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효도의 의미
특별한 효도의 의미
창9:20-29
찬송가 412장
어느 산골에서 70이 넘은 노인 부부가 얼마 안 되는 논농사와 조그만 텃밭을 일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노인 혼자 살게되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 갔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오신 아버지는 서울 아들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들 집안 식구들이 아버지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 처사가 몹시 서운했습니다.
얼마동안 지내면서 아들 집안의 위계질서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1호가 며느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며느리가 그 집에서는 발언권이 가장 세고 경제권을 지고 있었으며, 두 번째인 2호가 손자 손녀인 아이들이고, 세 번째인 3호가 아들이요, 네 번째가 이 집의 가정부(=요즈음은 생활 도우미라고 합니다)이고요, 다섯 번째가 이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강아지이고, 그리고 자기는 여섯 번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며느리가 외출했다가 집에 딱 들어오면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사의 순서대로 묻습니다. 제일 먼저 애들이 지금 무엇 하는지를 묻고, 다음은 자기 남편이 언제 돌아오는지를 묻고, 그리고는 강아지 밥 줬느냐? 물어 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점심을 대접했느냐? 라고 묻는 법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얼마동안 지내다가 마음이 괴롭고, 무시당하는 자기 처지가 한심해서 다시 시골로 내려가면서 아들에게 편지를 써 놓고 갔습니다.
편지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3호야 잘 있거라. 6호는 간다.”
요즈음 세상이 이렇습니다.
물론 모든 가정들이 이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데 잘못된 가정의 한 단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였던 민자건의 이야기는 역사에 나오는 아주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덕행과 효행은 후세에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에 그의 계모는 마음씨가 아주 고약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겨울이 되면 자기 친 아이들에게는 두툼하게 솜을 넣어서 옷을 만들어 입히고, 전처의 아들인 ‘민자건’에게는 옷을 입히기는 입히는 데 솜 대신에 갈대 잎을 넣어서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민자건’은 이것을 잘 알지마는 전혀 원망하지 않고 잘 참고 견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불 같이 화를 내면서 이 후처를 당장 내 쫓으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민자건’은 아버지께 이렇게 유명한 말을 합니다.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어머님이 계시면 아들 하나가 춥고, 어머님이 없으면 아들 셋이 춥습니다.”
이 말에 아버지도 감동하고 계모도 잘못을 뉘우치고 새 마음을 가져서 ‘민자건’에게 잘했으며, 그 아들이 계모에게 효성을 다 해서 후세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주 특별한 효도가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효도라 하면 일단 부모님을 육체적으로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음식이나 옷이나 잠자리나 또 용돈이나 뭐 이런 주로 물질적인 문제에 여유를 드리고 편안함을 드릴 때 효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 효도는 좀더 높은 차원에서의 효도입니다.
바로 정신적으로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어서 순종하는 것을 효도라고 합니다. 내 생각이 있어도 내 생각을 접고 부모님의 뜻을 따라가며 부모님의 말씀을 잘 순종할 때에 효자라고 합니다.
이 보다 더 높은 것은 자식이 인격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높은 이름을 얻어서 부모님께 명예를 돌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아무개 아들이 아니냐? 그 부모가 누구가 아닌가? 하고 그 부모님께 높은 고귀한 이름을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말씀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습니다. 600세 가량 된 것 같습니다. 홍수 이 후에 급격히 사람의 수명이 짧아집니다.
그런데 노아는 600세 된 노인입니다. 노아에게는 무료하고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좀 지나치게 마시고 그만 대낮에 벌거벗고 주무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둘째 아들이 봅니다. 그리고는 신바람이 나서 이 사실을 형제들에게 이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벗고 지금 저렇게 주책없이 노망을 떤다”고 그랬습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석가의 말에 의하면 이 아들이 좀 방종해서 평상시에 아버지로부터 책망을 많이들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술 취함으로 인해서 아버지로부터 큰 책망을 들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자기를 책망하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신이 나서 “날보고 술 취하지 말라고 하더니 자기도 먹고 주책을 부려요.”라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러나 두 형제는 급하게 와서 이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옷을 들고 뒷걸음을 쳐서 와서 덮어드렸습니다.
잠에서 깨어 난 다음에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저들이 행한 것에 합당하게 축복과 저주를 내립니다.
“함 너는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이다. 또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명예를 높이고 부끄러움을 덮어준 내 아들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는 중요한 효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을, 자식은 부모의 깊은 뜻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으면 고독합니다. 그리고 힘이 없습니다. 낙도 없습니다. 낙이라는 것은 오로지 먹는 즐거움 밖에 없습니다.
