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말씀의 상관관계/벧전1:23-25
우리 나라 모 여자 대학의 아주 존경 받는 여자 교수님의 간증이다. 그분은 자연 과학 계통의 교수인데 그 분도 일류 대학을 나왔고 남편 또한 일류 대학을 나온 분이었다. 이 두 분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없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성도 있고 재산도 있고 게다가 그의 남편은 후에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확실히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는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런 생각도 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이 안 계셔도 불편한 것이 없고 믿음을 안 가져도 별로 불편한 것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아\'. 그것을 남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부지런히 공부하면 1등할 수도 있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돈도 벌 수가 있고 인기도 끌 수 있고 스스로 노력하면 다른 사람보다 착하게 살 수도 있고 교양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태여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의 피 흘려 죽으신 구속이라는 것이 자기들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임했다. 그들의 외아들이 중학교에 다니면서 불치의 병에 걸렸다. 그 병은 현대 의학으로는 전혀 고칠 수가 없었다. 미국에도 가고 일본에도 가서 대여섯 번 진단을 받아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인간의 안목으로는 절망적이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몹시 반항을 했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너무도 가혹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고발했다. 하나님께 반항했다.
그런 가운데 욥처럼 점점 그 마음의 연단을 통해서 조용히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신유를 한다는 분들이 자기 집에 날마다 찾아왔다. 200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 집을 다녀갔다. 이런 문제를 당할 때 우리 조상들이 무당을 찾고 점장이를 찾은 것처럼 미친 듯이 신유를 하는 분들을 찾았다. 병이 낫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는 것처럼 매어 달렸다. 그러나 별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의학, 학위, 인간의 자랑, 돈은 생명 앞에 너무도 무력한 것이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한 권사님이 이 교수님의 집에 찾아왔다. 그 권사님은 신유의 은사가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기도는 안해주고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그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할 수 있지만 제 손을 믿을 까봐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고 갑니다. 아무도 믿지 마십시오. 사람이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치료하는 분은 예수님 밖에 안 계시니 말씀을 믿으십시오. 말씀 충만이 성령 충만이고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러고는 돌아가서 돌아가서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 말씀을 보라는 말을 기억하고 성경을 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성경이었고, 어려서부터 읽던 성경이었고, 그렇게 많이 설교로 듣던 말씀이었지만 그때만은 달랐습니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얼마나 가슴 깊이 파고드는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말씀을 읽었다. 그때 본 성경은 똑같은 글자이고 똑같은 말씀인데도 예전과는 달랐던 것이다. 말씀이 참으로 생수요 생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분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은혜가 되시는가? 생명이 되시는가? 소망이 되시는가? 읽을 때마다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지는가? 여러분이여. 예배 때마다 듣는 말씀이 정말로 가슴 깊이 다가오는가? 힘이 되시고 은혜가 되시는가? 아니면 의무감에 마지 못해 듣는 지루한 말씀인가? 여러분은 정말로 말씀을 사모하시는가? 그 말씀을 위해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오는가?
오늘날 수많은 썬데이 크리스찬 중의 한명은 아닌가?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 말씀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직결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란다. \"말씀과 육체의 상관관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더 굳건히 설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두가지 중요한 개념이 나온다. 하나는 육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설교의 제목처럼 상관관계가 있다. 이 각각의 내용을 살피며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1. 육체란 무엇인가?
먼저 육체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자.
1) 여기에서의 육체는 몸을 말함
- 구약성서에 있어서의 [육]. 육의 히브리어는 명사[바-사-르]인데, 히브리어에 있어서는 이 단어로, 동물 및 인간의 육, 혈연, 또는 결혼에 의해 하나로 되는 육, 육을 가진 모든 존재를 말하기도 한다(창 6:13,19,8:17기타).
