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 보다 많은 연보

모든 사람보다 많은 연보
막12:41-44





\"카쇼기\"하면 굉장한 부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돈벌이의 천재인 것이다.
재산 40억 달러, 자가용 제트 여객기 3대, 하루 용돈 28만 달러(약 2억원)하면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딸을 \"아라비아의 망난이\"라는 별명을 가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대령과 결혼시켰다.
사정을 알고 보니 이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 리비아는 캬쇼기에게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를 배럴당 싯가보다 3달러 싼 값으로 파는 계약을 맺었다. 간단히 계산해도 하루 30만 달러(약 2억 1천만원) 이익을 카쇼기는 보는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카쇼기는 하루에 2억1천만원씩 받고 딸을 카다피에게 팔았다는 애기도 된다.

카쇼기는 물질에 노예가 된 사람의 대표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면 이처럼 가족도 팔아먹을 수 있나보다. 그게 바로 물질의 힘이다.

1. 물질의 중요성

1)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물질

그러나 물질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물질이다.

솔직히 말해 없으면 물질이 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꼭 해야할 일조차 물질이 없으면 못한다.

내 어린시절. 내 동생이 학교에 준비물을 못가져가서 매를 맞음. 어머니는 밭일을 하셨는데 돈이 없으니까 주실 수가 없었다.

사실 먹고 사는 것도 물질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대인들의 문제는 중요한 물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차원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다. 물질의 중요성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물질에 집착을 하는 것이다. 그 물질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카쇼기처럼 말이다.

헨리 뉴웬이란 사람이 쓴 책 가운데 [마음의 문을 열고]란 책이 있다. 거기에는 한 비유적인 이야기가 실려있다.
정신과 의사에게 한 부인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발작을 하면서 기물을 파괴하고 혈기를 부렸다. 간호사 두 사람을 불러서 가까스로 진정을 시킨 후에 진료를 시작하려던 의사는 환자가 오른 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손을 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펼 수가 없어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손가락을 하나 둘 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새끼 손가락을 펴니까 딸그랑 하고 밑에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퍼렇게 녹이 슨 1센트자리 동전이었다.
그 환자는 자기 존재와 1센트자리 동전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동전을 잃어 버리면 자기 존재가 전부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와서 칼로 찌르고 이것을 빼앗아가지 않을까,이걸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하는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매일을 시달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동전을 움켜쥐고 살았던 것이다.

물질과 자신과의 동실시, 현대인의 커다란 질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물질이 중요하다는 것엔 누구나 동의 할 것이다.

2)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물질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도 드러난다. 에수님의 37개의 비유가운데 17개는 바로 물질과 관련이 있다. 절반 가까이가 물질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과 물질과의 관계를 꿰뚫어보셨고 비유를 통해서 똑바로 가르치시려 했던 것이다.

물론 그 가르침의 핵심은 물질 자체의 중요성보다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데에 있다(마6:24)

물질은 절대로 하나님을 앞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이 현대인들에게는 매력없는 가르침으로 전락을 해 버렸다. 물질은 곧 현대인의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물질이라는 우상숭배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심지어 교회를 다니면서도 우상숭배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은 돈기도문에 대해 들어보셨는가? 주기도문이 아니고 돈기도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글
<지갑(토는 통장)에 계신 나의 돈님이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돈이 판치는 세상이 임하셨사오니 소득이 부동산 투자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증권에서도 이루어지니이다. 오늘날 나에게 쓰고 남을 돈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자를 고소함같이 나의 진빚은 잊게 하옵시고, 우리를 불황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부도와 파산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자본주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돈님께만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돈내.>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어 물질의 중요성은 물질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다는 데 있다.

3) 물질과 마음의 관계

물질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물질과 마음의 연관성 때문이다.

사람이 물질을 사용하는 자세와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이 어디에 마음이 가 있느냐에 따라 그곳에 물질을 사용하게 되어 있음.

남자친구나 여자 친구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경우-그곳에 물질을 사용함.

사치품 사는데 혈안이 된 사람-마음에 허영이 있다는 의미.

