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약속을 건 십일조

하나님의 이름을 건 약속 십일조 헌금/말3:7-12 /2008-06-26

하나님의 이름을 건 약속 십일조 헌금
말3:7-12





신부와 목사와 랍비, 세 사람이 모여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얼마만큼 바칠 것인가에 대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하고 신부가 말했습니다. “저는 먼저 땅에 줄을 긋고 제가 가진 돈 전부를 공중에 던집니다. 줄 오른편에 떨어진 돈은 하나님께 바치고 왼편에 떨어지면 제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썩 좋은 방법이 못되는데요”하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땅에 원을 그려 놓고 내 돈을 공중에 던지지요. 원 안으로 떨어진 돈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원 바깥에 떨어진 것은 내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랍비가 돌아서서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께 바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두 사람이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만 웃기시오, 뭐! 모든 걸 다 바친다구요”
“그렇소!” 랍비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어떻게요?”

“저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돈 전부를 던집니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땅에 떨어진 것은 모두 제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에 머무는 돈은 당신의 것입니다”

오늘은 헌금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오신 분들이 있으시면 설교를 듣고 소화를 잘 시켜야 합니다. ‘큰 맘먹고 처음으로 교회 갔더니 목사가 돈 이야기 하더라. 다시는 안갈래’라고 하는 마음을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늘 교회에 갔더니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배우고 왔다. 복받기 위해서는 교회로 가야 되겠구나 교회 가자!’라고 권면하여 다음 주일에 더 많은 사람들을 모시고 오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헌금, 특히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상담란이나 개인적으로 십일조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었고, 특히 십일조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르게 가르쳐 드려야 한다는 책임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제가 평소에 성도님들에게 강조하기를 우리 교회 성도들도 다른 복도 받아야 하지만 재물을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여러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우리교회에도 큰 부자가 일어나 하나님의 큰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아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재물의 복을 받으라고 하면서, 부자가 되라고 하면서 부자되는 길, 재물의 복을 받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제가 솔직히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교회가 100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우리교회 출신중에서 그래도 사회에서 내어 놓을만한 부자로 사는 사람이 없습니까?’ ‘왜, 후손들 중에 부자로 사는 사람들이 없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부자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무언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부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었느냐?”
한국에서는 목사가 강단에서 헌금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흥사로 다니시는 목사님들 일부만 강조하지 담임목사로서 헌금을 강조하거나 십일조에 대한 강조를 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식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전체에 흐르는 내용 속에서 구원과 믿음에 대한 내용도 많지만 재물과 돈관리 헌금에 대한 내용이 훨씬 더 많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물질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물질과 떨어진 상태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질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면 물질은 우리에게 믿음의 분량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항상 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제물이 당시에는 재물입니다. 양이나 소나 염소나 보두가 재물입니다. 그래서 형편에 맞게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둘기도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허용하셨고, 비둘기 중에도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중 어느 것이든 드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살도록 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준지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실 한경직 목사님은 십일조를 제2의 복음이라고까지 가르쳤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목사님 목회 초창기에는 동란에 피난 내려온 이북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아마 성도들의 삶이 궁한 것을 느끼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부요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십일조를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십일조는 성도의 마땅한 의무요 축복의 원리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고백을 가진 성도는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언약백성의 표징이요, 축복의 표징입니다.

좀더 확실하게 말씀드리면 십일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징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는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표징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즉 재물, 자식, 지식, 은사,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표시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언약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대충하는 것은 언약을 깨트리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징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아까운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헌금은 인색함이나 아까운 생각이 들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에 비하면 우리가 헌금 조금하는 것조차도 아까운 생각이 든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도 아낌없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셨는데 우리가 나의 생명을 다 드려도 괜찮은데 헌금 조금 드리는 것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아직도 우리가 올바른 물질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내 것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라는 일명 한미준이 2004년도에 십일조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신교도 중 매월 정기적으로 수입의 1/10을 헌금 하는 교인이 30%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얼마나 참여할까?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약50%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냐 하는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참여하는 성도가 그 정도 된다고 봅니다.

신앙을 처음 갖게 된 사람들이 교회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 중의 하나가 십일조 일 것입니다. 물론 십일조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역시 자신이 돈과 재산에 대한 자유도가 얼마나 있느냐에 귀결되는 문제라고 보여 집니다.

