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처럼 쏟아지는 불 마24:32-44
오늘은 6.25가 발발한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그날도 일요일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날 아침에 북한은 탱크와 비행기로 38선을 전면적으로 밀고 내려왔다. 우리 군인들은 외출 외박을 하고 있었고 군 지휘관들은 밤이 늦도록 파티를 즐기고 깊은 잠에 떨어졌다. 극히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어제는 오늘과 내일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살펴봄으로써 새것을 안다는 말이다. 시대는 반복하는 축을 가지고 있고 옛날을 읽으면 현재를 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인자가 오시는 때는 재림의 때를 말한다. 재림의 때가 어떠한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주님은 이전 시대의 교훈을 보여주셨다.
1. 재림의 때와 노아의 때
(1) 노아의 때의 중요성
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노아의 때에 심판이 있었던 것 같다는 경고를 할 때 언급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눅 17:27)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란 말은 두 가지 면에서 살피게 된다. 하나는 여느 때와 별로 다르지 않게 먹고 마시는 일과 결혼 등의 인생 대사에 관심을 갖고 있던 때에 그들이 예기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심판을 맞이하되 덫과 같이 맞이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삶이 인생의 육체적 향락에 빠져 있을 때라는 말이다. 지금처럼 먹고 마시는 일에 몰입해 있던 때가 노아의 때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처럼 육체적 쾌락을 위해 이혼과 재혼을 쉽게 하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② 믿음의 후사와 멸망의 후사를 언급할 때 노아의 때를 언급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다가 간다. 하나는 의의 후사요 다른 하나는 불의의 후사이다. 의(義)란 무엇인가? 옳음이다. 무엇이 옳은가?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 지금은 그분의 말씀을 의롭다고 시인하지 않을지라도 곧 그렇게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롬 3:4,5)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게 될 아브라함도 그분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그대로 옳다고 인정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 곧 하나님의 말씀은 의롭다고 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고 그가 그 말씀에 순종하자 그를 새로운 믿음을 따른 이들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③ 구원과 심판을 언급할 때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이 말씀은 놀랍고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물침례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로 말미암아 겨우 8명만 구원을 얻었다. 배 주(舟) 자에 입 구(口) 자와 여덟 팔(八)자를 합하면 배 선(船)자가 된다. 참으로 재미있는 글자이다. 당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았을까 따져보면 약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인정된다. n번째 세대의 총 인구는 2(3)n과 같이 계산될 수 있다. 1850년에 비로소 세계의 총 인구수를 통계로 내었는데 10억의 인구였다. 이때 온 세상에 사람들이 가득하게 살고 있었던 것처럼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도 이 지구상에는 가득 찬 인구가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창세기 대홍수\'라는 존 위트 콤과 헨리 모리스가 공저한 책을 참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의의 후사로 8명만이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물침례를 순종하는 일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침례는 육체의 때를 씻는 것이 아니다. 율법에서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었다. 그러나 진리는 영혼을 깨끗케 한다(벧전 1:22-25; 2:8; 4:17).
④ 심판을 경고하실 때 언급할 때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
옛 세상은 노아가 살고 있던 세상이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그 세상이 현 세상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현 세상은 장차 오는 세상과도 다르다(히 2:5). 그렇다면 옛 세상은 어떠했는가? 그곳은 현재 지질학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지구 전역이 아열대성 식물이 자라나 무성한 숲을 이룬 기후였을 것이 틀림없다. 어디에도 북극, 남극의 지독한 추위는 없었으며 심지어 높은 산 역시 삼림으로 울창했을 것이다. 그것들이 매몰되어 탄화된 것이 석탄층임을 과학자들은 증거한다. 적도 역시 지나치게 뜨거운 열대기후가 아니라 남극이나 북극보다야 다소 낮은 아열대성 기후였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일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둘째 날 창조시에 지으셨던 궁창 위의 물이 지구를 감싸고 있어서 온실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며, 그 물이 쏟아져내려 세상을 뒤덮게 된 것이다. 그 증거인 무지개도 그때부터 존재하였기에 당시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물심판에 사용되었던 우주의 구조에 변화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⑤ 특히 베드로후서 3장 1-13절에 재림의 때에 대해 언급할 때 전에 물로 씻어서 깨끗하게 했으나 물로도 깨끗케 하지 못한 것을 불로 소멸할 것이라고 언급하셨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벧후 3:5)
하나님의 말씀으로 땅이 물로 말미암아 물로 성립되었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처음에 땅이 지음받았을 때 지표면은 온통 물로 덮여있었고 하나님의 신(영)이 운행(새가 알을 품듯이 감싸고 역사하심)하셨다(창 1:2). 이 물들 중 궁창에서 지구를 감싸는 층이 생기게 되었고 다시 물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도록 말씀으로 명하셨다(창 1:9,10). 이때 지구 지반의 융기와 침강이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지각변동이 일어난 원인으로는 물이 우선적 요인으로 작용했기에 \'물로 말미암아\'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지표면은 지금과 매우 달랐을 것이다. 산들은 그렇게 높지 않았을 것이고 땅들은 지금보다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궁창의 물이 수문을 열 듯이 터져 나오고 지하수가 강렬한 지각변동으로 분출함으로써 새로운 지표면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강렬한 물살은 지표면에 있던 식물 및 동물과 함께 흙을 휩쓸어 갔고 퇴적물 속에 순식간에 매몰시켜 화석으로 흔적이 남게 했으며 지표면 전체를 덮었던 물은 다시 산은 오르고 침강이 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수조를 형성하여 현재의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 104:7-9)
(2) 노아의 때의 역사성
① 1998년 12월부터 99년 3월까지 예술의 전당에는 중동지역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들의 전시회가 열렸었다. 주전 3500년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물표(物標; token)를 사용하던 사회상을 오늘날 발굴된 고대 유물들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유물들 가운데는 도장(印)도 있고 토기에 글로 새겨진 것이나 그림으로 사실을 증거하는 것 등 여러 가지 것이 눈에 띈다. 누구든지 이것을 보면서 그런 나라가 과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② 성경의 연대는 계산할 수 있다. 다윗이 나라를 세운 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때와 모세의 출애굽(주전 약 1300년)과 요셉의 애굽이주와 그 이전에 족장들의 연수가 일일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아담 이후 아브라함이 출생하기까지 1948년이 흘러갔다. 이는 이스라엘 독립 년도와 같은 기간이다). 아브라함이 부름받은 때부터 다윗왕국 건설은 약 1000년, 교회 탄생일인 오순절날까지가 거의 2000년이다. 그러므로 주전 3200년이라면 아브라함 이전 천년기로서 홍수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던 시대였다. 바로 그 이전 시대는 아담이 공존하던 시대였다(연대표는 별도로 참고).