자식을 위해 돈 쓰는 것-자식이 그 사람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의미. 난 다른 곳에 여간해선 돈을 쓰지 않는다. 거의 책값으로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요즘 책값만큼은 아니지만 돈이 꽤 들어가는 분야가 있다. 아들 자동차 사주는 데 돈이 들어간다. 아들 녀석이 차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게 있어 아들 녀석은 중요한 존재이며 내 마음이 그 아이에게 많이 가 있다는 뜻이 된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위해 돈을 씀. 그 덕분에 이혼했지만-친구가 중요하다는 의미.

공부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공부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음.

이처럼 각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물질이기에 그만큼 물질이란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2. 연보의 중요성

그렇다면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 사람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까?

당연한 결과로 하나님께 그 물질을 드릴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을 우리는 헌금 혹은 연보라고 한다.

1) 연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는 다른데 물질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매우 중요한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데 사용되는 물질이 다 피조물과 관련이 되어있는 반면에 연보는 우리의 창조주와 관련이 있다는 데 있다.

즉 연보는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다.

우리가 가진 재물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아니 그전에 재물 얻을 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신가?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장)

그러고 보면 우리가 드리는 연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 일부를 다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 연보는 감사의 수단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의 일부분을 다시 드리는 것은 감사 표시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은 외형적으로 그것이 연보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상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장)

그러고 보면 교회에서 강제적인 방법으로 헌금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체면이나 분위기 때문에 연보를 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연보가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도들에겐 하등의 유익이 없을뿐더러 초신자에겐 시험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주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감사하기 때문에라도 연보를 하게 되어 있다. 내 경우만 보아도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지금도 매주 감사헌금과 건축헌금을 드리지만, 그리고 그것이 우리 생활에 꽤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한적은 한번도 없다. 오히려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3) 연보는 축복의 수단

연보는 하나님께 우리의 감사를 표시하는 방법임과 동시에 더 나아가서 연보는 하나님의 축복의 수단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말라고 하셨다.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찌니라 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신 16장)

또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십일조와 헌물에 대하여 도적질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장)

그런데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는 하나님께 물질이 필요해서 하신 명령이 아니시다.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무엇이 아쉬워서 물질을 요구하시겠는가?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보를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지를 확인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욱 큰 축복을 내리시기 위함인 것이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3장)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시기 의해 연보를 요구하시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연보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3. 모든 사람보다 많은 연보

1) 연보궤에 돈을 넣는 사람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처럼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연보에 대해 예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고 계심을 보게 된다.

연보궤 앞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연보궤여 돈 넣는 것을 쳐다보고 계신 것이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사람들이 다양한 만큼 연보의 양도 다양했는데 그중 부자들은 상당한 액수를 연보함에다 넣었다. 그 돈은 일반 서민들로선 엄두를 내지 못할 큰 액수였다.

사실 이 부자들은 칭찬받을 만하다. 솔직히 말해서 부자라고 많은 돈을 헌금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연보를 축복을 위해 저축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색한 마음으로 연보하기도 하고 또 가능한한 체면치레 할 정도로만 연보하고 그 이상은 엄두를 못내기도 한다.

한 소년이 있었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발걸음도 가볍게 주일학교에 늦지 않도록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날은 특별히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헌금하도록 늘 주시던 동전 이외에 덤으로 또 하나의 동정을 더 주셨기 때문이다.
덤으로 주신 또 하나의 동전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이것 저것 즐거운 궁리를 하다보니 어느덧 시냇가에 당도했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다가 아차! 실수하는 바람에 동전하나를 그만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꼬마가 스스로에게 한 말이다.
\"하필이면 헌금할 동전이 물에 빠졌을까?\"

이 꼬마처럼 다른데 쓸돈은 준비할 지언정 일부러 헌금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 참 많기도 하다. 그러면에서 많은 돈을 연보궤에 넣은 부자들은 참 잘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자가 넣는 많은 액수의 연보를 보시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많은 험근을 하다니 참 훌륭한 믿음이구나 하고 격려의 말 한마디 없으신 것이다.

