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처럼 삼상1:12-18 영국 “웹스터” 라는 조그만 마을에 “자비스”라는 부인이 있었다. 이 부인은 교회에서 어린이를 26년간이나 보살피는 일을 했다. 부인에게는 안나 라는 친딸이 있었는데, 안나 말고도 어머니를 잃은 고아들을 친 자식과 똑같은 사랑으로 보살폈다. 부인은 교회로부터 급료도 받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정성껏 보살피는 것이 부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자비스 부인이 과로로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수년간 아이들에게만 온통 신경을 쓰다 보니 병을 얻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병든 부인을 걱정하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자비스 부인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이들에게는 부인의 빈자리가 너무 커졌다. 그런데 자비스 부인이 세상을 떠난지 1주기가 되자 추도식이 마련되었고, 식순의 하나로 부인의 딸 안나 는 대중에게 평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에, 하얀 카네이션을 추도식 제단에 바쳤다. 물론 그 카네이션은 부인이 살아 있을 때 집 뜰에 심었던 꽃이었다. 이 모습은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잔잔하면서도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자비스 부인의 이야기가 곧 미국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어머니날 운동은 특히 부인들에게 열열한 지지를 받으면서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어머니날 운동은 금방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 여론이 형성되자 1914년 미국 국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결정하였다. 이 날에,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빨간 카네이션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 앞에는 하얀 카네이션이 놓여지게 되었다. 이것이 어머니날의 유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국무회의에서 해마다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17회까지는 어머니 날로 기념식을 행했고, 1973년 3월 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6615호)에서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기념식과 기념행사를 거행해 오고 있다. 어버이날을 제정한 목적은 범국민적 효 사상 앙양과 전통 가족제도의 계승 발전은 물론, 사회와 이웃에 모범이 되는 효행자, 전통 모범가정, 장한 어버이를 발굴해 포상하고 격려하는 데 있다. 그래서 매년 5.8. 은 어버이날이다. 이렇게 볼 때 교회력으로 보면 다음주일인 5월 13일이 어버이 주일이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왜 한주를 앞당겨 이번주일에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기념일을 지난 후에 기념주일을 지키는 것은 어딘가 좀 어색한 느낌이다. 그래서 기념일이 되기 전에 그 의미를 되세겨 보면서 기념 주일로 지키는 것이 합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주일에 우리들은 어린이 주일로 지켰다. 그리고 이번주일을 우린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것이다. ◆매년 어버이주일이면 이 강단에서 빠트리지 않고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올해에도 그 노래로 어버이 주일 말씀을 열려고 한다. 함께 부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여러분들도 같이 부르셔도 좋겠다. 양 주 동 작사, 이 흥 렬 작곡의 “어머니의 마음”라는 노래이다. ①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이 희생은 가이없어라. ② 어려서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 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 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없어라 ③ 사람의 마음속에 만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녀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마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지극하여라. 사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65억의 사람들은 어머니가 없었다면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 앞에서는 성인군자도, 불효자도, 깡패도, 도적놈들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고개를 숙이게 된다. ◆최근에 영국의 AFP 통신에서 영국 문화원 탄생 70주년을 맞아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102개국의 사람들 약 4만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조사했다. 70주년을 맞이하여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70가지를 뽑아 순위를 결정했는데 10위부터 좀 발표해 주겠다. 10=‘tranquility(평온)’ 9=Liberty(자유) 8=‘freedom(자유)’ 7=‘destiny(운명)’ 6=‘fantastic(환상적)’ 5=‘eternity(영원)’ 4=Love(사랑) 3=‘smile(미소)’ 2=‘passion(열정)’ 순이다. 그리고 1위는 Mother(어머니) 라는 단어였다. Mother 즉 “어머니” 라는 단어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102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뽑혔다 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충격적인 것은 “Father” 즉 아버지라는 단어는 70개 단어 중에 포함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banana 라는 과일도 아름다운 단어 중에 41위에 올라 있다. 막대사탕을 뜻하는 lollipop 단어가 42위이다. 어머나 하고 놀라는 표현인 whoops 라는 단어는 56위였다. 닭이 날아갈 때를 표현하는 단어인 flipflop(푸드덕 푸드덕) 이라는 단어는 59위였다. 나는 이 조사를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어찌된 것이 아버지(Father)가 Banana 보다 못하고 막대사탕보다 인기가 없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아버지 여러분! 