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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 요 4:46-54 ▧
가나는 나사렛에서 동북쪽으로 6km 지점에 있습니다. 여기는 나다나엘의 고향이며 1년전에 예수께서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장소이기도 합니다(요2:1-11). 왕의 신하는 가버나움에 있는 헤롯왕 치하의 고관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가나에서 동북쪽으로 24km키로 지점에 있습니다. 이 기적은 24km 떨어진 곳에서 말씀 한 마디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는 한마디의 말씀으로 그의 요구를 응락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아무런 징조도 못 보았으되 말씀을 믿고 예수의 앞을 떠났으니 이는 그의 신앙의 견고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금이 좋은 것이로되 혼합물이 있으면 순금이 못되고 신앙도 좋은 것이나 단순치 못하면 순신앙이 못됩니다.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는 한마디 말씀만 듣고 한마디의 반문도 없이 돌아가는 왕의 신하야말로 단순한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이 신앙을 현시대 신자들이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말씀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경 중에는 말씀 그대로 믿어 축복을 받은 예가 많이 있습니다. (눅17:14)에 예수께서 갈릴리를 지나서 어느 촌에 이르렀을 때에 문둥이 10명이 있었는데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던 중에 병 고침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마8:13) 에 백부장은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다가 자기 하인의 아들이 고침을 받기도 했고 *(히11:4)에 아벨은 믿고 나아갔더니 그 예물에 증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히11:5) 에녹은 믿고 나아갔더니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승천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를 받아 믿고 방주를 짓더니 마침내 멸망의 날에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히11:7).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믿고 갔더니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믿고 갔더니 적장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히11:32). *다니엘과 사드락 아벳느고는 믿고 갔더니 사자의 위험과 풀무불의 위험을 피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히11:38). 이들과 같이 우리도 주저 말고 믿고 나아가면 우리 앞에 기적 같은 일들이 있어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구하는 목적이 분명하라는 것입니다. 이방의 신하가 먼길을 찾아 온 것은 자기 아들의 병고치기를 위해서 온 것입니다. 예수는 생애의 목적이 분명치 못한 자를 지적하신 일이 있는데(마11:6-7),
첫째, 너희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라고 질책하셨습니다. 황막한 광야에 바람 부는 대로 흔들거리는 연약한 갈대처럼, 동풍이 불면 서편으로 눕고 남풍이 불면 북으로 기우러지는 보잘것 없는 갈대처럼 목적의식이 없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변하기 쉽고 타협하기 쉬운 경박한 의지를 가진 자가 아니고 철두철미한 복음 전도자라고 주님은 극찬 하셨습니다. 이같은 정신을 신자들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둘째, 부드러운 옷입은 사람이냐 외식적으로 가면만 꾸미는 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구경하려 이곳 광야까지 왔느냐 그런 사람은 대궐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부드러운 옷은 고사하고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었으니 초라하고 검소하고 소박한 야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진수성찬 대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거친 광야에 살고 있으니 너희들이 이 곳에 온 것이 잘못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곳에 온 무리들이 판단하기를 세례 요한은 마치 헤롯의 신하들과 종교가 바리세인 사두개인들처럼 대궐에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앉아서 숭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자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들과 같이 예수 믿어 세상의 축복 받아 화려한 생활이나 하려고 한다면 그 생각을 고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목적 의식이 바로 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요약해 보면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구원받게 하려 오시었고(눅19:10). *모세가 구리 뱀을 든 것처럼 들리기 위해 오시었고(눅19:10) *잃은 자를 찾으려 오시었고(눅19:16) *대속물로 주려고 오시었고(막1:38)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오시었고(요6:39) *심판하려고 오시었습니다(요9:39). 사람들도 이 땅에 온 목적이 있고 또한 그 중에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 중에 하나는 복된 복음을 전하려고 하심에 있습니다. 고로 이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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