 펌프질을 할 때 배불리 먹고 12광주리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헌신의 삶을 살았느냐? 너는 무엇을 헌신하였느냐? 너는 무슨 사명을 가지고 살다가 왔느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