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 없는 주의 말씀

 변함없는 주의 말씀/벧전1:20-25

변함없는 주의 말씀/벧전1:20-25


중국 고전 \"여씨 춘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는데 강에 한 복판에 이르게 되어서 그만 실수를 해서 가지고 있던 귀한 칼을 강물 속에 빠뜨리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이 젊은이는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얼른 빼서 칼을 떨어뜨린 그 장소의 뱃전에다가 표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루터에 배가 닫자마자 그는 황급히 뛰어 내려서 물 속을 뒤졌습니다. 아무리 물 속을 뒤져보아도 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고사 숙어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됩니다. \"각주(刻舟)\"는 배에다가 표시를 새겨 놓고, \"구검(求劍)\"은 그 밑에 가서 칼을 구했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탄 배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모르고 배에 새겨진 표시 밑에서 칼을 구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을 비웃는 말입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 그 사람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옛날 헬라의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관찰하면서 이 세상 속에서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만물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모든 것은 다 변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말이 있습니다. 판타레이!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가? 그들은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만이 진리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가리켜 자연주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보이는 자연을 사유의 대상으로 하였을 때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변하게 됩니다. 사실은 모든 것이 다 변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인간 됨의 기초입니다. 모든 것은 결국 다 변하고 내게로부터 떠나갈 것이라고 알 때에 겸손이 있고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변하고 만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허무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것도 믿고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지혜로운 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고 변하지 않는 기초 위에 그의 생을 세워 나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먼저 변하는 것이 무엇이냐? 24절에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모든 육체와 그 모든 영광! 이것은 다 변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피조된 이 세상,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들은 다 변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풀과 꽃\"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파릇파릇 싹이 난 풀을 보면 언제나 그렇게 푸르게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누렇게 변해 버립니다. 저 꽃송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며칠 있으면 다 떨어져서 초라한 몰골이 될 것입니다. 인생도 그와 같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안 됐습니다만 사실 지식이나 학문도 변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지식이 내일의 지식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이런 주장이 나오면 반드시 내일 반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 절대 지식이 있던가요? 오늘의 정설이 내일에는 소수 의견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 받은 학교 졸업장 가지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노랗게 바래버린 졸업장 가지고 \"내가 어느 학교 나왔네\"해봤자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쌓은 지식은 이제 다 잊어 버렸는데 말입니다. 어디 기억이나 납니까? 옛날 배운 것 하나도 소용없습니다. 사실은 명예도 변합니다. 옛날에 받은 칭찬 지금 남아 있던가요?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정치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이 나라 정부의 지지율이 90%가 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지지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정부를 밟고 올라서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단 말입니다. 세상의 인식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명예나 칭찬을 구하면 허무해 집니다. 이것 구하다가 골병든 사람 많습니다. 우리의 가치관도 변해 가는 것입니다. 그대로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느 시어머니가 아들을 장가를 보내 놓고 분가를 시켰는데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아들네 집에 가 보자. 잘 지내나?\"하고 방문을 해서 부엌에 들어가 보았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밥을 해 먹은 흔적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묻기를 \"얘, 너희들 밥해 먹고 살기는 하냐?\" 하고 며느리에게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며느리 하는 말이 \"어머니, 우리들은 아침에는 우유 먹고요, 점심에는 각자 해결하고요, 저녁은 회식이 많아서 밥할 기회가 없어요.\" 그러더랍니다. 이 어머니가 하도 화가 나서 \"내가 내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따뜻한 밥도 안 해 준단 말이냐? 네가 여자냐? 밥도 못하게!\" 그렇게 한참 잔소리를 했는데 이 며느리가 그 말을 듣더니마는 \"어머니 이리 좀 와 보세요.\"하고 자기 방으로 끌고 가서 문을 딱 닫더니마는 \"어머니, 컴퓨터 칠 줄 아세요? 영어 할 줄 아세요? 피아노 칠 줄 아십니까? 운전할 줄 아세요?\" 이렇게 묻는데 하나도 하는 것이 없어요. \"난 못한다. 아무 것도 못해.\" 그랬더니 며느리가 하는 말이 \"밥하나 하는 것 가지고 뭘 그렇게 재세요.\" 그랬답니다. 이 말에 어머니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손 들고 \"그래 그래. 알았다. 이제 밥을 먹든 굶든 너희들 맘대로 해라.\" 하고 나왔답니다. 세상 많이 변했지요? 정신 차려야 됩니다. 옛날 것을 가지고 나섰다가는 봉변 당합니다. 아직 이런 소리 안 들었으면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지요. 자기들끼리 화목하게 살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더 기대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 시대는 PR시대라서 외모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모도 뭐 믿을 것이 있나요? 전에는 안 그러더니만 요즘 와서 머리가 많이 빠집니다. 그래서 살살 빗어 보는데 그렇다고 안 빠집니까? 다 빠질 것은 다 빠지더라고요. 이 피부라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늙는 피부 감추려고 고생들이 많은데 어느 분은 보니까 나이는 들었는데 얼굴은 팽팽한 거예요. 주름살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는 예쁘다고 하지만 징그럽습니다. 다 늙는데 얼굴만 팽팽하다고 그게 안 늙는 겁니까?



