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십일조 헌금
온전한 십일조헌금
말3:7-12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사 복 주시기 위한 참 좋으신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얻은 소득의 10·1조는 나의 것이라 하셨습니다(말3:8, 레27:30-32). 우리 예수님께서도 십일조 헌금을 인정 하셨습니다(마23:23). 우리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어린아이들까지도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크게 복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 중에 적어도 5000번 이상의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지요(마6:33). 물질 생활에 있어서 먼저 구하여야 할 그 나라와 그 의는 십일조 헌금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 하셨습니다. 성도님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외적의 침략으로 인하여 그렇게 처절하게 노략질을 당하고 망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여 주시는 내용입니다.
온전한 예배와 십일조 헌금이 없어 졌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말라기서는 구약 성경의 맨 마지막 책으로서 동시에 신약과 구약이 연결되는 다리로서의 그 의미가 실로 큽니다. 성도님들 이런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말라기서가 강조하는 것이 영적 생활에는 예배요, 육신생활에 있어서는 십일조 헌금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잘하면 신약에 들어갈 준비가 잘 되는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림을 기다림에 필요했던 준비는 재림을 기다리는 준비의 모델입니다. 초림을 기다리던 경건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영적 예배의, 십일조 생활에 힘썼던 것처럼 오늘날도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재림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준비하며 삽시다.
1. 십일조 헌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두텁게 하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본문 9절에 보시면 십일조 헌금 드리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복된 삶을 기대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십일조 헌금을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이 모자라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 다스리시는 백성과의 관계를 온전케 하시고자 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다스리시는 능력이 더욱 충만히 그 백성들 중에 나타나시기를 소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 먹을 것은 없어도 하나님의 십일조는 먼저 챙기는 신앙을 보시고 하나님은 내게 합한 자라 하십니다. 성도님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불편케 하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십일조 헌금은 나의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본문의 \"십일조\"란 말은 \'마아싸르\'라 하는데 십분지 일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님들 나머지 10분의 9는 하나님의 것 아닙니까? 십분지 9를 드리라 하셔도 하나님의 것을,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찾으시겠다는 데 무슨 이의가 있겠습까? 성도님들 더구나 복을 주시겠다는(10절) 약속과 함께 겨우 10분의 1일 우선 내게 돌리라 하시는데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섭섭케 하겠습니까? 겸손과 즐거움으로, 감사로 드립시다. 순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축복의 그루터기를 만드는 것이니 참으로 귀한 것 중에 귀한 것이 십일조 헌금입니다. 성도님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과 축복 관계를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십일조 헌금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1) 물질(物質)의 축복(祝福)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세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온전한 십일조 헌금을 드려서 축복을 받은 성도로서 모범입니다. 창세기14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이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그가 얻은 것에서 10/1의 헌물을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십일조 헌금을 드린 후에 엄청난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수백명이나 되는 그의 식구들을 능히 생활 염려 없도록 돌볼 수 있는 실력자가 된 것입니다(창14:4). 그후 그의 아들 이삭은 한 해 농사에 100배가 되는 복을 받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창26:12). 십일조 헌금은 물질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 역사를 보아도 십일조 헌금 잘 한 때에는 경제 부흥이 크게 일어났었습니다(대하31:6; 느10:37-38).
그러나 십일조 헌금 드리기를 싫어하거나 인색하게 할 때 그 농사하여 얻은 것을 다 약탈당하고 헛농사 지어 속상하고 아무 것도 먹어 볼 수 없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삿3:15; 6:11).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한 특별한 배려이셨습니다. 본문에 보시면 십일조 헌금하고 복 받게 되는 것이 너무 분명한 일이기에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시험하여 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2) 십일조 헌금의 축복은 사업형통(事業亨通)의 축복(祝福)입니다.
11절 말씀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 하셨습니다. 잠언3장 9∼10절에 보시면 \"너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포도즙이 넘치리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처음 익은 열매란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 헌금입니다. 성도님들 \"밑터진 독에 물 붓기\"란 말 있지요. 정말 십일조 헌금이 없는 경제생활은 밑터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십일조 헌금이 없는 물질 생활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폭풍 앞에 촛불 같은 것입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물질 생활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는 그의 가계부에 십일조 헌금 항목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십일조 헌금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요 축복 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업 성공의 길잡이입니다. 성도가 복을 받아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번성에 번성을 반드시 주신다\"하셨기 때문입니다(히6:14).
