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 사는 생활

끝에 사는 생활/마28:20, 행1:8, 히13:7/2009-09-17

끝에 사는 생활
마28:20, 행1:8, 히13:7





부산 태종대는 창조림 그대로 있는 듯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감탄케 하는 곳입니다. 고등학교시절에 자주 소풍등, 간일이 있는데, 높은 절벽 낭떨어지에 서면, 밑에는 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순간은 아찔하게, 소름이 끼치고, 조심하게 되고, 끝에 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모든 생활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끝에는 잘난 것과 못난 것이 있고, 성공과 실패를 얻게 됩니다.

교회옆에 금호 아파트가 착공한지 3년만에 완공하여 끝이 났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 주석을 얼마전에 끝을 맺고 곧 책이 출간됩니다. 또 마가복음 주석을 집필중에 있어 얼마후에는 주석이 출간되는 끝에 기쁨을 맛 볼 것입니다. 모든 사건에는 끝이 옵니다. 지간주간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어서, 끝이 왔는데, 한편에는 웃고, 한편에는 울고로 끝났습니다. 항상 끝에는 나쁜 것, 좋은 것을 얻습니다.

병원환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천국갔어요? 지옥 갔어요? 내가 아는 것은 예수 믿어서면 천국, 안 믿어서면 지옥입니다. 그 하나만은 확실히 대답할수 있습니다. 끝에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수천억 사람들이 나오는데. 끝에 대하여 기록하여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년간 늙도록 범사에 형통하였더라고 끝을 기록하였고, 롯은 유향불비로 비극으로 끝을 기록하여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자살로 끝을 맺었고, 사울왕도 자살로 끝을 맺었고, 요셉은 총리로 끝을 맺었고, 다윗은 40년간 부귀영광의 왕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갈릴리신학교 봄학기 개강을 3월에 시작하여 6월말에는 종강하는 끝을 맺습니다. 끝맺은 것과 끝맺을 것이 있습니다. 범죄 사건에 검사와 판사의 판결의 끝이 옵니다. 선악간에 끝이 옵니다. 끝에 사는 생활이니, 악행말고 선행해야 합니다. 주일 무엇 하다가 끝을 맺으려 합니까?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아서 끝을 맞으려 합니까? 우리의 모든 생활, 사건에는 꼭 끝이 옵니다. 좋은 끝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세가지면으로 끝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一. 시간 끝(마28:20)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0절) 하셨으니, 날은 24시간이니, 시간 끝을 말합니다. 성경에 끝에 대하여 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태종대에 낭떨어지에 선 경험, 또 자동차 길에 위험을 체험시키는 것, 때대로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생활에 경고, 정신 차리게, 소름끼치게 하여 자기를 돌아보게, 다시금 자기생활을 점검,

인생길 수정, 삼가조심, 순간순간 바로 살게, 양심을 쓰게, 속임은 안되구나, 진리길 바로 가게 하는 경고 메시지입니다. 끝에 사는 생활임을 알게 하고, 세상에 빠지지 않게 하고, 천국길 바로 가게하고, 타락길 가지 않게 하고, 거짓증인 하지 못하게 하고, 바로 살게하는 경고이니, 신앙성공길 가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시간 끝이다 하고 살면, 성도가 타락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주의 일을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순간에 내가 가서 만날 주님을 생각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재림주님이 오시는 그 시간 끝보다 내가 가서 재림주님을 만날 그 시간이 빨리 올 것입니다. 순간순간 개인 종말을 붙잡고 살아서 깨여 있고 살아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술 먹고 상급자에게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불행의 끝을 만난 것입니다. 부자가 자칭 소출이 많고, 통장에 돈 많으니, 내 영혼아 먹고 즐기자 할 때에, 하나님이 그날 밤에 부자의 영혼을 불러 갔으니, 어리석은 시간끝을 만났습니다. 날을 히브리어로 욤(!/y)이라 하였고, ‘끝날’을 헬라어 쉰텔레이아스( συντείας)라 하였으니, 그 뜻은 “끝나는 시간” “시간끝” 의미입니다.

사람은 시간에 의하여 태어나고, 시간에 의하여 살다가 시간에 의하여 죽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험악한 세월 130년 지났다고 번역했으니, 원어는 태양이 130번 돌아다, 되어 있습니다. 태양이 한번 돌면 1년이니, 130번 돌아갔으니, 내 수명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 했습니다.

