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푹 헌금 (1)

성전건축의 축복(11) - 헌금
고후9:6-11





우리 교회가 성전건축의 비전을 공식화한 것은 약 10년 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교회를 부임하고 한 해를 보낸 후에 성전건축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2년 전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성전건축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노력도 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사택을 비롯한 7채의 집을 사서 성전건축을 위한 부지를 확보하는 일에 힘써 왔습니다. 그래서 2002년도에 본격적으로 설계를 하게 되고 또 2003년도 초에 허가를 받고 오늘 성전건축헌금을 작정하는 3단계 진행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로는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은 크게 10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설계, 허가, 건축헌금 작정, 대출받고 재원을 확보하는 일, 예배처소를 마련하는 일, 건축업자를 선정하고 계약하는 일, 기공하는 일, 감리를 해 나가면서 건축하는 과정이 있고, 준공이 있고, 그래서 입당을 하게 되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번째 과정이 되는 성전건축헌금을 오늘 드리게 됩니다.



영광과 부흥



’왜 성전건축을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시고자 하는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건축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말은 성전을 건축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말이 포함됩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가 부흥합니다. 그리고 성전건축을 감당한 그 교회 성도들이 분명히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은 교회의 방편이고 수단입니다. 복음증거의 방편이요 교회발전의 방편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는 Y교회는 피난민들로 시작하고 발전하고 오늘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한 평생 섬겼던 목사님은 오래 전 집회를 인도하시면서 교회건축에 대한 비화를 들려주셨습니다. Y교회가 피난민들로 형성되었고 피난민들이 많이 몰려와서 교회가 급격히 발전을 하는데 가장 시급한 문제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아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성전건축을 선언하고 여기에 전적 희생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을 통해서 하나님은 묘한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피난민들이 모두 사선을 넘어 남한에 왔기 때문에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저 눈물이고, 열심히 일하고 그야말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위로를 받으며 살던 성도들이 성전건축을 앞두고는 알곡과 쭉정이로 갈라지더랍니다. 그래서 약 20가정 정도의 교인들이 성전건축에 불만을 품고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많은 수치입니다. 한 사람이 떠나도 상당히 정신적으로 부담이 오는데 20가정의 교인들이 성전건축의 불만을 가지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건축을 이루셨는데 Y교회가 획기적인 부흥과 발전을 가져온 계기가 바로 성전건축이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성전건축은 교회부흥의 방편입니다. 이것은 많은 교회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2개월 전 상주 중앙로교회가 9년만에 입당을 했습니다. 9년 동안에 교인은 중고등학생 6,7명을 포함해서 15명밖에 안됩니다. 가정은 다섯 가정입니다. 9년 동안 교회가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2개월 전 입당식을 가진 다음 세 가정이 등록을 했다고 목사님께서 흥분된 목소리로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교인이 올 줄 모르는 교회였습니다. 상주는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입니다. 주민들이 새로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30년 이상 사신 분들이 있는 토박이들로 형성되어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예배당을 짓고 나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몰려오고 믿는 자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전건축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가 발전하는 방편으로 삼으시고 여기에 헌신한 주의 백성들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저는 한달 반 동안 성전건축의 축복이라는 주제로 설교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똑같은 주제를 가진 하나의 설교였습니다. 열 번에 걸쳐 드린 말씀이지만 오늘말씀과 다 하나로 묶어져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전건축의 축복의 메시지를 논할 때 성령께서 듣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성전건축에 있어서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큰 사명으로 다가오는 일이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신중한 일이고 준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공식적으로 성전건축헌금을 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발표한 것은 만 한달 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를 해왔습니다.

건축헌금은 헌금을 드리는 그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를 헌금할 것인가? 액수에 집착하면 굉장히 힘듭니다. 액수에 집착하지 마시고 헌금하는 자세를 바로 가지면 액수에 대해서는 자유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액수에 집착이 되고 액수에 얽매입니다. 그리고 그 액수는 자꾸 달라집니다. 부담으로 다가오는 짐이 됩니다. 그러나 헌금하는 자세를 바로 갖추면 그 액수는 우리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기본자세는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첫째, 믿음으로 연보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드린다는 이 원리를 확고하게 붙잡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 바랍니다. 무엇을 믿을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십시오. 이 교회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믿으십시오. 성전건축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헌신할 때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유산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동기를 믿음에 기조하라고 늘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즉 믿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동작은 어떤 자세로 해야 되는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둘째, 건축헌금을 드리는 자세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즐겨내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색하다는 말은 슬프다는 의미입니다. 억지로는 인색함으로 하기 때문에 오는 결과를 말합니다. 그래서 인색하게 헌금함으로서 억지로 헌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묶어서 보면, 연보를 억지로 하고 나면 거기에 얽매어 슬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헌신을 하고 나서 거기에 얽매이고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슬퍼진다면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연보가 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린다는 여기에는 두 가지 앞뒤의 의미가 연결됩니다.

