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바로 전하고 바로 들어야 한다

말씀을 바로 전하고 바로 들어야 한다
신18:15-20





서울에서는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전합니다. 서울
의 어느 곳이든지 전철을 이용하면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지하철역도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
니, 비슷한 역 이름이나 혼동하기 쉬운 역(驛)이 적지 않습니다. 그
런고로, 서울에 가끔 가시는 분들이 전철을 이용할 때에는 행선지
역(驛)의 이름을 바르게 익혀두고 가야 합니다.

시골에 사는 한 젊은이가 어느 날 서울 사는 형네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전철을 이용하려고
표를 끊었습니다. 막상 표를 끊어서 승강장에 서고 보니, 어느 방향
으로 가는 전철을 타야 할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
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골티를 내는 것 같아서 주저하고 있었습
니다. 그런데, 마침 전철이 들어왔습니다. 얼떨결에 그 청년은 그
전철에 올라탔습니다.
몇 정거장을 가다보니,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옆자리에 있는 아저씨에게 물어봤습니다. “아저씨, 이 차가 길음으
로 가는 게 틀림없습니까?” 그러자, 그 아저씨가 말하기를 “아니,
이 젊은이 좀 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이 전철이 기름
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전기로 가는 차(車)라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아저씨로부터 핀잔 섞인 대답을 듣게 되자, 그 시골청년은 크게 당
황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철이 서자마자, 그 청년은 허둥지둥 차에
서 내렸습니다.
사실 그 청년이 가고자 했던 곳은 ‘길음역’이었습니다. 길음역은
4호선 미아삼거리와 성신여대 입구 사이에 있는 역(驛)입니다. 그리
고 그 청년이 탔던 전철은 ‘길음역’에서도 서는 차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길음’을 ‘기름’으로 잘못 알아듣고 그같이 호통을 치
셨던 것입니다. 만일 그 아저씨가 길음역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아
무리 몰라도 전철이 전기로 가는 것쯤은 그 청년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더라면, 그처럼 엉뚱한 호통은 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 청년이 정신을 잘 차리고 아저씨의 말을 귀담아 잘
들었더라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즉, 아
저씨가 ‘전기로 가는 차라는 것을 모르느냐?’고 반문했을 때, 청년
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아저씨가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말을 잘못하거나 잘못 알아들음으로써 서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도 정확하게 말을 해야겠지만,
듣는 사람도 말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쯤은, 우리가 상식적으
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건만, 우리는 말로 인해서 너무나 많이 고
생을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잠언서에서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
하기 어렵다(10:19)’고 했겠습니까?
한편, 말 한마디가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꼭 필요한 말을 적절하게 하고, 또한 듣는 쪽에서 그
말을 잘 받아들이게 될 때, 서로에게 큰 유익이 되거니와, 때로는
아주 놀라운 역사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예로써 미국의 36대 대통령이었던 ‘존슨’을 들 수 있습니
다. 그는 95㎏이 넘는 몸무게로 인하여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존슨은 체중 감량을 위해서 몇 번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
다. 그때, 그의 아내가 들려준 의미 있는 말 한 미디를 듣고 다시
시도해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자신을 조절할 수 없다면
국가도 경영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존슨은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80㎏까지 뺄 수 있었
습니다. 그때부터 존슨은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대통령까지 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리기를 ‘우리 기독교인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따져보
아야 하고, 그래서 과연 그 일이 말씀에 합당한지 아니면 어긋나는
일인지 잘 살펴보고 난 다음에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말씀에
어긋나는 일이면, 그 일로 인해서 자신에게 아무리 많은 유익이 될
지라도,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너무 중
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동기이자 방법이
요, 목적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
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살아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알게 되는 것입니
까? 그거야 물론,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움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지
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무엇보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들려주
는 설교에 의존해서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
별히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목회자들이 오늘 이 시대 우리
에게 필요한 말씀을 선포하면, 성도들은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들여서,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역할을 예언자가 담당했습니다. 예언자 제도
는 일찍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예언자를 세우게 되었습
니다. 오늘의 말씀인 신명기18:15 이하에서 이 사실을 밝히고 있습
니다. 물론 모세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모세 자신이 그 일을 감당했
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을 세우셔서 당신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컨대, 예언자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가지고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는 것
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따로 세우셔서 당신
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언자
는, 백성을 가르치는 스승도 아니었거니와, 백성들이 본받고 따라가
야 할 삶의 모델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들려
주시는 말씀을 백성들에게 들려주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격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
다거나 성품이 좋아서 목회자로 부름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결코 성도들의 스승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스승은 오
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삶의
모델도 예수님이십니다. 목회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
하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고로, 성도들은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주목해
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느 쪽으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봐
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방향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은 별
로 중요치 않습니다. 그 가리키는 쪽이 옳은 방향이면 되는 것입니
다. 물론,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과연 믿을만한 사람이냐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 별다른 결격 사항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목회자에게 성품과 인격적인 면에서 아주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
나 성도는 다같이, 죽는 그날까지 주님을 닮아가야 할 미완성의 인
격자요, 아직 훈련이 다 끝나지 않은 하늘나라의 군사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목회자는 어디까지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
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성도들과 함께 그쪽으로 함께 가야 할 주
님의 백성입니다.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서 성도들을 향하여 ‘이쪽으
로 오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를 부르시고 있는
분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요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뿐이십니다.