(1) 동물의 육-짐승, 새, 물고기 등의 육 일반에 구별없이 씌어 있다. 소의 육(창 41:2-살진 소), 돼지의 육(신 14:8,사 65:4,66:17), 메추라기의 육(민 11:33), 식용의 육(삼상 2:13,15,신 12:15,왕상 17:6), 먹어서는 안될 육(출 21:28)등.
(2) 사람의 육-남녀 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육에 씌어 있다. 산 사람의 육(창 2:21, 왕하5:14), 죽은 사람의 육(삼상 17:44), 몸의 일부분으로서의 육(레 15:27,겔 16:26,23:20), 몸의 다른 부분과 연계하여(겔 37:6,8,욥 10:11), 몸(體)의 의미에서(겔 11:19,36:26,시 63:1,잠 5:11,욥 4:15,전 12:12), 썩은 육(슥 14:12), 살찐 육(단 1:15).
(3) 혈족관계 전반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창 2:23,24)-형제에 대하여(창 37:27), 육친(레18:6), 골육(사 58:7).
(4) 약하고, 지나가는 멸절되는 육-동물에 대하여(사 31:3), 사람에 대하여[대하 32:8, 욥10:4(하나님께 향하여), 시31편56:4,78:39,사 10:18,겔 44:7].
(5) 동물 또는 사람의 총칭으로서(육은 모두)-사람과 짐승을 포함하여(창 6:12,17), 동물(창6:19,7:21,8:17), 인간(민 16:22,27:16,신 5:23,사 40:5,6).
- 신약성서에 있어서의 [육]. 육의 헬라어는 [사르크스]인데, 이 말은 인간이나 짐승의 연한 육 그것이고, 또는 육이나 피부나 뼈 등의 구별없이, 몸 그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육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교시한 이는 바울이고 요한도 중요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인간에 대하여[사르크스 savrx]라는 말과[소-마 sw\'ma](몸)라는 말을, 긴밀한 관계 아래 쓰고 있다. 양자의 근접(近接)과, 근본적인 상위(相違)를 늘 염두에 두고서 그의 인간관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사르크스 savrx]는 [바-사-르(basar)]와 한가지로, 본래는 동물 또는 사람의 육의 일이다(고전15:39). 또 신체 그것, 또한 사람 그것을 나타내는 말로서 씌어진다(고후 12:7,갈 4:13-,고전 7:28). 근친자(近親者)를 나타낼 수도 있다(롬 11:14,엡 5:29). 육은, [육적인 삶]이라든가, [마음]이라든가,
[영]에 대하여, 밖에서 관찰할 수 있는[겉 모양의](외견적, 롬 2:28), [겉 사람](고후 4:16)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경우는 몸 그것의 단순한 일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것의 육적인 성격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능력(권능)이신데 대하여, [육]인 인간은, 약하고(갈 4:13,롬 6:19), 무력하다(롬 8:3). [육]은 인간의 불완전한 한계성의 표현이다. 지식에 있어서 인간은 불완저하다(고후 5:16). 판단에 있어서도(고후 1:26), 의지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고후 1:17).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고 정욕(육신의 욕망)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고 말한 때, 육의 정욕이란 단지 정욕은 아니다. 그것은, 방향을 그르친 인간 그것을 의미한다. [육]인 인간은 죽는다. 겉 사람은 [날마다 낡아지고](고후 4:16), 보이는 것은 [순간적(지나가는 것)](고후 4:18)이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쓰면 없어지는 것](골 2:22)이다. [(즉), 육에 심는 자는 육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영에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둔다](갈 6:8).
결국 육체란 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존재를 가르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육체는 풀과 같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 육체를 묘사하면서 풀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성서에 있어서 풀로 번역된 말의 내용은 광의이고, 다양하다. 주로는 가축의 사료를 가리키기는 하지만, 일반 풀, 야채 등에 대해서도 씌어져 있다. 팔레스티나에서는 풀의 초장은 불과 수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오래지 못하고, 우계가 지나가면 곧 말라버린다(약 1:11). 그런데서 풀은 인명의 덧없음(시 90:5-,103:15,사 40:6,벧전 1:24), 단명에 비유된다(시 37:2,마 6:30,눅 12:28), 그리고 귀금속에 비해 가치 없는 것(고전 3:12) 등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육체를 풀과 같다고 묘사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제한적이고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3)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닌데 유한함.
