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을 잔잔케 하심 / 눅8:22-25

풍랑을 잔잔케 하심/ 눅8:22-25, 막4:35-41, 마8:23-27 |

 

풍랑을 잔잔케 하심                  

                                         ▨ 눅8:22-25, 막4:35-41, 마8:23-27 ▧

 

본문에 예수님의 일행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저편을 향해 가다가 갑작스런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깨움으로 살아 날 수 있었고 바다 저편에 무사히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말씀으로 잠잠케 하시고 공포에 쌓인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신 예수님, 과거 현재 미래까지 평안의 왕이십니다.  평안의 왕된 예수님을 우리 심령속에 모시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불안과 공포에 쌓인 현대인들은 평안의 왕 예수를 모시고 살때에 공포와 근심 없이 살게 되며 위험과 불안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1.  이들의 경우와 같이 태풍이 닥친다는 예고입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있던 자들이 사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래 갈릴리 호수에는 그 주위에 둘려 있는 산계곡으로 부터 급습하여 오는 돌진 광풍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때에 일어난 것도 이러한 종류의 풍랑이었습니다.  그 풍랑?심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숙달된 이 어부들도 이같은 풍랑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일행은 죽음의 공포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항로에는 이러한 풍랑이 갑작스럽게 닥치고 있으니 매사에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이같은 풍랑을 당한 자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첫째, 욥의 가정에 재난의 태풍이 불으니 동방의 부자가 갑자기 망하여 거지가 되고, 자녀들 10남매가 단번에 죽고, 자기를 사랑하던 아내까지 저주하며, 육체의 병까지 들어 고통을 받았습니다(욥.1:13-22, 2:17-18).

둘째, 요나가 이같이 불행을 당했습니다.

자기의 계획은 물거품 같이 산산 조각이 나고 고기 밥이 되어 죽음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욘1:4-10)

셋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가정에 사망의 태풍이 불어오니 땅에다 감추어 두었던 돈은 쓰지도 못하고 일시에 부부가 죽고 말았습니다(행5:1-11).

넷째,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향락에만 치우치던 소돔성 사람들도 진노의 태풍이 대작하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창19:24-29).

다섯째, 노아 때의 사람들도 노아의 전도와 방주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도 먹고 마시다 홍수의 태풍으로 망하고 말았습니다(창7:10-12, 17-24).

여섯째, 바알선지자, 아셀라 선지자 들도 신의 진노가 임하니 기손 시내에서 죽고 말았습니다(왕상18:40).

일곱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려고 뒤를 쫓던 애굽 백성들에게도 신의 진노의 태풍이 대작하니 홍해 바다에 장사되고 말았습니다(출14:28-29).

이같이 진노가 갑자기 임하는 것이 인생의 행로입니다.

 

2.  구세주이신 예수를 찾으라는 뜻입니다.

절망과 죽음의 공포에 쌓인 제자들은 최후로 예수를 둘러 싸고 예수를 향하여 구조를 부르짖을 때에 예수님은 즉시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고  했습니다.  주님도 한편 한인간이었습니다.  한날의 피곤에 쌓여 깊은 잠 가운데 계시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요구를 따라 그 피곤하신 것을 생각지 아니 하시고 즉시 잠에서 일어나시어서 그들에게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옛적이나 오늘이나 인간들이 구할 때에는 물리치지 아니 하시고 즉시 소원을 성취케 하셨습니다.

첫째, 주님은 구하는데로 주시는 자이십니다(요5:14).

둘째, 주님은 필요한 대로 주십니다(마1:6-8)

셋째, 조카 롯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 주시었고(창19:22)

넷째,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키 위해 기도하던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시었고(출14:21-27)

다섯째, 바알신, 아세라신들을 물리치기 위해 기도하던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 주시었고(왕상18:38)

여섯째, 지혜달라고 구하던 솔로몬의 기도도 들어 주시었고(왕상3:11-12)

일곱째, 자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기도하던 가나안 여인의 소원을 성취케 하셨고(15:28)

여덟째, 자녀 얻기를 소원하던 한나의 기도도 들어 주시었고(삼상1:17)

아홉째, 초대 교회 120명의 성도들의 기도도 들어 주시니 이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행2:2-).

 

3.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만약 주를 믿는 제자들의 신앙이 완전 했더라면 그들은 당황하여 겁에 질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꾸중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들 영의 상태가 주님을  신뢰하는 확신의 결핍과 불완전함이 종종 들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비록 주무셨을지라도 주님은 자연을 주관하시는 자연의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동료들을 신뢰 한다면 우리가 주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속에서 가장 큰 것이라면 믿음인 것입니다.  이같은 믿음이 이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신자들이 믿음이 없으면.

