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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명을 먹이심 ▨ 마14:13-21, 막6:31-44, 눅9:10-17, 요6:1-14 22:6-18 ▧
큰 역사의 이면에는 작은 희생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자를 칭찬하셨습니다(마25:21). 본문의 내용은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이 큰 축복을 보여준 기사입니다. 예수를 둘러싼 청중들 중에 한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덩이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소자는 가지고 있던 소유 전부를 바쳤습니다. 안드레가 말하기를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모든 사람들을 잔디위에 혹 백명씩 혹 오십명씩 떼를 지어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이 한 가정의 가장처럼 그 떡과 물고기를 친히 드시고 축사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풍속에 의하여 하신 것이지 결코 형식에 의한 축사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감사와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이것을 떼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때의 떡과 물고기를 받은 무리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오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운 것이 열두광주리에 찼다고 했습니다. 오천명이 먹고 남은 기적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무리가 모일 때 주님이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야 어떻한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는 것과 같이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나온 무리가 있으니 주님의 기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날땅에 사람들이 모여 바벨탑을 건조하여 사람들의 지혜를 과시한 일이 있었습니다(창11:1-9).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 아래 모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기도 했습니다(출32:1-6). 바알선지 아셀라 선지들이 갈멜산에 모여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여 신의 존재를 불신도 하였습니다(왕상18:21-40). 백성의 대제사장과 가롯유다가 모여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도 했습니다(마26:15). 이같이 사람들이 모이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자기 백성들이 모였으니 기적 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라셨습니다. 가나안 혼인집에 축하객이 모였을 적에 자기의 때가 안되었다고 하시면서도 기적을 베푸셨나니(요2:1-10)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 각지역에서 열두사람을 모으시고 천국 복음을 시작하셨습니다. *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인 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2:1-).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전지역에서 홍해 바닷가에 모이니 바다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14:21-). 주님의 기적을 원하는 자들은 이제부터라도 모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 모인 곳에 주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따라온 무리들을 긍휼히 여기심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는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 큰 무리의 광경은 당연히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실증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자기와 함께 한 군중들을 유의해 보셨습니다(요6:5). 이들은 먼 외딴 곳에서 온 가난하고 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를 원하셨고 넷째, 예수님은 사람들의 물질적 부족만을 보신 것이 아니고 영적인 부족을 보시었고 다섯째,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들의 부족에 대해 자기에게 하소연 하기전에 그들을 동정하시였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께서 보실때에 불쌍히 여기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1) 무엇인가 얻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의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것입니다. (2) 주님께 충성하고 봉사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것을 보여야 할 것이고 (3) 한 영혼이라도 전도하려는 열심을 보일 것이고 (4) 가정 형편이 어려워도 나누어 주며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고 (5) 굶어도 십일조를 꼭하며 헌신코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복 받을 짓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가 있습니다. * 오직 예수님만이 완전한 만족을 약속시켜 줄 수가 있습니다. * 그는 우리가 하늘에서 내린 참떡을 받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은 말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불쌍한 대중이 있는데 그 대중은 ①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사는 영혼이 굶주린자 ②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신자와 국민과 학생들 ③ 힘이 약한자 또는 나라의 주권이 없는 백성 ④ 하나님 없이 신앙없이 사는 자들 ⑤ 신앙을 가졌다해도 바른 신앙을 못가진자입니다. 이상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들입니다.