병원근무하는 27살 총각이 퇴근하여 친구와 술을 먹은 후에 그 다음날 직장에 출근을 하지 안하여 전화를 하였는데,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아 퇴근길에 가보니 심장마비로 죽어있었습니다. 시102:24에 “중년에 나를 데리고 가지 마옵소서”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끝을 맞으렵니까? 좋은 끝이 있고, 나쁜 끝이 있습니다.

자카르타에 지진으로 6천명 죽고, 30만명이 피해를 당하여 고통중에 있다는 보도는 끝에 사는 생활임을 경고로 보여 줍니다. 끝생활을 바로 하게 합니다.

권기숙 목사님은 주일날 1시에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는데, 사모님은 설교 준비하는줄 알았는데, 엎드려 천국 입성하였으니 유언 한마디 못하고 50세줄에서 갔습니다. 자기 시간 끝이 언제인줄 모르니 깨여 믿고, 좋은 끝을 맺어야 하므로 더욱 깨여 있는 신앙 갖기를 부탁합니다.
20절에 ‘세상’이란 단어는 아이온(αίων)로 사용했으니, 지금까지 내가 만든 세상, 건설한 세상, 경력세상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취직할 때에 경력을 기록하는 것같이,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든 이력이 있습니다. 은평교회는 양복석목사가 설립한 교회입니다. 또 창세기 주석을 기록했습니다. 내가 만든 세상이 있으니, 부끄러운 세상을 건설했는가?

영광스러운 것을 건설했는가? 각자에게 이력이 따라옵니다. 내가 만든 경력에는 끝이 오고, 고통 주는 것이든지, 나를 높이고 좋게하는 것이든지 옵니다. 행한대로 갚아 준다하였으니, 세상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가인같이 살인한 이력이 따라오고, 가룟유다같이 예수 판자라고 성경에 기록하여 영원히 저주스러운 이력이 따라옵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확실히 들어낸 향유 부은 것은 영원히 빛나는 영광스러운 이력으로 끝나고 있으며, 에스더 같이 영광스러운 이력이 따라오니, 그 끝이 빛나고 있습니다.

도적질 하는 그 시간으로 끝을 맺으면 안됩니다. 호텔에서 음란하다가 남편 추격에 9층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목사가 있습니다. 그러한 끝을 맺으면 수치뿐입니다. 전도하는 그 시간에 끝을 맺으면 영광입니다. 바울은 복음 증거하다가 순교의 영광의 끝을 맺었습니다.

동목교회가 있는데, 토요일 목수 집사님과 예배드리고 내일 주일 교회 오겠다고, 하나님과 약속, 목사님과 약속, 자기양심과 약속, 같이 예배드린 사람과 약속을 했습니다. 주일날 아침새벽에 친구 목수로부터 오늘 일당 50만원 준다,

지붕에 판자 덮는 일이니, 가자! 갈등이 왔으나, 돈 따라가서 오전까지 일 잘하고 점심먹고 오후 일을 하는데, 대못을 박다가 자기 엄지손가락을 망치로 쳤습니다. 피를 흘리고 병원 가서 한달동안, 일 못하고, 고생, 돈, 창피 당하고 끝나는 시간이 왔습니다.

시계가 착각 착각하는 순간에 나는 끝나는 시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 운명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시간 끝에 살아가고 있으니, 더욱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정신 차리고, 깨여 있는 신앙으로 영광스러운 끝을, 끝을 계속 맺어 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二 .땅끝(행1:8)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8절) 하신 말씀과 마24:14절에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는 끝과 어떤 뜻이 있을 가요? 14절의 끝은 2천년전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시작하여 전파되어 온 세상을 돌아서 출발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는 뜻으로, 예수와 복음 중심한 해석을 해야 하고, 행1:8절에 끝은, 내가 밟고 있는 현재 땅이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들 양목사가 한국에서 목회하다가 지금 미국 뉴욕에서 목회하니, 그가 발로 밟고 있는 그 땅이 끝입니다. 지금 발로 밟고 있는 땅에서 순간적으로 이 지구촌을 떠나게 됩니다. 항상 땅 끝인 줄 알고, 신앙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하고, 한발 한발 걸어야하고, 이 땅을 밟고 있는 이순간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은평교회를 밟았는데, 다시는 못밟고 끝이 날지 모르니, 신앙에 깨여 있어야 합니다. 요즘 장애자 소경들의 안마사 자격문제로 한강다리에 뛰어 내려 죽었는데, 그 땅이 끝이었습니다. 땅끝에 생활이 성공 되어야 합니다.