\"카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돈벌이의 천재다.
재산 40억 달러, 자가용 제트 여객기 3대, 하루 용돈 28만 달러(약 2억원)하면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재산을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딸을 \"아라비아의망난이\"라는 별명을 가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대령과 결혼시켰다.
사정을 알고보니 이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 리비아는 캬쇼기에게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를 배럴당 싯가보다 3달러 싼 값으로 파는 계약을맺었다. 간단히 계산해도 하루 30만 달러(약 2억 1천만원) 이익을 캬소기는 보는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카쇼기는 하루에 2억1천만원씩 받고 딸을 카다피에게 팔았다는 애기도 된다. 정작 그 딸은 카다피를 만난 일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윌리암 캐리
나폴레옹의 대관식
35세의 나이에 스스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 1세가 황제가 된 지 7개월만에 정식으로 대관식을 가진 것은 1804년 12월 2일이었다. 대관식 때 교황 비오 7세에게서 왕관을 뺏어 스스로 쓰고 황후인 조세핀에게도 씌워 줄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나폴레옹. \'불가능은 없다\'는 정신력으로 한때 전 유럽을 지배했던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정신과 물질의 기여도는 10대 1이라고 했다. 정신력을 물질력보다 더 믿었던 나폴레옹은 병사 시절에 워낙 용감해서 \'꼬마 상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이탈리아 국경군 포병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0세 때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뒤에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독단적으로 남을 미워하는 일은 없었고, 다른 사람이 자기 말을 따르게 하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기억력이 뛰어났고, 한번 훈장을 받은 병사는 출세길이 열렸다.
그러나 크게 성공을 한 후 향락과 사치가 심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향수를 뿌려대서 적진에까지 냄새가 날아가는 바람에 나폴레옹이 어떤 진지에 있는지 알려질 정도였다. 적군은 나폴레옹이 없는 부대를 공격해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절대 권력이라는 마약에 정신이 황폐화되어 독단과 판단착오를 연발하고, 모스크바 원정 이래 실패의 연속으로 동맹군에게 체포되어 엘바섬으로 유배되고 만다.
루이 18세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알고 엘바섬을 탈출하여 다시 황제가 되지만, 워털루 싸움에서 패한 후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된 후 생애를 마쳤다. 5피트 2인치(157cm)의 키에 코르시카섬의 시골 출신임에도 \"나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고 장담을 하고 천하를 흔든 나폴레옹, 말년의 실패를 보면 인간의 영광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보여준다.
영국 대부호 캐리(Carey)씨는 죠지(George)와 윌리암(William)이란 두 아들을 두었다. 모두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수재로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후에 죠지는 국회의원이 되고 돈도 많이 벌어 부호 정치가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윌리암은 난데없이 인도 선교사를 지망하여 온 가족이 극력 반대하고 친구들은 어리석다고 규정지었다. 후에 대영백과사전에 이 두 사람이 소개되었다. 윌리암에 대해서는 1페이지 반을 할애하여 상세히 소개되었으나, 죠지에 대하여는 한마디 \"윌리암 캐리의 형이었다\"라고만 소개되었다.
2. 말씀이란 무엇인가?
