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에 올바른 원리

헌금의 올바른 원리/대상29:6-14

헌금의 올바른 원리
대상29:6-14





제가 한국에 귀국해서 한밭교회를 섬기고 목회한 지 13년인데, 가끔 한 번씩 독일목사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한국 목사들처럼 설교를 자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설교 준비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들처럼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편안하게 생활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목사들이 일반적으로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를 희망하지만 독일교회 목사님들은 조용한 시골 교회에 가서 학문에 전념하거나 신학을 연구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한다고 유명하거나 조용한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한다고 유명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돈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교회를 건축하거나 교회에서 무엇인가를 마련하는 경우에는 전부다 교인들이 헌금하게 하는 것까지 목사가 권면하고 강권해야하기 때문에 이 교회 강단이 때때로 돈 문제 때문에 굉장히 천박해지고 유치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 구절 한 구절을 읽어 놓고 어떻게 해서든 많이 헌금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제가 우리 한국 교회에서 제일 잘못 해석되는 성경 중에 한 구절이 바로 말라기서에 나오는 십일조에 관한 구절입니다. 그것은 본래적인 의미는 전혀 그렇지 않는데,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말라기서를 설교할 때 본래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헌금을 많이 하라거나 십일조를 많이 하라는 식으로 해석을 왜곡시켜서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독일 교회는 우리하고는 전혀 다른 교회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난 후에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나라들은 세속적인 왕국과 영적인 왕국으로 나뉘는 마틴 루터의 사상을 따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세속적인 왕국을 위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대하여 감당하는 의무가 있고, 하나님의 영적인 왕국인 교회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교인들이 세속적인 왕국의 존재를 위해서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영적인 왕국을 위해서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종교세라는 아주 특이한 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헌금을 하는 것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하지만 독일은 일반 국민들 가운데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수입에서 교파에 따라서 수입의 일부가 원천적으로 세금을 징수합니다. 종교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그것이 국세청으로 모아지고 각 교단에서 나가있는 재무담당 목사님들을 통해서 각 지역별로 종교세를 내는 교인 수에 비례해서 예산이 국가에서 내려옵니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를 짓고 교회의 살림살이를 살고, 목회자들의 사례나 직원들의 월급을 주면서 교회를 운영합니다. 그러니까 교역자가 돈문제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말씀에 있는 대로만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이런 돈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당하고 시험을 하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한국 교회가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조금 더 성숙해지고 개선되어져야 할 것이며 제도적으로 수정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목회자가 헌금에 대해서 설교해야 될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럴 때 막 가슴이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혈압이 오르기도 하고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우리 헌금 이렇게 많이 합시다 라고 할 용기도 없고 굉장히 고민스럽게 몇 주를 지내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헌금에 대해 굉장히 많은 말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들 가운데 사실 우리가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이 시간에 성경에 나오는 두 장면을 소개하면서 헌금에 대한 바른 원리와 헌금에 대한 자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1.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헌금

