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종말 삼상31:1-6
오늘 말씀은 사울 왕이 전쟁에서 죽은 이야기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 와서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밀려서 도망을 쳤습니다. 길보아 산까지 도망치다가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엎드러져 죽었고,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들도 쫓기다가 그 아들들은 죽임을 당하고 사울 왕은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자기의 병기 든 자에게 칼을 빼어 자기를 찌르라고 했습니다. 생포되어 당하게 될 말할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기 든 자는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살을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병기 든 자도 따라서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죽었다고 했습니다. 삼하 1장에 보면 사울은 그렇게 해서도 완전히 죽지 않고, 지나가는 한 아말렉 사람을 보고 그에게 죽여 달라고 해서 간신히 목숨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사울과 그 세 아들 그리고 그의 병기 든 자가 다 함께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다음 7절을 보십시오. (삼상 31:7)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그 귀한 이스라엘의 땅과 성읍들이 손쉽게 블레셋 사람들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그 다음 8절에 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상 31: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삼상 31: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삼상 31:10)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사울의 시체는 목 베임을 받고 온 블레셋 땅에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그의 갑옷은 그들의 신을 모신 집에 전시되었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자살한 것이 비참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자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들들도 죽었으며 또 자기 몸은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사울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역대상 10:13,14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대상 10:13)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대상 10: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사울의 죽음은 여호와로 말미암은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돌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그를 비참하게 죽이셨습니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그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범죄입니까?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돌리셨더라\" 사울의 죄는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 또 하나는 여호와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를 찾은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지 2년 되었을 때에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기도해 주기를 원했는데, 사무엘이 늦자 자기 손으로 번제와 화목제물을 취하고 제사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제사를 다 마친 후 도착한 사무엘은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망령되이 행했다고 책망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일은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일인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왕이 마음대로 행동을 하였으니 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길게 하지 않고 그 마음에 맞는 자를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다고 했습니다.(삼상 13:13-14) 이 때 사울이 취한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한 행동이요, 그 행동의 근저에는 이미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부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도 사울은 그 명령을 겉으로만 지키는 척 하고 실제로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을 전했습니다.(삼상 15:22-23) 오늘 이 역대상 10장에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를 찾았다는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 때 이미 그는 반정신병자 같은 증세를 가지고 다윗을 잡아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하다 실패를 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 왔다는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했던 사울은 이미 사무엘이 세상을 떠난 다음이었기 때문에 그를 찾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삼상 28:6을 보십시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완전히 입을 다무셨고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그러면 다윗은 어떻습니까? 사울이 하나님께 죄를 많이 지었지만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도 한 때 자기 살길을 찾아 유대 땅을 떠나 이스라엘과 원수된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가서 아기스에게 잘 보이려고 이웃 지방들을 치고 유대 땅을 침노했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년 4개월 동안 하나님을 떠난 생활을 했는데 그러다가 그일라 땅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침략을 받아 사람들이 다 잡혀가고 성읍은 불 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가 백성들이 자기를 향하여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을 알고 군급하여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하나님을 찾고 그에게 아말렉족을 쫓아가면 미칠 것인가 물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서 대답해 주셨고, 그 대답을 따라 뒤를 쫓아가서 결국은 큰 승리를 거두어 잃어 버렸던 사람들과 재산들을 다 찾아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도 블레셋의 침략을 받고 심히 두려워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데, 하나님이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전혀 대답을 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너무나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당장에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나님을 찾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진정한 회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이런 마음을 너무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당장 대답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은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처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삼상 28:7을 보십시오. (삼상 28: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삼상 28:7)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그가 신접한 여인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무당을 찾아갑니까? 아무리 하나님이 대답이 없어도 그렇지, 그러면 왜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답지 않으시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며 더 하나님께 회개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한번 두 번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고 금방 무당을 찾아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에게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가 이렇게 비참한 마지막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대상 10장의 말씀이 그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대상 10:13)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대상 10: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그가 처음에 왕이 될 때에는 이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명문 가정의 아들이었습니다. 삼상 9:1에 보면 그는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의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2절에 보면 그는 준수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에 더했다고 했습니다. 그도 사무엘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있었고 심지어 예언하기까지 했습니다.(삼상 10:10) 또 삼상 11:15에 보면, 그가 왕이 되었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기름 부었다고 해서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되었다는 자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빌 2:12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우리는 비록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안전에 대해서 보장해 주시는 것을 알지만, 그럴수록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가는 자세로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울처럼 처음에 잘 나가던 사람들이 타락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은 교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버림을 받은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처음 그를 찾아 왕을 삼으려고 하니까 말하기를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삼상 9:21) 했습니다. 