[영] Word주(여호와)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뜻과 계획과 목적을 인간에게 알려주시고, 그것을 실현하시는 것. 그때, 말씀자체가 행위적인 의미의 권능(힘)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실로 말씀에 의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신다(창 7:3,6,히 1:3등). 그리고 자연과,특히 인간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반드시 성취하신다(겔 12:28). 하나님의 말씀은, 족장이나 영감자가 보는 이상, 혹은 꿈에 있어서 말씀하신다(창 15:1), 말씀은 율법 전체를 의미 하기도 한다(신 6:6),
말씀은 선지자에게 계시된다(왕하 7:1)등 기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신약에 있어서 [주의 말씀]은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 즉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서 전하신가르치심을 말하는데(막 2:2), 후에는 복음의 내용으로 된 그리스도의 생애와 부활을 가리키게 되었다(행 4:29). 요한복음 및 요한 서신에서, 그 의미가 더욱 심화되어, [말씀]은 그리스도 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같으신 존재로서,
천지 창조의성업에 참여하시고, 동시에 인간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인성을 취하여, 하나님을 인간에게 계시하신 분이다(요 1:1-18,I요 1:1).[말씀]으로 역된 히브리어는 [다-바-르 rb;D; (dabar)]를 비롯하여, [이야기 한다]의 명사형 [아-마르 rm\'a;(\'amar)]이고, 하나님의 [말씀](민 24:4)에도 인간의 [말(시 5:1)에도 씌여져 있는 명사 [에-메르 rm,aE (\'emer)] 및 그 변화형으로서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면서 시편에 약간 나오는 [임라- hr;m]ai (\'imrah)](시 12:6,기타), [오-메르 rm,ao (\'omer)](시 68:11), [밀라- hL;mi (millah)](시 19:4기타)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중요한 말은 [다-바-르]로서 다름 말들은 이에 비하면 약간 씌여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또한 주로 그것들이 운문에 씌여져 있는데 대해, [다-바-르]는 [말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한글 개역에는 40종류의 한글로 역되어 있다. [말씀](출 19:7기타 빈출) 외에도, [언어](창 11:1기타), [기록](대상 4:22), [명령](삼상 15:11기타), [글](대상 29:29기타)등 뿐 아니라, [행적](대상 29:29기타), [행하심](삿 6:29기타), [행위](애 1:17기타)등으로도 역되어 있다. 다시 그것은 [사건](민 3:16,신 19:15), [일](창 24:33,출 18:26기타)등의 의미도 보여주고 있다. 이상은 모두 히브리적인,
사물의 사고를 가장 대표적으로잘 나타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그것은 단지 언어 뿐아니라, [일]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행위이시다. 거기에는 하나님에 의해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다시 만들어지며, 심판되고, 혹은 측량된다는의미를 나타낸다. 어떤 경우 [하나님의 말씀]은 [행위하시는바의 하나님]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신약에도 [알씀]으로 역된 헬라어는 많은데, 두 가지가 중요하다. 그하나는 [레-마 rJh\'ma(rhema)]로서, 90회가량 씌어져 있다.
이 [레-마]는 단지 [말씀](마 4:4기타), [말](마 12:36기타)로역될 뿐 아니라, [일](행 5:32)로도 역된다. 그러나 신약에서 가장 많이 [말씀]으로 역되고,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로고스 lovgo\"(logos)]로서, 이것도 한글 개역에서 약 40종류로역되어잇는데, [말씀](마 7:28기타 빈출), [말](마 5:37기타), [도](행 8:21,14:25기타),[전도](골 4:3), [송사](행 19:38), [이유](벧전 3:15), [일](막 1:45기타)드의 의미를 가진다.[로고스]라는 말이 특별한 의미로 씌여져 있는 것은, 요 1:1,2,4,14인데, 그것은 그리스 철학에 있어서와 같은 우주의 이성 또는 하나님과 구별되면서 [하나님]이신 바의 [하나님 독생자]이다.→독생자
1) 말씀은 씨앗과 같다.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1-15)
속에서 역사함. 변화를 일으킴. 언제고 능력이 나타남.
