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헌금 말3:7-12
십일조헌금은 기독교 헌금중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아직은 매우 부담스럽게 여기는 헌금중의 대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성도의 신앙의 표현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헌금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는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보니 믿음이 좋은 사람이야` 한다거나, `누구는 헌금하는 것을 볼 수 없으니 그 사람의 믿음은 형편없음에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다 조심해야 할 생각들입니다.
특히 십일조에 대하여서는 더욱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이나 아내의 형편으로 해서 십일조를 하고 싶으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전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방적으로 몰아 붙이는 언행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제 중요한 자세는 십일조를 정확하게 하면서믿음생활하시는 분들은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음을 감사할 뿐이요,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 정죄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아직까지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힘쓰며 사모하며 살 것이로되, 십일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은 대체적으로 십일조 생활로 인하여 은연중에 그 마음들이 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바라건대 우리 성도들은 이제 후로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게 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수입이 적을 때부터 십일조 생활을 시작해 보십시요. 십일조가 늘어나는 기쁨 때문에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성경에 치중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십일조 헌금에 대한 교훈에 접근하여 말씀하고자 애쓸 것입니다.
적게 드리든, 많게 드리든 바른 헌금생활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리시는 성도들이 먼저 되시길 바랍니다.
1.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보십시다.
첫째 명령은 `나의 것은 다 내게 드리라`입니다.
먼저 여리고성의 정복사건을 생각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백성을 영도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용기를 주시고 축복도 하셨지만, 그에게는 어려운 일의 계속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사역 초기에 요단강을 건너는 일도 큰 일 중의 하나요, 또 한가지 어려운 일은 바로 여리고성 정복이었습니다. 가나안 지경 첫성이요, 가나안 지경에서 가장 견고하고 요새와 같은 곳을 정복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와와 그 백성에게 여리고성을 정복할 수 있는 전략을 친히 세워 주셨습니다.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바퀴를 돌되 마지막에 크게 소리를 지르면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의 남녀노소와 짐승까지 다 죽이고, 은금과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온전히 순종하여 여리고성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것처럼 아간이라는 한 사람이 시날산 외투 한벌과 은 200세겔중과 금 50세겔중을 숨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로 인하여 크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는 곤욕을 치루게 됩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세상 말로, 하나님이 너무 옹졸하신 것 같지 않습니까? 전부 다 드린 것과 같고, 그까짓 아간이 가져간 물건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스라엘 전체에게 진노하신단 말입니까? 이 여리고 사건속에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한 두사람이 한 두가지를 착복했다는 그 정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리고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첫번째 성이라는 데 있습니다.
전체 가나안 정복을 놓고 볼 때에 여리고는 첫 획득물이요, 첫 수확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손을 대면 안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렇듯 엄한 진노를 통하여 교훈하십니다.
레27:26, `오직 생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새끼라 우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것은 나에게로 돌려라` 하시는 것이 십일조에 대한 첫째 명령입니다.
둘째 명령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눅17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눅17:11이하에는 예수님이 열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시는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도 십일조 교훈으로 보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가 다 고침을 받았으되, 단지 한사람, 사마리아인 만이 되돌아와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눅17:17,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여기에도 대단히 귀중한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다` 깨끗함 받은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수입은 `다` 깨끗한 것이어야하고 또한 깨끗합니다. 여기에서 생각할 것은 소위 십일조 해방감을 가지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언어가 생소할 것입니다. `십일조 해방감`.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십일조 해방감을 가지는 사람은 `십일조를 드렸으니까.... 이제는 나머지 아홉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또한 십일조 해방감을 가지는 사람은 `기쁨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무엇인가에 강요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을 원치도 않으실 뿐더러, 우리는 나머지 9/10도 주님이 주신 깨끗한 물질이매, 절제함으로, 정녕 필요한 곳에,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에 곳에 사용해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주님은 십일조는 당연히 주님의 것이기에 받으시고, 우리에게 늘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즉 바르게 쓰고, 바르게 사용하고 있느냐를 묻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두가지 명령입니다. 잘 실천하시어서 넘치는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십시요.