첫째, 두려움이 옵니다(막6:50).

둘째, 불안해 집니다(8:26).

셋째, 조금해 집니다(딤후3:4).

넷째, 기쁨이 없습니다(요16:20).

다섯째, 평안이 없습니다(14:1).

여섯째, 감사가 없습니다(눅17:18).

일곱째, 주님을 생각지 아니합니다(막4:38).

 

4.  예수님은 평안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광풍이 불어오는 동안에도 주님은 평안하게 주무시었습니다.

이 사실을 \"죠지 하버트\"는 표현 하기를 \"바람과 풍랑이 나의 배를 공격하여 올때에 주님께서 키를 잡으시고 조종하시네 배가 몹시 흔들리는 위험한 순간에도 폭풍은 주님의 예술의 걸작품 비록 주님이 눈을 감으신다 해도 주님의 마음은 늘 깨어 있으신지 예수께서는 베게를 베시고 주무시었네\"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폭풍 가운데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이때 이외에는 주님이 주무셨다는 기사를 거의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잠은 폭풍 가운데서 요나가 잤던 불안한 잠이 아니라 거룩하고 평온한 잠 그의 아버지의 신뢰하는 잠이었습니다.  그의 휴식은 혼란시키는 허물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깨끗한 양심의 베개에 머리를 둘 수 있는 자는 폭풍중에서도 조용하고 달콤한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4:8).

 

5.  여기 배는 교회의 형편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옛날 노아의 방주가 교회의 모형인 것과 같이 예수님을 태운 배도 세상에 떠있는 교회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배가 풍랑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과 같이 때로 예수를 모신 교회도 세상의 많은 시련을 겪습니다.

1세기로 부터 4세기 초까지는 로마의 폭군들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와 이단 사상의 바람에 많은 핍박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후 계몽주의, 합리주의, 자유주의, 인간들의 교권주의, 이권주의, 감정과 파당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렇듯 교회는 많은 시련의 바람과 물결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예수님을 태운 배를 삼키지는 못함과 같이 세상의 갖은 시련의 폭풍이 또는 사단의 세력이 예수님을 모신 교회를 침몰 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라는 배는 오늘날까지 2,000년의 흐름 속에서 전진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폭풍에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러나 승리케 되는 것입니다.

 

6.  예수님은 자연의 주관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배에 휘몰아쳐서 예수와 그 제자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던 것이 바로 폭풍인데 예수님은 말씀으로 잔잔케 하셨습니다.  이같이 예수께서 행한 일은 단순한 일시적인 위험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삼라 만상의 주관자시요 다스리는 자이십니다.

이같은 권세를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귀신을 쫓으시기도 하시고(마10:1)

둘째, 병든자들을 고치시기도 하시고(마10:1)

셋째, 재앙을 내리시기도 하시고(행13:17)

넷째, 자연을 좌우하시고(신6:21)

다섯째,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요1:3)

여섯째, 인성이 신성으로 변화하시고(막9:1)

일곱째, 부활하시고(고전6:14)

여덟째, 세상을 심판하시고(마24:30)

아홉째,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도록 가르시기도 하시고(출14:2.1-35)

열번째, 노아때는 홍수로 멸망케하시고(창7:10-12)

열한번째, 롯의 때는 유황불로 멸망시키기도 하시고(창19:24-29)

 

7.  풍랑과 같이 절대 복종하라는 뜻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풍랑 뿐 아니라 귀신들도(마10:1), 홍해의 바다도 (출14:21-35), 일영표도(왕상20:11) 애굽의 왕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 이, 파리, 개구리 등도 순종했습니다.  바위도 순종하여 모세가 반석을 치니 샘물이 솟았고, 기우도 엘리야가 기도하니 비가 내리지 아니하고(약5:17) 이 모두다 주님의 명령만 내리면 거절함이 없이 순종했습니다.  현대의 많는 성도들 가운데는 그의 능력을 믿는다고 하는 자 또한 그의 섭리를 받고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뜻을 따라 산다는 신자들이 순종과 복종심이 없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자연보다 우월한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그것들을 통해 한평생 먹고 마시도록 하신 것이며 그 만물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짓없이 우리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성도들 만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순종은

첫째, 마땅하다고 했고(행5:29)

둘째, 옳은 것이라고 했고(엡6:1)

셋째, 유익한 일이라고 했습니다(히13:17).

 

1.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유혹, 위험, 고난, 핍박의 영적 풍랑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임이요

2.  우리 성도들은 예수와 함께 있으면 멸망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하면 염려케 됨을 교훈해 주십니다.

3.  그리고 우리 성도는 딱한 사정을 호소하며 간청하면 주님은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