또 왕이 될 때에도 끝까지 사양하며 행구 사이에 숨어 있기까지 했습니다.(삼상 10:22) 또 왕이 된 후에 자기를 무시한 사람들에게 잠잠하며 온유함을 나타내 보여 주었습니다.(삼상 10:27)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전쟁에 나가서도 늘 승리했습니다. 또 국내적으로도 정치를 잘 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그였는데, 왕이 되고 얼마 있으니까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봐 주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피해자가 다윗입니다. 그야말로 자기의 충신이요 자기에게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고 돌아 올 때 \"사울의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 만이로다\"하고 노래를 부르니까, 그 때부터 다윗을 시기하고 그를 기회가 있으면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제사장의 권리까지 무시하게 되었다.(삼상 13:9) 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삼상 15:12) 그가 이렇게 처음의 겸손을 지키지 못하고 교만해 지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에 무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울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교만해 지니 하나님이 버리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제일 중요한 것은 처음의 겸손을 어떻게 지키느냐입니다. 제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또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 보니까, 제일 어려운 것이 처음의 겸손, 처음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만 잘 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사람이 잘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취약점이 무엇인고 하니 교만입니다. 무엇을 좀 가졌다 하면 교만해 진다. 무엇을 좀 이루었다 하면 교만해집니다. 교회에서도 처음 교회에 나올 때,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의 그 마음만 그대로 가지고 산다면 아무런 문제 없겠는데, 이상하게 우리 사람들은 변합니다. 교회생활의 연륜이 쌓이면 교만해지고 직분을 받고 좀 알만하면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말도 겸손하게 하고 행동도 겸손하게 하다가 시간이 지나가고 특별히 교회에서 좀 중요한 일을 맡는다든지 또 어떤 공을 세운다든지 하면 이상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사람이 교만해 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울의 문제가 그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불순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합니다.
사울은 불순종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사는 제사상이 드리라고 한 말씀이라든지, 아말렉을 진멸하고 그들의 모든 소유까지 아낌없이 진멸하라는 말씀을 듣고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그런 불순종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말씀 불순종으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동산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와가 주는 것을 먹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그것 때문에 자기 뿐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이 죄인이 되어서 사망권세에 묶여 고난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 속에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하라 했지만 그까짓 것 뭐 중요하겠느냐 하면서 하나 씩 하나 씩 불순종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버림을 받는 자리에까지 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내 머리에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내게 손해가 되든 이익이 되든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많은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먼저, 그가 월권해서 제사장만이 드리는 제사를 손 수 드리는 잘못을 범했을 때에도 사무엘에게 진정으로 회개했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기의 행위를 합리화했습니다. 사무엘이 왕에게 왜 이렇게 했느냐고 책망하며 물으니까, 대답하기를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삼상 13:11-12) 했습니다. 한 마디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을 안 했습니다. 또 아말렉 족속의 소유들을 다 진멸하지 않은 것을 따지니까 잘못했다고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것을 남겼다고 변명했습니다.(삼상 15:15) 또 그가 다윗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뻔한 적이 두 번이나 있어서 그때마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친 것 같이 보였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회개였을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가 결정적으로 위기에 닥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왔을 때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응답지 않으시니까 신접한 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이 그에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대답지 않으신 것은 그에게 회개할 죄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때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화살에 맞아 중상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그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전장에서 즉사하도록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상을 당하게 하심은 그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때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의 때를 속히 벗어나려고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래서 자기 병기 든 자로 하여금 자기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랬는데도 하나님은 그의 병기 든 자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서 시간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회개하지 않고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자기 목숨을 끊습니다. 자살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하고 숨이 완전히 넘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고 생명을 연장시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는데도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결국은 아말렉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죽이도록 합니다. 그러니, 이 사울은 아예 회개하기를 거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여러 번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기회를 전혀 살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비참하게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멸망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언제나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도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옵소서\"라고 했고, 그 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지막 순간에도 다른 한 강도는 예수님을 욕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멸망 받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입니다. 특별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 받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회개할 기회가 있고 회개하는 한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이 최악의 상태에 빠진다 해도 마지막 회개의 기회만큼은 잃지 마십시오. 사람의 최악의 상태가 어느 때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자살을 기도하려는 때라고 생각됩니다. 사울의 경우를 볼 때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살은 자기의 모든 가능성을 모든 기회를 스스로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살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며 가장 죄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며칠 전에도 자살하고 싶다고 해서 전화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살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있다면 그것을 그렇게 쓰지 말고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그리고 죽을 힘을 다 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비참한 마지막을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늘 조심하면서 삽시다. 특별히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불순종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무엇보다도 회개할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자살만큼 어리석으며 무책임한 행동이 없는 것을 아십시오. 자살할 만한 용기라도 있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받으며 새 출발하는 데 써야 합니다. 이것이 사울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충성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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