십일조는 우리 신앙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습니다. 수입의 1/10은 인간이 돈에 대해 느끼는 가장 공포의 대상입니다. 공수 부대는 항상 11m 높이에서 낙하 연습을 합니다. 여기에서 두려움이 없다면 고공에서 낙하도 두려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십일조는 돈과 재산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요구 사항(Requirement)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 기쁘게 2/10나 3/10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재산 전체를 드리는 예에서 보듯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맡고 있는 것이다’ 라는 청지기 마음을 표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 십일조의 사례는 돈과 재산뿐만 아니라 생각, 시간, 사업, 직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구현되고 실현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십일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말라기서 전체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였노라고 했을 때 백성들은 ‘언제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습니까?’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얻어 터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징계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왜 징계를 받았는가?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죄가 있었습니다. 그 죄가 무슨 죄인가 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장6절에 보면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이때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7절 이하에 보면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면 눈 먼 희생제물과 병든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물을 세상 임금이나 총독들에게 드려보라. 그들이 그것을 기쁘게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말하기를 제사 드리는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롭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와서 드렸으니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시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장에 보면 제사장들의 허물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하나님의 지식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을 구하게 되는데 제사장들은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9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하나님도 제사장들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2:3)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을 향하여 3장 7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돌아가겠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이들이 하나님께 대답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는 것입니까?”돌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것은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회개하여야 할 것인가? 회개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8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도둑놈’으로 부른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들에게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을 가리켜 도둑놈이라 하였을까요? 빼앗은 것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다만 드리지 않았을 뿐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댓가를 받을 때 주인에게 돌아갈 몫을 챙겨주지 않았다면, 돌아갈 몫을 자기가 가져버렸다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요즘 법정용어로는 횡령사건입니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드리지 않으면 도둑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둑놈의 누명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회개를 한다고 할 때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는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을 회개한다는 것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면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십일조를 하면 복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복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드리는 헌금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드릴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일조 헌금을 종교적 의무로 하는 사람들은 불쌍한 \\\\\\\'종교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벽을 깨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의 최소한의 \\\\\\\'물질적\\\\\\\' 호흡입니다. 그건 우리의 자연스런 삶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의무로 하지 마십시오. 그저 이웃과 나누는 것이 나의 삶이기에 당당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십일조는 가지고 꼭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에 내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이 많습니다. 그것으로 구제도 하고 선교비에도 사용하고 시골 교회를 돕는데 사용하면 안됩니까? 라고 묻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일단 자신의 창고에 들였다가 다음으로 어디에 드리라고 했습니까?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왜 양식이 필요합니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기가 지체로 섬기는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특별히 십일조만큼은 반드시 본교회에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기가 인심내고 싶은 아무데나 사용하면 안됩니다. 본래 십일조를 보면 사용 용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십일조로 레위인과 제사장과 나눠먹는 십일조(레 27:30-33, 민 18:21-32)\\\\\\\"입니다. 둘째 십일조는 축제에서 가족과 함께 나눠먹는 십일조(신 12:5-19, 14:22-27)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신 12:5, 11, 14:23)\\\\\\\'으로 가지고 나와 \\\\\\\'온 가족(12:7, 12, 14:26)\\\\\\\'이 함께 먹고 즐기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셋째 십일조로는 이웃과 나눠 먹는 십일조(신 14:28-29, 26:12-15)가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매 3년마다 한 번씩 행하는 철저하게 나눔에 목적이 있는 십일조였는데, 수혜 대상은 레위인들과 객(이방인,개종자들)과 고아와 과부들이었습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들은 알다시피 구약에서 늘 언급되는 나눔과 구제의 대상이었기에 이 십일조는 특별히 약자를 보호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한 용도로 실시되었던 십일조였으며, 또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복에 대한 선포는 오직 이 십일조를 지키는 것에 대하여 선포되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11절에 보면 해치는 것을 없애주시고,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는 법이 없도록 만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의 고백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얻게하는 길입니다. 멘솔래덤 상표와 주인공 알버트 하이드는 십일조를 드린 다음 언손에 바르는 약 맨소래담을 발명하여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십일조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YMCA 에 수천 만 달러를 헌납했고, 87세로 죽을 때는 1백50억이 넘는 돈을 선교사업으로 내놓았습니다. 윌리엄 콜게이트도 뉴욕으로 가는 뱃길에서 노인을 만나 ‘네가 훌륭한 비누업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운데 십일조를 드려라’는 조언을 듣고 이를 실천, 세계의 재벌이 되었으며 록펠러도 주급 1달러 50센트를 받았을 때부터 십일조 생활을 해 큰재벌이 되었습니다. 록펠러 십일조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듣는 얘기입니다.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독점하면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던 록펠러(John Davidson Rockefeller, 1839~1937)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지 아세요?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수성가를 해서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근검절약 정신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일기를 쓰듯 평생 회계장부를 철저히 썼으며, 수입을 온전히 계산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수입의 십분의 일을 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뒤에는 십일조를 계산하기 위해 별도의 십일조 전담 부서에 직원을 40명이나 둘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십일조 생활을 얼마나 철저하게 하려고 했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것은 영어성경에 보면 모든 십일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십일조란 무슨 의미인가? 신14장 22-23절 말씀에 보면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토지에서 난 모든 종류의 열매를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포도주, 기름, 곡식의 십일조라고 했습니다. 종류만 십일조 하면 되는가? 정확한 십일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23:23-24절 말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적 물질적으로 드리는 것도 잘 드려야 하지만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만 삼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기 쉬운 것은 하고 생색을 내면서 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하여 책임을 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작은 금액은 쉽게 하면서 십일조를 드렸다고 생색을 내면서도 큰 금액에서는 피해가는 위선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수입의 모든 종류를 망라하여 드려야 하지만 금액에서도 온전해야 합니다.

몽골교회에서 주일예배 때였습니다. 선교사님께서 말씀을 마치고 헌금을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한 성도님이 손을 높이 들더니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아무거나 십일조해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면 되는 겁니다” 성도님은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헌금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님이 큰 자루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헌금 바구니에 도저히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헌금바구니 옆에 두었는데 목사님은 그것이 무엇인가해서 자루를 풀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내용물은 다름 아닌 소똥이었습니다!!! 몽골에서 소똥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겨울이 되어 벽에 소똥을 바르면 아주 난방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소똥은 8월 중순부터 6월초까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나라인 몽골에서는 땔감으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겨울을 나려면 적어도 26만원가량의 난방비가 필요한데 몽골에서 신입선생님의 월급이 4만 5천 원이니 땔감비는 보통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정말... 그 나라에서 소똥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소똥냄새가 교회를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함께 기도합시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이 성도님의 가정에 만 배의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그런데 놀라운 일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있는 모든 소들이 그 성도님 집 앞에 몰려와 볼일을 보더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소똥이 쌓여갔습니다. 그해 그 성도님은 엄청난 소똥덕분에 땔감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소똥은 이웃에 팔아 생활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성도의 순수한 십일조 헌신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비록 적고 보잘것없어도 소득의 십일조를 정직하게 드리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똥 십일조도 받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른 것에는 당신의 이름을 걸지 않았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말씀에서는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책임을 지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받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축복은 십일조를 통해서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