옛날에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는데 그 양반이 하루는 전투가 없는 한가한 날을 택해서 부하 장군들과 함께 씨름 대회를 했답니다. 씨름을 했는데 아무리 왕이지만 장군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래서 벌렁 나가 자빠졌습니다. 모래를 털고 일어나면서 자기가 엎어진 곳을 보니깐 한심한 거예요. 그래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당황한 부하들이 \"왕이여, 어찌하여 우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왕은 \"내가 아프거나 져서가 아니다. 내가 넘어졌다 일어선 곳을 보니 한 평 땅 밖 안 되는구나. 내가 세상을 다 정복했는데 결국 내가 묻힐 곳은 저 조그마한 땅덩어리뿐이란 말이냐? 이것이 인생이더냐?\" 그러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왕입니다. 그도 한 평의 땅에 묻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만든 나라, 그가 누렸던 권세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인생이라고 하는 것 대단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에 기대를 걸고 살면 한심하고 기가 막힌 겁니다. 그러므로 변하는 것, 없어지는 것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떠나가고 변해 가며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마음 가볍게 사세요.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영원, 영원\" 합니다만 다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것이요, 육체의 것이요, 육체의 영광일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구하므로 낙심과 좌절, 분노가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육체와 그 영광은 변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25절을 봅시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없이 세세 무궁토록 계십니다. 그렇다면 변하는 인간이 변하지 않는 말씀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식론에서 중요한 명제가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계시입니다. 계시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경험이나 능력이나 관찰, 소위 사람의 능력으로 스스로 알 수 없는 진리의 내용을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지창조는 지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지식입니다. 아무도 그 때에 없었기에 이것은 계시에 속하는 것입니다. 계시에 의하여 창조 사실이 인간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영원한 진리를 계시라고 하는 통로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니다.



문제는 변하는 인간에게 계시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 입니다. 인간의 불완전 때문에 진리가 왜곡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계시의 전달 과정이 나옵니다. 그것을 영감이라고 말합니다. 이해와 표현에 한계를 가진 인간에게 성령이 영감을 주셔서 우리가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언어와 문자로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그렇게 계시된 말씀은 이제는 사람이 사는 삶의 현장으로 파입해 들어옵니다. 이것을 구원 역사라 하고 이 구원의 기록이 성경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변함없는 계시에 대한 변화하는 인간의 믿음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 속에는 영원한 말씀에 대하여 믿고 순종하고 복을 받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의 기록이 있는가 하면, 그 영원한 말씀에 대하여 변화하는 짧은 인간의 소견으로 거부하고 도전하고 반발하고 그러다가 저주받고 멸망한 인간들의 기록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진리의 내용도 가르쳐 주셨고 이 진리에 대하여 인간의 반응하는 과정과 결과도 명백하게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이 내용을 알면서도 다시 확인하려고 하는 의심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람은 거짓말도 하고 말도 뒤집지만 하나님은 변화가 없으십니다.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내가 왜곡한다고 해서 말씀이 왜곡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복된 길로 가면 복을 받을 것이요, 저주받은 길로 가면 그는 저주받을 것입니다. 내 짧은 변화하는 인생 속에서 이것을 다 판단 못할 뿐이지 세월이 가면서 말씀은 우뚝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배워야 하고 배운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이 많은 계시의 내용을 한 마디로 \"복음\"이라고 요약하고 복음의 핵심을 설명합니다. 20절과 21절을 봅시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말씀의 내용은 많습니다만 이 말씀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 가지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오시었다.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것이 계시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을 믿을 때에 그는 거듭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믿을 때에 모든 죄인을 살리신다고 하는 약속이 그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환자 한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앙을 확인해야 되겠다 싶어 다시 한번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선생님 오늘밤에라도 만약에 죽으시면 천당을 가실 수 있겠어요?\"하고 물었습니다. 아주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그리고 못 갈것이라 대답했습니다. \"왜 못 갑니까? 천당 갈 만큼 좋은 일을 못하신 모양이지요?\"라고 했더니 그렇다고 합디다. 죄를 많이 졌기 때문이랍니다. \"그럼 얼마만큼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가겠습니까?\"하니까 \"그거야 알 수 없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천당 가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속에 선한 일을 못하고 죄를 짓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만큼 선한 일을 하면 천당 갈 수 있겠습니까? 측정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천당이란 선한 일을 많이 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복음입니다. 맞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무엇을 믿나요?\"라고 물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죄보다 크다는 것만 믿으세요.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시고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께서 날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시면 내 죄가 사해집니다.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라고 믿을 때 구원받게 됩니다.



