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말을 마음에 간직 하라

나의 말을 마음에 간직하라
잠3:1-17





오늘은 어버이 주일과 졸업 예배를 같이 드리는 주일입니다. 유명한 한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풀이하면, “나무는 잠잠이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고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라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 송강 정 철이 쓴 훈민가(訓民歌)를 알고 계십니까?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성경에도 부모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입니다. 에베소서 6:2-3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중에 이 계명을 잘 지키면 이런 저런 축복을 받으리라고 나와 있는 첫 계명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부모님 생각 많이 하십시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화도 한 통 넣고, 편지도 한 통 쓰십시오.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이라도 오늘 있게 하신 그분들의 수고와 사랑을, 그리고 그분들의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영국의 시인 루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이 「오 나의 어머니(O Mother of Mine)」라는 시를 썼습니다. “내가 높은 산에 목이 매달린다고 해도 나는 압니다. 누구의 사랑이 나에게 흘러올지를. 오 나의 어머니! 내가 깊은 바다에 빠진다고 해도 나는 압니다. 누구의 눈물이 나에게 흘러올지를. 오 나의 어머니! 내 영혼과 몸이 저주를 받는다고 해도 나는 압니다. 누구의 기도가 나를 구원할지를, 오 나의 어머니!”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과 기도 덕분으로 오늘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키플링은 그의 시에 “Dedication to The Light That Failed(꺼진 불에게 바치는 시)”라는 부제(副題)를 붙였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런 존재 아닙니까? 자신의 것을 모두 자식에게 내어 주고 자신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꺼진 불과 같은 존재 아닙니까? 키플링은 그런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한편의 시를 바쳐서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소원은 한 가지입니다. 자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공부 잘 하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런 부모님의 소박한 소원을 한 차원 높여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의 사람들은 잘 되는 것을 “입신양명(立身揚名)”한다고 했습니다. 「효경(孝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날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런 고전의 말들이 틀렸다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출세해서 세상에 이름을 날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읽은 잠언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잠언은 Proverbs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는 속담이나 격언 혹은 금언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잠언은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잠언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말씀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잠언을 쓴 솔로몬이 “내 아들아(My son)” 하고 자기 아들에게 들려 주는 교훈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혜가 뛰어났습니다. 인근 각처에서,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까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큰 지혜와 슬기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는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동방의 그 어떤 사람의 지혜보다 컸으며, 이집트의 모든 백성의 지혜를 합한 것보다도 더 컸습니다. 솔로몬은 이 땅의 어느 누구보다도 지혜로웠습니다. 예스라 사람 에단보다도,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도 더 지혜로웠습니다. 솔로몬의 명성은 모든 나라에 널리 퍼졌습니다. 솔로몬 왕은 평생 동안, 지혜로운 가르침을 삼천 가지나 말했으며, 천다섯 편이나 되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는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돌담에서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온갖 식물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솔로몬 왕의 지혜를 들으려고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도록 세상의 모든 왕들이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열왕기상 4:29-34).”

이런 솔로몬이었지만 말년에는 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지나친 공명심으로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일으켜서 백성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이방 나라의 여자들과 정략적인 결혼을 했습니다. 우상숭배에 물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부귀영화 탐닉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삶이 모두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쓴 것이 구약의 전도서 아닙니까? 솔로몬이 잠언을 삼천 개를 썼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잠언들은 그가 말년에 크게 깨달음을 얻고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읽은 잠언 3장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기 아들에게 꼭 남기고 싶었던 말씀이 바로 오늘 읽은 잠언 3장입니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크게 세가지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실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진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NIV 성경에는 faithfulness라고 나와 있습니다. 누가 “왜 우리는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니까!”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입니다. 그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을 대할 때, 누구를 대하든지 “성실하게 주님을 대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눈가림으로 대하지 말고 성실하게 대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나가서 그런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어디서든지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영어로 편지를 쓸 때는 꼭 끝에 “Sincerely yours”라고 쓰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쓰고 싸인을 합니다. “sincere”라는 말이 라틴어 “sincerus”에서 온 말인데, 원래 이 말은 “양초를 먹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는 대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대리석이라도 흠집이 있으면 제 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리석을 파는 사람들이 흠집을 감추기 위해서 양초를 먹여 진짜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대리석은 양초를 먹이지 않은 순수한 대리석입니다” 라고 말할 때 sincerus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나가서 양초를 먹이지 않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인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love”라고도 나와 있고, “mercy”라고도 나와 있습니다. 누가 “왜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그의 자녀들은 우리도 서로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자꾸 사라져갑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잘 알아 두세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 이것을 잃어 버리면 우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무슨 법을 하나 제정(制定)해도 항상 그 밑바닥에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나 바꾸어도 그 밑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약한 사람, 불편한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무력(無力)한 사람들 편에 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 속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누가 저에게 “목사님에게는 그 사람들 중 누가 가장 매력적인 사람입니까?”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놉(Nob)의 제사장 아히멜렉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아히멜렉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못해 충격적입니다. 그 때 다윗은 사울의 추적을 받고 도망 중이었습니다. 상황이 어찌나 급했던지 수행하는 부하들도 없었고, 손에 무기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이 아히멜렉를 찾아 온 것입니다. 다윗의 행색을 본 아히멜렉은 깜짝 놀랍니다. 다윗은 왕의 특명이 있어서 이렇게 부하들도 없이 급히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대충 그 상황을 둘러댑니다. 그러면서 뭐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합니다. 그 때 아히멜렉이 말합니다. “지금 수중에 떡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에서 물려낸 거룩한 떡은 있습니다” 하면서 거룩한 떡을 다윗에게 내 줍니다. 이 일이 나중에 사울에게 알려져서 아히멜렉은 죽습니다. 거룩한 떡은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떡입니다. 다윗은 그 떡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히멜렉은 그 떡을 다윗에게 먹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윗의 생명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 아히멜렉 이야기를 하신 끝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마가복음 2:2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점은 분명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율법의 규정보다도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아히멜렉과 같은 마음을 품고 사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NLT 성경에 이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ie them around your neck as a reminder. Write them deep within your heart. Then you will find favor with both God and people, and you will earn a good reputation.”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성경에도 입신양명에 대한 말씀이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출세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입신양명이 아니라, 성실과 사랑을 가지고 삶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높여 주시는 입신양명이라면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에게 간곡하게 당부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피상적으로 읽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깊이 새기면서 그 말씀을 받아 들이십시오. 마치 뿌리 깊은 나무가 땅 속 깊은 곳에서 물을 빨아들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리십시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지도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He shall direct your ways).”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오늘 말씀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구하는 삶입니다. 내 삶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삶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에서 졸업하는 사람이 모두 62명입니다. 고등학교 2명, 학사 11명, 석사 34명, 박사 15명입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졸업한 사람들은 겸손하게 계속해서 배우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졸업(graduation)”이라는 말을 Webster 사전에서 찾아 보니까 “to pass from one stage of experience to a usually higher one”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보다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 한 단계를 통과한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 성실과 사랑을 가슴에 품는 사람,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있어서 세상이 더 밝아지고 아름다워지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입신양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입신양명”을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