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때부터 소경 된자를 고치심 / 요9:1-12

날때부터 소경된자를 고침/ 요 9:1-12

 

 

날때부터 소경된자를 고침     

                                                           ▨ 요 9:1-12 ▧

 

예수님께서 길 가실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고쳐 주어 보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누구의 죄로 인함이냐고 이론만 따졌고 바리세인들은 안식일에 이런일을 행하였다고 문제삼아 소경되었던 사람이나 그의 부모를 억압하여서 이 사실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1.  소경이 고침을 받으면

첫째, 생명수를 보게 됩니다.

(창21:19)\"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니 곧 샘물을 보고\"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주인 사라에게 쫓겨났을 때입니다.  그녀가 어린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브엘세바 황야에서 방황할 때입니다.  가죽 부대의 물은 다하고 목이 갈하여 자식이 죽어가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팔레스텐 지방은 물이 적은 땅이어서 우물이란 그 주민들의 생명이요 재산과도 같습니다.  이들 모자는 물을 얻을 수 없어 기갈하게 되었습니다.  하갈은 그만 주저 앉아 자식을 쳐다보며 방성대곡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광경을 보시고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하갈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위로하시고 모자를 일으키시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주며 마시게 하여 기갈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도 애써 찾아 구하던 물이 보이지 않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여시매 바로 그들 앞에서 활천이 솟아 흐르고 있었습니다.

 

둘째,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눅24:44-45)\"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 져야 하리라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하였습니다.

이는 신령한 눈이 열린 사실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는 눈은 믿음의 눈입니다.  들음의 눈입니다.  순종의 눈입니다.  감사의 눈입니다.  백번 성경을 보고 또 설교를 들어도 실감이 없고 재미가 없는 것은 그가 아직 까지도 영적으로 소경이라는 사실 밖에는 다른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성경 말씀체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볼 수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됩니다.

(눅24: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후에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의 걸음은 참으로 실의와 낙담속에 이어지고 있던 중입니다.  그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예수의 일을 이야기 하면서 길을 걷고 있던 중 목적지에 이르러 동행하던 귀인이 식사시간에 축사를 하시니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도 영안이 열리어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영원한 천국을 보게 됩니다.

성도의 궁국적 소망은 천국입니다.  신자의 소망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입니다.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장래의 것입니다.  잠깐 동안 보이는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를 보는 눈입니다. (행7:55-56)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순교하는 스데반 집사에 큰 소망의 하늘문이 열리어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고침 받은자의 증거

날때부터 소경이 되어 거리에서 구걸하며 살던 자가 예수를 만나 그가 눈에 짙흙을 발라 주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기에 그대로 하였더니 눈이 떠졌다고 증거했습니다.

 

첫째, 이는 진실된 증거였습니다.

그의 진실성은 순진성에 기인한 것이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화가 난 것이 바로 이 진실된 증거입니다.

 

둘째, 확신을 주는 증거였습니다.

연구나 준비도 없는 율법 박사들의 주장은 신학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이 사람이 한 것보다 더 훌륭한 답변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선지자라고 증거했습니다.

17절에 \"그 사람은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예언자의 이름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직통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계시)를 받아 백성에게 선포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눈 뜬 사람의 이러한 증거는 실로 예수의 메시야에 대한 증거인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로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33절에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일도 할 수 없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담대히 대항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하니이까\"27절에 하였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을 정말 이상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신앙에 확증이 오기를 분명히 자기 눈을 뜨게 한 사람은 하나님께로 부터 온 자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섯째, 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눈 뜬 그 사람이 출교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두번째 상봉이었습니다.  첫번째는 눈을 감고 있을 때 진흙을 눈에 발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젠 눈 뜬 이후에 오셨습니다.  오신 주님은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는 즉시 답하기를 \"주여 그가 누구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그 눈뜬자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마치 활짝피어나 향기를 토하는 꽃과 같습니다.

여섯째, 흔들리지 않는 증거입니다.

그는 항상 변함없이 그의 은인에게 영광을 돌렸으며 그에게 베풀어진 은총을 널리 공포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 씌우고 그를 회당에서 쫓아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하나님으로 숭배하였으며 그의 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이 견고해 갔습니다.

