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쁘시게 드리는 헌금

주님을 기쁘시게 한 헌금
막12:41-44





어떤 성도님이 김덕신 목사님에게 나는 목사님을 좋아해요 라고 말합니다. 목사가 좋아한
다는 말이 나쁘게 들릴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서 웃으
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어떤 점에서 좋다고 보아집니까?
그 사람이 말하기를 목사님은 일년 내내 주일마다 설교하실 때 헌금에 대해서 별로 말씀하
시지 않는 것이 퍽 호감이 갑니다. 그때 목사님은 정색을 하면서 나는 형제에게는 좋은 목
사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신실치 않다는 평을 받겠네요 하고 말했다는 것입
니다.
사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 중에 ⅓을 물질관리
와 헌금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헌금하는데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
습니다.
41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예루살렘 성전에는 13개의 연보궤가 있는데 그것이 마치 나팔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
다. 매 연보궤마다 글자를 새겨서 쓰여질 헌금의 용도를 밝혀주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
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아서 헌금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헌금하는 모습을 아주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뿐만 아
니라 부자가 넣는 헌금과 가난한 과부가 넣는 헌금을 보시고 제자들을 불러다가 구체적으
로 어떻게 헌금해야 하는 것인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지극히 관심을 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헌금을 바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놓고 가난한 과
부의 헌금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
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오늘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가난한 과부와 드린 헌금
이야기와 마리아의 옥합을 깨뜨린 이야기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
러분이 드리는 매일의 헌금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어떠할 때 우리가 드린 헌금을 보고 기뻐하시는지 오늘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을 보면서 함께 교훈을 얻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 속에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였습니다.

헌금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바치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적게 바치는 것이 아닙
니다. 헌금은 믿음이 있어야 바칠 수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못 바칩
니다. 가난해도 믿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바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헌금으로 보십니다. 주여 믿습니다 하는 고
백으로 믿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다 바치는 정성으로 믿음을 보십니다. 가난
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넣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 생활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이중표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믿음이 속성과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속성과로 배우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자매님 가르쳐 드릴
게요? 하나님께 힘껏 바치세요. 물질 바치세요. 시간 바치세요. 몸 바치세요. 그리하면 속
성과로 들어가게 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물질 바치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면
하나님은 곧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원하
시는 것은 가난하거나 돈이 필요하여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50:9-13
0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

