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그정신

헌금 그 정신
고후9:6-15





지난 주에 우리는 헌금하는 사람의 자격에 대하여 말씀을 나눌 때에 `자기 것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이 헌금하는 사람이며 `예수 부활로 인하여 큰 은혜를 받은 자`만이 헌금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봅니다. 헌금할 때마다 `나의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서 입니다`하는 바른 생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분명한 목적 그리고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때`라는 확실한 판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헌금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의 의미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시금 헌금에 대한 말씀을 해 보려고 합니다.

헌금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른 정신을 가지고 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받지 못한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하여 잘못된 헌금을 드림으로써 여러가지 불이익과 좋지 못한 사회적 여론을 일으킬 때도 종종 있지 않습니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면, 헌금에 대한 올바른 정신을 교육받지 못함으로써 헌금을 당연히 드려야 할 때에도 하나님앞에 헌금할 줄도 모르는 연약한 성도의 모습을 보일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철저한 성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도답게 기도할 줄 알고, 성도답게 봉사할 줄 알고, 성도답게 헌금할 줄 알고, 성도답게 전도할 줄 아는 그리하여 전천후적인 훌륭한 성도들을 기대합니다. 원하건대 헌금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십시요. 누가 얼마 하느냐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요, 내가 하나님 보기시에 부족함없는 삶을 살고 있느냐에 언제나 관심을 두는 복된 성도들이 먼저 되시길 바랍니다.

헌금의 올바른 정신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헌금에는 `자신을 드리는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고후 9장을 본문으로 읽었지만, 고후 8장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헌금해 준 것을 대단히 감사하면서 말한 곳이기에 헌금에 관한 중요한 교훈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고후8:5,`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연보를 주었도다`는 감사의 말씀이 있습니다.

헌금의 기본적 정신입니다. 자신의 몸을 먼저 드리는 과정이 없이는 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몸을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마23:23에서 주님이 바리새인의 헌금을 평가하실 때에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義와 仁과 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박하와 회향과 근채 즉 자기 집의 담 밑에서 나는 하잘 것 없는 채소류에 대한 것까지도 정확하게 계산하여 십일조는 드려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율법정신의 더 중요한 것인, 의로움과 사랑을 베푸는 것과 믿음은 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중요하니 행할 것이요, 저것도 중요한 일이니 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못박아 말씀하시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본문의 말씀이 어떻게 연결됩니까?

먼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자라야 헌금이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으니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이것과 `헌금을 드리는`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성도가 드리는 물질에는 `자신을 드리는`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둘째, 헌금에는 `미리 준비하는 정신`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고전16:1-2,`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조만간에 내가 고린도로 갈 터이니 `미리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황급하게 연보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헌금하는 정신은 이처럼 `미리 준비함`에 있습니다.

미리 떼어 놓고, 미리 구별하고, 한 달이나 생활비가 생기면 언제나 항상 주님의 것을 먼저 준비하고, 이익이 날 때마다 하나님의 것을 예비해 두는 정신이 있어야 우리는 그것을 바른 헌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신자들 가운데 황급하게 헌금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도 미리 준비하는 자세없이 헌금하십니까?

사례금이나 월급을 받으면 계산하십시요.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릴 만큼의 헌금을 정하고, 주일헌금이든지, 십일조든지, 감사의 헌금이든지, 미리 떼어 놓고 주일마다 헌금할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아직도 미리 이익을 여축하는 자세없이 헌금하십니까?

사업이나 자영하는 분들에게 있어서도 매일 어느 정도 수입이 있어야 자기가 하는 사업이 운영된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종종 더 많은 수입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초과이익분의 얼마는 내가 헌금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미리 여축하는 헌금`이 참으로 귀중한 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도 그저 습관적으로 헌금에 동참하십니까?

아직도 그저 되는 대로 헌금하고 계십니까? 헌금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헌금은 하나님께 열납되기가 어렵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금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미리 준비하는 마음이 헌금의 가치를 높이는 길입니다.

종종 예를 듭니다만, 마26장에 향유를 부은 여자가 나옵니다.

다른 복음서의 기록의 도움을 얻으면 이는 약 300데나리온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향유입니다. 이 여자는 하루 아침에 이 정도의 가치의 향유를 구입할 수가 있을 정도의 수준이 못됩니다. 변화받은 후에 이 여인은 예수의 죽으심과 장사됨을 기억하면서 귀하게 예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예비하고, 여축한 것이기에 과연 그 가치가 빛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몸을 드림과 미리 준비함이 어우러진 가장 훌륭한 헌금의 모형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자신의 헌금생활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헌금에는 `심는다`는 정신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본문 6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10절, `심는 이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심을 것`을 주시어 풍성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헌금을 `심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는 것`은 기독교의 헌금이나 주는 것에 대한 분명한 정의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마13장에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의 `씨뿌리는 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주는 것은 모두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므로 농부입니다.

우리들의 위대한 일은 씨를 뿌려 그 결과를 추수하는 것입니다. 씨뿌리는 자가 손에서 씨를 흩어서 버리면서 심는 것은 좋은 알곡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헌금은 그러므로 씨뿌려 심는 것처럼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심는다`는 말 자체가 추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언젠가 추수 때는 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씨뿌림과 심는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은 신기한 씨를 창조해 주셔서 우리로 뿌리고 심게 하셔서 많은 것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것이 헌금의 바른 정신입니다.

곡식은 곧 사용해야만 하는 물건입니다. 뿌려지거나 심겨지지 않으면 곧 없어집니다. 그러나 흩어서 뿌리면 결국 아주 풍성하게 됩니다. 시126:6,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약속하신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도 마 6: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심는다`는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고후12:15을 과 같이 `영혼을 위하여 재물을 허비하듯 사용한다`는 표현과 일치합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추수를 한다는 것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허비하듯 심기만 하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거두게 하십니다.

10절에 나오는 심는 자에 대한 축복은 놀랍습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심을 수 있는 씨와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할 양식 그리고 축복하시는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공급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넷째, 헌금에는 `봉사한다`는 정신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왜 봉사의 직무입니까? 11-12절을 보니, 너그럽게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림으로써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은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부요함을 맛본 성도`가 자기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너그럽게` 8절과 같이 `즐겨 내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온전히 `아직까지 부족하여 애쓰는 성도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정신으로 하는 것이 헌금입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헌금을 드린다고 하면 이에서 헌금은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짐을 진 것처럼 드림으로써 성도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할 뿐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봉사의 직무는 꽤나 많습니다.

행1:25에는, 사도 직분이 바로 봉사직분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행6:1에는, 매일 구제함이 바로 봉사직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엡4:11,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하는 일이 봉사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헌금이 봉사의 직무라고 했습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주를 위하여 하는 것은 모두 봉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봉사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 섬김`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댓가를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할 때에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 정신으로 감당해야 함이 옳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귀한 정신으로 헌금하셔서 늘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듬뿍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헌금은 힘에 지나도록 하는 정신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헌금은 극한 환난가운데서도, 많은 시련가운데서도, 풍성하게 하도록 하되, 자원해서 하는 것임을 고후8:2-3은 교훈합니다. 힘에 지나도록 한 헌금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님을 책임을 져 주십니다. `힘에 지나도록`이란 말은 `생활비 전부`와 같은 것이지만, 생활 터전을 주님께 송두리채 바친다는 의미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의 헌금의 기준은 나의 힘보다 약간은 지나게 하는 것이 성경적 교훈입니다. 바른 헌금정신으로 말미암은 헌금은 귀합니다. 이 헌금은 크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아름답게 사용될 것이요, 작게는 헌금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헌신을 보이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