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헌금

최상의 헌금(The best offering)
막12:41-44,출35:21-22





돌아오는 주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농사도 짓지 않는 도시교회에서 왜 추수감사절을 지키느냐? 그런 생각으로 흔히들 추수감사절은 교회가 돈 거두는 행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농사를 하지 않더라도 농사꾼들이 땀을 흘려 지은 농사로 살고 있기에 농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켜야합니다. 감사절이 돌아오면 감사하는 헌금도 내야합니다. 이 헌금은 몽땅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 지원 금으로 사용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올해 2500만원 예산이나 4320만원 이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에서 헌금 드리는 일만큼 문제가 많은 것도 없습니다. 우리지도자들이 헌금정신을 흐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일은 우리들 신앙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임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올바른 복음 정신에 입각하여 헌금을 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있습니다. 복음 정신에서 빗나가면 아무리 많은 헌금을 바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예물이 될 수 없고 영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본문에 나오는 어떤 과부가 드린 헌금은 우리에게 훌륭한 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 추수감사절은 이 과부의 헌금 정신을 가지고 헌금을 드리며 이 헌금이 굶주리며 주의 일하는 주의 종들을 돕는 것임을 명심하여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라면서 칭찬 받은 과부의 헌금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성전의 뜰은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남자들)의 뜰, 여인들의 뜰, 이방인들의 뜰 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여인들의 뜰에는 마치 나팔 같은 모양을 지닌 13개의 연보궤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9개는 성전세와 제물을 위한 연보궤였고, 4개는 각종 구제를 위한 연보궤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그 여인들의 뜰에 있는 연보궤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때에 많은 헌금을 보아란 듯이 드리는 부자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헌금은 나팔같이 생긴 연보궤에 넣되 한꺼번에 붙는 것이 아니고 쭈루룩 소리를 내면서 붙는 것이었습니다. 그 틈에 한 과부가 남루한 옷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더니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의 헌금을 넣었습니다. 그토록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과부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헌금이 적으니까 소리도 아니 나겠지만 그 여인은 조심스럽게 넣으니 겨우 따그닥 하고 들어갔습니다. 조용히 헌금하고 돌아서 가는 그 여인을 예수님은 눈 여겨 바라보셨습니다. 그러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칭찬하여 마지않았습니다. ”이 과부는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넣은 사람이다.

그것은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렙돈은 이스라엘의 화폐단위였고, 고드란트는 로마의 화폐 단위였는데, 두 가지 다 당시 가장 적은 화폐 단위였습니다. 이것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1/128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과부의 헌금액은 심히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저 과부는 하루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헌금을 한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금전적인 가치는 적었지만 희생적인 관점에서는 가장 큰 것이었기에 예수님은 그 귀한 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비쳐진 그녀의 헌금 태도는 자기 생존에 필요한 생활비를 드렸기에 곧 생명의 헌신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다 바치는 그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헌금은 절대로 우리의 것 중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액수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다 바치는 정신으로 헌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십의 구조가 다 주님의 것으로 인정되어 거룩하여 집니다. 추수헌금을 드리면 나머지가 거룩하여 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자원하여 즐겁데 드렸습니다.
사실 그때 예수께서는 여러 사람들이 많은 액수의 헌금을 넣는 것도 보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그분은 저들은 풍족한 중에서 얼마를 넣었던 것뿐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헌금 액수가 얼마나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헌금을 얼마만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얼마만큼 즐겁게 바쳤느냐 하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헌금 정신의 본질은 금액의 다소에 있지 않고, 얼마만큼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바쳤느냐에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바쳤더라도 자원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친 것이 아니면, 그런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없습니다. 그

러나 보십시오. 저 과부는 비록 적은 금액이었지만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바쳤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자기 생활비를 다 털어 바쳤다 하더라도 자원하여 즐겁게 바친 것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의 칭찬을 들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을 때에 모세는 그들에게 자원하여 즐겁게 예물을 바치도록 권유하였고(출 35:21,22),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헌금에 깃던 인간들의 마음을 기쁘게 흠향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금 정신의 본질입니다.

고후9: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3.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고후9:12-13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하였습니다.

헌금을 바치는 일에 대한 본질적 정신의 또 하나의 액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데에 있습니다. 헌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요. 의식주를 해결해 주신 그분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감사 없는 헌금은 헌금이 아닌 것입니다. 다윗도 성전을 짓기 위한 헌금을 미리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쳤고습니다. 대상 29:3,4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수리할 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쳤습니다. 대하24:10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지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포로 귀환 후 성전을 재건할 때도 백성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바쳤습니다(스 2:68,69).

또 초대교회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들 재산을 다 바친 다음 공동 생활을 했던 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행 4:34,35). 사도 바울은 헌금을 사랑의 표시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고후 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께 바치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도 교회를 위하여 몸도 바치고 물질도 바칩니다. 목사를 사랑하고 주의 종들을 사랑하는 자도 나누는 것을 보면 그 사랑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받고 싶어하신 것은 헌금 액수가 아니라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땅에 충만한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바치는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삼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헌금의 본질은 감사에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 자체가 구원의 한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눅17:16). 때문에 우리는 헌금을 지극한 감사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헌금은 우리들 신앙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헌금은 우리의 것을 다 바치는 전적인 헌신의 정신으로 드려야 하고,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며,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헌금 정신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 있어 가장 큰 폐단이 되고 있는 점은, 헌금 드리는 일이 기복 신앙에 이용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 헌금의 액수로 그 사람의 신앙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헌금은 절대로 복채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모든 것을 또한 감사히 주께 드리나이다’ 하는 심정으로 헌금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주님의 사랑의 눈길을 의식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