우리 모두 분발하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중에 우리들이 꼭 본받아야 할 어머니 한분을 소개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나에 대한 이야기는 삼상 1,2 장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레위인으로 제사 직무를 행하던 지파인 고핫 자손의 명예로운 가문에 태어난 엘가나와 결혼하였지만 자식을 낳지 못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온 여인이었다. 그런가하면 엘가나 는 브닌나 라는 다른 여인을 맞아 자식을 낳고 그들과 함께 살았다. “일부다처” 주의가 허용되었던 그 시대에는 이것이 큰 흉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여 늘 슬픔 속에서 살아온 한나는 브닌나에게 자주 무시당함과 엎신여김 을 당하며 살아왔다. 성경에 자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여인이 구약성경에 4명이 나온다. 그 첫 번째 여인은 사라이다. 아브라함의 부인으로 창12장에서 하나님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르고 네게 복을 주어 창대케 하겠다는 약속을 직접 받고 25년 동안 자식을 기다린 여인이다. 그리고 그는 90세에 기적적으로 아들 이삭을 낳았다. 두 번째 여인은 누구인가 사라의 며느리 리브가이다. 이삭이 40에 리브가와 결혼하고 20년 동안 자식이 없었다. 그러니까 리브가는 자식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아온 세월이 20년이었다는 말이다. 즉 이삭이 60세가 되었을 때 쌍둥이를 얻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야곱과 에서이다. 세 번째 여인은 라헬이다. 라헬은 야곱의 4번째 부인으로 아주 곱게 생긴 여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야곱이 부인들 중에 가장 사랑하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도 자식이 없었다. 라헬은 다른 여인들 보다 자식이 없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욱 심했다. 그래서 그는 야곱에게 자식을 낳게 해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고 화풀이를 하기도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로 자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여인이 바로 한나 였다. 그런데 한나는 다른 여인들과 사뭇 다른 것이 있다. “사라”나 “리브가” 나 “라헬”은 자식이 없음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들은 태평성대로 그냥 오래 동안 기다리거나,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죽겠다고 바가지를 긁었지만 한나는 이 심각한 문제를 가슴에 안고 성전으로 나갔다. 왜 성전으로 나갔나? 한나의 믿음은 오직 이 문제를 해결 하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는 성전으로 나아가 통곡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래서 한나를 일컬어 “기도의 어머니” 라고 부른다.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시나? ◆땅만 쳐다보며 한숨만 쉬시겠는가? 아니면 주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시겠는가?// ◆유명인사들을 찾아가면서 해결책을 간구하겠는가? 아니면 주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시겠는가?// ◆주님의 날도 무시한체 돈 많은 친인척들을 찾아다니며 손바닥을 비비고 돈을 꾸러 다니시겠는가? 아니면 주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시겠는가?// ◆힘들다 하여 숨어 버리겠는가? 아니면 주님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시겠는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당연히 포기하고 되는데로 살아가자 하고 막가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겠는가? 아니면 주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시겠는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열쇠는 주님 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열리는 법이다. 한나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성전에 나와 통곡으로 기도 함으로 해결했다.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자. 내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 한분밖에 없다는 신앙고백과 함께 주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자. 그것만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다. 옆 사람과 인사=기도만이 방법입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한나의 신앙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물치교회를 출석하는 모든 교인들에게도 한나와 같은 믿음을 주옵소서.” 라고 말이다. 왠지 아시나? 오늘 본문 삼상1:12~14까지 다시 한번 읽어 보자.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 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하는 말이 포도주를 끊으라고, 언제까지 이렇게 술주정하려 하느냐고, 그만 일어나라고 하고 있으니 이런 제사장을 이해할 수 있나? 더군다나 1:9-10을 보면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에 앉아 있을 때 한나가 성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 말자 통곡하며 기도했다. 이것을 엘리 제사장은 성전 문설주에 앉아서 다 보고 있었다. 한나의 기도는 처음에는 통곡하는 기도를 드리다가 이제 진정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술취한 여인취급을 하면서 이제 그만 포도주를 끊으라고 하고 있으니 이런 제사장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남은 아주 심각한 문제로 통곡하며 기도하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고 있는데 함께 기도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술 취한 여인으로 취급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나? ◆나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교회 성도들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과연 자기 인생에 가장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주님 전에 나와 통곡하며 기도하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데 목사라는 양반이 나와서 “집사님! 술 취하셨나? 그만 술 좀 끊어요. 