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의 헌금 고후8:1-7 여러분에게 있어서 과연 돈이 얼마만큼 있으면 제일 좋겠습니까? 계산 한번 해보십시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저희 교회 집사님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부동산투자를 해서 엄청난 부자가 된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에게 이야기하기를 “너희들은 그냥 먹고만 살아라, 돈은 있으니까 너희들이 현재 생활할 수 있을 정도만 해서 살아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인 집사님이 자기에게 올 돈을 계산을 해보니까 십오억에서 이십억 정도 되는 돈입니다. 그래서 그 아내에게 “우리는 부자다, 십오억에서 이십억 정도 되는 돈이 한국에 저금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가 하는 말이, “당장 내 손에 천만 원이나 쥐어줘! 십억, 이십억,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니까 지금 내가 쓸 돈, 그 돈만 내 손에 쥐어지면 괜찮겠다” 하더랍니다. 여러분에게 당장 얼마가 필요합니까? 세계에서 가장 부자였던 사람들이 함께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1923년도에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어찌할 것인가, 앞날을 논의하기 위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이 아홉 분이 있었는데, 그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 사장, 가장 큰 전기회사의 사장, 가장 큰 석유회사의 사장, 그리고 밀 중개상, 뉴욕증권시장의 사장, 재정부 장관, 증권시장의 큰 손 한 사람, 세계에서 가장 큰 독점 기업의 사장, 한 은행의 은행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25년 뒤에 그때 모였던 아홉 사람들의 현 주소, 현 위치를 1948년도에 추적을 해서 보니, 두 사람은 파산했습니다. 두 사람은 교도소에 있었고, 한 사람은 수배범으로 외국으로 도망 다니다가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한 사람은 미쳤고, 나머지 셋은 자살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모든 면에서 내 행복은 물질이 가져다준다고 생각을 하고, 오직 물질만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20년 전의 거대기업 중에 오늘날 살아있는 기업이 몇이나 됩니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물질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일생에 물질을 목표로 따라다니다가는 결국에 그 길은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거듭거듭 경고해서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그 물질의 종에서 자유함을 받는 법칙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줌의 법칙(Grace of giving)입니다. 내가 주면서 느끼는 은혜의 법칙, 이것을 하나님께서 재정하시고, 모든 믿는 백성들에게 그 법을 그대로 준행하고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8장 1-7절까지 말씀은 바로 이 줌의 법칙에 관한 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줄 때 우리에게 오는 은혜, 여기서 은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8장 1-7절에 보면 은혜라는 말이 거듭거듭 나옵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 속에 은혜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오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구약성경에 하나님께 드림에 대해서 몇 가지 종류의 헌금이 나옵니다. 그중에 물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첫 열매와 십의 일조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먼저 십일조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십의 일조를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십의 일조가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종류의 십의 일조가 있습니다. 먼저 민수기 18장을 봅시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21절), 바로 이것이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레위인을 위해서, 오직 기업을 하나님께로만 생각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기업도 주지 아니하시고 온전히, 전임으로 하나님 앞에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의 일조를 드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서 드리지 않을 때는 도둑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 감히 십의 일조는 연보가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니까 이건 연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처음부터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드릴 것을 드리지 않을 때, 이것을 도적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십일조가 있습니다.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신 12:17-19). 이 두 번째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리는 그 백성들이 잔치를 하며, 베풀며, 함께 먹는 잔치의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레위인의 살림을 위해서 그들이 먹지 않고 전적으로 드리는 십일조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바로 이 면이 그 뒤에 신명기 14장에 다시 한번 나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23절),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26절), 이것이 두 번째로 잔치의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레위 자손을 위해서 드리는 십일조와는 별개로 잔치의 십일조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 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신 14:28),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주는 구제의 십일조가 있습니다. 이렇게 십일조는 구약시대에 세 가지 종류의 십일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이 명령하시기를 추수할 때 모은 것을 다 긁어서 추수하지 말고 남겨둬라,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두는 것이다, 이런 긍휼함의 하나님께 드려지는 면이 있고, 성전에 반 세겔을 내고 하는 모든 다른 면이 있어서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전체 소득의 25%정도가 되었습니다. 제가 전에 미국에서 목회할 때 이 세 종류의 십일조를 이야기 하면서 특히 제가 강조한 것은 두 번째, 잔치의 십일조를 강조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잔치의 십일조를 명령하셨을까? 이것을 이야기하면서 잔치의 십일조를 하자 하는 면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명이 실제로 한번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희 교회에 유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유학생들은 어차피 십일조 떼어봐야 별거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쉽게 한 번 해보자하는 기분으로 잔치의 십일조를 해봤습니다. 그래서 한달 모든 수입과 생활비의 십분의 일을 떼서 주변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서 한 달에 한번 잔치를 했습니다. 한달 정도 지나고 나서 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잔치의 십일조를 해보니 어떠십니까? 