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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의 기적 ▨ 요 5:1-9 ▧
양문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문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것으로서 옛적에는 이 문안에서 양들을 매매하였으므로 이곳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베데스다라고 하는 온천이 있었는데 이것은 간헐천으로써 이따금 물이 동하여 솟아 오른다고 하며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서 이렇게 한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물이 동할 때에 누구든지 먼저 그 물 속에 들어가는 자는 어떠한 병이든지 완치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그 못가에 운집하여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38년된 병자도 있었는데 그는 아주 절망 상태에 있었으나 그 자신의 힘으로는 그 못속에 들어갈 수도 없고 또한 아무도 그를 동정하여 그 못속에 먼저 들어 가도록 도와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 시점에 주님은 그를 향하여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시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시므로 그는 38년 된 질병을 고침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38년이나 병고를 가지며 심지어는 연못에도 들어 갈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 자기의 육체의 질병 문제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여 주님을 찾아와서 해결을 본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 나아만이 자기의 문둥병을 고치지 못하고 선지자 엘리야 앞에 나아와 순종하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왕하5:1-7). (2) 십이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많은 재산도 다 허비하고 많은 의원에게 고침을 요청 했지만 고치지 못하고 주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막5:25-34).
둘째, 구원의 문제도 인간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1) 우편 강도는 운명직전에 주님께 요청하여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눅23:43).. (2)어떤 부자는 지옥에 가서야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눅16:19-31).
셋째, 생사의 문제도 자기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재산이 많은 부자는 그날 밤에 자기의 생명이 다 된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눅12:20).
넷째, 사업도 자기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서 두 배에 가득차는 많은 고기를 잡았다고 하였습니다(눅5:1-11)
다섯째, 자기의 마음 다짐도 주관하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1) 삼손은 여자로부터 유혹을 받을 때 마음이 괴로와 고민했다고 하였습니다(삿16:16). (2)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하는 일도 제맘대로 하지 못하고 절반을 감추었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행5:1-11). (3) 사도 바울은 외치기를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 하였습니다(롬7:24).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나약함을 지적하기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사2:22)하였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아침의 안개니라\"(약4:14)했고 \"하루살이에 눌려 죽을 인생이라\"고 (욥4:19) 또는 \"강한 자라도 삼오라기 같다\"고 (사1:31)하였습니다. \"풀이요 꽃과 같은 인생이라\"고 (벧전1:24)했고 \"벌레와 구더기 같은 인생이라고\"(욥25:6)하였습니다. 이같이 부족한 인생이니 절대자 주님만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에게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연못에도 들어가지를 못하여 병을 고치지 못한 고통받는 자에게 걸으라고 하였으니 말입니다. 즉 어떠한 요행이나 바라지 말고 걸으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38년간 앉은뱅이가 되어서 걸어보려고 노력하지도 아니하고 불치의 병으로만 생각하며 단념하고 다만 어떠한 요행이나 바라고 있던 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날도 많은 신자들 가운데는 믿으면 된다고 말들을 연발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기도만 하면, 된다고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만 하려고 하는 자도 많이 있습니다. (마25:13-30) 달란트 기사는 너무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한달란트 받은 자가 왜 책망 받고 멸망을 받았는가 하면 그는 활동을 하지 아니해서 입니다. 그러나 다섯달란트 받은 자가 칭찬과 즐거운 자리의 참예와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은 그 나름대로 노력을 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앉아서 바라지 말고 주를 섬기는 일에 활동해야 하겠습니다. *과거 신앙의 사람들은 다 모험적인 신앙으로 일을 하며 충성했다고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노아가 방주를 120년동안 지으며 산 것은 모험적 신앙의 생활인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린 일도 모험적 헌신의 신앙인 것입니다. 셋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는 일도 모험적 행동의 신앙이었고 넷째, 기생 라합도 정탐꾼들을 숨겨둔 일도 모험적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다섯째, 사르밧 과부가 3년 6개월 흉년에 엘리야 선지를 대접한 것도 모험적 섬김의 신앙인 것입니다. 이들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긍정적이요 적극적이요, 모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달란트를 활용한 결과 저들은 갑절을 남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들 맡은 사명과 주어진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활동합시다.
3. 예수를 만나면 절망 속에서도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38년 된 환자는 이날도 연못에 던져 주는 자가 없어서 절망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40여년간의 절망이 깨어지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환자를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네가 낮고자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병자가 대답하기를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자가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 가나이다\" 하고 실망에 빠져 있을 때에 예수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저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라비를 잃은 마리아가 너무나 실망과 허탈감에 빠져 있을 적에 (요11:43) 예수님이 찾아가시어 나사로를 살려 주시었습니다. 독자를 잃고 발을 구르며 몸을 던지며 원퉁함과 비통에 빠져있던 나인성 과부에게 그 아들을 살려 주시었습니다. 이 같이 예수님을 만나면 불행에서 소망으로 바꾸어 지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만납시다. 새로운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4. 이 병자는 말씀에 순종한 자입니다. 이 병자가 예수를 만난 것으로 만족했다든지 그냥 보고 감상만 했다면 아무런 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의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므로 병고침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은혜도 받고 성령도 충만히 받았다고 하지만 살아서 역사하시는 신의 체험을 못하여 기적을 바라면서도 맛보지 못하므로 영과 육의 고충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를 만나 은혜 받고 성령 받은 경험이 있으면 주에 말씀에 순종합시다. 바라고 소망된 일이 형통케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의 말씀대로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니 두배에 가득 채우는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만 만나고 순종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기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여 주님께 순종합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강조하셨습니다.
