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헌금 고후9:6-15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을 성수하고 바르게 예배를 드리고 또한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충성하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드리는 가장 큰 헌신은 무엇보다도 헌금생활입니다. 예배의 절정은 헌금이며 또한 헌금은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헌금생활은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1. 성도는 재정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 중에 가장 최절정은 헌금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찌 헌금일 수가 있나?\"하고 의심을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최고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절정이 되어야 하고 말씀에 은혜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오직 말씀만 있으면 된다\"하고 주장합니다. 물론 목사인 저는 그런 주장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목사에게 말씀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예배시간에 말씀만 중요시하기에 다른 것이 너무나 가볍게 처리가 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예배에는 두가지 부분으로 나누는데 하나는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드립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서 교회에 나왔고 정성과 재능을 드립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합니다. 얼마나 드리는 것이 많습니까? 그리고 받는 것은 오직 말씀과 축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받는 것에 치중을 합니다.
현대교우들은 거지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중에 헌금을 합니다만 헌금은 단지 교회운영비나 교역자들의 생활비로 쓰기 위함이 아니라 예배의 최고 절정이 헌금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존 맥아더의 \'헌금의 원리\'라는 책에는 우리의 시간의 50%, 하루 12시간 이상 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기록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돈을 벌까? 어떻게 쓸까? 어떻게 모을까? 어떻게 받을까? 어떻게 하면 안 줄까? 저것은 얼마인가? 얼마를 깍을까? 얼마가 남을까?\", \"어디에는 얼마가 들고 또 어디에는 얼마가 들고 …\",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그 50%의 수치가 과연 얼마나 정확할지는 모르겠습니만 그러나 돈은 우리의 생각의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돈을 부정하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돈에 대하여 많은 교훈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헌금에 대하여 설교하거나 성경공부를 하면 \"또 돈이냐? 목사가 돈만 안다. 제발 교회에서는 돈 이야기를 안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언제 바르게 헌금을 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바르게 헌금을 해보지도 못하고 돈타령하고 불평하고 외면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우들이 헌금을 하면 목사가 그것을 다 갖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목사의 순수한 양심과 신앙으로서 우리가 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 가장 무시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반면에 사탄은 우리가 돈을 잘못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여러분은 오늘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돈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돈을 어떻게 사용하시기를 원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함으로 가난해지고, 영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금전문제에 끊임없이 시험과 유혹에 당면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수유리에 있는 어느 보험회사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홀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창구에 돈다발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보았습니다. 손만 내밀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한참을 그 돈다발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우연히 영화 제목이 생각이 납니다. \"돈을 가지고 튀어라\". 목사라도 돈 뭉치를 보니까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제가 아는 국민은행 지점장으로 있는 어느 집사님은 말하기를 \"목사님. 지점장 노릇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매일 은행원들을 조심시켜야 합니다. 만일 창구에 있는 은행원들이 돈을 종이로 보아야지 돈을 돈으로 본다면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보는 나의 느낌은 어떠합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 바치느냐에 따라서 나와 내 후손이 범사에 잘되고 그런 교회는 부요해지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돈에 대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바르게 드려지지 못할 때 우리는 참된 성공과 삶의 행복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돈은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이 영적인 사람인가 육적인 사람인가를 구별해 줍니다. 그래서 성도는 재정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0을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 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돈에 불의하면 하나님은 결코 많은 돈을 주시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6:10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랑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얼마나 좋습니까? 누구나 돈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돈의 유혹과 시험을 피하고 물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시고, 원하는 곳으로 여행도 하고, 또한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살인하고, 금실좋은 부부가 오해를 해서 싸움을 하고 이혼을 합니다. 돈 때문에 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립니다. 돈때문에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로 변합니다. 돈때문에 사람을 유괴하고 인신매매를 하고 폭행을 합니다. 돈때문에 깨어진 사랑과 행복과 평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며 돈 자체를 믿지를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6:17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주셔서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거기에서 위로와 만족을 얻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곧 우상숭배입니다(마 6:24, 골 3:5)
돈때문에 아간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배를 주었고 자신과 가정에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돈때문에 발람은 죄짓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였습니다. 돈때문에 들릴라는 삼손을 배신하였고, 돈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초대교회의 위선자가 되어서 즉사하였으며, 유다는 돈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고 돈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은혜의 자리에서 이탈됩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면 그 시간부터 우리의 주인은 마귀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돈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 누가복음 6:38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고 바르게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법은 헌금과 구제를 하면 됩니다. 특히 도벽은 구제하면 없어집니다.
