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드리는 헌금과 헌물

여호와께 드리는 헌금과 헌물/레27:1-34

여호와께 드리는 헌금과 헌물
레27:1-34





지난 1998년 11월 1일 주일부터 주일낮 예배시간에 레위기의 말씀을 설교하게 되었는데 오늘로써 15개월만에 레위기 27장까지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남산교회를 시무한지 20주년이 되었을 때 그동안 몇번이나 마음 먹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레위기 강해설교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98년 10월에 미국에 있는 4개 한인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제 자신이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기도하는 중 귀국하는대로 레위기를 설교하도록 성령께서 저의 마음을 계속 감동해주셨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은 어렵고 또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멀게 느껴진 내용들이 많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설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의 방법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1년 이상 상고하면서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많이 성숙해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떤 때는 너무나 감격하여 여러번 울기도 하였고, 진심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으며 남은 생애는 하나님을 이렇게 섬겨야겠다고 결심도 하였습니다. 사실상 우리의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되어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법도를 몰라서 건전한 믿음과 성숙한 믿음이 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10년, 20년을 신앙생활 하고 교회의 중직을 맡고 있어도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바르게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믿는 그 믿음의 잣대로 표준을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믿으려고 하지 말고 바로 믿으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남보다 잘 믿으려는 교만 때문에 남을 업수이 여기는 영적교만이 생깁니다. 바로 믿으려는 신앙은 하나님 섬기는 법도를 잘 알고 섬길 때 가능한 것입니다.



레위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인간의 의무를 말씀합니다. 수직적으로는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게 되고, 수평적으로는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레위기를 마지막 상고하면서 우리들 마음 속에 진정한 서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서원은 어려운 것이지만 일단 하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서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고, 자신의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맹세를 의미합니다.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서원하며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원은 자신이나 그의 가족(3-8절), 그의 동물들(9-13절), 그의 집(14-15절), 그의 토지(16-25절) 등을 바쳤습니다. 특별히 사람에 대한 서원은 신중해야 합니다. 서원에 따라 축복이 되고, 슬픔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장 10절 이하에 보면 한나가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 하고 서원하였습니다. 이 서원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사무엘입니다. 한나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그런데 젖떼기를 기다렸다가 젖을 뗀후, 어린 사무엘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가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기도하던 여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 아들을 여호와께 평생 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한 후, 그 아들을 성전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대단한 결심입니다. 서원을 지킨 한나에게 하나님은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고, 사무엘은 신정정치와 왕정정치를 잇는 가교역할을 했으며 이스라엘 역사에 유일한 사사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직을 감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원하고 지키면 보다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원을 함부러 하면 안됩니다. 사사기 11장에 보면 입다라는 사사가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기를 \'만약 주께서 암몬 자손과 싸워 이기게 해주시면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 나와서 처음 나를 영접하는 자를 번제물로 드리겠습니다\'라고 서원하였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번제물로 드린다는 것입니까? 함부로 서약을 하였습니다.

입다는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그의 무남독녀 외딸이 제일 먼저 나와 그를 영접합니다. 이때 입다는 승리의 기쁨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옷을 찢으며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하며 통곡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무남독녀를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딸이 두 달만 기회를 달라고 하여서 두 달 동안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처녀로 죽는 것이 괴로워서 애곡하였다고 합니다.



전도서 5장 4-5절 말씀에 보면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서원을 함부러 해서는 안됩니다.잠언 20장 25절 말씀에도 보면 \"함부러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이 물건을 하나님께 바치겠다 서원하고, 그 후에 생각하여 보니 안되겠다 하여 취소하면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것을 가지게 되는 자기를 치게 하는 덫이 됩니다.



사도행전 5장에 있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팔아 전부 드리겠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약속하였습니다. 그 후에 생각하니 \'다 드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물이 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하여 바칩니다. 이것 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레위기 27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헌물에 대한 서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절∼13절까지는 사람과 짐승을 바치기로 한 서원입니다.



먼저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한 경우로 \'내가 성소에서 봉사하겠습니다\' 하고 서원했으면, 성소에서 봉사하는 사람은 레위 자손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직접 봉사하지 못하고, 정해진 금액을 속전으로 바쳐서 헌신의 표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 때에 속전의 액수는 서원자의 노동력에 근거하여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이와 성별에 따라 금액이 달랐습니다. 20-60세까지의 남자는 은 50세겔, 같은 나이의 여자는 30세겔입니다. 구약시대에 은 30세겔은 보통 노예 한 사람의 가격입니다. 난지 1개월에서 5세까지는 남아는 5세겔, 여아는 3세겔, 5세-20세까지는 남자는 은 20세겔, 여자는 은 10세겔, 60세 이상은 남자는 은 15세겔, 여자는 은 10세겔로 바쳐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한 자가 서원하였는데 속전으로 드릴 돈이 없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의 형편에 맞게 속전을 정하여 나이와 남녀에 관계없이 정하여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또 어떻게 이 말씀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야 합니까? 헌신자가 자기 능력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물에서 부자는 황소를 드려야 하고, 중간 정도 사는 사람은 양이나 염소를 드려야 하고, 가난한 자는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황소나 양이나 비둘기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습니다. 다만 흠이 없는 것을 드려야 합니다. 가난한 자가 빚을 내서 헌금하는 것,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색하게 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각자 능력에 맞게 해야 하며 즐거움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고후 9:7)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제직으로, 성가대원으로, 교사로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이 서원이 있음으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왜 머리를 깍았습니까? 우리는 잘 모릅니다. 바울의 깊은 마음의 결심을 우리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대개 한국에서는 무슨 결심을 강조할 때, 머리를 깍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한 관계, 한이 맺혀있을 때, 꼭 이루어야 하겠다고 할 때, 또 수험생이 단단한 결단을 하고 머리를 깍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의 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 축복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셨을 때, 꼭 죽는 줄 알았는데 나를 구해 주셨구나 하는 감격이 있을 때, 나는 이제부터 제2의 인생이다 할 때, 머리를 깍는 습관이 있습니다.