2) 연보궤에 돈을 넣는 과부

그러던 중 한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 앞으로 오더니 헌금을 했다. 가난한 여인답게 매우 작은 돈이었다.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연보궤에 넣은 것이다.

렙돈은 헬라동전의 명칭이다. 도드란트는 로마 동전의 명칭이다. 그리고 공동점은 로마든 헬라든 그것은 동전이라는 것이다. 즉 매우 적은 액수의 돈이라는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는 성전을 위해서도 제사장을 위해서도 별로 쓸만한 용도가 없을 정도로 작은 액수이다. 우리나라의 겨우 동전의 가장 큰 액수는 500원이다. 그리고 그 500원 가지고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마치 그 500원의 가치만큼이나 별 가치가 없는 액수의 돈을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한 것이다.

3) 과부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 동안 침묵하시던 예수님이 입을 여신 것이다. 그리고 그 가난한 여인을 칭찬하신 것이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예수님은 가난한 여인이, 그래서 겨우 두 렙돈을 연보한 여인이 연보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 속에는 많은 돈을 연보한 부자들도 들어있다.

실제적인 계산으로 따지면 과부는 여러 부자가 아닌 한 부자가 넣은 연보의 백분지 일도 안되는 안되는 돈을 드렸을 뿐이데 예수님은 부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연보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이 가난한 과부가 연보했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유는 그 두 렙돈이 과부의 생활비 전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부자들이 드린 많은 연보는 굉장히 많은 재산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과부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여인은 자신이 가진 것의 100%를 하나님께 드렷으니 가장 많은 연보를 한 것이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와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나와 여러분은 재산 싸들고 천국에 가지는 않는다. 또 이땅에 살아갈 자손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진짜 물려줄 유산은 하나님 의지하고 사는 신앙이지 물질이 아니다. 많은 물질을 남겨주는 것은 오히려 자녀를 망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일 것이다. 드리되 우리가 가진 것의 극히 작은 부분이 아닌 가장 많은 부분을 드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없을 것이고 강요해서도 안될 것이지만 예수님은 분명 이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 가장 많은 것을 드린 사람을 칭찬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연보는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드리되 기쁨으로 감격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인색한 마음이 드시거들랑 헌금을 중단하시기 바란다. 인색한 마음이 담긴 헌금은 결국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말씀을 맺는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물질관을 가지고 있는가?

조금 더 좁게 말하면 어떤 헌금관을 가지고 있는가?

연보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하시는가?
우리가 드리는 연보는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시는 축복의 통로라고 믿으시는가?

그렇다면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시겠는가?

파리에서 선교 집회가 열리고 있을 때다. 헌금함이 돌고 있을 때 초라하게 입은 어느 한 소경이 27프랑을 그 헌금함에 넣는 것이었다. 헌금 위원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토록 많은 돈을 당신이 헌금하십니까.\"
\"왜요. 저라고 못할 게 뭐 있나요.\"
그 소경 성도는 머뭇거리는 헌금위원에게 설명하였다.
\"언젠가 저는 친구에게 등화비로 들어가는 돈이 일년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지요. 그는 대답해 주기를 등잔 불에 들어가는 기름값만도 일년에 27 프랑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소경이 아닙니까? 소경이므로 등잔불이 필요없지 않습니까. 그 등화비에 필요한 기름값을 푼푼히 모아 육신의 어두움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영혼의 소경들에게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주는데 사용하려고 모아둔 돈입니다.\"
그의 육신의 눈은 어두워 있었으나 영혼의 눈은 밝아 있었고 복음이 미치지 못한 어두운 세계에 그리스도의 밝은 빛이 비추어지기 위하여 그토록 귀한 헌금을 한 것이다. 자신의 불구를 이토록 거룩하게 승화시킨 그에겐 비록 육신의 눈은 어두웠으나 영적으로는 밝은 세상을 걷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하기는 나와 여러분 모두 주님을 감동시키는 연보자가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