그러나 하나님께서 헌금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옮겨져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교회가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헌금에 관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저에게 반문하시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목회자로서 정직한 고백은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이 설교를 합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자연히 헌금 생활하
게 된다고 말합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은 헌금생활을 바로 할 때 주어
집니다.
마음은 회개하였는데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있을 때만이 하나님을 향하여 생활
비 전부를 넣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도 믿음으로 헌금하고 헌금하므로 믿음이
성장해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정성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돈 많이 넣는 부자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 넣는 것을 보시고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하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실제 액수로 보면 부
자보다 훨씬 적습니다.
렙돈은 헬라의 동전으로 당시에 가장 작은 화폐의 단위입니다. 고드란트는 로마의 동전으
로 로마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였습니다.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두 렙돈은 1/64에
해당하는 적은 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해 주었습
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풍족한 중에 드린 헌금이고 이 과부는 구차한 중에 드린 헌금이기 때
문입니다. 하나님은 양을 보지 않고 질을 보십니다. 예를 들어 1000만원 수입이 있는 사람
이 드린 1000원하고 100만원 수입이 있는 사람의 1000원하고 10만원 수입이 있는 사람의
1000원은 양은 같지만 질은 차이가 납니다. 질로 보면 10만원 수입이 있는 사람의 1000원
이 훨씬 정성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헌금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제가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
다. 분명히 어려운 형편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보면 최고의 정
성이 들어있습니다.
이번에 교회가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2월말
에 의자가 들어오면 정말 아름답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교회당을 꾸미면서 교회
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로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해야 하는가? 직접적으로 영혼을
위해 얼마나 유용하게 쓰여지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계속 기도하는 중에 교회 성전을 꾸며
야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우리의 가정보다 좋은가? 분명히 그것은 아니었
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도님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이번에 다들 너무나 수고를 했습니다. 10일 동안 거의 저녁 10시 넘게 마치면서 교회 공
사를 했습니다. 인건비를 계산한다면 엄청난 액수입니다. 장로님 이야기로는 인테리어는
인건비와 재료비가 반반이라고 합니다. 의자를 제외하면 약 1000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렇
다면 우리 성도들이 몸으로 수고한 헌신이 돈으로 따진다면 1000만원을 한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말하기를 너무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이 건물을 어떻게 팔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한 것은 나의 수고의 희생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은 공동체 훈련장으로 쓰이기를 원하면서 구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
실 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이 건물을 통하여 분명히 영광을 받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 함께 힘을 다하여 헌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벌써 몇 분들은 상
당한 액수의 헌금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한 공동체가 다 함께 수고하고 희
생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몸으로 헌신하고 몸으로 수고하기 힘든 분은 물질로 헌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자도 곧 들어오는데 내가 앉는 의자는 내가 헌금 한다고 생각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이 앉는 의자는 우리 가정에서 한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기
를 바랍니다. 의자 35개와 가름대 4개가 들어옵니다. 의자는 한 개당 175000원이고 가름대
는 9만원입니다.
주님 앞에 드린 귀한 헌금이 하나님께 영광 리는데 쓰여지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쓰여진다면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의 헌신을 기쁘게 열납
하실 줄을 믿습니다.
존와나메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은 다 학교에 다니는데 가난하여
학교 대신 벽돌 공장에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만은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
루는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가 낡아서 중건해야겠으니 모두들 정성껏 연보해 주십시오 하고
광고했습니다.
와나메커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도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 바치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옳지 돈은 당장 없으니까 벽돌 공장에 다니니 벽돌이라도
한 수레 바쳐야겠다 마음먹고 아버지에게 의논했습니다. 아버지가 찬동하자 와나메커는 벽
돌 한 수레를 가득 싣고 목사님 사택에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기쁨으로 맞아주며 뜨거운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훗날 와나메
커는 하나님의 축복하심 속에 100만 불을 들여서 교회를 지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 받았습
니다. 헌당식을 하면서 어렸을 때 구차한 중에 정성껏 헌금을 하였더니 나에게 이런 축복을
주셨다고 감격적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또한 그가 바친 선교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나 시찰
하려고 중국을 방문하였는데 그 고을에 아름다운 성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마침 한
노인이 소 한 마리와 청년 한 사람이 같은 멍에를 메게 하고 밭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와나메커는 이상히 생각하여 왜 이렇게 하느냐고 그 뜻을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이 대
답하기를 우리가 저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내 아들과 나는 헌금할 돈이 없었는데 우
리는 소 한 마리를 팔아 바치도록 하고 아들이 그 소의 멍에를 대신 메겠습니다 했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하여 소를 팔아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바쳤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와나메커는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멍에를
메게 하사 저렇듯 희생적인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 와나메커는 훗날 백화점 왕이
되었고 체신부 장관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골에 있는 유년 주일학교 교사는 하였
다고 합니다. 이 천년 교회사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긴 사람은 구차한 중에서 바쳐진 헌신
의 산물이었습니다.
한국 도자기 김동수 사장을 아실 것입니다. 그분 부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부흥 사였던 이
성봉 목사님의 따님입니다. 이 분이 오늘의 축복이 있기까지는 그의 부친 장로님의 헌신과
희생 때문입니다. 김동수 장로님이 어린 시절 청주 서문교회를 건축하는데 자기 살고 있는
집을 팔아 교회 바치더랍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어린 시절 생각할 때도 아버지가 지나
친 것이 아닌가 생각되더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지나보니 아버지의 헌신이 진짜였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렙다 과부와 같이 한 맺히고 피 맺힌 헌금을 드릴 수 있는

3.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진실과 사랑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상대적입니다. 이 직장이 싫으면 다른 직
장에 가면 됩니다. 내가 사는 집이 싫으면 다른 집으로 이사가면 되고 이 옷이 싫으면 다른
옷을 입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절대적입니다.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의 전부입니다.
가난한 과부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부였습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를 넣었습
니다. 이 과부는 전부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많고 적은 것 가리지 않고 전부를 어느 때라도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과 사랑이 들어있었
습니다.
어떤 분이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얼마만한 비용이 들까요?
대답하기 참 곤란했습니다. 다시 질문했습니다. 비용이 어느 정도 들면 믿을 수 있겠는지
요? 담배 값 정도만 들면 믿겠습니다. 선생님에게는 그 정도면 됩니다 하고 대답해 주었다
는 것입니다.
똑같은 예수를 믿고 있지만 믿는 비용은 각각 다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귀하고 좋은
것일수록 값이 비싸다고... 오늘 예수님이 조용히 묻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는데 어느 정도
비용이 들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값으로 나를 환산하고 있느냐고...
하나님을 따르는데 비용이 어느 정도인가 성경에서 들어봅시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드렸습니다. 모세는 청춘을 불살라 헌신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끓는 용광로 속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스데반은 돌로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순교자의 죽음을 감수했습니다. 마리아는
삼 백 데나리온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과부는 자기의 소유 생활비 전부를 바쳤습니다. 바
나바는 밭을 팔아 바쳤습니다.