오늘 함께 읽은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누가복음 21장 1절에서 4절까지를 보면 예수님이 부자와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과부가 하나님 앞에 드렸던 두 렙돈이라는 작은 것을 칭찬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 두 장면을 오늘 같이 소개하고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헌금한 것은 역대상 28장과 29장에 소개되어 있는데,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온 백성과 더불어 헌금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당대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당대에 군인으로서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피를 흘린 손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지을 수없다고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제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이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 성전을 짓게 하기 위해서 미리 건축 헌금을 하게 하도록 백성들에게 독려하고 백성들이 거기에 함께 참여하는 장면이 바로 이 역대상 29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헌금의 자세는 대충 세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과 모든 백성들이 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들이 모두 성심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자세로 예물을 드리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족장과 모든 지파의 어른들과 천 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들이 다 즐거이 드리고\"라고 했습니다. 29장을 한 장을 읽어보면 드리고, 드리오니, 드리겠느냐, 드렸더라, 드렸사오며 등 드린다는 의미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 표현들과 함께 \'즐거이\', \'기쁨으로\', \'기쁘게\'드렸다는 표현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너무 너무 감격해서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고백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기본적인 원리와 원칙, 자세는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분위기에 압도를 당해서 헌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헌금의 많은 문제점이 바로 헌금을 강요하고 강요당한다는 것입니다. 종이 한 장을 나눠주고 분위기를 조성해서 그대로 종이에 적어서 내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도 이 교회당을 지어서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이 교회를 지을 때 우리가 참 힘이 없는 환경속에서 이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분명한 원칙은 한 사람도 억지로 헌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혹 억지로 하신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본심은 한 사람도 기쁜 마음이 아니라 억지로 강요에 의해서 헌금을 한다면 거기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우리 교회의 건축에서는 영적인 부실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쁨으로 드리는 헌금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사서 지어야지, 억지로 기쁜 마음이 아닌 마음으로 드린 헌금을 가지고 교회당을 공사하면 물리적으로는 이 교회당이 잘 지어질는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이 교회당이 부실 교회당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점을 제가 지금까지 줄기차게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계속 목회를 하면서 그 점은 항상 강조할 것이라 다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헌금을 드릴 때 많이 드리든, 적게 드리든 헌금을 드리는 사람의 기본 자세는 기쁜 마음이요, 즐거운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정직한 마음과 성심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며\" 17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드렸으므로 주님께서 감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예물을 드렸습니다라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바나바가 자기 밭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아라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헌금하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서 막상 헌금을 하려고 보니까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 때문에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소유를 판 일부를 감추어 놓고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로 말미암아서 그들은 시험에 빠지고 그 두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헌금을 하시면서 헌금을 실수로 하신 경우가 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처음 독일에 가서 독일교회에 나갔는데, 독일은 화폐단위가 우리와는 달라 그 당시에 1대 500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감이 안 잡히는 것입니다. 택시를 타고도 출국전 받은 소양교육에서 팁을 많이 주어야 한국 사람들의 체면이 선다는 잘못된 교육을 받아 팁도 많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그곳은 지금 우리처럼 헌금함이 있는 교회였으면 그런 문제가 안 생겼을 텐데 그곳에서는 헌금소쿠리를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쿠리가 완전히 개봉된 것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헌금 소쿠리가 제 앞으로 다가올 때 저는 순간적으로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이거 얼마 헌금해야 하는가\'하고 말입니다. 그 당시에 독일의 마르크화는 지폐가 5마르크, 20마르크, 50마르크, 100마르크, 1000마르크로 있었는데 1000마르크는 우리 돈으로 한 50만원 정도 되었습니다. 제가 막 고민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까 독일 사람들은 동전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 사람 체면 생각에 지갑을 보니까 20마르크짜리가 없습니다. 20마르크는 우리 돈으로 10000원 정도 되는 금액인데, 20마르크짜리 지폐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보니까 100마르크짜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체면 때문에 그냥 헌금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날 주일 헌금은 아마 제가 제일 많이 했을 것입니다. 완전히 돋보였을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 계속 \'아깝다\'는 생각이 예배 시간 내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왜 잔돈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첫 유학을 가서 없는 유학생 형편에 50000원 정도의 거금을 주일헌금으로 했으니까 그 때는 저에게 엄청나게 큰 돈이었습니다. 그 때 독일 사람들은 고작 1마르크나 2마르크 많아야 5마르크 정도 하는데, 제가 100마르크나 했으니까 얼마나 많이 한 것이었겠습니까? 지나고 보니까 그것도 비록 아깝게 했지만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체면 때문에 헌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그냥 기도하고 헌금을 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 관심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서, 혹은 장로나 목사, 집사 등의 직분에 맞는 수위 조절을 위해 헌금을 하고 그래서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정말 기쁜 마음으로 성심껏 최선을 다해서 헌금을 하면 되는것입니다. 이 원리를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에서 헌금을 작정하고 그 작정한 헌금 액수가 100% 되지 못하고 통계를 내어보면 70% 정도만 결단한 대로 헌금이 되고 약 30% 정도는 속된 말로 공갈 헌금이라는 말입니다. 교인들이 체면 때문에 헌금 작정서에는 헌금을 해 놓고 기회를 봐서 교회를 탈출하여 교회를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 작정서에 10억이 헌금이 되었다고 하면 정작 헌금은 7억 정도만 헌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1억을 하든, 10억을 하든 성심껏, 정직하게 하면 된다는 원리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풍성히 드렸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마음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아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님께 다시 드렸을 뿐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유개념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있는 사람은 소유개념이 불확실한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바른 소유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물질도, 나의 건강도, 나의 시간도, 나의 사회적인 지위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라고 하는 이것이 바로 다윗의 고백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풍성하게,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 내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까워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십일조는 10의 9는 내 것이고 10의 1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니고 10 모두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도록 이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그 중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 원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다 보면 우리가 늘 시험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주의 손에 달려 있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당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지난 7년 동안 교회 건축을 다 하고 오늘까지 오는 과정에서 제가 조금 더 능력있는 목사였다고 한다면 훨씬 더 빨리 빚도 갚고 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헌금을 잘 하게 하는 능력을 도무지 가지지 못한 무능한 목사였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빚을 갚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힘들게 지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여기로 교회를 지어서 1997년에 이전해 올 때 교인수도 작았고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셔서 오늘에까지 인도하신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순수하고 진실되게, 성심껏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적은 것일지라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때 한 사람, 한 사람 수고했던 분들을 소개하려고 하면 정말 끝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 가서 미국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계신 현신재 집사님 같은 경우에도 국방과학연구소에 있다가 지금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때로는 100$씩, 어떤 경우에는 200$씩 그렇게 여러 차례 건축 위원회에 헌금하였습니다. 사실 100$하면 우리 나라 화폐 가치로 보면 100000만원 정도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유학생 생활 가운데서 그 100$은 얼마나 큰 돈인지 모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큰 액수였습니다. 그런 작은 정성들이 하나 하나 모여서 이곳에 이런 교회당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교회당의 벽돌 하나 하나가, 층계 하나 하나가 그 동안 오정동에서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 짊을 지는 신앙적인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심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2.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

