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같이 대우 하심

아들과 같이 대우하심/히12:5-13/육이오(6.25.)기념예배설교

아들과 같이 대우하심/히12:5-13
2002-08-07 13:38:19 read : 26



주제 ; 아들

찬송 ; 하나님은

(히12:5-13) 또 아들들에게 勸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勸勉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 主의 懲戒하심을 輕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落心하지 말라 主께서 그 사랑하시는 者를 懲戒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懲戒를 받기 爲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待遇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懲戒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懲戒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私生者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肉體의 아버지가 우리를 懲戒하여도 恭敬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靈의 아버지께 더욱 服從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暫時 自己의 뜻대로 우리를 懲戒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有益을 爲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參與케 하시느니라 무릇 懲戒가 當時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後에 그로 말미암아 鍊達한 者에게는 義의 平康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疲困한 손과 軟弱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爲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지난 한 주간 저는 참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 죄송하고 여러분들께 죄송하고 주일까지 지키지 못했으니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되는지 정말 시간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을 버리지 않고 사명을 주신지 25년 만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열심히 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또 한 번 조율을 하셔야 되겠다 하셔서 병원에 눕게 하신 것이라 여기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아니시라면 이렇게도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이번에도 다시 기도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계산을 해보니 앞으로 정년이 되려면 20여년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 달리게 하려면 한 번쯤은 보링을 하셔야 할 것 같아 몰아넣으신 것으로 여기며 기도하며 보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여러분은 제게 많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25년 전에도 교회의 사랑과 기도가 있었고 성도들의 사랑과 기도가 있었고 나를 아는 많은 이들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때와 이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저희 아버님 어머님의 기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의 기도 덕택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그분들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울컥 울음이 나왔습니다. 부모님의 기도가 필요한때에 계시지 않으니 얼마나 세월이 얄미운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침상에서의 저의 기도는 이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확인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임을 다시 확인하고 남아 있는 여생 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다시 아들로 대우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병원에 가지 마시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 하시고 더욱 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저는 병원까지 가서 고생하고 나서야 깨달은 일이지만 여러분은 이 말씀 가운데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일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참 아들과 사생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인\' 이라는 게 뭡니까? \'예수를 믿는다\'란 하나님의 자녀 됨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게 하고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 되심을 알게 하고 믿게 하고 그로써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될 때, 바로 내가 아들이 되고 내가 딸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 4형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삼형제는 항상 불만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어떤 때 뭘 잘못하면 아주 연대 기합을 줍니다. 아들을 모조리 세워놓고 때리는데 형님은 때리지를 않습니다. 삼형제만 때리고 맏형은 절대 때리지 않습니다. 이 삼형제가 늘 불평입니다. \'어째서 우리 셋만 때리고 맏형은 안 때릴까?\' 오랜 세월 후에 그 어머니로부터 그 비밀을 들었습니다. 그 아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남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첫 아이를 낳다가 부인이 죽었어요. 바로 그 때 어머니께서 \'내가 그 아이를 키우겠습니다\'하고 들어와서 자녀를 셋을 더 낳은 것입니다. 꼭 같이 키우며 이건 비밀로 하였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아이들끼리는 전혀 모릅니다. 친형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나 이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자기 아이는 마음대로 때려도 저 아이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답니다.




탕자가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싫었고 간섭이 아주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탕자가 되었습니다. 방황하다가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코 탕자로 영접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아들로 영접합니다. 그 아들이 뒤늦게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집을 나가지 말아야 할 것인데, 돌아왔으면 벌써 돌아왔어야 할 것인데,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줄 알았다면 내가 왜 밖으로 방황해야 했던가?\' 많이 회개하고 뉘우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참 아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헬라어로 자녀를 말할 때, \'테크나\'가 있고 \'쿠이오스\'가 있습니다.

\'테크나\'란 일반적이요, 그리고 철없는 아이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말 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될 때 그런 정신적 차원에서 비로소 참 아들이 될 때 가서 \'쿠이오스\'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뜻입니다.




자, 이제 그 아버지가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 것입니까? 오늘 성경말씀에는 특별히 헬라어 원문에 있어서 다섯 가지 단어를 사용해서 그 아버지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파라칼레오\'라고 하는 말 입니다.

\'파라칼레오\'라고 하는 이 말은 흔히 우리가 말할 때 \'위로한다\'하는 말로 번역합니다. 위로한다. 어린 아이들, 철없는 아이들 잘못될 때 그걸 위로합니다. 울고 있을 때 위로합니다. 괴로워 할 때 위로하고 달랩니다. 권유합니다. 유치하게 갈 때 부득불 그를 위로합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랩니다. 이것이 \'파라칼레오\'입니다.




