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이름으로 요한복음 16: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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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기독교인들만의 특권은 아니다. 이슬람교에서도, 불교에서도 힌두교나 다른 모든 종교가 다 기도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와 다른 점이 있는데, 우리는 기도할 때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점이다. 가톨릭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즉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제사장이 있다.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예수님이 있다. 가톨릭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예수님이 있지만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 또 한 사람의 중보자 마리아가 있다. 1. 성경은 오직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중보자는 (1)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인간의 형체를 입어야 한다 빌 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1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3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 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 2:14-17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 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 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4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 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2) 죄가 없는 자로 죄를 담당해야 한다 사 53:6-10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 중에 누가 생각 하기를 그가 산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4묘 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 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엡 2:13-18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 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고 의를 전가(轉嫁)해 줄 수 있는 분이라야 한다 롬 5:6-19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4) 제물과 제사장의 위치를 다 수행해야 한다 히 7:27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 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 10:5-22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면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1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의 중보자는 한 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우리는 그 분의 아름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 그 분의 공로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 이름은 마치 보증수표요, 신원 보증서요, 소개장과 같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거절하실 수 없다. 2.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의 주문이나 주술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하나님을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의 맨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꼭 붙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의 주문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란 말은 “예수님과 하나되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란 뜻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빌 2:5-7). 만약 어떤 사람이 친구 목사님의 교회에서 왔다고 하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하자. 물론 그 성도를 처음 만났지만 친구의 소개로 왔으니 도와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신앙관이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내가 아는 친구 목사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신뢰하겠는가? “당신이 그 목사님에게서 신앙 지도를 받았다면 어떻게 당신의 언행에서 목사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적어도 내가 아는 그 목사님은 이런 분이 아닙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만약 예수님의 소개장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하나님께 나갔는데 우리의 모습에서 전혀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말을 신뢰하시겠는가? 먼저 내 모습 속에서 주님의 모습이 보여야 한다. 무언가 주님과 닮은 것이 있어야 한다. 3. 그렇다고 해서 기도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를 할 때마다 이 용어를 고의적으로 사용하지 않다 보면 어느 순간에 마음 속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생각을 잊고 말 것이다. 나중에는 순전히 자기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간 줄 알 것이다. 고마운 마음도 없이 말로만 “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마음으로는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사랑해요”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마음으로는 뜨겁게 사랑하면서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고 시인하고 고백해야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기도를 하다가 깜빡 잊고 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