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헌금 정신

바른 헌금정신
고후9:1-15





남미 멕시코 어느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한 쪽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솟아나고, 바로 옆에는 얼음같이 찬물이 솟아서 그 동네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할 때 온천에서 빨래를 삶아 냉천에서 헹구어서 깨끗한 빨래를 항상 손쉽게 하게되었습니다. 이런 신기한 곳을 본 외국관광객이 안내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라고 하자 안내원은 『천만에요 그들은 불평이 많습니다』 관광객이 놀라서 왜 그런가 라고 묻자 그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왕 온천과 냉천을 주실 바에는 비누까지 주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불평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오면서 그들 자신의 눈과 귀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행하심을 듣고 보았지만 그들의 불평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물이 없다, 고기가 먹고싶다, 덮다, 춥다 등 끝모르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심성입니다. 감사보다는 불평하고 은혜를 갚기보다는 원수로 대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예배자에게 내려오는 요소가 있고, 예배자가 하나님께 올리는 요소가 있습니다. 말씀선포와 축도가 내려오는 요소라면, 찬양, 신앙고백, 헌금은 올리우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물론 설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설교만 잘 경청하면 예배를 잘 드린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요소가 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입에 발린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받지 않고, 준비 없는 찬양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습니다. 헌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헌금과 관련해서 본문은 우리가 드리는 헌금과 예물을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도에 지나치도록 헌금해 줄려는 그의 마음이 그의 서신 곳곳에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가 물질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바울 자신의 사랑의 표현이기도하지만 그럴 의무도 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도들로부터 받은 영적 은혜를 물질적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도우려 했기 때문에 바른 헌금정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준비해야합니다.

4절에 보면 『마게도니아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헌금에는 양보다는 정성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연보 하는 헌금궤 곁에서 바른 헌금정신을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도 과부의 두 렙돈을 더 칭찬했습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곧 정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헌금하는 데에는 의무로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하는 사람이 있으며, 자신의 위신과 체면 때문에 하기도하며, 사랑의 충동 때문에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할 것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충동 때문에 물질을 드려야합니다.

둘째-씨앗의 법칙입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씨앗은 정직하고 땅은 정직합니다. 옥토에 생명 있는 씨앗을 심으면 풍성한 결실이 있습니다. 지금 농촌생활이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땀 흘려 일하면 땅은 속이지 않고 반드시 보답을 합니다. 큰돈을 벌지 못하지만 굶어죽을 정도도 아닙니다. 땅의 중요성을 깨닫고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은 자랑할 만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장로님, 풀무원에 원경선 장로님, 포도농사의 대가 김영원장로님, 두레마을에 김진홍 목사님 등이 땅과 씨앗의 중요성을 깨닫고 심고 거두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땅콩박사로 알려진 미국의 죠지카버 박사의 이야기는 불모의 모래땅을 황금의 땅으로 바꾼 성공 사례 담입니다. 바울은 헌금의 법칙을 씨앗의 법칙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용을 심으면 신용이 돌아오고 정직을 심으면 정직이 돌아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고 진실하면 만물의 주인께서 많이 갚아 주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셋째-각자가 해야합니다.

구원과 심판은 개별적입니다. 축복과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급과 책망도 개별적입니다. 옆에서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유능해도 아들대신 대학시험을 쳐 줄 수도 없고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천성으로 태어나야지 인력으로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교회와 주위에 신망과 존경을 받으시던 목사님이 계셨는데 아들 하나가 골치를 썩여 고통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키엘케코올은 『인간을 절대자 앞에 선 단독자』라고 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 앞에서 물질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각자가 해야합니다.

넷째-마음에 정한대로 해야합니다.

일생일대에 심사숙고해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바다에 나갈 때에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는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결혼은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 번씩이나 기도해보고 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건강, 성격, 장래성, 신앙관, 등을 충분히 고려해서 확신이 설 때 결정해야합니다.

대체로 인생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뜻을 세울 때 확고한 뜻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생의 삶의 터전이될 직업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하며 한 번 택한 직업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끝을 보아야합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보면 노년에 고생하게 됩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40대 이후에 직업을 옮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헌금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흔히 교회에서 무리한 헌금을 작정했다가 시험 드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헌금은 즉흥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시험 들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남편을 모처럼 교회에 데리고 나갔다가 갑자기 들여 민 연보 대에 10만원 짜리 수표한장 넣고 다시는 교회출석을 거부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인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 정, 의라는 종합적 판단 기준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준비하고 정한대로 헌금해야함을 가르쳐 줍니다.

다섯째-즐겨해야합니다.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는 것은 이미 헌금이 아닙니다. 남을 도와줄 때도 마지못해서 하면 받는 사람이 얼마나 미안해하고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라틴 격언에 『빨리 주는 것은 두 번 주는 자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왕 하나님께 드릴 것이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것이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명기 15장 10절에는 『구제할 때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라』고했습니다. 제가 노회 임원으로 봉사하면서 몇 분의 회계를 맡으신 장로님을 보아왔습니다. 이미 책정된 예산을 인색하게 집행해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분이 있는가 하면 융통성 있게 집행하여 칭찬 듣는 것을 보고 깨달음이 많았습니다. 줄 것 다 주고 욕먹는 일을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왕 할 바에는 멋있게 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결론-헌금의 바른 정신은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주권의 인정입니다. 인색한 헌금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십시다. 바른 헌금정신으로 물질을 드릴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 돌려지고 우리에게는 축복의 예물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