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정신과 헌금 생활

예수의 정신과 헌금생활
막12:41-44





전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대형 TV화면에서 솔깃한 선전이 나왔습니다. “인생역전”이란 큰 글씨와 함께 남자 한 명과 여자 여섯명이 춤을 추면서 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광고이길래 저렇게 즐겁게 선전하나 지켜보니까 복권선전이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인생이 역전’된다는 말이 맞게 들려왔습니다. 그 선전을 보면서 저도 꿈을 꿔 보았습니다. “만약 60억이 된다면 어디에 땅을 사서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릴까? 교회는 어떻게 지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수 십 번 교회를 새롭게 지었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도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러면서 제 마음에 또 하나 들어오는 것이 복권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꼭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시간에 왜 헌금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헌금을 왜 하는지 모르고 드리는 것보다는 알고 드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헌금생활에 대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질문해 봅니다. 하나님은 예배시간에 왜 헌금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 마음이 물질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음이 끌리는 곳에 물질도 가지만 반대로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돈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간다면 헌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통로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10가지의 신앙수칙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십일조 생활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의 어머니는 록펠러에게 오른쪽 주머니는 십일조하는 주머니로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훈련받는 록펠러는 장성해서도 십일조생활을 하였고,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신 이유 중의 하나가 십일조였습니다.

여러분, 헌금생활이 축복의 통로인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헌금이라는 축복의 통로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또한 헌금생활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라는 것도 알고 드리면 좋겠습니다.

헌금의 종류에 따라 축복을 받습니다.

십일조는 사업의 축복을 주십니다. 말3:10-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감사헌금을 하면 감사할 조건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선교헌금을 하면 하늘의 무수한 별들처럼 빛나는 영혼의 축복을 주십니다.

비전헌금을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이루어주십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양을 잡았습니다. 적어도 한 번에 한 마리의 양을 잡았을 것입니다. 일천 번이면 적어도 일천 마리의 양을 제물로 드리며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제물과 제사를 받으시고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거기다 덤으로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정신과 헌금생활에 대한 말씀을 듣고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헌금생활을 해서 하나님의 사랑도 경험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을 보면 헌금은 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 진다는 것입니다(41).

본문 41절에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 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헌금할 때 누가 보십니까? 주님이 보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주님이 보고계십니다.

여러분, 결혼식장에 가보셨지요? 축의금을 전달합니다. 그러면 축의금을 받는 사람이 봉투에 번호를 적고 봉투 안에서 돈을 꺼내어 일일이 세어본 후에 봉투에 금액을 적습니다. 그리고 장부에 번호와 이름과 액수를 기록해 둡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누가 축의금을 냈는지, 누가 다녀갔는지 주인이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축의금을 낼 때 접수하는 사람이 있고 축의금을 받는 주인이 있습니다. 본문의 그림을 상상해 보면 예수님은 헌금을 접수하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헌금을 받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헌금할 때 주님은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헌금은 형편과 처지에서 한 단계 더 높은 감동에 따라 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41b-42).

41절 후반절에 부자는 많이 헌금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형편과 처지에 맞게 헌금을 한 것입니다. 부자이니까 많이 했습니다. 부자인데도 조금한다면 아마도 주님의 책망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부자는 칭찬들을 만큼 많이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가 왔습니다. 이 과부는 두 렙돈을 드렸습니다. 헬라의 화폐단위로는 두 렙돈이 로마 화폐단위로는 한 고드란트입니다.

요즘 기술직으로 하루 품삯이 12만원이라고 한다면 1렙돈은 950원입니다. 따라서 두 렙돈이면 1900원정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차한 중에도 과부가 드린 헌금은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비교하면서 설명하십니다. 부자는 많은 것 중에서 형편과 처지에 따라 드렸고, 과부는 없는 중에도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과부가 드린 헌금은 순수하게 감동에 따라 드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헌금은 형편과 처지에 따라 드려도 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드리면 주님도 그 이상으로 감동을 받으신다는 것을 본문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도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본문의 부자들처럼 형편과 처지를 생각하면서 헌금을 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과부처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헌금을 한 것이 몇 번이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웠습니다.

어떤 때는 지갑을 열고 헌금을 꺼내면서 얼마를 해야 할지 갈등도 해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헌금은 누구를 위해 한 것인지 제 자신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헌금을 받으시는 것보다 제가 책망받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권사님은 헌금을 정성껏 준비하십니다. 월요일이 되면 벌써 은행에 달려가셔서 헌금을 준비하십니다. 월요일에 안되면 화요일, 화요일에 안되면 수요일, 이렇게 새 돈이 준비될 때까지 가셔서 은행원에게 새 돈을 바꾸어 달라고 하십니다. 만약 그 주간에 새 돈을 준비하지 못하시면 헌 돈을 다리미로 다려서 준비하십니다.

이 권사님의 헌금생활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권사님은 남편을 잘못만나 너무도 고생을 하셨습니다. 남편은 도박과 여자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나갔습니다. 가정의 경제는 파산되었습니다. 자녀들을 키울 능력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우상을 숭배하고 있던 권사님은 아들의 권유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여 권사님은 없는 살림에도 정성껏 헌금을 준비하여 드리게 된 것입니다. 본문의 과부처럼 그저 하나님의 사랑이 고마워서 정성껏 헌금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난 줄 아십니까? 흩어져서 소식도 없던 딸들이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아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외손녀 하나는 재미동포 국제변호사와 결혼하고, 다른 외손녀도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도박과 여자로 파탄난 가문이 이제는 믿음의 가문이 되어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런 축복의 가문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편과 처지에 따라 드리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얼마를 드려야 할지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감동이 오는 대로 드리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까지 드리는 예물이 되며, 주님이 그것을 받으십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이 받으실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헌금을 드리려면 헌금을 드리는 방법도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억지로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신28:47-48절에 의하면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하셨습니다.

헌금은 억지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기쁜 마음으로 생활비 전부를 드렸을 것입니다. 누구도 억지로는 전부를 드릴 수 없습니다. 이 과부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감사해서 하루 굶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기뻐서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과부의 헌금을 받으셨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때 억지로 드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까와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마지못해 드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부모님은 두 번 다시는 그 자녀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을 드려야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출25:2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진 헌금을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둘째는 최선으로 그리고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드린 헌금은 그녀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이었고, 최고였습니다.

과부가 최선의 헌금, 최고의 헌금을 드리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감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과부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불평할 수도 있었습니다. 짜증을 낼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비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헌금생활을 보십시오. 과연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여인의 행동일까요? 아닙니다. 비록 가난한 과부이지만,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녀의 감사생활이 그녀로 하여금 최선의 헌금, 최고의 헌금을 드리게 만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녀 자신을 예수님처럼 드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헌금을 하셨을까요? 헌금생활을 하셨을까요? 안하셨을까요?

다함께 이 장면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십자가 동영상



예수님은 자신을 헌금으로 드리셨습니다.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처절한 죽음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처절한 죽음은 나를 치료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처절한 죽음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헌금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과부처럼 기도하면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헌금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헌금을 드리면 더욱 은혜가 넘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헌금을 드리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헌금을 드리면 축복이 임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헌금을 드리면 회복의 은혜가 임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헌금을 드리면 아버지의 사랑을 더 크게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은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금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