그랬더니 이분들이 아주 즐거워진다고 답합니다. 왜 즐거워진 것 같습니까? 처음에 십분의 일을 떼서 대단히 힘들었는데, 하고 보니 즐거워집니다! 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미국에서 한국 분들이 큰 야채가게라든가 여러 가지 종류의 가게를 많이 하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로 프에르토리코에서 넘어온 히스패닉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일시키기 힘들다고 한국 주인들이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워낙 놀기를 좋아해서, 만약에 한 달 치 월급을 주면 월급 받은 그 즉시로 그 돈 쓰느라고 며칠 안 나옵니다. 실컷 쓰고 한 푼 없을 때 다시 나와서 일을 해요, 그러니 돈 주기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일용직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주급을 줍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금요일마다 주급을 주는데, 주급을 받으면 한 이틀 안나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주급을 금요일 주는 것이 아니고 만약에 히스패닉 종업원이 세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은 금요일, 한 사람은 월요일, 한 사람은 수요일, 이런 식으로 줍니다. 그래서 노는 날을 분산을 시킵니다. 참 그 사람들 불쌍하다, 우리가 보통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 히스패닉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불쌍해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기왕에 그렇게 쪼들리며 살봐야 한번 멋지게 쓰고 그리고 나머지 한달은 라면 먹고 지내면 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안에 일말의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인생의 즐거움을 압니다. 평생 아끼면서 쥐고 사는 수많은 한국의 이민자들은 돈을 모았어도 쓸 줄 모릅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휴가 한 번 못가요,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휴가를 못갑니다. 왜냐하면 가게 문 하루 이틀 닫으면 아휴, 그 돈이 얼만데! 그래서 못갑니다. 일생을 못갑니다. 돈을 벌면 벌수록 돈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잔치의 십일조를 정하시고 우리에게 하라고 명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가난해지는 그 마음을 풀어놓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해서 억지로 떼어서 십의 일을 놓고 그것을 가지고 잔치를 해 봤더니, 어차피 내게 어려운 인생입니다. 그런데 한달에 한번 정도 잔치하느라고 그 십의 일조를 썼더니 인생이 아, 흑백이 아니고 칼라구나, 이것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쁜 곳이구나! 이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인생이 어려워질수록 여러분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처음부터 따로 떼어놓고 한달에 한번 잔치를 해보십시오. 그러면 이웃끼리 돌아가면서 잔치를 하게 되고 내 인생에 즐거움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법칙이에요. 자 한번 봅시다. 우리 중에 누가 잔치의 십일조를 하는지! 어느 집에서 잔치를 한번 베푸는 지 한번 봅시다. 이미 구약에 법칙들이 있고, 신약에 와서 우리가 보는 것이 바로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은혜의 헌금입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은혜는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한 것, 그것이 은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지금의 그리스 북쪽 지방입니다. 그 마게도냐 교인들은 엄청나게 많은 환란도 있고 가난도 있었습니다. 그 가난 중에 기쁨이 넘쳤는데, 그 기쁨이 넘침의 표현이 뭐냐, 은혜의 헌금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삶이 어떻습니까? 어렵고 힘듭니까? 여러분에게 기쁨이 샘솟게 되는 출발점이 은혜의 헌금에서부터입니다.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3-4절), 자원하여 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헌금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마게도냐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내라 내라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으로, 자원하여서 드리는 것이 바로 은혜의 헌금입니다. 그러니 은혜의 헌금은 절대로 억지로나 강제가 아닙니다. 마음에 자원함으로 드릴 때, 그것이 진정한 은혜의 헌금입니다. 저는 다음 주에 여러분이 맥추감사헌금으로 드릴 때에도 이러한 자원하여서 드리는 은혜의 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헌금의 본질입니다. 바로 그것이 여러분의 헌금생활 중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할 때는 먼저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드림은, 진정한 헌금의 법칙은 먼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면이 표현되는 것이 헌금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줄 때는 먼저 마음이 그에게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원하여서 그에게 줄때, 진정한 드림과 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기쁨과 감사가 충만할 때에 그 결과로서 자원하여서 은혜의 헌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니까, 내가 드리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금생활이 바로 이러한 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면이었다는 것을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고린도 지방은 전통적으로 마게도냐 지방보다 훨씬 더 부유한 곳입니다. 모든 산물이 집산되는, 그 집산지가 바로 고린도라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이야기하지면 부산과 같은 곳, 여수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마게도냐는 산골지역입니다. 훨씬 더 가난한 곳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곳에서 자원하여서 자기 힘을 다하여, 오히려 그 힘에 부치도록 드리는 것을 너희가 알라, 그럼 고린도 교인들은 이 편지를 받고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니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힘에 부치게 냈으니, 우리도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인데, 더 분발해서 내자, 바로 이면을 위해서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들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면에서 은혜의 헌금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에 목회를 할 때는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보니 아, 이건 아니구나, 내가 지금 뭔가 잘못하고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헌금에 관한 설교도 하고, 그리고 저희 교회 처음 나오신 분 중에 은혜 받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직접 십의 일조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십일조를 하라고 한 집이 있었는데, 저희 교회 나와서 처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믿은 지 이 삼주밖에 안됐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복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있는 것을 깨닫고 가서 예배드리고 십일조 하라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고민하더라고요.