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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가 메마름
본문 마21:18-22, 막11:12-14, 20-24
예수님께서 성에 들어 가시면서 시장하시었던지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게 열매를 구했으나 열매가 없으므로 저주하시니 그 나무가 시들게 되었습니다. 4월 무화과는 열매부터 열리고 잎이 피는 것인데 이 나무는 비정상이었습니다. 잎이 피지 말거나 열매를 맺어야 했는데 잎만 무성하게 피고 열매는 없이 나무 구실을 못한고로 주님께서 저주 하신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거의 살리는 생명의 기사였으나 이번 기적은 심판을 예고하시는 냉엄한 기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이 기적은 유대 나라 심판을 예고하신 것임 무화과 나무는 유대나라 국화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예로부터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 부터 브엘베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안연히 살았다고하며(왕상4:25) 스가랴 3:10절에 \"그날에 閣胄?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초대하리라\"하셨는데 무화과나무가 말랐다는 것은 유대민족의 심판을 예고해 주시는 교훈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고(시105:33, 호2:1-2, 렘8:13)하였습니다. 이렇게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심판의 경고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2. 열매를 요구하시는 예수님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는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에 열매가 없으니 존재의 의미가 없는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눅13:6-9)에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었는데 3년간이나 그 나무에 열매를 구했으나 얻지 못하므로 찍어 버리겠다고 경고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3:10)에는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 버리겠다고 하심은 존재 가치가 없는 무용지물은 그냥 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셨건만 저들은 영접하지도 않았고 천국의 진리를 전해 주었건만 듣지 않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외쳤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멸망 될 것을 경고한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열매없는 인간 무용지물의 인간이 되면 언젠가는 찍히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영적면에서 열매가 없는 인간은 (1) 책임성이 없는 인간이요 (2) 회개가 없는 인간이나-개선의 변화가 없는 인간 (3)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나-매를 맞어도 알지 못하는 사람 (4) 남에게 손해만 주는 인간 (5) 의무를 다하지 못할뿐 아니라 의무에 무관심한 사람 (6) 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 믿음의 성장도 변화도 열매도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의 존엄한 책망을 면치못할 것입니다. 심판의 경고장을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속히 회개하고 고쳐서 존재가치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3. 조물주의 기대에 맞도록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주님이 길가에 있는 나무를 찾아가 기대하고 요구하셨던 것은 잎사귀가 아니라 열매였습니다. 이 나무는 주님의 기대와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어긋났기 때문에 말라 죽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기대가 있고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기대를 걸고 교육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를 보시고 열매를 기대하신 것입니다(막11:13). 둘째,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과실을 많이 맺게 하려고 택했다고 하셨고(눅13:6). 셋째, 농부가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은 뜻은 열매를 기대하고 심은 것입니다(눅13:6). 넷째,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열매 하나와 비교가 아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과 인생들에게 요구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은 열매인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또한 직분이 높다고 해도 하나님의 요구에 맞도록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잎사귀 뿐이고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진정 생존의 가치는 오직 하나님의 요구에 응해야 되는 것입니다.
4.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한 그루의 무화과 나무는 그의 본분인 열매를 맺지 못하여 말라 죽었습니다. 나무의 본분은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여기 본분이라는 말은 * 자기 구실을 다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 자기 책임을 수행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 자기 의무를 바로 감당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사람이면 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 구실을 해야 참 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기독신자면 다 신자가 아니라 신자 구실을 바로 해야 참 신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전12:13-14)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본분 신자의 본분과 의무를 바로 이행 감당하는데 참 삶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5. 허식과 의식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여기 무화과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내용없는 나무는 말라 죽었습니다. 열매는 나무의 본질이요 실속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사람이란 유명 무실하게 살지 말고 무명유실하게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무엇이나 내용이 없으면 외식이나 위선자가 되고 방해물이 되고 사회의 독버섯이 되기 쉽습니다. *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유명 무실 *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유명 무실 * 되지도 못하고 된 척하는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신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신앙의 알맹이를 갖추고 살아야 합니다.
6. 열매가 없는 인간은 심판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의 가치는 꽃이 아름답거나 목재가 좋은데 있는 것이 아니고 열매 맺는데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가치도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는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가 아무도 안보는 산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길가에 있었습니다. 즉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인간은 누구나 다 열매를 맺어야 하되 특별히 은혜를 많이 받고 중요한 위치에 세움받은 사람에게는 책임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섯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두달란트 받은자는 두 달란트를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나무 하나라도 자기역할을 못할때 저주하셨는데 인간이 열매없을때 어찌 그대로 둘수 있습니까? 시간과 정력을 소비할 뿐입니다. (요15:2)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소비와 생산의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많은 희생을 하셨습니다. 이 희생의 보답을 우리는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니 또한 열매가 없을시는 심판이 있기 때문에 더욱 열매 맺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7. 유대인의 심판을 예고할 것입니다. (마24:32-33)에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라고 하였습니다. 즉 무화과를 저주 했다함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사명은 종교입니다. 성서는 곧 이스라엘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모든 선지자를 죽이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까지 죽이는 죄악을 범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그들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근 이천여년간을 나라도 없이 유랑의 생활을 한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도 주님을 믿지를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결 론 우리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주님의 기대에 어긋난 생활을 회개하고 주님의 요구에 맞도록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본분을 다하지 못한 생활을 청산하고 본분을 다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넷째,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꾸밈이나 허식없이 알차고 내용있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섯째,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나의 본분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삶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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