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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먹고 어눌한 자의 치유 ▨ 막7:31-37, 마15:29-31 ▧
\"두로\"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지경에서 \"갈릴리\"호수로 이르게 될 때 귀먹고 어눌한 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이에 동정 많으신 예수님은 그 환자의 양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벧어 바르며, 그의 혀에는 손을 대시고 탄식하시며 하늘을 우러러 보신 후에 \"에바다\"하시니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었으며 곧 말을 하게 되었고 귀는 들을 수 있는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세분하여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영적 눈, 코, 입, 귀, 마음, 병을 고친자 첫째, 영적 소경은 고침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요 빛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소경은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러면 고침을 받어야 할 영적 소경은 누구입니까? 구원의 堧?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 영생의 길을 모르는 사람,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사람,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미래사를 모르는 사람,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지식을 모르는 자가 영적으로 소경인 것입니다. 이같은 영적 소경을 고치는 방법은 성경을 많이 보고 기도를 많이 하는 것 입니다. * 영적으로 좋은 눈은 ① 도우시는 여호와를 보는 눈이 되고(시121:1) ② 쇠하도록 여호와를 앙망하는 눈이 되고(사38:14) ③ 몸의 등불 같은 귀중한 눈이 되기도 하고(마6:22) ④ 들보를 빼서 잘보는 회개의 눈이 됩니다(마7:5).
둘째, 코의 병도 고치어야 하겠습니다. (고후2:14)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냄새는 콧병이 나거나 후각에 냄세에 젖어 있으며 냄새를 못맡는 것입니다. 김치를 먹는 사람은 김치 냄새를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돌아가서 향기를 바로 맡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코는 * 생기를 불어 만든 코입니다(창2:7).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흙덩이가 생명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이 코는 냄새를 잘 맡습니다(시115:6) 코의 사명은 냄새를 잘 맡는 것입니다. * 냄새를 맡는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는 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시38:3-5).
셋째, 영적인 입이 열리어야 하겠습니다. 혀가 풀리니 입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저할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벙어리냐 귀머거리냐 눈 밝은 자냐 소경이 되게 하였느냐 나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입과 함께 있어서 말을 가르치리라\"(출4:11)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로 그들 중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29:21)하셨고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사35:6)했습니다. 발람 선지자가 불의의 길을 갈때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번이나 때리느뇨\"(민22:2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바다가 되어 기도하는 입, 찬송하는 입, 전도하는 입, 유익된 말만 할 수 있는 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여 입술을 통해 주께 영광을 돌리게 합시다.
넷째, 영음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하겠습니다. 여기 나온자는 육적 귀머거리의 불구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불구의 병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영적 귀머거리가 누구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어도 구원의 진리인 줄 모르는 사람이요, 복음을 전해 주어도 듣지 않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진리의 선한 교훈도 듣지 않는 사람, 주의 음성을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 진리를 아무리 외쳐도 \"마이동풍 우이독경\"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영적귀가 열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가 되며 아울러 주의 음성까지도 듣게 됩니다. * 모세는 호렙산에서(출3:4)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엘리야는 동굴속에서(왕상19:9)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사무엘은 성전에서 (삼상3:4)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사도 바울은 다메섹 노상에서 (행9:4)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들은 이같이 주의 음성을 듣고 주어진 사명에 죽도록 충성하였으니 오늘날 주의 전에서 충성하지 못하는 원인중의 하나는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귀가 열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마음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불구자란 육체에 어떤 부분이 고장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영적 생활에 고장난 사람은 영적 불구자입니다. 이는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일도 못하고, 십일조 헌금도 못하고, 봉사도 못하고, 교회 출석도 제대로 못하고, 교회에 무관심 무책임한 자를 의미합니다. 이제라도 우리의 마음에 에바다가 필요합니다.
2. 특별한 방법으로 치료하시는 교훈입니다. 예수께서는 환자를 치료하실 때에 어느 때는 \"가라\" 어느 때에는 \"네 믿음이 크도다 네소원대로\" 하시므로 고치시었는데 이곳에서는 달리 환자와 직접 접근하시고 진지한 모습으로 치료하시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병자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고치신 것은 이는 병자 개인만 상대하시기 위한 것이고 병자의 신앙을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며 자기의 능력 행함을 공개 하지 않으려 하심입니다.
둘째, 병자에게 손을 대시고 고치셨습니다. 이는 병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표징입니다. 귀머거리인 고로 말을 듣지 못하니 깨닫게 하시려고 하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인간들의 형편에 따라 도우시고 은혜를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침을 뱉어 환자 부위에 바르면서 치료하셨습니다. 침에는 병을 고치는 고유한 성질이 들어 있다라는 생각이 당시에는 널리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바다코족의 신앙과 실천에 관한 책에서 \"위넥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침은 생명의 힘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는 병을 고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아픈 곳에다 침을 바른다고 했습니다.