이 영원한 말씀을 믿고 받으시면 당신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간단하네요. 그럼 제가 믿을께요.\" 그러기에 \"이 때다\"하고 안수를 하고 영접 기도를 뜨겁게 했습니다. 기도를 받더니만 마음이 평안해지는지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려면 그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만이 사람을 사람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죄인에게 위로를 줍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누가 어떤 위로를 줄 것입니까? 우리가 참 귀한 것을 자손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에게 다 있는 줄로 압니다만 많은 것을 남겨 주려고 무리하지 마세요. 오직 하나, 말씀만 심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부유함은 파멸로 갑니다. 하나님 없는 지식은 교만으로 갑니다. 하나님 없는 문화는 수렁으로 빠져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여기에 보람된 삶의 길이 있지 않습니까?



위대한 스코트랜드의 시인인 월터 스코트 경이 죽을 때가 다가와지자 자기 아들 로카드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에게 그 책을 가져다 다오.\" 이 말을 듣고 아들이 묻기를 \"아버님, 아버님의 도서관에는 수천 권의 책이 가득한데 그 책이 뭡니까?\" 그 때 이 사람이 위대한 말을 합니다. \"얘야, 세상에서 책은 오직 한 권밖에 없는 거다.\" 그제서야 아들은 눈치를 채고 아버지에게 성경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성경책을 두 손으로 받아서 그것을 가슴에 얹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책은 꼭 한 권뿐이다.

내게 그 오래된 옛 이야기를 들려 다오.

그 때에 전혀 쇠하지 않을

날갯짓하는 말씀이

내 영혼을 들어 영광으로 인도하리…

책은 꼭 한 권뿐이니.



이렇게 시를 읊고 죽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류역사를 바꾸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이 우주와 삶의 신비를 모두 벗겨 주고 이 세상에서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책은 이 세상에 단 한 권 성경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어찌 변하는 인간이 저 영원한 나라를 맛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영원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인생이 영원한 말씀을 듣고 믿고 그 속에서 우리는 영원을 만나며 경험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방향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것을 막지 못합니다. 역사속에서 몇몇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이것을 말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그들의 육체, 그들이 누렸던 육체의 영광만 사라졌을 뿐입니다. 오히려 말씀만은 지금도 우뚝 서서 당신이 진리이심을 우리에게 명백하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질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방탕입니까? 내 가치관의 초점이 무엇입니까?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육체와 그 영광에, 그 시들 것에 두고 계십니까? 오직 변하지 않고 세세토록 계신 말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인격과 생의 목표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의 근거를 이 말씀에 두어야만 그는 실망하지 않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참된 생의 의미가 있고 용기와 소망이 있고 자유와 영생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세세토록 계신 말씀에 우리의 삶의 기초를 두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육체와 그 영광이 대단하다고 해도 풀과 같고 꽃과 같은 이 연약한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우리에게 알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계시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변치 않는 말씀에 소망을 두지 않고 변하는 헛된 것에 기초를 세우며 사는 어리석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로 변하는 것을 작게 여기고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을 크게 보며 오늘도 말씀에 내 삶을 세우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세월이 가며 계속 그 은혜를 확증 받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