두 번째 오늘 성경에 나타난 것은 \'디아레게타\' 입니다.

이 말은 영어로 번역하면 Discuss입니다. 이것은 이성에 호소하며 이치를 들어가며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봐라. 이렇지 않느냐? 네 생각엔 어떠냐? 네 스스로 판단하라\'하고 이성에 호소하며 설득을 하고 논리적으로 가르칩니다. 이건 상당한 높은 수준의 사랑입니다.




세 번째 \'엘렌코메네오스\' 꾸지람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꾸짖다\'는 말입니다. 일방적입니다. 여기 강한 의지가 있어서 일방적으로 \'너는 잘못 됐다\'하고 판단합니다. \'지금 이것, 이것이 잘못되고 있다. 너는 지금 잘못 가고 있다.\' 확실하게 심판을 합니다. 확실하게 알도록 꾸짖습니다.




네 번째는 \'파이데이아스\' 입니다.

이 말의 뜻은 \'훈련\'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있어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오도록 효과적으로 훈련을 하십니다. 거기에 도달하도록 훈련 하십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미련한 자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비상조치를 사용합니다. 훈련하십니다.




옛날 유명한 신학자요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섬기라고 내게 건강을 주셨지만 나는 세상을 위해서 다 써버렸습니다. 이제 저를 일깨워 주시려고 저희에게 병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내 힘으로 못 고치는 것을 고칠 수 있도록, 내 힘으로 떠나지 못하는 것을 떠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권고하심을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여러분 상처 없이 사람 되는 거 봤습니까?

뼈아픈 경험이 없이 예수 믿는 사람 봤습니까?

매 맞지 않고 사람 되는 거 보았습니까?

많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 자녀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의미가 있고 훈련 속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이 게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는 것, 하도록,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 깨닫도록, 강하게 역사합니다.




다섯 번째 \'마스티고이\' 입니다.

체벌을 말하는 것입니다. 채찍질하신다. 체벌 속에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 계시가 있습니다. 강권하시는 교육이 있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종합하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징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의지, 양보할 수 없는 확실한 하나님의 의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엄청난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로 하시고 권면 하시고 꾸짖기도 하시고 훈련케 하시며 체벌 하셔서 하나님의 듯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되어야 하겠습니까?




1. 아들이기에 고난이 있게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고난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기에 받는 것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우리는 사생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징계를 받을 때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신자의 잘못을 고치기 위함이고 또 한 가지로 신자를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당할 때 신자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되며 그 고난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우리는 징계를 당할 때 그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히12:5)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아들을 권면하시는 것 같이 오늘날도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격려하시고, 지혜롭게 하실 것입니다.




2. 육신의 부모보다 나은 징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가 우리를 징계하시듯이 우리를 징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육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은 징계를 하십니다.

육신의 부모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십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해 교훈하고 징계하지만 잘못되게 징계할 수도 있고 그 징계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는 잘못이나 실수가 없음은 물론 자신들의 백성들 속에 자신의 성품을 넣어주고자 하는 영원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3. 복된 열매를 맺는 징계 입니다.




징계를 받을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괴롭고 슬퍼 보입니다. 그러나 연단을 잘 받으면 복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히12:10-11)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징계라는 연단 후에 받게 되는 복된 열매 가운데 하나는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되는 것\"과

\"의의 평강한 열매\"입니다.




신자가 징계를 통한 죄를 그치고, 의로운 일을 힘써 행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가며, 하나님과 평화하며, 여러 이웃과도 평화하며 살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훈련시키는 수단이며, 내세에서의 더 큰 상급을 보장해 주는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또한 징계는 신자로 하여금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를 치료받게 합니다.

(히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은 기도에 연약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징계는 신자들로 하여금 기도에 열심을 낼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저는 다리는 의의길 인줄 알면서도 힘 있게 달려가지 못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징계는 신자로 하여금 의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게 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징계는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며, 묵상하는 생활, 전도하는 생활을 힘차게 하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을 생각 하십시오,

요셉을 생각 하십시오.

시험이나 고난은 연단과 신앙적 성숙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도들의 영적 미숙과 영적질병에서 연유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징계를 받을 때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됨을 깨달아 신앙에 유익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극심한 육체의 가시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으나 이는 자신의 유익을 위함임을 알고 감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듯을 이루어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설교를 듣고 대답하기




1.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확신하십니까?

2.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3. 고난 중에 있을 때 무엇을 생각 하십니까?

4.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저는 다리는 무엇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까?

5. 나의 육체의 가시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