첫째로 즐거움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은 사명 때문입니다. 사명을 아는 사람은 즐거움으로 드리고 보람으로 드립니다. 이 사명에 대한 인식이 있는 자는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즐거움을 반드시 느낍니다. 사명 가운데 가장 강렬한 사명은 부모의 사명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그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자식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지고 큰 희생을 지불하는 부모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고 수고하는 것이 왜 슬프지 않습니까? 왜 기쁩니까? 부모의 사명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명을 알기 때문에 자녀를 위해 수고하는 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오히려 못 해주면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명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떠한 희생도 그 결과는 보람이요 즐거움입니다. 부모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당회원들이 건축헌금을 작정했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작정을 했습니다. 장로님들께서 헌금을 많이 못 드려서 아파하는 그 마음을 표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 마음을 듣고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앞에 많이 못 드려서 아파하는 그 마음은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파하는 사명자의 마음까지도 연보로 받으신 줄 믿습니다. 사명이 없으면 드리고도 못 느끼고 안 드리고도 못 느낍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는 사람은 감정이 다릅니다. 그 사명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으면 제2, 3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움으로 드린다는 이것은 사명을 인식하고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명자다’라는 인식 때문에 즐거움이 생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헌금한 이후에 즐거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헌금하고 평안이 오고 이 헌금을 실천할 때 보람이 있고 즐거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즐겨내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이 말은 그 사명을 수행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즐거움을 계속 공급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문장은 현재 계속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계속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헌신을 하나님이 외면하신다면 우리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앞에 헌신한 것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므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파종



세번째, 축복의 파종입니다.

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연보는 축복의 파종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생애에 건축헌금은 축복의 파종입니다. 이것은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권 전문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능한 농부입니다. 농부는 심고 추수를 기다리지, 심지 않고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으라고 하십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하나님은 심는 자에게 열매를 주십니다.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공적으로 모여 성전건축을 위해서 기도를 해 오고 개인적으로 기도를 해 왔습니다. 저는 몇 가지 목표를 가지고 개인기도를 해 왔습니다. 제게 하나님께서 강렬하게 여러 차례 암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 음성이 내 가슴을 때릴 때는 기도를 중지하고 한참 묵상을 했습니다. ”시작하라! 내가 함께 하여 이루리라” 이런 말씀이 제 마음에 자꾸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하기로 목사님의 믿음쯤 되면 합격품 아니겠나 싶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기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하는 중에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를 하나님이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경말씀을 보는데 마태복음 6장30절, 8장26절, 14장31절, 마가복음 4장40절, 누가복음 12장28절, 8장24절, 18절8절, 17장5절 상당히 많은 부분에 예수님께서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을 하실 때 강한 책망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전부 제 가슴에 와서 찌르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염려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제자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예수님이 강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들은 전부 제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제가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했습니다. 의심했습니다. 내가 나를 감당 못할 만큼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부 나를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보고 주님이 애타는 심정으로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이 어디 있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라며 믿음 없이 논쟁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너희들에게 믿음이 없는데 내가 어디 가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우리 가운데 믿는 자가 없다면 다른데서도 믿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못 믿으면 다른 사람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여도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성전은 믿음으로 짓습니다. 장로님들이 헌금을 하셨는데 저는 기도를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건축헌금 작정 상한선을 30억으로 잡았습니다. 전체 건축에 소요되는 총경비는 50억정도 잡는데 30억은 건축헌금으로 충당하는 상한선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반을 지게 하옵소서” ”우리 안수집사님들이 반을 지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님들이 반을 지게 하옵소서” ”모두가 반을 감당하는 자세로 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그만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20억 건축예산을 실시해 보았습니다. ”당회원들이 반을 지는 자세로 헌금합시다”라고 했지만 1/3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세일해서 들어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크게 해야 합니다. 기도까지 세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크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응답은 우리의 생각대로 응답되지 않습니다. 기도마저 위축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3에 해당하는 연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가실 줄 믿습니다.

안수집사님들의 수는 당회원들 보다 약 배 정도 됩니다. 그러나 수가 배가 되기 때문에 짐을 질 때 반만 감당해도 그것이 충당이 됩니다. 모두가 반을 감당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1/3이라도 감당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루어 가시는 것을 제가 처음 경험이지만 해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하나님이 저를 통하여 그와 같은 생각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여러분, 성전건축은 이렇게 믿음으로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사명을 가지고 실행하면서 보람과 기쁨을 누리고 미래의 우리 후대들 앞에 축복의 파종이 되는, 우리 당대에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 후대가 복을 받게 하는 축복의 파종으로서 교회에 이 일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의 하나인 S교회입니다. 목사님은 강남이 개발될 때 큰 꿈을 안고 유학을 포기하고 교회개척을 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강남이 개발되는 타이밍과 맞추어서 불같이 교회가 일어났는데 수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교회가 성장이 멈추었습니다. 교인들이 몰려오는 추세가 되다가 딱 멈추었습니다. 그 때 그분은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교회의 질식상태가 왔다” 질식이 되니 교인들이 이유 없이 빠져나가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화재가 나면 질식상태를 못 견디듯이 그런 상태를 강렬하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생각하는 중에 그 때까지만 해도 목사님께서는 성전건축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한참 후에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과 상담했습니다. 임대교회에서 시설이 협소하고 주차장이 마련되지 않고 젊은 대학생들이 몰려오는데 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전건축을 구상하고 예배당을 건축했는데 주민들의 첫번째의 민원은 소음입니다. 그래서 본당을 지하로 넣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본당을 지하로 넣은 교회입니다. 그 이후 본당을 지하로 넣는 교회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준공식을 할 때 일간지 대부분이 그 교회 기사를 실었습니다. ’바람직한 교회건설의 모형이다’라고 기사가 많이 났습니다.

”그 이후부터 교회부흥의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강남이 개발될 때 많은 교회가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준비했던 교회들은 다 일어났습니다.



맺는 말



교회는 성전건축을 믿음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반드시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기대와 소망과 그 아름다운 흥분을 가지지 않고야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해 나가겠습니까? 그 미래를 생각해 보면 흥분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기쁨이 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5년을 약속하고 헌금을 하는 5년 농사입니다. 5년 농사하는데도 지금 이 모습이라면 헌금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미래의 우리 성도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받을 축복을 그려봅니다. 모두 대농을 하는 농부처럼 그런 축복의 자리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교회가 변화하고 부흥한 결정적인 동기가 되고 방편이 되는 성전건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