2) 말씀은 살아있고 영원하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요일 2:15이하
살이있다는 말
죽어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말. 역사한다는 말. 이루어진다는 말
영국의 탐험가요 선교사인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16년간을 보낸 후 귀국하여 글래스고대학에서 강연하고 나서의 일.
한 기자가 리빙스턴에게 \"당신은 온갖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리빙스턴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저를 지탱해 준 것은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는 요한복음 14장18절 말씀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마태복음 28장20절의 말씀이 저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확립한 것은 정치적 술책이나 무력의 힘이 아니라 바로 거룩한 말씀에 대한 설교였다. 루터는 후에 그 사실을 이렇게 진술하였다. \"나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설교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나는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 자신은 잠을 자거나 나의 친구 필립과 암스도르프와 함께 비텐베르크에서 교제하는 동안에 말씀은 군주나 황제로서는 결코 손상시킬 수 없는 교황권을 그처럼 힘없이 약화시켰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말씀이 모든 것을 해냈다.\"
일점 일획도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개역한글판 마 5장)
일간스포츠, 2001년 7월 1일
독일 출신의 슈퍼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30)가 올해 크리스마스에 출간 예정인 누드 사진 성경책에 \'이브\'로 변신, 자신의 몸매를 공개할 예정이다.
미국의 연예 주간지 <스타>는 최신호에서 시퍼가 스웨던의 출판업자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로 내놓을 X 등급 출판물인 누드 성경책을 찍는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아담 역에는 의류업체 캘빈 클라인의 속옷 모델인 마커스 셴켄버그가 맡을 것이라고 전했다. 셴켄버그는 얼마 전까지 TV 시리즈 <베이 워치>의 섹시 스타 파멜라 앤더슨의 애인이었다.
또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가 자신의 이름에 맞게 마리아(마돈나는 성모 마리아를 뜻함)로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각 역할을 맡아 누드 사진을 찍을 스타들에게는 하루에 15,000달러(한화 2,000만원)씩 주어질 예정이라고.
이 누드 성경책 <굿 북>(Good Book)을 기획하고 있는 스웨덴의 출판업자 구스타프 빌헬름 헤스테트는 \"성경을 모독하거나 기만하려고 하는 것 아니다. 옛 문헌을 현대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식상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보다는 슈퍼 모델들이 나오는 성경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독교 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200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미국 기독교 연합회 제이슨 켐벨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누드 성경책을 만드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하나님에 대한 공격이다. 이 책이 나오도록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분노했다. 이 성경책이 출판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적용
\"성경을 모독하거나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라 옛 문헌을 현대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일 뿐이다\"라고 반문하는 출판업자의 변을 들으면서 저질문화를 이용하려는 상업주의의 잘못된 관점의 극치를 볼 수 있다. X 등급 출판물인 누드 성경책이라니? 돈을 위해서는 스스로세운 예술이라는 정당성을 내걸고 계약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은근히 이 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며 이를 용납하며 질적으로 열등한 것에 중독되어 관음증에 빠진 현대인들의 죄에 대한 무감각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워낙 다원화되어 버린 사회가 되었기에 세속 사회에서 일어나 현상들이 지금도 교회에 영향을 끼치며 깊이 스며들고 있다. 이는 적자생존의 원리와 냉혹하고 무자비한 사회 발전, 그리고 19세기의 공리주의 개념을 이끌어 낸 다윈의 진화론을 따라 사람들은 자신들과 그 주변세계를 단지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만 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문화를 대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경계선으로 영성이나 세속성이 우선 순위로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죄라고 부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명확하게 죄 된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잘라 분리시켜야 하며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하시면서 피조 세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자유로움을 허락하셨지만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라는 분명한 질서 위에서 세우셨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심히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 순위에 두고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인 문화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창조해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쉽고 편한 길을 택할 지라고 그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길이 아니라면 과감히 그 길에서 발을 돌이킴의 결단이 필요하다. \"...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적극적으로 대처한 요셉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3) 복음이 곧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장)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장)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요1 1장)
십자가와 부활
3. 육체와 말씀의 상관관계는?
