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마9:18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마9:18, 막5:22-24, 눅8:41-42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 마9:18, 막5:22-24, 눅8:41-42 ▧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게 되면 한없이 용감해지기도 하고 한없이 비겁해 지기도 합니다.  삶의 본능 앞에서는 모든 체면과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그만큼 귀하고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12살난 외동딸이었습니다.  이딸은 유일한 자기의 핏줄이었고 삶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장은 딸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대로 치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딸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죽었다고 표현했고 (마9:18) 누가와 마가는 죽어간다고 했습니다.  아마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신분은 철저한 유대주의자요 정통주의자요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예배위원을 임명하고 장로회 의장이 되며 행정의식 운영 및 질서를 지키는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炷㎏?거슬리는 예수님께 염치나 체면 불구하고 찾아갔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한 신앙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무조건 급하니까 찾아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이 그리좋지 못하고 무엇을 모른다고 해도

첫째, 예수님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자와 같이 하시고

둘째, 당신을 찾아 오는 자를 영접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그 재산을 다 허비하고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그를 영접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눅15장).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을 찾아간 야이로의 신앙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막5:22) \"회당장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라고 했습니다.  이 야이로는 자기의 딸이 병들어 죽어 갈때에 예수님을 찾아가 고쳐 달라고 애원한 것입니다.  누구의 소개나 데려감으로 주님께로 간것이 아니고 스스로 예수를 찾아간 것입니다.  이는 과거에도 예수에 대한 신뢰와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자기의 지위와 또한 체면을 의식해서 찾지 못했다가 가정의 어려운 일이 있어서 예수를 찾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너무나 가정이 평안하고 사회의 지휘가 높아지는 것이 다 축복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가정의 환란으로 이 영과 육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회당장은 이같은 가정의 어려움을 통해 영혼까지 구원을 받은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주님의 말씀이 정의로운 말씀입니다,

 

2.  예수님의 기도의 능력의 손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은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어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했습니다.  이는 병든 자기 딸에게 안수해 주시면 병이 낳을 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손만 대어도 낫겠다고 믿었으니 야이로야 말로 예수님의 능력이 강하심을 믿은 자입니다.

성도여 이 야이로같이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자인 것을 믿을 것이고(막3:15)

둘째, 병을 고치고 제어할 권세의 능력이 있음을 믿을 것이고(눅10:19)

셋째, 자연을 정복하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믿을 것이고(눅3:36)

넷째,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가 그에게만 있음을 믿을 것이고(요17:2)

다섯째, 세상의 만물을 창조자이심을 믿을 것이고(요1:1)

여섯째,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심을 믿을 것이고(마14:190

일곱째, 마지막날에 다 살리실 능력을 믿을 것입니다(골2:12)

 

3.  낙심하지 아니 하였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딸이 이미 죽었다고 해도 야이로는 조금도 당황해 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님께 간구하고 그의 능력만 기대하였습니다.  이같은 일은 딸의 병을 고치려 온 가나안 여인 같은 자세입니다(마15:12-28).  신앙인은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요셉은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낙심하지 아니하고서 대 성공을 한자입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살다가 그의 처에게 음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하며 나중에는 장관으로 부터 배신을 당하는 등 많은 괴로움이 있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 섬겼으며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창27:45).  이는 낙심하는 자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4.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발아래 엎드려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많이 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신앙이야 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이고 자신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해야 얻는다고 강조하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예를 보면,

첫째, 아브라함은 기도하여 조카 롯을 구원했고(창19:10)

둘째, 다니엘은 기도하여 사자굴에서 보호함을 받았고(단6:10)

셋째, 모세는 기도하므로 홍해가 육지로 갈라졌고(출14:2.1-27)

넷째, 엘리야는 기도하므로 하늘에서 불이 임하고(왕상18:38)

다섯째, 욥은 기도하여 갑절의 복을 받았고(욥42:10)

여섯째, 한나는 기도하여 아들 사무엘을 낳았고(삼상1:17)

일곱째, 베드로는 기도하여 앉은뱅이를 일으켰고(행3:6)

여덟째, 솔로몬은 기도해서 지혜를 얻었고(왕상3:11-12)

아홉째, 초대 교회 120명의 성도들은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습니다(행2:2-4)

 

5.  인간의 무력함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걱정이나 조객의 애도도 헛되고 무력한 것이었고 죽음에서 소녀를 건지거나 그의 생명을 소생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력한 인간들에게 소망을 주고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첫째, 인간은 무력하기 때문에 뱀이 와서 하와에게 \"너도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할때에 그 호기심에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창3:6).  즉 무력하기 때문에 능력의 사람이 되고 싶어서 모험을 한 것입니다.