돈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요. \"나는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인가? 아니면 돈 자체를 원하는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돈으로 나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는데 내가 그것을 잘못 사용하고 있지를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필요를 위해 쓸 만큼 채워주십니다. 빌립보서 4:19를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돈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돈에 대하여 너무 인색해서 입니다(잠 11:24). 우리가 돈에 인색하면 결코 많은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돈에 대하여 조급해서도 안됩니다(잠 21:5). 급히 돈을 벌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요. 내가 조급하다고 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돈을 빨리 벌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죄를 짓게 하고 가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게으르면 안됩니다(잠 20:13). 하나님은 게으른 자에게 결코 돈을 벌게 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탐식하거나(잠 23:21), 방탕해도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잠 28:19).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만 돈을 갖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 나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그것은 환경과 장소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금함으로 더욱 부요해지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2. 헌금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0을 보면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돈을 은행에 맡기고 돈을 떼일까봐 불안해서 어쩔 줄모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자기가 저축한 금액대로 찾으면 됩니다. 우리가 헌금하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교회의 헌금통은 하늘나라 저금통장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저축하면 하나님은 최소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이자를 처서 주십니다. 이보다 투자효과가 좋은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은행에 저축하고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청구서에 기록을 하고 도장을 찍고 저금통장과 함께 창구에 내면 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헌금을 하고 돈이 필요하면 하나님께 기도로 청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장을 찍으면 하나님은 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헌금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은 주고받는 상환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마태복음 22:21를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헌금이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거룩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셋째, 헌금이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40대의 집사님 부부는 정말 복을 많이 받아서 부자로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부자만이 아니다. 두 부부는 잘 생긴데다가 학식이 있고 교양과 예의가 있으신분이었다. 누구라도 그 가정을 부러워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반 다 죽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떨리는 음성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제 아내가 임종직전입니다. 빨리 오셔서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그 집에 도착해서 보니 아내는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기도를 하고 보니 아내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남편이 \"여보. 뭐라고?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하면서 아내의 입에 귀를 대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다시 뭐라고 하자 \"뭐? 돈을 달라고?\" 하면서 안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백만원 다발을 꺼내서 아내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어가는 아내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남편은 아무런 힘이 없는 아내의 손에 돈뭉치를 쥐어 주니까 3초도 안되어서 힘없이 돈을 떨어트리고 다시는 숨을 쉬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으면 무엇합니까? 그 돈으로 자기 생명하나 연장시키지 못하지 않습니까? 돈은 가지고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돈은 자기만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돈을 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감사하면서 사용해야 합니다.
넷째, 헌금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의 척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습니까? 올바르게 헌금해 보십시요. 우리는 단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헌금을 동반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린 자식에게 과자를 사줍니다. 그리고 과자를 먹는 것을 물끄러미 봅니다. 그런데 아이는 비록 어려도 아버지가 사주신 과자를 자기 혼자만 먹는다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버릇없는 자녀가 됩니다. 반드시 야단을 쳐서 고쳐야 합니다. 자식이 먹고 싶어도 아버지에게 하나 줍니다. 또 어머니에게도 하나 줍니다. 그후에 자기가 먹는다면 얼마나 사랑스럽고 흐믓합니까? 여러분. 어린 자식이 주는 과자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록 아이는 하나 더 먹고 싶어도 먼저 아버지를 하나 주고 어머니를 하나 주면서 자기가 먹는다면 더 사랑스럽고 기특해서 다음에는 더 많이 사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주신 과자를 아버지 하나도 주지 않고 자기만 먹는다면 그것은 버릇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헌금의 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본문 7절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헌금을 빼앗고자 함이 아니요 더 사랑하시고 더 많이 주시고자 헌금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헌금은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업에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우리들의 헌신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 헌금을 통하여 일하시고자 합니다. 고린도후서 8:4, 5를 보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헌금은 성도를 섬기는 것뿐 아니라 주님의 사업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이 아파서 직접 봉사하지 못해도 헌금으로 봉사를 할 수 있으며, 기도나 전도를 하지 못해도 헌금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하며, 찬양대나 교사나 구역장이 되지 못해도 헌금을 통하여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나가서 선교하지 못해도 헌금으로 선교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이렇게 주님의 거룩한 사업에 동참케 합니다.
3. 헌금을 드리는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이것은 결혼생활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주는 삶을 보면 됩니다. 처녀와 총각이 사랑한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이들은 결혼 전에는 자기 것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있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네 것과 내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에는 네 것과 내 것의 구별이 없습니다. 서로가 주고 받은 결혼예물이나 혼수감은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사용됩니다. 결혼을 한 후에는 몸과 마음을 서로에게 드립니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 전부를 맡깁니다. 이것도 억지가 아니라 기쁘게 드립니다. 몸과 마음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면서 아까와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이자처서 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면서도 평안하고 기쁩니다. 더 주지 못해서 걱정입니다. 헌금은 이런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우리가 변하고 우리가 삐쭉거리며 변덕을 부립니다. 신랑 예수님은 신부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음을 바치고 몸을 다 바친 희생입니다. 그런데 신부된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신랑되신 예수님 만큼 바치고 있습니까? 불행히도 그것이 아닙니다. 기적 중의 기적은 몇 년전이나 지금이나 헌금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바친 헌금에 매년 인상이 있었습니까? 직장에서 일 이년만 봉급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당장 노조운동이 일어나서 소란을 피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조보다도 못합니까? 우리 중에 헌금할 때는 천원이 매우 크게 보이지만 자기를 위하여 사용할 때는 10만원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고 부요하게 되기 전에 바르게 헌금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 어떤 자세가 바른 자세입니까?