1) 육체에 말씀이 없는 자
2) 육체에 말씀이 있는 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1 5장)
말씀이 거듭나게 함.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장)
3) 육체에 말씀이 있으려면
모셔들여야 함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장)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장)
믿음 요1:12
결론
말씀과 관련하여
말씀을 영접하라
예수 영접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
교회 다니는 것은 교양이나 취미로 생각지 말라.
영원한 삶과 영원한 심판의 갈림길이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말씀을 배우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토속민의 원시 방언으로 번역하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며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는 것으로 족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음성으로 전달되는 언어가 얼마나 부정확한가는 잘알려져 있다.
콩고에서 일하는 선교사가 성경 없이 단지 듣기만 하는 콩고 교인들의 성경 지식을 검사해 보다가 몇가지 놀랄만한 사실들을 발견하였다. 어떤 사람은 야이로의 딸 이름을 삭개오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지붕을 뚫고 달아내린 병자는 열대마마를 앓고 문둥병에 걸렸다고 하는가 하면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가져올 것을 잊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아기 예수를 성전에 바쳤을 때 보고 기뻐한 이는 다윗 왕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이 같은 오해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들도 성경을 보지 않고 남에게 들은 것만 가지고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일주일에 한번 주일학교에서만 성경말씀을 듣는다면 그같이 되지 않겠는가?
성경을 안 읽으면 잘못된 지식에 빠짐. 이단에 잘 속음. 열심은 있는데 교회에 피해를 줌. 게을러짐.
프랑스 시인 빅토르 위고는 \"영국이 세익스피어를 만들었다면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영국은 원래 해적의 나라요, 도적들이 들끓는 야만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성경을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신사적인 나라가 되었다. 성경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성 어거스틴이나 죠지 뮬러도 죄악의 밑바닥을 걷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받아 들인 후 그들은 변화되었다.
말씀에 합당하게 살라
미국 시카고에서 기독교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 러시아 교회에서 3명이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변증할 수 있느냐?\" 하는 사안을 가지고 사흘동안 토의를 하는데, 러시아 교회 3명은 전혀 아무 소리를 안하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그들에게 소감을 얘기하라고 했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사흘동안 이 회의를 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오류가 없다는 것을 저절로 알텐데 그런 것 가지고 뭘 회의를 하고 앉아 았습니까?\" 그 말을 듣고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너무나 숙연해졌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말씀의 권위와 영광과 말씀의 능력을 알 것입니다.
R.A 토레이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 많은 번역이 있는데,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성경번역이 있다면 그것은 내 삶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잠시 넘어짐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말씀 앞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들을 것이비다. 말씀 위에 자기의 행보를 세울 것입니다.
흔들릴 때마다, 연약해질 때마다, 주의 도우심을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보는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우리는 세상의 온갖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다. 말씀과 삶이 일치될 때 비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비참한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말씀을 전하라
전당포주인이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 다음 주위사람에게 전도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권면했다. 그 때 술취한 사람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여보슈. 내가 정말 지옥과 천당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걸 확신한다면 당신처럼 이렇게 소신 없게 전도하지는 않겠소. 나는 더 열성적으로 전도할 거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크리스천은 그 때부터 열렬하게 전도하며 구제활동을 폈다. 그가 1978년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우스다.
벨기에 태생의 선교사 다미엔은 나환자들을 위해 살다 결국 자신도 나병에 걸려 죽은 위대항 성직자다. 1873년 그가 나환자 수용소인 몰로카이섬으로 가게 됐을 때 그곳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매일 수십명이 죽어나갔고 환자들은 자포자기에 빠져 살고있었다. 다미엔은 그런 상황에서 10년을 전도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못했다.
어느날 그의 손에 상처가 생겨 나병이 전염되자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이제야 나환자들에게 전도할 자격을 갖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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