바울이 머리를 깍기 전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서 갈리오라는 총독에게 재판을 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리오가 종교문제는 내 소관이 아니니 재판을 할 수 없다고 기각할 때, 유대인들이 홧김에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때렸습니다. 이 죽음의 자리에서 구출된 후에 바울은 서원이 있음으로 머리를 깍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서원은 하나님과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으니 이제 후로는 나의 생명은 주의 것입니다. 내 영혼을 주께 맡깁니다. 이것이 서원입니다. 서원을 하면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서원은 하였으나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제사장에게 가서 사정을 말씀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서원한 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 것입니까? 서원자가 자력으로 못하면 은혜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주님이 형편에 따라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 나는 몸으로 봉사하고 싶은데 건강이 약합니다. 건강 주시면 봉사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십니다. \'나는 물질이 없습니다. 물질로 봉사하고 싶은데 물질 주시면 주님 영광 위하여 사용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십니다. \'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만 드리고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봉사하는 것 구경만 하지 말고, 주신 은혜대로 주의 영광과 주의 나라와 주의 교회를 위하여 충성, 봉사하는 마음에 결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14절∼15절까지는 가옥과 토지를 바치기로 한 서원입니다.



사람이 땅을 바치려고 할 때에 땅 자체는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에 바칠 수가 없습니다. 대신 그 땅에 뿌려질 수 있는 씨의 양을 따라 땅의 가격을 정하여 돈으로 바쳤습니다. 만약에 바친 땅을 되찾으려고 하면 1/5을 더하여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5000만원 짜리 가옥을 바치겠다고 서약했는데 그 집을 다시 찾으려고 하면 60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다시 찾아서 다른 사람에게 팔았으면 희년이 될 때, 소유주는 서원자가 아니고, 제사장이 됩니다.(20-21절)



이 규례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은 결코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하였으면 무조건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신실하신 분으로서 맺은 약속은 파기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서원을 함부러 해서도 안되지만 일단 서원하였으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민수기 30장 2절 말씀에 보면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오는대로 다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서원에 대한 영원한 원칙입니다. 서원에 앞서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원하고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서약을 파기하면 거기에 따른 징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원기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26절∼34절까지는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야 할 예물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아주 바쳐진 것을 히브리어로 \'헤렘\'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물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특히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인데 십일조는 서원물로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1/10을 속하려면 그것에 1/5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반드시 축복받습니다. 그것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시험까지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하나님이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드릴 수 있는 서원헌금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를 다른데 사용하면 안됩니다. 십일조에서 선교헌금, 감사헌금, 교회의 전도회비, 신학생 장학금, 농촌교회 보조금으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헌금 가지고 다른 것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간혹 십일조에서 갑자기 빌려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 액수에 20%를 추가해서 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꼭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 이것이 십일조의 자세입니다.



32절에 보면 소나 양이나 짐승을 1/10로 바칠 때는 짐승을 우리에 가둔 뒤 문으로 하나씩 나오게 하여 열번째 나오는 짐승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우열을 바꾸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꾸면 둘다 거룩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교계하다\"는 말은 \'탐색하다, 관찰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이 우리에서 나오는데 10번째 나오는 양이 건강한 것이 나오면 아깝기 때문에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두 마리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인간의 성정을 다 아시기 때문에 순서대로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농부의 소가 송아지를 두 마리 낳았습니다. 한 마리만 낳을 것이 라고 기대했다가 두 마리의 송아지가 나오자 너무 감사해서 이 농부가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한 마리는 하나님께 드립시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송아지를 하나님께 드리지요?\' 남편은 \'나중에 키워서 결정합시다\' 그런데 어느날 송아지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여보, 여보, 송아지 한 마리가 죽었소\' 다시 아내가 물었습니다. \'누구 송아지가 죽었나요?\'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송아지가 죽었소\'라고 말합니다.
이 농부와 같은 일을 우리가 종종 합니다. 하나님께 바칠 때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십일조의 액수가 적으면 잘 냅니다. 그러나 액수가 많아지면 유혹이 옵니다. \'한번 안 바치면 큰 돈인데\'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교계하지 말라, 탐색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원금 계산하고, 지출 계산하고, 인건비 계산하고 이것 저것 탐색하고 나머지가 순수입이니 여기서 십일조 바치자 하면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일조는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뇌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9/10을 받아 누림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몫인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것을 훔치는 것은 나의 전 재산을 부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나의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얻어 누리고 있는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는 신앙의 표현인 동시에 감사와 헌신의 표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레위기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약속을 받을만한 수준에 도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믿고 지키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고 성실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저는 간절한 기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특권, 이 레위기의 말씀, 남이 볼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이고 낡아빠진 것같이 보이지만 이 속에 축복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모든 성도들이 레위기의 말씀 붙잡고 신앙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말씀 속에서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 붙잡고, 말씀이 약속한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