2. 십일조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야곱의 경우입니다.
창28장에는 하란으로 쫓겨가던 야곱이 돌베게를 하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 너무 기뻐서 야곱은 세가지 서원을 하게 됩니다.
창28:20-22,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오면` 너무나 엄청난 서원조건입니다.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기가 막힙니다. 그러나 냉철히 따져보면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매우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이 말씀속에는 잘못된 일이 한 두 가지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해 주시고, 먹고 마심과 평안함을 주시면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서원입니다. 나아가서 축복하시면, 성전을 지어 바치겠고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초보적이요, 물질적인 신앙양태입니다.
레27장에 보면, 서원할 수 없는 재료에 대한 규례가 나옵니다.
생축의 첫새끼는 당연히 여호와께 돌릴 것이기 때문에 또는 여호와께 아주 바친 것이기에, 또한 여러가지 십일조들은 드리나 안 드리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모두 다 서원을 할 수 없는 재료라고 하십니다.
야곱이 서원할 수 없는 재료인 십일조를 담보로 해서 서원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원래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나 성전을 담보로 해서 축복을 구하는 것도 보기가 아름답지 않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야곱의 생전에 이 서원을 한번도 갚은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성전을 지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십일조를 했다는 성경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나아가서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요즘의 신자들도 당연히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서 복을 빌거나 또는 축복의 빙거로 삼고서, 내가 십일조를 드렸으므로 하나님은 당연히 축복하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십일조를 드렸으니 하나님은 당연히 축복하셔야 한다는 생각은 야곱과 같은 잘못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바른 정신과 마음으로 십일조 헌금을 드리십시요.
둘째는 말라기의 경우입니다.
오늘 본문 말3:10은 십일조에 대한 축복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저희 교회 십일조 헌금 봉투에도 이 성구가 씌어져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소리 높여 외칩니다. `어디에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한 곳이 있느냐? 유일하게 말3:10만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려보라. 하나님이 넘치게 축복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 한 구절만 쭉 뽑아 올려서 보면 그렇게 말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차적으로 문맥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잔잔하고도 사랑넘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읽었지만 그 흘러가는 마음과 분위기는 `화가 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안되겠지만 `흥분하신 하나님`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의 시험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야곱과 같은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중심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십일조와 헌물 즉 하나님의 것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적질에 화가 나셔서 외치십니다. 헌물을 드릴 때에도 어떤 것을 드렸습니까? 말1:13, 토색한 물건, 저는 것, 병든 것 그리고 흠있는 것을 가져오매 하나님은 매우 번폐스러워 즉 번거러운 폐단으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오직 바라신 것은 `온전한 십일조`였습니다. 너희가 진정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면 내가 왜 축복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축복하신다는 말에 성도여 관심을 갖지 마십시요.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말에 집착하지 마십시요. 오히려 나의 십일조 생활은 온전한 가에 관심을 가지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이 진정으로 넘치는 복을 주실줄 믿습니다.
3. 십일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사실 십이조를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년 주기로 살았습니다.
안식년은 7년째 오므로, 매년 종교적 십일조를 드려야 했습니다.
민18:21-23, `내가 이스라엘자손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자손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지킬 영원한 규례라`고 하셨습니다.
신14:22-23,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두번째는 3년째마다 즉 제3년과 제6년에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신14:28-29, `매 3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제1,2년과 제4,5년에는 절기를 위한 십일조를 드려야 했습니다.
신16: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십일조를 드립니까? 교회일에 동참하며, 선교와 구제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드립니다. 전체 헌금이 많아도 생활비의 2/10가 넘지 않게 하십시요.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우리의 십일조 생활은 너무나 연약했습니다. 이제 이후에는 적은 것에도 물론이지만, 많이 드릴 때에도 힘있게 기쁨으로 드리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도록 애써야 합니다.
소소한 문제를 따지지 마시고, 내 믿음으로 볼 때에 `온전하다`라고 판단되도록 드리십시요.
`하나님은 축복하셔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요. `그저 드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하는 기쁜 마음으로 드리십시요.
성숙한 헌금생활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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