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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세다 소경을 고치심 ▨ 막 8:22-26 ▧
인간의 몸 가운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눈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세상의 사물을 보지 못하니까 보는 눈이 귀한 것입니다. 인간들의 보는 것이 크게 나누어 세가지로 본다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육안이 있나니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경치, 찬란한 태양, 천지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을 말하는 것이며
둘째, 상상해 보는 눈이 있습니다. 이는 생각해 보는 눈을 의미합니다. 설계자의 설계에 따라 집이 건축되고 다리가 놓여지고 아름다운 환경이 조성되는데에 상상하는 눈이 있습니다.
셋째, 영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차원의 신비를 보는 눈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의 육안과 상상을 초월한 새 차원을 볼수 있는 눈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영적인 눈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소경은 예수의 안수하심을 따라 서서히 눈이 떠져서 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이 소경처럼 심령의 눈이 어두어 진리의 세계를 못보던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육안의 눈이 떠지는 동시에 예수의 진리도 알고 보게 되었습니다. 성도여 영안이 떠져서 진리를 보고 신앙이 날로 성장하여야 하겠습니다.
1. 불구자가 있어도 데려 오기만 하라는 기사입니다. 이 자는 친구들에 의해 주께 데려옴을 받았습니다. (눅14:21)에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집을 채우라고(눅14:23)에 했습니다. 이 비유는 주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기를 소원하시는가를 잘 표현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강권하여 데려오기 보다는 이 복된 소식을 많이 전하지도 못하니 이 죄송함을 깊이 사죄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여생에 심혈을 기울여 만민에게 이 귀한 소식을 전하며 주의 전으로 인도하여 교회가 부흥케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려움을 당하는 자가 각가지 문제를 해결받아 산증인이 되게 하는데에 최선을 다합시다.
2. 이 소경은 예수를 보지도 아니하고 신뢰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의심하던 도마에게 예수님은 \"네 손을 내밀어 내손에 못자국을 만져보고 내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 보라\"고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보지 아니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보지 아니하고 말만 전해 듣고 믿는 것은 순전한 신앙이요 보고 만져보고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의심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소경은 보지를 못하는 자인고로 동료들의 말만 듣고 주님께로 나아가 고침받은 것입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을 고치려고 엘리야를 찾아 갔습니다. 이에 어떠한 비방이라도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이때 엘리야에게 아무런 행동이 없자 그는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려는 처사입니다. 그러나 (마8:5-13)에 백부장은 하인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에 눈에 보이는 비방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만 하셔도 집에 있는 그 병자가 낳을 줄을 믿은 것입니다.
3. 영적 식별이 불투명한 자에게 교훈하시는 기사입니다. 이 소경에게 예수님이 기도하시니 눈을 고치기는 하였는데 정상적인 눈으로 고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뜻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신앙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니고데모 같은 사람도 신앙이 불투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3:1-15)에 그는 유대인 종교계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육을 시키는 자였지만 영생의 문제를 알지 못하고 구원 받을 확신이 없어서 예수께 찾아와 질문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자는 거듭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하면 신앙이 불투명하는 것입니다.
둘째, 마르다 같은 자입니다. (요11:17-32)에 예수께서 이들의 가정에 심방했을 적에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에 마르다는 마지막날 부활시에는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직도 예수님의 능력중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셋째, 전신 간질병자의 아버지 같은 자입니다. (막9:14-29)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불투명하여 주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징계의 말씀이 떨어지면 이 세상도 없어 진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다 믿음이 불투명한 자들입니다.
4. 신앙의 향상을 의미하는 기사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기도하시니 눈이 완치되어 사물을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영안에 비추어진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아직까지 어린아이였습니다. (고전3:1) 그래서 바울은 어른들처럼 단단한 식물로 먹이지 못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한 젖으로 먹였다고 하였습니다(고전3:2). 고린도 교회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린 아이들과 같게 보여진 것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분쟁이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하면서 저희 속에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즉 신앙이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인간의 방법대로 대하기 때문에 분쟁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살후1:3) 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 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했고 (고후10;15)에는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 지기를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믿음을 사도들이 인정한 것처럼 인정받을 만한 믿음으로 성장토록 신앙생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골1:10)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우를 향한 사도의 기도 제목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를 생태적으로 신뢰하고 난 다음 이제 구체적으로 아는 단계로 성장함과 같습니다. 처음 단계는 어린 아이가 단순히 부모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라 갈수록 그의 부모를 구체적으로 압니다. 부모의 모습, 키, 웃음, 취미, 개성을 분별하는 단계입니다. 부모가 자기에게 어떻게 해 주는 가 깨닫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요6:68-69)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습니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하였습니다(벧후3:18)
셋째,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합니다. (벧전2:2)\"갓난 아이들 같이 순진하고 신령한 절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엡4:15) 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영생의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농부의 마지막 소망이 가을 추수 마당에 있음과도 같습니다. 야고보는 성도가 구원받은 최후의 날을 추수하는 농부의 열매에다 비유했습니다(약5:8). 사도 요한은 성도의 마지막 구원을 추수군의 타작 마당에다 비했습니다. (계14:14-15) 내맘에 구원이 확정되도록 은혜의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5. 겸손과 자신을 볼때 기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허물이 많고 불완전한 나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 즉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 중심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기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겸손하게 자아를 깨닫고 하나님의 위대하고 완전한 능력을 믿는 사람은 그 기적을 볼수 있는 사람입니다. 기적이란 무엇입니까? 불치의 병에 시달린 사람들이 고침을 받는 것도 기적이지만 그러한 극적인 기적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변 생활에서 평범한 가운데 일어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평범한 기적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 가는 것 자체입니다. 생명 자체가 신비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지켜 주심으로 살아 간다고 믿는자는 겸손한 자이요 자기의 재능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자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같은 자는 하나님의 기적을 느끼지도 못하지만 변화의 체험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6. 부정적인 감정이 걷히게 될 때 기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와 장소에 따른 감정의 변화에 따라 사물을 달리 보게 됩니다. 만일 초조, 불안, 편견, 탐심, 정욕, 이런 마음으로 사물을 보면 세상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럽게 보일 것이며 감사와 기쁨이 사라질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위에 올라 가 있던 삭개오를 향하여 예수님은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기쁜마음으로 주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주님이 인자한 얼굴로 권면하실때 삭개오는 큰 은혜를 받아 죄를 회개했으며 자기의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날때 인격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회개하고 사죄를 받으며 새 결단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버릴때 이런 기적이 일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7. 신앙의 눈이 뜨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신앙의 눈을 뜬 사람에게는 기적이 보이게 됩니다. 비록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신앙에 성장이 있을수 없고 하나님의 기적을 볼수 없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인간의 책임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을 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결 론 많은 성도 가운데 육신은 어느 한곳의 하자가 없는데 영적으로는 불구자가 되어서 눈이 무용지물이고 귀가 있어도 무용지물인 자가 있습니다. 보아야 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귀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여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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