모세는 신명기 18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백성들에
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동족 중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
를 계속 세우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15). 하나님
은 그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너희에게 말하리라(18) 그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19).’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언자가 마음에 들든지 아니 들든지
간에, 그가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말
씀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언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까지 거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예언
자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와 상관없이 그 말씀에 순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신앙 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한편,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말을 전할 때, 하나
님께서 그를 어떻게 하신다고 하신 줄 아십니까? 그런 예언자는 반
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예언자든지, 내 명령 없이 제멋대로
말한다면, 그 예언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모세가 신명기
18:20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목회자가 잘못 말하는 것에 대해서 너
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목회자가 말씀을 잘못 전할 경우에는
벌을 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으니, 그 문
제는 목회자들 스스로가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성도들이 걱정해
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다른 교인에 대해서도 너무 걱정하
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 걱정할 게 아니라, 과연 자신은
지금 얼마나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지, 항상 우리는 자신
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물론, 낙심 중에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믿음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는 꼭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1.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면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타인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만일 타인
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에 자신의 믿
음에 대해서 냉철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지
만, 지금 코앞에 닥친 문제는 다른 사람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
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닥칠 심판을 두려워할 게 아니
라, 내게 내려질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루는 귀신 들린 자가 주께 와서 외쳤습니다. “예수님, 왜 우리
를 간섭하려고 하십니까?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인 것
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주께서는 그 귀신에게 “잔소리하지 말
고 그 사람에게서 나와!”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귀신은
소리 지르며 자신이 머물렀던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놓고 떠나갔
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처럼
능력 있는 말씀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더러운 귀신까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가?”하고 감탄했습니다. 귀신까지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 말씀에 복종했다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
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요컨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고 바로 들어야 합
니다.

어떤 재판장이 한 피고인에게 사형을 언도하게 되었는데, 재판장
은 그 사람의 죄를 하나하나 다 밝힌 다음, 맨 마지막에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인간이기를 이미 포기하였기에 사형에 처한다.’고 했습
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우리 인간은 하
나님과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자(中間子)라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서 그 모습을 닮아
갈 때, 우리는 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하
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살 경우에는, 우리에게는 동물성만 남게 되
어 비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말씀을 통하여 이어지게 되어 있
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순종할 때, 하나님과 우리와
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풍성히 체
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참 자유와 참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
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강단에서 말씀을 외
치는 목회자들은 자기 멋대로 말씀을 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하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듣고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입에
서 나오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하
나님을 멀리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목사나 장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것은 목사나 장로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 때문에
교회가 어떻다고 말하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실망하는 사람이 생
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8:3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그를
알아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며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그
러면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더욱 귀하고 아름
답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