넷째,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고치셨습니다. 병자를 대신하여 마음을 푸시는 심정이요 죄에 빠진 영혼을 불쌍히 보시사 탄식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기도장면의 뜻속에는 * 하나님에 대한 독실한 믿음 *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의식적인 조화 * 하나님에 대한 의심없는 신뢰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3. 어떤 처지에 있던지 주님께 데리고 와야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귀먹고 벙어리 였지만 주님께 데리고 옴으로써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막2:1-12)에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매고 옮으로 고침을 받은 기사가 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야를 찾아 감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판단하여 심판자가 되지 말고 주님이 책임져 주시리라고 믿고 불구자나 환자나 실패자이거나 어떠한 경우에 처해 있던지간에 주께로 데리고 오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요 따라 온자에게 축복을 안겨주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생사 화복의 주관자이시며 구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인도해야 할 대상은 * 가족과 친척 이웃과 친구입니다. * 각고의 질병에 신음하는 자들입니다. * 고민에 빠져 실망중에 있는 자들입니다. * 진리를 탐구하려는 자들입니다.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이 대상입니다.
4. 병자에게서 교훈받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이 병자는 두 부분의 감각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즉 귀와 입이 마비된 것입니다. (1) 귀로서 하나님의 음성과 설교 말씀을 잘 들어야 했으며, 동정하는 호소의 소리도 잘 들어야 했으며, 다른 성도들에게 신앙 생활을 잘한다는 소리도 들어 왔지만 지나쳐 왔으므로 영적 불구자의 생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입으로도 소리쳐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해야 했는데 이 병자같이 마비상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적으로도 영적 은혜가 충만치 못하고 세상적으로도 활발하게 전진하지 못하고 영과 육이 마비 상태여서 불행만 닥쳐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병자가 주님께 나오므로 불구가 고침받으며 지금보다 한 걸음 더 깊은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불행이 없어지고 건강하고 믿음이 좋은 신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 골격만 있지 기능은 마비된 자였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완전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귀와 혀는 제기능을 나타내지 못하는 불구자였습니다. 영적 불구자란 기도와 찬송과 충성을 잘하겠다는 말을 입으로는 곧잘합니다. 귀로도 잘듣습니다. 그런데 물질과 헌신이 없고 신앙의 열매가 없으니 영적 기능이 마비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셋째, 볼 수는 있는데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는 안들리니 듣지 못했고 입은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했다지만 눈은 있으니 볼수는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는 다른 사람이 데리고 왔다고 한 것을 보니 전도하려 다니시는 예수를 찾아 보지도 아니한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많은 성도 가운데도 복된 말씀, 영생의 말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보지 않고 신앙이 성장하지도 않고 축복도 장차의 약속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주님은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으니 회개하여 청결한 맘을 가지면 복이 될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침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첫째,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하심 같이 우리도 하늘을 우러러 보는 기도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마14:19)에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에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함을 보여 주신 좋은 실증입니다. 사람들은 바라보는 목적에 따라 인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보지 말고 하늘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이 환자를 보시고 탄식하시며 고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대상자가 아닌지요. 주님은 기실 우리 신자를 보시고 탄식하고 계실 것입니다. 신자가 기도와 전도와 봉사를 하지 않으니 탄식하고 계십니다. 신자가 주를 보지 아니하고 세상만 바라보니 탄식하시며 신자가 자기의 부족을 모르고 교만하니 탄식하시며 신자가 세상 말은 잘 듣고 성경은 보지도 듣지도 아니하려고 하니 탄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귀도, 입도, 눈도, 모든 육체의 결함이 없이 태어났으며 지금까지 큰 불편없이 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남달리 건강의 조건을 타고 나고서도 하나님께 감사치 못함은 열문둥이중 아홉문둥이들과 같은 불행을 가져 올 것이니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6. 어떤 병자이든지 간에 주님께 데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산 위에 오르셨습니다. 그때 예수를 찾던 많은 사람들은 이를 알고 그들의 주위에 있는 병자들을 대동하여 예수께로 나아 왔습니다. 그 환자들은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며 슬픔을 자아내게한 장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질병과 문제들을 가지고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유대인들은 비록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목전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갖 고민 거리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왜곡된 메시야 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를 예수께 맡겼던 유대인들과 비교할 때 오늘의 성도들은 마땅히 자신의 고통과 슬픔의 문제 그리고 죄악까지도 예수께로 거져와 맡겨야 합니다.
7. 영적인 장애가 더 불행하다. 육체의 장애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영적인 막힘들입니다. 육체적 장애는 주위의 관심과 당사자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장애를 극복해 갈 수 있으며 나아가 \"헬렌켈러\"같은 위대한 위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영적인 눈이 닫혀있고 귀가 막혀있고 입이 굳어 있으면 영원히 불행함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막4:12). 첫째, 영적 장님에 대해서 인간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 중의 한 가지는 하나님께 대한 무지라고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했습니다. 둘째, 영적 귀머거리에 대하여 사람들은 시장의 돈 세는 소리,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에 민감하지만 하나님의 음성과 양심의 흐느낌과 이웃의 한숨과 광야에서 울부짖는 선지자의 진실한 소리에는 귀가 막혀 있습니다. 셋째, 영적 벙어리에 대해서 어눌한 자란 반벙어리란 뜻입니다. 반벙어리 성도는 기도할 줄 모르고 전도 하지 못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불의 앞에 잠잠하고 위로와 칭찬에 인색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 귀가 열리지 않아서 주님이 선포하신 성서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설교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고 본문에 나온 벙어리 같이 혀가 풀리지 않아서 기도와 전도와 찬양을 못하는 자가 우리 성도 가운데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 불구자가 고침받아 새로운 삶을 가졌으니 우리도 영적으로 고침을 받아서 예수님의 산 증인이 되며 복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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