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를 드렸느니라 막12:41-44
최일도 목사님이 세우신 천사병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병원은 가난한자, 노숙자등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병원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노숙자 한 사람이 뛰쳐 나오더니만, 목사님의 뺨을 때리더라는 것입니다. 하도 기가막혀서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왈, ‘왜 나를 먼저 치료해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것이었답니다.
우리 속담에, ‘구덩이에서 건져냈더니 보따리 찾아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덩이에서 건져주었으면 감사해야지요~ 감사해도 시원찮은데... 감사를 모르는 사람, 그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를 쉽게 잊고 삽니다. 10번 잘해주다가도 한 번 서운한 일이라도 생기면 아예, 외면하거나 크게 분노하거나 불평하거나 때로는 여기 저기에 온갖 험담을 퍼뜨리며 다니기도 합니다. 감사하고 고마웠던 일은 쉽게 기억속에서 지웁니다. 그래서 늘 불평하는 것이지요.
유대인의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현명한 자는 모든 이로부터 배우는 자요, 가장 강한 자는 자신을 이기는 자요, 가장 부유한 자는 감사하는 자이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며 사는 자가 부유한 사람입니다.
제가 사는 동안 보아서 알게된 사실은, 불평하는 사람은 늘 불평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늘 감사 하더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결정됩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길을 걷다가 길가에 핀 장미꽃을 보게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이런, 찌르는 가시가!’ 또 한사람이 말합니다. “아, 붉은 장미네~” 그리고 그는 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예쁜 꽃 대신, 그 아래의 가시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사람은 가시속에 핀 붉은 장미를 보았던 것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또 한편으로는, 불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칼힐티는 행복의 조건은 상황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의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는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신앙에도 감사는 ‘핵심(!)’입니다. 감사없는 예배는 무의미합니다. 예배가 곧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없는 찬송? 그것은 노래일뿐입니다. 감사없는 봉사? 그것은 율법입니다. 감사없는 하나님을 향한 행위는 기복신앙이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 그것이 곧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핵심은 감사입니다! 온전한 예배에는 ‘온전한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납니다. 감사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감사를 귀히 보십니다. 그것이 곧 그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어떤 한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찬송이 울려퍼지고,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각자가 받은 은혜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연보궤에 헌금을 하는데, 예수께서 연보궤 앞으로 다가서시는 것이 아닙니까! (41) 그리고는 무리들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뚫어져라’ 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요’... 한 사람, 한 사람, 연보궤에 헌금을 넣을 때마다!!! 이러한 예수님 어떠십니까?.... 제가 만일 이렇게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실까요? 목사님이 돈 밝힌다고 하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헌금에 관심이 아주(!) 많으시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다가가셨고, 뚫어져라 그들의 헌금을 보신 것입니다. ‘무섭습니다~~’ 이런 예수님은 싫다고요?.... 죄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도와주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만이 필요하시다고요? ....
세상사람들이, 그리고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말합니다. 교회가 돈을 밝힌다고요.... 제가 알기로,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말을 하지않습니다. 찬송처럼, “밤낮 불러도 늘 아쉼뿐이네” 라고 합니다. “드리고 또 드려도 아쉼뿐이네”라고 합니다. 그렇지않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그런 행위를 하신 것입니까? 비난(?)받을 수도 있어 보이도록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도의 감사를 귀히(!)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도의 감사로써, 그의 신앙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한 과부의 헌금을 극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진실로!”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렙돈과 고드란트는 로마 통치 이전시대에, 주전 175~140경에 유대인들이 최초로 만든 그들 자신의 돈, 동전입니다. 모든 돈 중에서 최저의 돈입니다. 그녀는 아주 작은 돈을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극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동전을 귀히 여기신다던지, 많은 돈을 싫어 하신다던지, 또는 적은 돈을 내어도 이런 칭찬을 받겠구나 하던지,,,, 제가 알기로 정성을 다한 예물은 그 액수가 작지않았습니다.