 

3.  동정이 없고 무관심한 제자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자의 눈먼것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체념해 버린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날때 부터 소경이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 하는 문제를 발달시킨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흔히 육체적인 고통과 질병은 반드시 영적인 죄악의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은 상당하게 성서적 근거가 있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질병이나 고통은 죄로 말미암아 오기도 하고 부모의 죄로서 자손에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출20:5,34:7, 민14:18).  아담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의 죄로 근원이 되기도 하고(롬5:1, 창3:17-18), 또한 병의 원인은 죄때문이라고 성경 여러 곳에서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신28:15-68, 렘31:30, 겔28:4).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날때부터 소경된 이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냉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소경을 대하는 그들은 아주 사색적인 눈초리와 배타적인 사고로 그를 취급했습니다.  그를 향한 뜨거운 동정심이나 불타는 사랑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지나가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비참함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았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이 계시니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막2:1-12)네 청년들과 같이 예수께 고쳐 주시라고 요청해야 했을텐데 제자들은 그의 소경을 불쌍히 여기기 보다 지당하게 여기고 그를 격리케 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웃에 불쌍한 사람들의 고통소리가 들리는데 예수님에 제자들과 같이 당연하게 여기고 돌보지 아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 봅시다.

 

4.  기적을 본 부모의 미온적 태도

자식이 소경되었다가 고침받은 사건 때문에 바리새인 앞에 당한 부모는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요 미온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심한 질문에 겁이나서 \"이자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니다.  저에게 물어 보시요 제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자는 출교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무서워서 한 대답이었습니다.

 

첫째, \"그 부모가 대답하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라고 20절에 나와있습니다.  

소경인 것도 사실이요 혈통의 관계도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사실을 은폐하였습니다.  \"지금 어떻게 되어 보게 되었는지 또 누가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소경으로 있다가 눈 뜬 본인은 아직까지 예수를 본일이 없으나 부모나 이웃사람들은 사실상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 부모는 예수 증거에 회피적이요 도피적인 방법을 취했습니다.

 

둘째, 진리증거에 약했습니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시인하면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 함일러라\"22-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유대교인의 출교가 겁이나서 자식이 예수께로부터 받은 생명의 빛을 증거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비정한 세상입니다.  가리워진 세상입니다.  

 

5.  이 기적을 보고도 예사롭게 여긴 이웃들

첫째, 이웃들은 변론만 했습니다.

이들은 소경의 이웃에 살던 사람입니다.  이들은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사람이라 하며 혹은 그와 비슷하다\"고 9절에 변론했습니다.  이들은 기적을 궁극적으로 부정하는 이론을 내세웠습니다.

 

둘째, 흥분된 호기심을 가진자들입니다.

10절에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고 했습니다.  일면 기적에 대해 호기심도 가진 것입니다.  유불신간에 신의 능력이 임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믿지는 않고 있습니다.

 

셋째, 그가 어디 있느냐 하였습니다.

소경의 대답을 계속 추궁한 자들입니다.  저들은 진리의 빛에 대한 열심 보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이는 군중심리의 일단이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넷째, 저들은 눈 뜬 사람을 바리새인에게로 데리고간 자들입니다.

저들은 더 이상 무엇을 구하거나 더 큰일을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그 이상 문제를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루어진 사실에만 흥분하고 흥미를 가진 것에서 끝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예사로 여기였으니 주께서도 저들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6.  이 기적의 사건을 음폐하려는 바리새인들의 음모

저들은 당시 유대 종교계를 대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서 네눈을 뜨게 하였는가를 세심히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리세인들은 무슨 방법으로든지 예수를 책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 온자가 아니다 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일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로서 온자가 아니겠느냐 하고 자기네들끼리 쟁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경되었던 자와 그 부모에게 이 사실을 부인하려는 목적으로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제 조건으로 자신들은 예수가 죄인인줄 안다고 단정하면서 그 뜻에 동의 시키려는 악랄한 수단을 썼습니다.  그러나 소경되었던 자는 예수의 죄인 여부를 논하는 신학 문제는 알지 못한다는 어조로 이들에 말을 거역하면서 예수의 눈 고쳐 준 것만 강조한 것입니다.

 

7.  예수안에서는 소망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위대한 기적의 인물이라 하는 \"헬렌켈러\"여사는 2세때 실명하고서 불굴의 투지로 법학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많은 이들에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소경인 상태 특히 본문과 같이 날때부터 소경된 자의 상태는 곧 생존을 위한 생존일뿐 그 이상은 아닐것입니다.  그에게 인생 목표가 어디 있겠으며 단란한 생활의 꿈이 어디 있을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실로암으로 가서 진흙 묻은 눈을 씻으라고 명하시니 이는 곧 캄캄한 절망 속에 비치는 한줄기 소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꿈꾸는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남다른 포부 때문에 미움을 얻어 애굽에 팔려갔지만 그는 어릴때의 소망과 꿈이 이루어져 애굽의 총리가 되고 대가족과 미워하던 형제들까지 돌보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나그네 같은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갖가지 상황들을 견디며 나가다 보면 원한던 일들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결 론

예수께서는 시력을 선물로 주시고 그의 눈으로 빛을 보게 하셨습니다.

* 눈을 뜨게 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죄를 보게 되었고

* 하나님과 예수의 속성을 알게 되었고

*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