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합니다. 드릴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다가 결국 그 분이 십일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면서부터 완전히 그 사람의 신앙이 변화되고, 새로워지고, 처음 믿은 사람이 그렇게 변화되는 것을 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오히려 그 사람을 통해서, 그 가정을 통해서 은혜 받고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것도 생기게 됐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러한 면에 은혜를 받게 되어서 그 다음에 은혜의 헌금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 문제 있는 교회였지만 전체적으로 은혜롭게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롭게 성장하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변치 않은 것이 바로 헌금생활이 변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 속에 진정한 헌금생활이 있게 하기 위해서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의 예를 들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모든 은혜 중에 반드시 은혜의 헌금생활이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되니까! 왜 바울이 꼭 은혜의 헌금생활을 이야기를 하냐면 그 이유를 제가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은혜의 헌금생활을 제대로 하기 전에는 절대로 영적 성숙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연보를 드릴 때에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고서도 연보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른 헌금 생활을 하지 않고서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제대로 드리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의 헌금 생활 속에 반드시 마음을 드리는 그러한 면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은혜의 헌금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복음서 전체를 보면 예수님은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여러 가지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 수많은 미래에 관한 면도 이야기 하십니다. 그렇게 많은 가르침을 하시면서 그 중에서 제일 많이 가르친 주제가 바로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서를 읽어보시면서 물질에 관하여서, 소유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 장이 몇 장이나 되는지 찾아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소유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 몇이나 되는지 찾아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불쌍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변치 않고 쥐고 있는 부분이 바로 소유에 관한 면이고, 소유에 관한 면이 변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생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해서 물질에 관한 면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물질이 탐나서 그러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물질이 없으면 교회가 세워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여러분의 자신의 진정한 인생의 행복과, 진정한 인생의 안식과, 진정한 인생의 축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 은혜의 헌금생활, 물질에 관하여 소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물질에 관해서 여러분이 분명히 한 번은 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면으로 한번 여러분이 경험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물질의 면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하나님보다도 내가 가진 물질을 더 믿을 때, 하나님보다도 더 물질을 원해서 그 길로 따라갈 때에 여러분은 영적인 지체부자유자들입니다. 여러분은 거기에서 놓임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부자유한 면에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 물리치료의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헌금하라, 그리고 헌금 중에서도 은혜의 헌금을 하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면의 헌금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유하게 될 때 비로소 내게 안식이 있게 됩니다. 물질에 대해서 지나치게 쥐지 않고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물질에 대해서 얼마만큼 자유합니까?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있는 것을 그냥 드릴 때에, 하나님께 바라지 않고 십의 일조를 하면서도, 하나님! 내가 십일조를 하니까 내게 복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하는 마음에는 은혜의 헌금이란 개념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은혜의 헌금이란 그저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상대편에게 주는 것을 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연보를 드릴 때에 반대급부를 바라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때에도 절대로 반대급부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통칭해서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내게,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 드디어 느껴지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십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의 전부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은혜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내가 하나님께 은혜의 헌금을 드리기 전에는 내 마음의 심령 깊숙이에 믿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는 확증이 실제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믿어지는 때는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은혜의 연보를 드릴 때입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안 하면 구원받지 못 하느냐, 그 이야기는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분이 매일 매일 구원의 확신이 여러분에게 들어져서 모든 삶에서 담대하고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능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 주심, 일방적으로 뭔가 나에게 바라지 않고 내게 생명을 주심, 이것이 믿어질 때 그 힘이 나타나는데, 하나님께 은혜의 연보를 드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러한 법칙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진정한 평안, 진정한 안식, 진정한 천국을 여러분이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은혜의 헌금을 드리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다해서, 뭔가 바라지 않고 드려지는 헌금,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헌금 생활이 바르게 될 때, 비로소 영적인 성숙, 어떠한 면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제대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은혜의 헌금의 방법도 이야기하는데, 은혜의 헌금은 십일조는 국한되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여러분이 어떻게 드려야한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요. 