그런데 히브리서 6장 15절 말씀에 보시면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하셨습니다. 성도님들 온전한 십일조 헌금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래 참아\"라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좀 힘들어도 참음으로 십일조 헌금을 드립시다. 축복과 형통을 예약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감사로 합시다.
3) 명예가 높아지는 축복이 있으리라 하십니다.
12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십일조 헌금 잘 드리면 농사하는 땅이 기름지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북한 땅 보다 남한 땅이 기름지게 된 것은 십일조 헌금 힘써한 남한의 성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결과입니다. 미국의 조상이라 하는 청교도들은 힘써 십일조 한 분들로 유명합니다. 성경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힘써하는 중에 특별히 온전한 십일조 헌금 드리는 일에 거룩하고도 새심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는 땅을 크게 복 주셨고 기름지게 하여 주셨음으로 열방이 미국을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십일조 헌금이 없는 땅들의 형편이 어떠한지 살펴보시면 잘 알 것입니다. 십일조 헌금 없는 중동 땅 아프리카 땅이 어떻습니까? 땅을 기름지게 하는 최대의 비료는 십일조 헌금입니다. 십일조 헌금을 떼먹는 것은 자식의 앞길에 함정을 파는 것이요 축복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독약을 마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누어 주며 사는 풍족한 삶을 누리시기를 원하신다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하나님께서 그 삶의 부끄러움을 씻으시고 명예를 주십니다. 성도님들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단은 몰아내고 성도의 명예는 높아지는 축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 헌금을 바르게 하던 때에는 나라가 큰 명예를 얻었습니다(대하31:1-10). 성도님들 생명 걸고 십일조 헌금 드립시다. 그것이 참 신앙입니다.
3. 십일조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가요?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 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십일조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원리대로 십일조 헌금 잘하여 큰사랑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얻은 소득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시편26:12절 말씀처럼 모든 소산의 십일조입니다. 모든 소득 즉 모든 수입의 10·1조는 다 하나님의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께 집 판돈의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집을 주시고 퇴직금의 십일조를 드리면 퇴직 후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것을 인색함으로 내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등기해 놓으니 그것에서 곰팡이가 피고 가시가 되어 그의 삶을 부끄럽게 하고 괴롭게 하는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출16:20). 하나님께서 오죽하셨으면 십일조 헌금 안 하는 것을 도적질에 비유 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성도님들 같으면 내 물건 도적질한 자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시겠습니까? 본문의 \"온전한\"은 원어로 그 뜻은 \'콜\'인데 다, 모든, 여러 가지, 마다 입니다.
2) 모든 사람(성도)이 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족수대로 만나를 거두었고 유월절 양식도 그렇게 준비하였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케 하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영혼과 인격이 다 각기의 것이요 생명과 사는 생활도 다 각기 자기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밥 먹는다고 내 배가 부르겠습니까?
신앙도 각기 자기의 신앙입니다. 십일조 헌금하는 것도 다 자기 몫입니다. 어린아이들까지라도 정확한 십일조 헌금을 바로 드리면 그것이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주시는 복을 받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남녀노소와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함께 주의 복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녀에게 무엇보다도 십일조 헌금을 가르칩시다. 이것이 장래 새 소망있는 일입니다.
3) 말씀을 받는 제단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9:13절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하셨습니다(겔44:30). 성도님들 밥은 제 집서 먹고 일은 남의 집가서 한다면 원리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님들 말씀을 받는 제단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처럼 말씀 받는 제단에 온전한 십일조 헌금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민18:21).
4) 십일조 헌금이 다른 헌금으로 유용 되지 않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드려진 후에는 여러 방면에 서로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으나 드릴 때에는 \"십일조와 헌물\"이라 하신 말씀에 나타나고 있듯이 반드시 십일조 헌금과 다른 헌금을 구분하여 헌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 헌금을 가지고 구제도하고 선교헌금도 월정 헌금도 주일 헌금도 선교헌금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님들 하나님 뜻에 합당한 헌금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결론 : 온전한 십일조 헌금 드리기를 힘써 하나님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큰 축복 다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