오늘 생각해 볼 두 번째 장면은 누가복음 21장에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에서는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자를 가르켜서는 저들은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비천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가운데 자기의 있는 바 전부를 넣었다고 하면서 제자들에게 그 과부의 헌금을 부자들의 많은 액수의 헌금보다도 높이 평가해따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액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가진 바 생활비를 모두 드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풍족한 중에 드린 것이 아니고 비천한 중에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렙돈이라는 액수가 얼마나 되는 것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당시에 화폐 단위에는 렙돈이라는 단위가 있었고, 고트란트라는 단위, 드라크마, 데나리온이라는 화폐 단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가 지배하던 로마 식민지 하였기 때문에 이 렙돈이라는 화폐단위는 고트란트라는 은화의 1/2밖에 안되는 작은 동전이었습니다. 이 동전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노동자가 하루 일하고 받는 임금인 1데나리온의 1/128이 1렙돈인 것입니다. 그 렙돈 두개를 헌금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노동자가 50000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 액수의 1/128에 블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과부가 드린 헌금이 액수로는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생각해 본다면 500원짜리 하나를 낸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자들의 큰 헌금이 아니라 이 과부의 헌금을 귀하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사람은 비둘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양을, 어떤 사람은 염소를 드립니다. 형편이 나은 사람은 소를 잡아 드립니다. 그들의 형편과 처지에 맞게. 그 사람의 능력에 맞게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둘기를 하나님께 드릴 능력뿐인 사람에게 황소를 잡아서 드리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혹은 우리 가정이 받은 은혜가 황소같은 은혜라면 황소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됩니다. 양과 같은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양을 순수한 심정으로 드리면 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먼저 물질을 드리기 전에 물질을 드릴 곳에,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고 그것을 인색함이 없이 즐거운 마음을 드리고, 풍성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또,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함을 성경은 우리에게 원리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유명한 종교지도자이자 감리교를 창시했던 요한 웨슬레는 \'당신이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돈주머니가 거듭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라고 했고, 마틴 루터도 \'사람이 두 가지로 거듭나야 하는데 하나는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고 하나는 돈주머니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물질이, 돈 주머니가 올바로 정립되지 않으면 올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내 것을 주께 드린 것이 아니라 주께 받은 것을 주님께 드린 것뿐이라는 고백을 다윗이 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앞으로 교회에서 헌금을 할 때 이런 원리와 자세로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