모든 소득의 십의 일은 무조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 드려야 합니다. 먼저 떼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의 헌금을 드릴 때는 여러분의 삶에 구김살이 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뭔가 영향이 미쳐질 때 은혜의 헌금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 앞에 감사로 연보를 드릴 때 이 연보의 액수가 여러분에게 천원이 되던, 십만 원이 되던, 일억이 되던 그건 관계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서, 생활에 구김이 가느냐? 안 가느냐? 그것을 느껴야합니다. 하나님께 이 연보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여름휴가 5일 갈 것, 3일 밖에 못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 이 연보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멋진 자동차 살 것을 한 단계 낮춰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이 연보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내가 갖고 싶었던 어떤 한 물건을 못 사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아프겠죠. 헌금을 드리면서 뭔가 좀 아파져야 합니다. 아, 정말 내가 가장 아까운 것을 드림으로 이것 때문에 내가 하나 뭘 못 한다! 이 면이 있는 헌금을 드려져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이 비로소 은혜의 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의 돈을 드려도, 그 돈을 드리고 나서 내 삶에 전혀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돈이 있죠, 이것을 토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 삶에 전혀 무리가 되지 않고, 드려도 내 맘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그런 헌금은 토큰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인의 헌금입니다. 드려도 내 삶에 문제가 없어요, 드리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명령하는 태도로 내가드렸으니, 하나님 내게 뭔가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토큰입니다. 은혜의 헌금 방법, 뭔가 내 삶의 변화를 시켜야 될 만한 정도의 연보, 이것이 은혜의 연보입니다. 여러분이 적어도 맥추감사헌금이나 추수감사헌금을 드릴 때는 은혜의 헌금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내가 드림으로 뭔가 내 삶에 주름이 가고 상처가 가지 않습니까? 내가 받은 상처만큼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드릴 때 당한 상처가 이해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만큼 큰 상처이고, 그것이 얼마만큼 하나님에게 큰 손실이었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언제 느껴집니까? 은혜의 헌금을 제대로 드리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드려진 만큼 여러분에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연보를 통해서 하나님과 내가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살을 깎아서 뼈를 녹여서 우리에게 주시고, 생명을 주신 것이군요! 이것이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서로간의 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에게 얼마만큼 희생한 줄 아십니까? 바로 그런 면을 먼저 여러분의 부모에게 은혜의 보은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모에게 드려도 하나도 내 삶에 주름이 안 간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드림으로 말미암아 뭔가 내 삶에 주름이 갈 때 그 때 조금 부모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은혜 주고받기입니다. 뭔가 줘도 내 삶에 전혀 주름이 안 간다면 그 안에는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의 개념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아니, 예수님 믿는 것은 뭔가 얻으러 오는 줄 알았더니, 믿으라 하더니 자꾸 주라 주라 하네요. 헌금을 주라, 시간을 주라, 노력을 주라, 재능을 주라, 다 주라 주라 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죠. 예, 맞습니다. 다 주십시오. 그러나 그 하나님 앞에 드리며, 드리며, 교회를 위해서 드리며, 드릴 때에 나를 위해서 생명 주신 주님의 은혜가 어느덧 내 삶에 확신으로 나와 함께 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은혜의 줌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실제로 행할 때에 어느덧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행복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 학교 다닌 이야기 했죠. 드디어 어제 졸업했습니다. 밤 12시에 돌아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거기에 아버지학교에 참여해서 훈련받는 사람들이 있고, 일하고 있는 스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스텝들이 일하면서 은혜를 체험하더라고요. 제 팀의 조장도 어느 교회 집사님인데,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들의 가정을 나누고 할 때, 막 눈물 흘리고 감격해 해요. 제가 그분에게, 요 맛에 스텝을 그만두지 못하죠? 하니 맞다고 합니다. 자기 돈 들여, 시간 들여, 열심히 노력하는 데 그만두지 못해요. 왜요? 다른 사람들이 은혜 받는 걸 보고 자기 심령에 천국이 임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가정의 문제는 저절로 없어집니다. 저도 사실 모나고 급하고 참 문제 많은 사람입니다. 신혼 초에 제 아내 마음 고생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 믿고 실제 사역에 임하면서, 다른 가정들을 돌보면서, 제가 얼마나 문제 많은 사람인가 하는 것이 체험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심방 다니다 보니까 아하, 내가 문제가 많구나! 하면서 우리 가정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는 자의 복입니다. 은혜의 헌금에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이 진정 가족간의 사랑을 느끼기를 원합니까? 진정 성도들의 사랑을 서로 느끼기를 원합니까? 주십시오. 하나님께도 열심히 은혜로 주십시오.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은혜의 헌금으로. 가족에게도 열심히 드리십시오. 여러 성도들에게도, 교회에도 열심히 여러분의 물질과 시간과 정력과 모든 재능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어느덧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가족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교회에 사랑이 넘치는 은혜의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은혜로 주기, 이것이 우리 교회에 실천되기를 원합니다. 은혜로 헌금하시고, 은혜로 서로 나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