둘째, 이성에 무력해진 삼손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유혹에 음행죄를 짓고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소경까지 되는 불행을 당한 것입니다(싯15:9-15).

셋째, 돈에 무력해진 선지자 발람(민22:28-30)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청할 때 물욕에 끌려 예언하려 가다가 타고 가던 나귀에게 책망을 받고 천사의 견책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돈에 애착을 끊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넷째, 질병에 무력해 있는 인생(막9:18-22)

한 청년이 귀신 들리고 간질병이 걸려 자주 불과 물에 드나들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가정과 이웃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해 줄 자는 없었습니다.

다섯째, 죽음앞에 무력한 인생입니다(눅7:11-17).

나인성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는 둘도 없는 독자요 이 어머니는 과부인고로 이 아들에게 유일한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상실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이에 그의 어머니는 발을 구르며 땅을 치고 하늘을 향하여 소리를 쳐도 죽은 아들이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할 수 없이 무덤을 향하여 가고 말았습니다.

여섯째, 재난 앞에 무력한 것이 인생입니다(욥1:1-).

동방에 부자요 아들 딸 10남매가 있던 욥은 태풍이 불어 닥치니 가정이 파괴 되고 말았습니다.  이같이 인간은 무력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6.  인생은 때로는 괴로움을 당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마음의 괴로움을 참다 못하여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고 그의 딸에게는 육체의 죽음의 괴로움이 닥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심적 괴로움이 닥치었을때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면서 하나님께 괴로움을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상에서는 \"내가 목이 마르다\"고 괴로움을 겪으신 일도 있습니다.

첫째, 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백성을 잘 다스려서 \"열왕 중에 이만한 왕이 없다\"라고 칭찬이 자자 했으며 행위가 문란하던 부왕 아하스의 유업을 이어 받은 관계로 정치에 많은 곤란을 느낀 나머지 내정 보다 외적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하여 인접한 애굽, 블레셋, 시돈, 에돔, 모압, 암몬등과의 동맹을 맺고 자신이 주축이 되어 강적 앗수로를 대적하여 눈부신 활약을 전개하던 히스기야도 질병이 걸리니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기력조차 없이 벽에 기대어 \"한번만 살려 달라\"고 기도하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왕하20:1-10).

둘째, 동방 우스땅에 사는 동방의 부자요 의인이요 자녀가 10남매로써 행복하기만 하던 욥, 특별히 하나님이 자랑하시던 욥에게도 불행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자녀와 재산이 온데 간데가 없고 사랑하던 아내도 조롱하며 친구들도 비웃으니 이 괴로움이 너무나 심했던 욥이였습니다.

이로 보건데 세상의 부귀, 권세, 영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못되고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행복으로 이어주지 아니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7.  인간의 생명이 오직 예수께만 달려 있다고 믿었다.

\"내 딸이 당장 죽었사오니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회당장이 예수님께 구한 딸의 생명은 죽어 가는 생명이 아니라 이미 죽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믿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셨다는 소문을 통해 아마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고 확신 하기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께서 모든 인간들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주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인간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예수님께 대한 바른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 론

첫째, 두려워 말라(눅8:50).

둘째, 울지 말라(눅8:52)

셋째, 잔다(눅8:52).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 인간의 역사를 쉬는 것이니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 인간의 고통을 잊어 버리는 것이니 잠자는 것과 같고

* 주의 나팔 소리에 일어날 것이니 잠자는 것과 같고

* 더욱 상쾌한 정신으로 일어날 것이니 잠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