첫째, 믿는 마음으로 드리십시요.
성경의 원리는 30배, 60배, 100배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풍성하고 넘치도록 복을 주십니다.
둘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십시요.
출애굽기 36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건립하고 성소의 모든 쓸 것을 만들기 위하여 매일 아침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모세가 공포하기를 \"여러분. 이제 됐습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만 갖고 오십시요\"라고 하였습니다. 헌금은 강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여러분들에게 돈을 쥐어짜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목사가 헌금에 대하여 말씀을 합니다만 여러분이 안드려도 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심는데로 거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셋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십시요
7절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헌금은 감사입니다. 정말로 누구엔가 신세를 지고 은혜를 입었다면 그에게 선물을 하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헌금으로 감사를 하십시요.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과 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헌금은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넷째,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리십시요.
마태복음 6:21을 보면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몸이 아프다는데 지금은 어떨까?\", \"지난번에 얼굴을 보니까 수척해졌는데 무슨 고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하면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과 영원한 천국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때로는 믿다가 시험을 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차라리 교회를 그만두자 하는 극단적인 처방까지 내릴 때가 있습니다 만, 예수님 때문에 참고 억울해도 견딥니다. 그리고 그것이 매디 매디를 이어가는 대나무와 같아서 더욱 견고하게 예수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어른 신자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면치례나 의무적으로 헌금을 하지 마시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요. 반드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4. 헌금을 바르게 할 때 받는 복은 무엇 입니까?
헌금은 반드시 복으로 거두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연보라고 기록된 헌금은 원어상 \'복\'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한다\" 하는 것은 \"복을 심는다\"는 말입니다. 농부에게는 두 종류의 씨앗 있습니다. 하나는 봄에 뿌릴 것에 대하여 잘 보관하고 있는 종자인 씨앗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양식입니다. 농부는 씨앗이나 양식을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을 먹는다면 봄에 밭에 뿌릴 것이 없어서 가을에 거둘 것도 없습니다. 그는 결국 가난해 집니다. 반면에 먹고 싶은 유혹이 있어도 봄에 뿌릴 것을 생각하고 양식만 먹습니다. 그리하면 그는 봄에 씨를 뿌리고 많은 수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헌금이란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니라 복을 뿌리는 씨앗입니다. 반드시 복으로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씨앗인 헌금을 양식으로 알고 먹을 수도 있고 갖고만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확할 때는 그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이란 단어로 기록된 헌금은 어떤 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까?
6절을 다시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 하였습니다. 바른 헌금은 결코 가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뿌린 것의 이상으로 많이 받습니다. 7절에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여러분. 누가 저주를 받고 누가 징계를 당했습니까?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과 보호의 은혜, 그리고 친히 인도하심과 부요케 하심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후손들을 위하여서라도 복을 뿌리고 복으로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 절에 \'모든\'이란 단어가 무려 4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넉넉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라기 3장을 보면 십일조는 문자 그대로 하늘 문을 열고 물질의 복을 부어 주십니다. 단지 물질의 복뿐 아니라 환난과 재앙과 질병을 막아 주십니다. 여러분. 혹시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병에 걸리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까운 돈이 병원으로 다 빠져 나가지는 않습니까? 또는 가정이나 사업에 그리고 자녀들에게 자꾸만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십일조는 재앙과 불의한 일을 방지합니다. 우리 중에 힘들게 일한 만큼 수입이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꾸준히 하십시요. 그리하면 하나님은 모든 질병과 재앙을 막아주실 뿐 아니라 생활도 넉넉하게 해주십니다.
잠언 3:9, 10을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수입의 첫 열매를 드릴 때는 우리의 생활 창고를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히 채워 주습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 중에 오늘의 설교를 통하여 오해를 하거나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교우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시험에 들고 말씀에 오해가 없기를 위하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목사가 헌금을 강요한다\", \"교회가 헌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빼앗으려고 한다\", \"목사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 이런 오해가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오해 때문에 목사가 복을 받는 헌금에 대하여가르치지도 않고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목사 자신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금년도에 날마다 은혜를 더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표어를 갖고 있습니다. 날마다 은혜를 더하기 위하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금년도 1월의 설교 제목을 생각해 보십시요. 먼저 예수님을 닮고 선교를 하십시요. 주일을 지키기 위하여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참된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헌금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은혜를 더하는 복있는 사람이 되고 복된 가정을 꾸미면서 이 교회에서 날마다 은혜를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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