지금 밟고 있는 땅이 무슨 땅입니까? 무슨 땅에서 끝 낼렵니까? 슬 먹고 음란하고, 사기하고 도적질하고, 법정에서 위증하고, 교수목사를 교살하면서 가룟유다가 밟은 땅에서, 불순종하는 땅에서 끝내렵니까? 어리석지 마시고, 복음 전하는 땅에서 끝을 맺어야 합니다.

서울 살던 집사가 토요일 추자도 낚시 가서 태풍으로 죽었는데, 집사가 주일 어기면서 추자도 땅이 끝이 되었으니, 내가 밟은 땅이 저주땅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나오미와 엘리멜렉이 모압땅으로 가서 10년 살았는데. 저주 당을 밟고 사는동안, 남편 두 아들이 죽었으니 내가 밟은 땅이 모압땅은 아닌지요? 롯이 밟은 땅은 소돔땅이요, 그 땅에서 끝을 맺었으니, 경종을 줍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같이 속이는 그 땅에서 죽으면 안됩니다. 가룟유다같이 예수 팔아먹는 그 땅에서 끝맺지 맙시다. 요셉같이 축복으로 총리자리, 그 영광 땅에서 천국가야 합니다. 아벨 스데반,야고보, 베드로 바울, 주기철 목사같이 순교하는 땅 끝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국 갈릴리신학분교에 가서 중국땅을 밟고 있는 시간에 월요일 저녁, 새벽, 오전, 오후, 저녁 4차례 금요일 새벽까지 가르치고 금요오후에 돌아옵니다. 목이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땅을 밟고 있는 동안 내 사명을 다하려고 합니다. 한두시간 가르치고 관광하는 분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짓을 하면 안됩니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이 끝이요, 이 밟은 땅을 더 밟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산다면, 살아있는 신앙이 되겠습니다. 다니엘 에스더 모르드게는 영광의 땅을 장식하였습니다. 할렐루야!

三 . 행위 끝(히13:7)

“저의 행실의 종말(끝)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히13:7)하셨으니, 무슨 행위를 만들고 하루를 지났습니까? 잠1:31절에 ‘행위열매를 따 먹는다’고 했습니다.

김목사와 강도사가 기도원에 갔습니다. 점심시간에 줄을 썼는데, 100명가량 서 있는데, 어떤 청년이 한사람 한사람 얼굴을 쳐다보고 자나가는데, 40번째 서 있는 강도사를 주먹으로 얼굴을 쳤습니다. 강도사가 쓰러졌습니다. 알고보니 미친 놈이었는데. 하나님 허용으로, 미친 놈에게 강도사가 맞은 것입니다. 죄 많이 짓고 기도하려 간 자기를 때린 것을 깨닫고 회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바디메오가 지나가는 예수여 불쌍히 여겨 고쳐 달라 부르짖었는데, 그 부르짖은 행동의 끝은 치유의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행위끝은 영광이요, 총리권세요, 위대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축복이었습니다.

롯의 행위 끝은 유향불비 맞는 비극이었습니다. 아합왕이 이세벨 이방 여자 왕후로 맞아 바알 섬기는 짓을 한 행위 끝에는 3년6개월 흉년과 비극으로 죽음의 고통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자기 행위 끝이 어떻게 오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175세 사는 동안 늙도록 범사에 복을 받았다고 행위 끝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농사 짖어 그 해에 100배 얻었다고 하셨으니, 백배, 천배, 만배 얻는 행위끝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기도행위를 가지고, 헌신행위를 가지고, 전도행위를 가지고, 중보행위를 가지고, 순종행위를 가지고, 중풍병자를 메고 오는 행위를 가지고 살면 끝마다 좋고 축복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는 세가지 끝에 사는 생활입니다. 시간끝, 땅끝, 행위끝, 끝마다 다 성공해야 합니다. 오늘도 영광과 축복을 얻어가는 끝을 계속, 계속, 또 계속 맺어 가시기를 주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