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개종 하게 된 기적 / 행9:1-10

사울이 개종하게 된 기적/행 9:1-10

 

 

사울이 개종하게 된 기적

 

본문 행 9:1-10

 

다메섹 지방에 산제한 크리스찬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해 오려고 대제사장들에 공문을 청하여 가지고 다메섹에 가까이 가던 사울에게 하늘의 빛이 저를 둘려 비치면서 예수님이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죽어서 부활하지 못한 줄 알고 교회를 핍박했는데 하늘에서 음성으로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시고 저를 부르시니 어찌 회개를 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이제는 더 반역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빛으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지니 사울은 두 손들어 항복하고 말았으며 더 버티지 못하고 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주님이 찾으시는 한 장면을 보여 주신 기사입니다.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각자의 입장이 다르겠지만 바울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이 강권적인 역사를 하시어 저를 굴복케 하시고 헤어날 수 없는 강법을 쓰시었습니다.

주님께서 멸망받을 수 밖에 없던자湧?구원키 위해서 찾으시는데 어떤자는 병석에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어떤 자들은 사업에 실패한 자리에서 부르시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불의의 불행 가운데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또한 어떤 자들은 참 진리를 가리키어 줌으로써 부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여러 형태로 부르시는 중에 여기 바울의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첫째, 하늘의 광명한 빛이 저를 두루 비치어 땅에 엎드려 지게 하셨고

둘째, 주님이 친히 음성을 내시여 그를 부르시었고

셋째, 소경이 되게 하시사 자신이 확신을 얻게 하셨고

넷째, 주님의 지시 받은 바나바를 통해 안수 받음으로써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하시고 이상과 같이 남다른 강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체험케 하시어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 구원받아 주를 섬기든지 주님의 사랑에 의한 부르심이오니 바울과 같은 충성스럽게 주를 섬기어야 할 것입니다.

 

2.  포악한 핍박자도 회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변하기 직전을 보면

첫째, 그는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였습니다.

둘째, 다메섹에 올때에 살기가 등등해서 대제사장 공문까지 받아 가지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즉 기독교를 말살 시키라는 공문을 가진자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빛을 비출때 그의 완악한 인간성은 산산히 깨어지고 대핍박쟁이가 대사도의 복음 전하는 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볼때에

(1) 아무리 세상에 완고한 자가 있다해도 깨어질 날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시며(고후10:4)

(2) 우리들의 식구중 아무리 권고해도 고집 불통의 인간이 있다해도 그도 예수앞에 변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계속 낙심말고 전도하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생각할 것은 우리 주위에 아무리 악독하고 핍박 한다 해도 사울 같은 완악한 자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기도하며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상자가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3.  어둔 인생들을 깨치려고 하신 기적의 뜻입니다.

바울은 기독교 전체를 말살하려고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휴대하고 다메섹까지 가서 믿는 자는 남여를 불문하고 결박하여 체포해 오리라고 달려가는 도중 홀연히 하늘로써 빛을 받았습니다.

이에 견디지 못해 땅에 엎드러진 사울에게 들리는 소리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 음성에 사울은 크게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고 그가 크게 깨달으니

첫째,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은 죽지않고 살아계심을 깨달았고

둘째, 예수님은 지금 영광중에 계신것을 깨달았고

셋째, 신자를 핍박함이 곧 예수님 자신을 핍박하는 것인 줄을 깨달았고

넷째, 죄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고

다섯째, 핍박하는 죄인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심을 깨달았고

여섯째, 자기가 주장하는 율법이 예수님 앞에서는 의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고

일곱째,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들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4.  소경된 자가 다시 보게 된 것은 예수를 볼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개탄하기를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한다고\"했습니다.

사울은 살기 등등해 있었습니다.  1절에 그에겐 기독교인을 잡아 죽이기 위해 모든 힘을 썼습니다.  스데반을 잡아 죽일때 앞장서서 돌로 먼저 친 사람이었습니다(행7:58). 이러한 사울의 눈에서 꺼풀이 벗겨지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가 있었고 예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같이 예수를 알아 본 후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한 죽음이 되었으며\"(롬14::ㅣ9)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해도 하나님에 영광을 위해 하게 되었다고 했으며\"(고전10:31)

\"복음을 전하다가 죽기로 각오를 하면서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면서\"(행20:24) 주의 일을 했습니다.

이같은 사상으로 의를 위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길을 다 달려가기 까지 주의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도 예수를 바라 보아 복음전파를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5.  바울이 소경이 되었던 것은 현대의 신자 중에도 소경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막8:18)에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이 바울은 육에 눈은 있어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한 것은 잘 보아 식별하였고 지식에 눈도 없어 대제사장들의 예수에 활동은 다 허위라고 비난하는 공문도 보고 그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 들이라는 문서는 보았지만 영안이 어두어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어 참 진리를 보지 못하고 예수를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즉 종교인으로서 가장 보아야 할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종교인의 행세를 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종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데나 숭배하고 복을 달라고 비는 자들이 무수합니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예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고 미래 세계를 알지 못하여 신앙의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으며 볼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할 것만 보아 그곳에 따르다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는 자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영안이 밝아 예수를 바라보고 따르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6.  전도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한 기적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자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를 소개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변화의 한 모습이지만 주님은 과거에 어떠한 생활을 하였든지 변화를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뜻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수가 있는데 (마4:19)에 고기를 잡던자 베드로를 불러서 이제는 고기는 그만 잡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고 (마9:9)에는 세관에서 일을 하던 마태를 불러서 전도를 하게 하시려고 제자를 삼으시고 다섯 남편이나 된다고서 사람들로 인간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사마리아 성을 전도하게 하시였던 것입니다(요4:28-29).

예수님이 이같이 전도하기를 요구하시는 뜻은

첫째, 무거운 짐을 벗겨 주는 격이 되는 때문이요(마11:28)

둘째,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 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마12:11).  이같이 핍박하고 포학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7.  자아가 깨어지라는 것입니다.

오만 무도하고 매사에 자신 만만한 인간의 실상은 알고 보면 추함과 부족함과 일그러짐과 어리석음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말로는 사망 이외에 아무것도 오지 아니합니다.  (잠14:12)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참 자아를 발견한다함은 곧 죄악된 인간 자아를 깨고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요 이 삶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삶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바울은 율법에 관하여 정통한 자였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무고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면서 자신의 악행을 개닫지 못한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잡아 들이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향하던 그는 주님의 빛과 음성을 듣고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교만과 악함이 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날 행했던 모든 일이 엄청난 죄악이었음을 깨닫은 그는 눈물로써 삼일을 보냈습니다.  이 참회의 삼일은 그의 자아가 깨어지는 순간이요 새롭게 태어나는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 삼야를 지내는 동안 뉘우치고 깨어졌던 순간이(욘1:17)우리 모두에게도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결 론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으며 또한 저는 예수를 영접한 후로 다시 변해 세상으로 빠진 일 없이 순교하기 까지 주만 섬기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은혜 충만히 받기도 하고 이에 열심을 내다가 타락하여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순교를 각오하고 주를 섬길지언정 타락하여 주를 멀리 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