이곳으로 성전을 옮길 때에, 거의 모든 성도들은 없는 데에서 수백에서 천만원대이상까지 헌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그 이자를 갚고 있습니다. 저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오히려 제게 늘 말씀하시길, 죄송하다고 합니다. 이젠 그러지 마세요. 감사 드릴뿐입니다. 주께서도 기뻐하십니다! 하늘의 상급이 그만큼(!) 있습니다!
그 여인이 칭찬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44) 그녀는 매우 어려운 형편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드린 것이 ‘자기의 모든 소유’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드린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께서 귀히 여기시는 예물은 모든 것을 다한 최선의 예물입니다!’ 나의 형편가운데서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것!
그 여인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녀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다 드리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는 컸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욘사마 때문에 난리입니다. 배영준을 보기위해서 한국을 몇 번씩 다녀갑니다. 그가 일본에 간다니깐, 일본에서 인천공항으로 와서 그를 따라서 다시 일본으로 가는 여성이 수천이랍니다. 5천명이 넘는 여인네들이 그의 손을 한번만 잡아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합니다. 이상한 나라 사람들입니다. 왜 남의 나라 젊은이의 손을 잡으려 합니까!^^....)
오늘 성경의 이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을 믿게된 후로, 이젠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 마음에서 이런 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영생을 얻었으니 이젠 죽어도 좋습니다. 받으소서!” 예수님이 감동하셨습니다.
또 한가지는, 모든 것을 드리고나서, 이제 이후로의 내 삶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영생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도 여자 혼자 가족도 없이 살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당시에는 그 이상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오셔서 위로하셨고 힘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젠 전폭적 의지의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하여 드렸습니다. “너희는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께드리는 자는 이렇게 할 것입니다.
이번 대심방은 은혜가 넘쳤습니다. 가는 집마다 성도들은 감사로 준비 하셨습니다. 저 또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모든 가정이 그 어느때 보다도 감사로 드렸습니다. 한 가정의 심방때의 일입니다. 그 가정은 넉넉지 못한 가정입니다. 하나님께 심방 감사예물을 드려야 하는데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심방 전날, 뜻하지 않은 돈, 큰 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솟구쳤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그대로 -그것은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더구나 어려운 가정에는 더욱...-모두다 심방감사 예물로 드렸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그 순간, 저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이 전달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전이된 것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더욱 임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그 은혜에 어떻게 감사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입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감탄하여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만나) 송이꿀 보다 달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날이가고 하는동안, 그들은 불평을 합니다. ‘왜 이것 뿐이냐고!’ 자신들의 입술로 송이꿀 같다던 그 하나님의 선물인 만나를 불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축복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것이 축복인지를 잊었습니다. 그래서 감사대신에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게 된것입니다.
여러분, 축복의 한 복판에 지내면서 축복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신 그 은혜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하며 사십니까? 여인은 구차한 중에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이 그것 아닙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모든 것을, 하늘의 영광과 생명까지도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얼마전에 ‘멜깁슨 감독의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를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비난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죽였단 말이냐?” 멜깁슨이 말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비난했습니다. ‘그것이 영화냐? 피로가득한 폭력물이지’ 멜깁슨이 다시 말합니다. “십자가는 로멘스가 아닙니다” .... 정말 가슴을 때리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였기에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겠구나!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고서 당신을! -우리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원하셨습니다.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니까!
어떤 젊은이가 마틴 루터를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마틴 루터가 세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첫째는 지성의 변화이지, 즉 하나님께 대한 이해, 구원에 관한 지식등을 인정하는 것이지. 둘째는, 감성의 변화라네. 즉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걸세 변화된 마음.
그리고 세 번째는.. 그것은 ‘지갑의 회개’라네. 즉,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내 가진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임을 인정하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이라네. 이것이 진정 거듭난 자녀의 모습일세!그 젊은이는 머뭇거렸습니다. 앞의 두 가지는 어떻게 할 것도(?) 같은데 세 번째의 것이...
한 부자청년이 주님을 찾아왔을 때에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를 위해 쓰라” 그러자 그 청년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습니다. 여러분, 뒤로 빠질 것입니까? 아니면 나아올 것입니까!
설암으로 고통을 받다가 드디어 혀를 잘라내야만 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그에게 말합니다. 이젠 사시는 동안 더 이상 한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시지요 했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가 말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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