3. 전부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비록 초라하고 미미하고 변변치 못한 것이지만 그에게 있는 전부가 주님의 손으로 들려질때 그가 가진 소유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있는 것 전부를 다 주께 드렸던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 번연은 학자도 아니요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시장이나 마을을 찾아가면서 양은 그릇이나 보수하는 땜장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자기 전부를 바치어 충성했을 때에 세계적인 권능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이 어린이의 헌신은 만배의 축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이 소년이 그 도시락을 자기만 먹었으면 한 사람의 유익 밖에 없었을 것이나 주님께 바치므로 오천명이 먹고 남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이같은 일을 행했습니다. (왕상17:8-13) 마지막 한끼의 양식 아들과 먹으면 양식을 구할 수 없는 처지라 죽는날 까지 굶을 수 밖에 없는 데도 그는 엘리야 선지를 대접하고서 그 땅에 비가 내리고 풍년이 들때까지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다 하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왕하4:42-43) 길가에 흉년이 들었을 때 한 사람이 엘리사에게 와서 처음 익은 곡물로 보리떡 20개와 채소를 가지고 엘리사 선지자를 대접하고자 할때 그것을 선지자 생도들에게 먹이라 하여 먹였더니 100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바치는 헌신과 희생적 신앙에는 하나님도 감복하시여 아낌없이 수천배로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배울 것은 이 소년과 사르밧 과부와 같이 하나님을 감복시킬 만한 헌신적 믿음의 소유자 들이 되기를 힘써야 하고 배워 실천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재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주님앞에는 가치 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보리떡과 작은 생선은 그 당시에 서민들의 식생활이였다고 합니다. 그나마 이것도 다른 많은 군중들은 가지고 있지도 못했고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 물질, 패물, 전답, 명예, 건강, 지위등은 하나님이 보실적에는 대단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까와서 인색하여 떨고 수전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이 아이처럼 하나님께 투자해 봅시다. 가치있는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차고 넘치게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색하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우리의 상상이상으로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최소한 30배, 60배, 100배입니다. (왕하4:1-7)에 엘리사 선지가 생도의 부인집에 기름의 축복을 주실 때도 수백배의 기름을 주시었습니다. (요2:1-12)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집에 예수님이 축복해 주실 때도 포도주를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었습니다(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에게 주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넘치게 하려 하심이나라고 했습니다.
6. 인간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먹고 사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여 살리십니다. 사람은 다만 다소의 수고가 있을 뿐입니다. (요6: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6:51)하셨습니다. 이 소년이 자기의 먹을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헌신 한것 같이 우리도 헌신만 합시다. 그리하면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아 영육간의 굶주림없이 생명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7.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나타내셨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둘째, 사람의 생각으로는 가히 측량할 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셋째, 그러므로 그의 교훈은 권위가 있습니다. 넷째,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세상의 주인이시요 주관자이십니다. 다섯째,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는 믿고 복종할 수가 있습니다.
8. 예수님만 따르기만 하면 어떠한 문제이든지 해결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을 따라서 문제를 해결받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여기 모여든 군중들은 배고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둘째, 삭개오는 예수님 만나기 위해 그의 일행보다 앞서가 뽕나무 위에 올라가므로 그의 죄와 가정의 구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셋째, 니고데모는 궁금하던 영생의 문제를 예수님께 찾아와 대화를 하므로 해결되었고 넷째, 십이년간의 장기 혈루병 환자는 예수님의 일행 대열에 끼어 따라 가다가 고침을 받았고 다섯째, 두 소경들도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면서 예수를 따르다가 고침을 받았고(마9:27-) 여섯째,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다가 갑절의 성령을 받았고 일곱째,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의 지시대로 따르다가 가나안 복지를 얻었습니다. 성도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예수님만 따르다 보면 놀라운 기적을 받아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9. 조각이라도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요6:12-13)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바구니에 찼다고 하였습니다. 부스러기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1) 주님의 축사로 온 축복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2) 축복의 은혜를 낭비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은혜를 헛되이 여기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3) 인생은 계속해서 배고픔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열두제자들이 제각기 바구니에 그남은 조각들을 담아 열두 광주리에 채웠습니다. 이것은 예비하는 은혜입니다. (4) 물질의 절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은 조금도 허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낭비하면 무절제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서 어떻한 조각을 모을까요? 첫째, 진리의 조각을 주읍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함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영생의 말씀으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시간의 조각이 있습니다. 수입원의 시간, 배움의 시간, 영적 무장의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때를 아끼는 일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어야 합니다. 이는 그 순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조각들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그 시간의 결과가 되는것입니다. 셋째, 수행임무의 시간 조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평범한 것들을 그 평범함 때문에 경멸 하기 쉬운데 사실 이것들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같이 영광을 위해 값있게 사용하면 차원 높은 가치를 낼 것입니다.
결 론 본문의 기적에 배울 것과 희상되는 것은 1. 사랑이 깊으신 예수의 동정심을 배울 수 있고 2. 부스러기라도 버리지 아니하시는 근검성을 배울 수 있고 3. 예수의 축복은 쓰고 남는 풍성하심을 알 수 있고 4. 예수를 통하여 굶주린 세계를 먹이심을 알 수 있고 5. 이 표적을 보고 당시 사람들이 회상 하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1) 출애굽시의 백성이 먹은 만나를(출16:15) (2) 엘리야가 떡과 고기를 먹은 사실을(왕상17:57) (3) 엘리사가 기름을 많이 나게 하신일입니다(왕하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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