T.V를 봐도 졸리기만 하고, 생각하는 것도 귀챦고, 그저 끼니때마다 맛있게 음식 잡수시는 것이 유일한 낙입니다. 그래서 음식 욕심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으면 의학적으로 위신경이 둔해져서 많이 드셔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과식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일정량을 표시해 놓고 배가 부르지 않더라도 일정한 양의 식사를 하도록 하셔야 건강에 좋습니다.
또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잔소리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안 노여서도 그렇지만 지금 한 말을 잊어 버려서 그렇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30분 정도 밖에 기억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또 말할 수밖에 없지요.
여러분,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의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이해를 해야 됩니다. 다른 낙이 없습니다. 실수도 하고, 주책도 있고, 과식도 하고, 또 건망증이 있고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효도입니다. 그 허물을 탓하지 않고 덮어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드렸습니다. 자신들도 안 보려고 뒷걸음질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잠 10:12 ; 약 5:20 ;벧전 4:8) 아니 덮는 것이 아니라 허물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4절, 15절을 읽을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다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바울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에 너희의 믿음을 시험할 만한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했느니라. 할 수만 있으면 자기 눈이라도 빼어 주었으리라.” 이 얼마나 굉장한 말씀입니까?
이렇게 한번 추리해 봅니다. 그는 간질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갈라디아 교회 가서 설교하다 말고 간질병이 발작해서 쓰러졌다고 상상해 봅시다.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이제 믿음에 시험이 들것 아닙니까? 아니 제병도 못 고치는 주제에 무슨 설교를 하니? 주의 종이 뭐 저런 정도 밖에 안되는가? 충분이 그런 말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너무 감사해 해고 있습니다. 그의 허물과 그의 단점과 그의 약점을 다 덮어 주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노아는 바로 이 문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두 형제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기억합니다. 온 세상이 다 죄악에 빠질 때에도 죄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는 120년 동안을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한 사람이요. 자기 식구들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한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오늘 저 부끄러운 사건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높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아버지에게 축복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영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 속에 복 비는 마음이 있어야 그 자식들이 복을 받습니다. 설사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진정으로 자식을 향하여 축복의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노아와 같이 이렇게 자식의 사랑을 느낄 때, 자식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때 복을 비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식은 먼저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 후에야 비로소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순 중에 가장 큰 모순은 자기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기 자식이 효자 되기를 바라는 것이요.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제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이것이 멍청한 사람들입니다.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여러분, 복 받는 비결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 복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저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난 것만 가지고도 기뻐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이 있어야 부모님에게 효도할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출생 자체를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명예와 신분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물려받은 데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는 자식들의 중요한 선생입니다. 그로부터 신앙을 배우고 기술을 배우고 학문을 배우고 인간의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 물려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비로소 효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우리의 가정 분위기를 참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위기를 이루어야 복이 이루어집니다.
KBS 방송 프로 가운데 ‘행복한 세상’이라고 하는 프로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딸 하나만을 데리고 분식점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가 그 딸을 잘 키우려고 애를 씁니다. 지금 고등학교 다니는데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분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더니 장대비가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딸이 미술학원에서 돌아올 때가 된 것을 알고 우산 두 개를 가지고 미술학원으로 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학원 문 앞에 서서 보니까 일하던 모습 그대로 왔어요. 앞치마를 두른 그대로였지요. 뭐 옷은 말이 아니죠,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었죠, 아 글쎄 이 모양을 하고 여길 온 것입니다.
아이고…애들이 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딸이 부끄럽다고 생각 할 터인데… 그러나 어떡하나 여기까지 왔으니 우산 둘을 들고 처마 밑에 서있는데 시간이 되어 저 2층에서 딸이 내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왔다고 어머니가 손을 흔들었는데 딸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해서 안 나오나 보다 ‘요 녀석이 꼭 내 속을 썩이는 구먼’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그냥 돌아왔어요. 그 후 한 달 동안 말을 안 했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그랬는데 한 달 후에 그림을 잘 그렸다고 미술 발표회를 하고 상을 받는다고 해서 미술 학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 딸이 특상을 받았는데 그 그림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산 둘을 들고 서 있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 그림을 보고 어머니는 너무 고마워서 그 딸을 끌어안고 행복해 했습니다.
여러분, 효도가 무엇입니까?
참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모든 흠과 부족함을 다 덮어드리고, 그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 기쁨이 있고, 참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장수와 형통의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효도해야 장수하고, 효도해야 형통한다고 성경은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서 모두가 효도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복을 비는 마음이 있을 때, 그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에게 귀한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부모의 이름을 부끄럽게 했으면 용서해 주시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효도하는 자녀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서 마음껏 복을 비는 그러한 마음들로 이어지면서 동전 교회에 속한 가정 가정이 크게 복 받는 귀한 은혜가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