대낮부터 교회 와서 뭐 그리 주저리 주저리 주정하고 있어 어여 집으로 돌아가!” 하고 핀잔을 준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아마 십중팔구는 “목사님은 남의 사정도 모르고 내가 술 취한 줄 아세요? 아까부터 와서 통성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기도하고 있는데 무슨 목사님이 그런 것도 모르고 그럽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성도가 통곡하며 기도하면 목사님이 들어와 무슨 일이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고 따질 것 같아. 그런데 한나가 하는 처사를 보라. 기도하던 한나가 돌아앉으면서 술을 좀 끊으라고 말하는 엘리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기도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 이니이다.” 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한나의 고백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엘리 제사장을 부르는 호칭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 제사장을 향하여 아니 오히려 술에 취한 여자로 취급하는 그 제사장을 향하여 이렇게 부른다. “내 주여” 어떻게 보면 영역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은 엉터리 같은 제사장을 향하여 “내 주여!”라고 호칭한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한나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엘리를 향하여 “내 주여”하고 고백할 수 있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성도들이 “내가 교회를 옮겨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여러분! 한나의 이 고백은 그의 믿음이 한결같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믿음이 한나와 같이 한결같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이 그렇게 영력 없이 자신을 천대해도 그를 제사장으로 인정하고 또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다. 그래서 한나는 엘리의 기도를 받는다. 17절을 보라.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기도해 주니까 한나가 이렇게 고백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나의 한결같은 믿음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바로 한결같은 믿음이다. 상황이 어떠했건, 기분이 어떠했건, 조건이 어떠했건, 마음이 어떠했건, 형편이 어떠했건 한결같은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이 한결같은 한나의 믿음은 기도로부터 왔다. 그래서 오늘 본문12절의 말씀을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라고 말씀하고 있다. 한나의 이런 한결같은 믿음의 출처는 기도였다. 기도하면 한나와 같이 한결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예))품절된 책 중에 “흔들리는 신앙, 붙들어 주소서”라는 책이 있다 김 연숙 씨가 쓴 책이다. 그 책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22년 동안 미국 이민 교회에서 108번 교회를 옮긴 장로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1년에 약 5번 정도,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바꾸었다. 그분은 자기의 이상에 맞는 교회를 찾아 108번 교회를 찾아 옮겼다. 그런대 그 장로님은 교회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만 찾아내기 시작한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낸다. 그리고 자기 눈에 드러난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이야기한다.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 등 108개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병으로 죽게 되자 어느 교회에서도 그의 장례식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유는 그가 장로로서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기 전 108번째 교회 목사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해주었다는 얘기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이상향의 교회는 없다. 왜 그런지 아시나? 교회란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거친 바다 물이 때로는 배의 앞길에 힘겨운 파도로 다가오지만 배는 물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다. 교회가 비록 모순이 있고 교회가 비록 부족한 것 같지만 우리 신앙인은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한나가 가장 심각한 자신의 문제를 가장 먼저 주의 전으로 들고 나와 무시를 당하고 수모를 겪었어도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또한 엉터리 같은 제사장도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인정했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나와 같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고 그런 사람을 쓰시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한나 이 여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 모두가 한나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이 해인 시인이 쓴 시 한수를 낭독해 드리고 말씀을 맺겠다. 제목 ;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 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 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되었습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어두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물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그렇다 우리들은 푸른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가 가장 요구하는 것은 한나와 같은 푸른 어머니이다. 기도에 푸른 어머니, 믿음의 푸른 어머니, 소망에 푸른 어머니, 사랑의 푸른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인사=믿음이 있는 푸른 어버이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