5. 못가에 나온 이 병자를 도울 이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이 병자를 이해 하려는 자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 못가에 모인자들이 다 병자들이었으니 이해와 도움보다 자기 질병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한 자들이었으므로 도울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모든 이들은 자기 생활에 급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또한 주가 도우시지 아니하면 모든 인생들은 불행한 상태에서 그저 괴로움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둘째, 동정하는 자 없이 버려진 상태였다. 이 병자를 거들 떠 보는 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이웃에 대해서 비유로 설명하신 일이 있는데 (눅10:25-37)강도 만난 불행자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 강도를 만난 자도 도우신 분은 오직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사에 닥치는 불행에서 행복으로 이끄시는 분은 주님 뿐이십니다.
6. 남을 도우며 살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며 살려고 하지만 가진 게 없어서 못한다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가진 것에 앞서 남을 도와 주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르밧\"여인이 먹을 것이 풍부해서 엘리야를 대접한 것이 아니며, 빈들에 모인무리중 어린이가 먹을 것이 풍부해서 주님께 먹을 것을 드린게 아니고 그저 요구 하신 대로 제공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과 같이 마음으로 남을 도우며 도움을 요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건강한자가 병든 자를 돕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내맘에 남을 도울 수 있는 맘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기갈한 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지 못할게 없습니다. 다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행하지 아니하니 칭찬이 없는 것이고 상급도 없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거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남을 도우며 삽시다. 지금도 주님은 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7. 못가에 수 많은 병자가 모여 든 것 같이 교회내에도 영적으로 병든 자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영적 벙어리가 있습니다. (1) 이는 신자가 기도를 하지 못하니 벙어리요. (2) 구원받은 자가 전도를 못하니 벙어리요. (3) 은혜를 받은 자가 찬송을 부르지 못하니 벙어리인 것입니다. 이같은 병자라고 생각하는 자는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고치지 못하면 하나님과 화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 내에는 영적 소경이 많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바로 볼줄 모르니 이는 소경입니다. (2)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며 신앙에 굳건히 서 있나를 알지 못하니 소경이요. (3) 미래의 원한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 것만 귀한 줄 생각하고 있으니 이는 소경인 것입니다. (4) 불쌍한 이웃을 돌보지 못하니 이도 소경인 것입니다. (5) 마귀의 역사를 분별치 못하고 자주 미혹 당하니 이는 소경인 것입니다. 우맹이요 소경이라고 탄식하신 소리를 다시 듣지 않도록 신령한 영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셋째, 절뚝발이 신자가 많이 있습니다. (1) 날마다 교회를 다니지 못하는 이는 절뚝발이요. (2) 한발은 세상에 있고 한 발은 교회를 다니는 격이 되었으니 이는 절뚝발입니다. (3) 선을 베푸는 발이 되지 못하고 죄를 짓는 곳을 찾는 발이 되기도 하니 이는 절뚝발이인 것입니다. (시84: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했습니다. 다른 곳 천날보다도 더 좋은 하나님 성전에 출입하는 발걸음이 되지 못했으니 이는 분명히 절뚝발이요 잘못된 것입니다.
넷째, 앉은뱅이가 많이 있습니다. (1)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으니 이는 앉은뱅이인 것입니다. (2)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는데 열매 맺는 것이 없으니 이는 앉은뱅이인 것입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주안에서 변하지 못한 것은 앉은 뱅이인 것입니다.
다섯째, 손 병신자가 많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손을 붙잡지 못했으니 손 병신인 것입니다. (2) 세상에 빠진 자를 이끌어 내지 못했으니 손 병신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손을 품에 넣었다 내어보니 그의 손이 문둥병이 든 손이 되었습니다. 나의 손으로 동정의 손을 내지 못하니 이는 분명히 손 병신이요 문둥이의 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섯째, 인색병에 걸려 있는 자도 많이 있습니다. (1) 십일조 헌금이 아까와 졌으니 인색해진 것이니 말입니다. (2) 날마다 하나님이 지키어 주시는데 감사할 줄 모르고 인색해 졌으니 이도 병자입니다.
일곱째, 봉사가 없으니 이는 인색병이 걸려있는 것입니다. (1) 눈물이 없고 메말랐으니 이는 병자요. (2) 봉사하라고 하면 마음에 짐이 되니 이는 심장병자요. (3) 교회에서 일을 하지도 못하면서 공상만 하니 이는 심장병자입니다.
결 론 주님과 같이 불쌍한 자를 돌아보며 구제하며 봉사하며 삽시다. 주님은 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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