③ 다른 유물들을 증거로 하여 옛 역사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듯이 오늘날 많은 유물들은 성경의 역사를 사실로 뒷받침해 준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은 분명히 뛰어난 문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는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물로 말미암아 땅에 매장되었다.
(3) 예수께서 직접 언급하셨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가 진실임을 믿어야 한다. 노아의 홍수에 대한 증언은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증거하신 것이므로 틀림없는 진실이다. 예수님이야말로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또한 만물을 친히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노아의 홍수로 옛 세상을 언급하시면서 다시 현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또한 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2. 노아시대와 현시대의 유사점
(1) 노아의 때는 문화 생활에 치우쳤으나 신앙생활에서는 멀어져 있었다(38,39)
시대마다 문화가 있고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 문화의 주역이 되고자 안감 힘을 써왔고 그런 사람들은 인간 사회에서 문명의 혜택을 누려왔다. 오늘날 문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고 체계화되었고 공유화 되었다. 온세계의 문화가 하나로 묶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간다. 얼마나 급히 변하는지는 50년만에 6.25의 재조명이란 말이 새롭게 들리지 않을 만큼 되었다. 누구든지 현 세상의 문화의 주역이 되고자 노심초사하며 살아가는 자는 세상에 내려질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임금은 사단이며 성도는 어떤 형태로인가 거기서부터 나온 자들이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2) 불신앙은 심판의 예고를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 결국 살릴 것은 살리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심판을 계획하시되 홍수 심판을 계획하셨다. 그러나 당시에 비는 내리지 않고 땅에서 이슬이 맺히는 것으로도 식물이 충분히 자랄 수 있었다(창 2:5,6). 누가 비가 온다는 말을 믿고 더구나 방주를 예비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만이 방주를 지을 것이다.
물로 씻어서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나 불로 씻어야 비로소 깨끗케 되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누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세상을 심판한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분명한 것은 그분의 말씀은 의(옳음)롭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고 예비해야 한다. 불심판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이 이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홍수 후에 새땅이 되었을 때에 비둘기는 감람나무 잎을 가지고 왔다. 무화과나무에 싹이 난 것이 그것을 증거한다. 곧 불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이 시대의 징조는 무화과 나뭇잎이 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마 24:32).
3.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은혜를 받아야 한다(창 6:8)
은혜를 받으면 다 준행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은혜로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란 죄를 방관하시거나 묵인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히려 육체의 정욕을 위한 것으로 도용, 오용하고 있다(유 1:4). 하나님의 은혜는 물에 빠진 사람에게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건져서 더 이상 물에서 물을 먹으며 허우적거리다 죽어가도록 방치하는 게 아니다. 병에 빠진 사람은 병에서 구원을 받을 때 더 이상 병을 앓지 않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죄에서 구원을 받으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곧 죄에서 건짐을 받고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이신 하나님께 속해 사는 것이다.
성경적인 은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준행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주님과 같이 동행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2)
(2) 방주를 예비해야 한다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요 이제 그의 몸 된 교회이다(창 6:22).
영원한 방주 안에 탑승하려면 주님이 불러 주셔야 한다. 방주에 탔던 생물들은 다 하나님께서 불러들이셨다. 마치 철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먼 여행을 하듯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길에 인도를 받아야 한다.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먼 여행을 누가 가르쳤는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방주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요 6:64,65)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1-33)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주 교회 안에 들어올 사람을 어떤 길로 부르시는가? 예수께서 어떤 길을 예비해 놓으셨는가(사 40:7,8; 벧전 1:22-25)?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8-4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복음이 가려진 자는 세상신에 의해 소경이 된 자이다(고후 4:3,4). 바울도 전에는 세상의 초등학문에 사로잡혀 참것을 보지 못했을 때는 눈뜬 소경이었다.
(3) 새 날이 오기까지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창 8:6-12).
까마귀는 썩은 것을 찾아다니는 날짐승이다. 방주 안에 들어온 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계속 영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것이 까마귀가 아닌 비둘기로 사는 삶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7)
옛사람은 예수 안에서 죽어 이미 장사지낸 바 되었다. 이미 죽은 것은 쓰는 대로 점점 부패로 돌아간다(골 2:22).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 4:7,8)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5-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