욥기 22:24-28
24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 가의 돌에 버리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28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하나님을 위해서 돈을 보배를 금을 버릴 수 있어야 하나님이 보배가 되고 하나님이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빼앗기는 것입니다. 자
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 때문에 물질도 시간도 마음도 빼앗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
이 있다면 진정 사랑은 빼앗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직도 빼앗기지 않고 있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간
도 물질도 재능도 생명까지도 즐거움으로 빼앗깁니다. 하나님 앞에 인색한 자가 있다면 이
는 사랑하지 못하는 증거입니다. 진실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헌금은 우리의 신앙의 열도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를 사랑하게 되니까 재물을 조금이라
도 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행4:32-37)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정말 주님을 진실되게 사랑하십니까? 가난한 과부처럼 자기 소유 생
활비 전부라도 내어놓을 수 있는 귀한 마음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지불되는 비용 중 어디에
제일 많이 지출되고 있습니까? 내 집 마련 주택부금입니까? 넣어야지요. 그러나 내가 살아
야 할 하늘 나라 주택건설에 영원히 살 내 집을 위해 더 많이 저축하고 지불할 수 있기를 바
랍니다.
진실 된 헌금만 받으십니다.
공명심이 강한 황제 혼자 단독으로 화려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기초 석에는 모년 모월 모
는 황제가 되었다. 매우 흡족한 황제는 그날 밤 성전 안에 마련된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꿈
속에 하늘의 천사가 내려오더니 기초 석에 자기 이름을 지우고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을 새
겼습니다. 그 이름을 알아보라고 하니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바친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성전을 짓기 위해 돌을 나르는 말들이 피곤해 보여 말에게 짚 한단 준 것이 있었다. 진실 된
것만 받으십니다.
성전을 새롭게 꾸미면서 김덕신 목사님에게 들은 간증을 하나 합니다. 김덕신 목사님이 가
는 곳마다 교회를 많이 지었는데 옛날 남부교회를 지었을 때 그때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성전을 지었는데 마루하고 천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암산 기도원에 가서 3일간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천장도 해야 되고 마루도
해야 하는데 우얄랍니까? 날 좀 봐 주이소 하고 기도하고 돌아왔는데 생각밖에 불교를 지독
하게 믿는 직공 100명을 거느리고 있는 방적공장 사장이 기독교로 전환을 했습니다. 이 사
람이 기독교를 전환해서 예수를 믿는데 믿는 것도 불교 식으로 예수를 믿더랍니다. 공을 쌓
으면 좋은 줄 알고 말입니다.
그 사람이 들어와서 마루바닥과 천장을 보고 왜 이렇게 두었습니까? 라고 묻길래 돈이 없
어서 그렇다 하니까 자기가 다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교회를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헌당했답니다. 하나님은 신통하게 역사 하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건축할 때 제
일 기도를 잘 들어주시더라고 간증합니다.

마직막으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이 과부가 헌금하므로 받은 축복이 어떠했습니까?
1) 예수님께 칭찬 받았습니다.
2) 헌금 생활에 본이 되었습니다.
3) 헌금을 하나님이 다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칭찬 배후에는 무한한 축복도 덧붙여 따랐을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 떠 주어도 상급을 잃
지 않는다고 하였지 않습니까? 생활비 전부를 드렸으니 상급은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그 보물이 가득 쌓였을 것이고 당대가 아니면 자손 대에도 많이 거두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차한 중에 정성껏 바친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축복하십니다.
군산 비행장 옆 옥봉에 가면 비행장 쓰레기를 줍는 거지들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한 가
난한 과부는 땅굴 속에 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십일조를 바치며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며
기쁨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은 돈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그 돈은 거지 집에서 쓰레기를 주어 조그마
한 집을 마련하기 위한 돈이었습니다. 내 집을 짓기 전에 하나님의 집을 먼저 지어야 한다
생각하고 옥봉 교회에 바쳤습니다. 목사님은 그 정성에 눈물을 흘리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날 밤 비행장 군목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의 광채가 비치는 산골 마을에 예수님이 걸
어가시더니 어느 기름 종이가 덮인 움막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기하고 생생
한 꿈이었습니다. 다음 날 군목은 통역관의 인도로 꿈에 보았던 그 집을 찾아내었습니다.
눈물겨운 가난한 거지 집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군목은
감격 속에서 그 가난한 과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군목은 예수님이 찾아간 가난
한 과부 집에 들어가 기도해 드렸고 꿈에 본 내용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후 군목은 그 과부를 식당에 취직시켰고 아들은 비행장 경비로 채용했습니다. 군목이 본
국에 돌아가 그 설교를 했더니 큰 농장을 경영하는 교인이 아들이 없었는데 그 모자를 데려
다가 함께 살게 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군산에 고아들에게 장학금을 보내면서 사랑의 손길
을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차한 중에 바친 정성을 귀중히 받으십니다. 그리고 아낌없는 축복을 부어 주십
니다. 분수없이 바친 자에게 분수없이 축복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이삭을 바쳤더니 여호와 이레의 축복과 함께 하늘별과 같이 빛나는 믿음의 후손을 기업으
로 받는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