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를 공경 하라

어버이를 공경하라
레19:32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친구로 삼지 말라. 그런 자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맞는 말입니다. 부모란 인간의 근본에 해당합니다. 그 분으로부터 내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고, 자신을 모르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성공해서 세간의 존경을 받는다해도 돈을 많이 벌어 남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학계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할지라도 부모를 모른다면 그 존경과 선행은 다 가짜고 위선입니다. 부모를 모르고 쌓은 위대한 업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모는 나의 근본이고, 살아 계시는 동안 부모는 내 존재목적의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例)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집수리를 하기 위해 벽을 뜯었습니다. 일본 집벽은 \"오가베\"라고 해서 흙을 바르긴 하지만 그 안에 얼기설기 나무를 대어 만들기 때문에 벽 안에 공간이 있는데, 그런데 뜯다보니 벽 틈에 도마뱀 한 마리가 대못에 꼬리 윗부분이 찍힌 채 살아 있더라는 겁니다. 주인이 깜짝 놀라 살펴보니 그 대못은 10년전에 그가 집을 지을 때 박았던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옴짝달싹 못하는 공간 속에서 10년동안이나 어떻게 살아 왔나\"싶어 넋을 놓고 바라만 보는데, 때마침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기어 들어와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을 먹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벽 속에 갇혀버린 도마뱀을 위하여 또 한 마리의 도마뱀이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먹이를 물어 나른 것입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적지 않습니다만 도대체 정이라고는 있을 법도 하지 않은 냉혈동물인 도마뱀이 일이년도 아닌 십여년을 갇힌 도마뱀을 위해 희생한 이것을 사람인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이 두 마리의 도마뱀은 어떤 관계일까요? 연인일까요? 부부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친구 사이일까요? 십년이란 긴세월로 미루어 생각해 볼 때 연인이나 부부라기 보다는 어미와 새끼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갇힌 도마뱀이 어미였는지 새끼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물일지라도 엄연히 어미와 자식간에는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이 이 사랑을 모른다면 사람이랄 수 있겠습니까?



