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약속 있는 축복
효, 약속이 있는 축복
잠1:1-9
공자의 제자 자유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효란 무엇입니까? 공자는 효란 공양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는 것이며, 모든 행위의 근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사회적 관계와 질서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질서와 권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교육과 환경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황새와 까마귀는 어미가 늙어 더 이상 날 수 없을 때 자기 둥지에 어미를 데리고 와서 죽을 때까지 먹을 물어다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버이 날이라고 하면서 옷이나 용돈을 좀 드리는 것을 효라고 착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효의 가치가 급속하게 무너짐에 따른 인간의 가치가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짐승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도덕성이 무용한 결과 인간의 생명이 지닌 존엄성과 절대성이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살의 소식은 효를 망각한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효란 늙은 부모님에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우상숭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를 단순히 경제적 부양으로 축소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시설에 위탁한 것으로 자기가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모데 후서 3:2에서 바울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세의 가치가 돈을 사랑하면서 부모를 거역하는 불효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부모에 대한 사랑이 작아지는 시대를 우리는 지금 눈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늙은 부모님을 돈으로 계산하는 시대는 말세의 시대이며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명기 27:16에서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것이지만, 축복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행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효도를 통하여 장수하며 형통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늙은 부모님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해서 짐처럼 생각하고 겨우 시설이나, 집에 모시면서 죽기 전까지 생물학적인 목숨을 연명하게 한 것으로 만족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잠언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이라 말하며, 부모님의 훈계와 법을 떠나지 않는 것을 아름다운 관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 부모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이를 아는 것이 인간에게 아름다운 일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님은 많은 이웃들 중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이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의 첫째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하여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인간은 가정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의 관계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실존하는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는 자신을 버리는 자식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존재입니다. 자식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지혜서인 탈무드는 절대적인 사랑과 순종을 가르칩니다. 또한 서양 사람들은 성공적인 가정의 비결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위에서 세워지는 가정 둘째, 경건한 부모로부터 양육되는 자녀들 셋째, 교회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입니다. 인생은 관계를 계속 맺어가는 것입니다. 사람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관계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신앙하고, 부모님께 효를 행하는 것이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부모님께 효를 행하는 사람을 ‘아름다운 관과 목의 금 사슬’을 한 사람으로 극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효를 실천하므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효의 의미를 회복하므로 축복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