例)언젠가 서울 종로 경찰서에서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에서 영업을 하고 있던 \"박카스 아줌마\"22명을 잡아 즉심에 넘긴 일이 있었습니다. \"박카스 아줌마\"들이란 노인들을 상대로 윤락을 하는 40~60대의 아줌마들을 일컫는 비어입니다. 이 아줌마들의 윤락 수법이 할아버지들에게 박카스를 접대하면서 접근하기 때문에 \"박카스 아줌마\"들이라고 불린 것입니다. 저는 지금 노인들을 윤락의 대상으로 삼은 이 아줌마들의 자잘못을 가리자고 이 사건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 \"왜 이 공원에는 이렇게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어야 하는가\"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도 가 보십시오.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많은 노인들의 얼굴에는 외로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에서 할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고 가족의 사랑을 넉넉히 받는 노인들은 그곳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도 공원에 가 말벗이라도 만들어야 하루를 살수 있기에 공짜 지하철을 얻어 타고 출퇴근을 하시는 겁니다. 설상가상 그곳에서 종일 굶다가 봉사단체에서 마련해주는 한끼식사로 기력을 유지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노인 소외를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입니다. 가장 존경 받아야 할 노인들이 시대의 애물단지가 되어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또 맞이했습니다. 이 어버이 주일에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신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어버이에 대하여 다시 한번 말씀을 중심으로 한 깊은 통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리해 어버이를 공경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1.나이 드신 어버이의 자리를 회복해 드려야 합니다. 노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효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효도란 모든 어버이를 모신 자식들의 의무요, 인간된 도리입니다. 예전에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철부지해서 부모에게 불효를 하는 일이 많았더라도 일단 결혼을 하고 자식을 기르게 되면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효를 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가 된 어른들이 노인이 된 부모들을 귀찮아하고 구박하고 불효하는 일들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끔찍하게 사랑하면서도 늙어 가시는 부모님은 또 끔찍하게 꺼려하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큰 일입니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이미 65세의 인구가 7%를 넘어서면서 UN이 분류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전에 비해 많은 분들이 장수하게 되었다\"는 좋은 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노인의 복지를 제도적으로 준비해야만 하는 의무와 책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2030년이면 젊은이 100명이 고령인구 30명을 부양해야만 한다는 통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느 나라나 선진국이 되려고 기를 쓰는데 어떤 나라가 선진국입니까? 또 복지사회를 만들자고 많은 말들을 하는데 어떤 사회가 복지사회입니까? 선진사회나 복지사회를 물질적인 것으로 기준을 삼아 \"얼마나 잘 사는가\"하는 국민 소득으로 따져 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기준\"입니다. 서민위주의 정책이 잘 발달한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도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빈민촌이 그대로 존재하면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면 그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부자들은 얼마든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불편함을 만회하거나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서민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맨몸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제도나 정책이 서민위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점차적으로 형평을 이루며 고루고루 잘 사는 그야말로 진짜 살기 좋은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복지사회란 무엇입니까? \"복지사회\"란 건강한 사람이나 젊은이보다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와 시민의식이 성숙한 사회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나 젊은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행복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복지사회냐, 아니냐\"하는 잣대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수 있는 사회냐 아니냐\"로 쉽게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노인 공경이 되지 않는 나라는 국민소득과 상관없이 절대 선진국할수 없습니다. 노인이 소외되는 복지사회는 거짓이며 그런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믿는 이들의 가정에서부터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이 말씀을 실천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먼저 아이들 위주로 되어 있는 밥상부터 노인위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간에 어버이를 소외시키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든 부모님 위주로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부모뿐 아니라 모든 노인들을 내 어버이로 생각하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는 것이 믿는 이들의 기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아이들에게 위아래를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말씀은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라고 말합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위아래가 분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센머리앞에 일어서라는 말씀에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나이 드신 그 자체로 대접을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옛날에 조손겸상(祖孫兼床)으로 경로의 덕을 밥상 머리에서 가르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들어서는 안되고, 찬에 손을 대기전에 대서도 안되고 맛있는 별식은 떠주기 전에 손을 대선 안되고..하는 것들을 식사자리에서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노인이 얼마나 지엄한가를 뼈에 스미도록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밥상에서 뿐 아니라 만사를 자기 위주로 자라 놓으니, 노인 앞에서 겸양해야 하는 기본이 정신적인 자질 속에 생겨날 리가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노인은 그저 육체적으로 무력한 존재로만 보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노약자석에 앉지 말라는 가르침을 수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노인을 층계 아래로 떨밀어 절명하게 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제 방향으로 가고 있지를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노인들을 생각하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0년이란 세월이 강산도 변하는 긴 세월이라고 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눈 깜짝할 시간일 뿐입니다. 그렇게 20년만 지나면 30대가 50대가 되고 40대가 60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내 아이들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내 부모님께 효를 다해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입니다. 젊음을 다 바쳐 키워 놓은 후에 늙었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서러움입니다.

자식에게보다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돌아가신 후에 흘리는 눈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위 아래를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요 신앙적이며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입니다. 냉수 한모금 마시는데에도 위아래가 (장유유서가)있는 것입니다. 이 우선 순위는 노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질서가 지켜지는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가 행복한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씀입니다.



例)서울 중앙청 뒤쪽에 효자동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는데, 이 동네를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된 데는 유래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주무시다가 실수로 손자를 이불 밑에 깔아 죽이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자기 실수로 손자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시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해서 모랠 죽은 아이를 안고 나와 남편에게 왔습니다. 그랬더니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이 아이를 보고 \"이 불효자식아,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시게 만들다니\"하면서 그 아이의 뺨을 호되게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죽은 아이가 살아 났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이 일을 임금님이 알고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고 이름했다고 전해집니다. 여러분 아이들에게 위아래를 가르치십시오. 죽은 아이에게도 효는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자다가 할아버지에게 눌려 질식사한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의 마음 아프게 한 것도 불효라고 아이를 꾸짖는 것이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지극한 효성은 죽은 아이도 살려내는 기적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 이야기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출20:12) 말씀하셨습니다. 부모 공경에는 분명한 축복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혹 축복 없더라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입니다. 살아 계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을 공경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이 본능보다 더 사람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움입니다. 나를 위해 늙으신 부모님을 외롭게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가장 큰 불효입니다. 아이들에게만 너희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고백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자주 하십시오. 그리고 대화와 모든 활동의 중심에 부모님이 계시게 해야 합니다. 부모에게는 자식과 나누는 대화보다 더 큰 선물 더 큰 힘이 없습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버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효를 통한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