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民族)의 삶 6.25 마18:21-22
올해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49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의 과정을 밟아 왔다. 6.25하면 그 쓰라린 상처를 결코 잊을 수가 없어 다시 상기하고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남북의 관계를 냉전으로 이끌어 온 계기가 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6.25를 민족의 화해의 날로 정하고 정부의 햇볕정책에 맞추어 같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의 쓰라린 상처를 화해로 승화시키는 새로운 6.25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는 1997년 6월 25일을 \"민족 화해의 날\"로 선포하고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이날을 남북한의 상호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고 민족의 동질성과 신뢰회복, 평화통일을 위하여 힘쓰는 날로 정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처한 역사적 상황은 아직도 민족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기독교와 민족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민족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기독교인들이 자기가 사는 사회 속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행동해야 할 때인 것을 깨닫고 민족의 문제를 결코 외면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미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탄압에서 민족이 신음할 때 이 땅의 기독교는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기도했다.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총칼을 맞대고 위협하며 동족상잔과 파멸의 위기로 치닫고 있을 때에 우리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우리의 신앙고백과 실천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는 민족문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민족의 삶과 고통에 관심을 가기고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민족의 삶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이 신구약 성서 속에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되어 있다.
출애굽기 2:23~25에 \"이스라엘 백성은 고역을 견디다 못하여 신음하며 아우성을 쳤다. 이렇게 고역에 짓눌려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 살펴 주셨다\"고 구약에서 모세의 애국적 민족의 결단을 본다. 우리는 예수께서도 자기 민족의 문제에 깊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책임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민족에 대한 관심은 민족의 우월성이나 배타적인 이기심이나 민족지상적(民族至上的)인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시달리고 억눌리고 고통을 당하는 민족의 삶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민족을 죄악과 위기에서 구하려고 하신 것이었다. 기독교는 민족 문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민족의 삶과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삶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이 신구약 성서 속에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되어 있다.
한국기독교의 2백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독교가 민족의 삶에 대해 얼마만큼 관심을 가졌으며 민족의 고통과 굴레를 벗기는데 얼마나 공헌을 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볼 때 선교 초기의 기독교는 민족의 삶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복음의 씨앗이 전해진 초기의 기독교는 민족의 개화와 계몽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당시 우리 사회의 봉건사회와 양반문화가 몰락해 가는 과정에 있었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기독교가 전해주는 인간평등의 사상 과학적인 의술과 합리적인 제도 대중적인 교육, 여성의 지위향상 교육 등은 정체된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에로 개혁하려는 의지는 민족적 차원에서 큰 자극과 힘이 되었다.
양반과 쌍놈, 주인과 종이 교회에 나와서 한 의자에 앉고 직분을 맡은 평등을 교회생활을 통해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안방에만 한정되던 여성의 자리도 학교로, 사회로, 끌어낸 것도 한글을 가르치고 교회생활을 통해 남녀평등을 배우고, 부인회 등을 통해 사회 참여와 봉사의 길을 확대해 갔다. 기독교교육을 받은 청년들은 개화운동과 민주의식고취, 사회개혁운동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당시 기독교 청년들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부응에 편승해서 1919년 3.1운동에 이르러 교회가 중요한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일제에서 해방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민족사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쯤은 생각해야 할 새천년의 문턱이다.
해방이후 오늘의 기독교가 민족의 삶 속에 사명이 있다면 무엇이고, 그 책임은 무엇인가?
첫째는, 우리 민족의 삶은 비민주적인 정치구조에 의해 고통과 시달림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해방이 되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완전한 독립이 주어지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해방이 결국 미국과 소련의 점령군의 관할과 지배에로 넘어간 것이다. 결국 남북을 갈라놓고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두 개의 독재정권을 양쪽에 각기 세워 놓았다. 이렇게 세워진 독재정권들은 그 동안 남북한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고 억압해 왔다. 북쪽은 세습제까지 하면서 일인독재를 하고 있고 남쪽은 장기집권과 쿠데타 등의 권력탈취로 국민의 기본권까지 빼앗기고 군사문화에 시달려왔다. 남과 북은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잃은 채 살아왔다. 여기에 기독교는 민족의 삶을 위해서 나라와 사회를 민주화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두 번째는, 민족의 삶을 짓밟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반민중적인 경제구조이다. 그 동안 우리는 경제발전 제일주의 아래서 국민들은 피땀 흘려 일했고 보다 잘살기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으며 저임금도, 저곡가정책도 감내하며 살아왔다. 60년, 70년대는 \'소비가 미덕이 되는 사회가 온다\'는 선전을 들으며 성장해 왔고 80년대는 국민소득이 2천불이 넘으니 90년대에는 5천불 소득으로, 만 불 소득으로 선진국을 이룩하자고 그 꿈을 부풀리다가 IMF한파에 날벼락 같은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그 동안의 경제성장의 수치는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민족경제의 실상은 비참하게 되어있다. 외국기업이나 합작투자기업들의 수출산업이 국민총생산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실정은 경제성장의 순이익들은 결국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외채와 이자부담만 늘어나 IMF직전의 우리 나라 외환보유량이 30억불밖에 남지 않은 실정에 이르렀다. 이제는 허리를 졸라매고 빚을 갚으려 해도 힘들게 되었으니 민족의 경제적 삶을 파탄에서 건져야 한다.
다행히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새경제구조의 틀을 짜고 혼신의 고투 끝에 6월 현재 외환보유고가 600억불로 증가했다고 하니 한편 반가우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지난날 경제구조에 대한 냉엄한 판단으로 교훈을 삼아야 한다. 민족의 삶, 민중의 생존을 무시한 경제구조는 결국 민족의 경제를 강대국에 예속시키고 민족 주체성을 마비시키고 만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또한 민족의 삶의 터전이요 원천인 자연과 국토를 더럽히고 못쓰게 만든다. 공해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것은 공장폐수에 의해 환경오염문제 등이 생각보다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현장을 보는 한국 교회는 민족의 삶의 차원에서 자립적이며 정의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세 번째는, 민족의 삶을 질식시키고 동여매는 가장 비극적인 요인은 반평화적인 민족의 분단에 있다. 남북의 허리를 두동강이로 갈라놓고 형제간에 동족간에 총질을 하는 전쟁과 같은 대결상황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민족의 삶을 위해 오늘 필요한 중요한 사항은 남북간의 전쟁의 방지요 분단의 극복이며 통일의 성취이다. 기독교는 이 문제를 민족주의적 입장이나 자유주의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민족의 삶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며 해결하도록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분단 시대에 살면서 분단자체를 악으로 보지 못하고 분단의 결과들만을 악으로 보는 착각을 범하는 경우가 많다. 북에 공산독재정권수립, 민주민족세력의 숙청, 6.25전쟁과 동족상잔, 한반도의 국제전장화, 냉전체제와 간첩, 게릴라 파견, 핵무기 보유,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 한계선을 침범한 사건과 그 무력충돌 등은 분단의 결과이지 분단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미국과 소련이 분단했더라도 민족 내부에서 화합과 화해를 했더라면 두 개의 정부를 세우지도 않았고, 전쟁도 하지 않았고,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한다.
분단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고 분단의 결과들에 대해서만 비극의 원인을 보려고 할 때 분단극복의 길은 트이지 않는다. 반평화적인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통일은커녕 민족의 존립이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에 악으로 악을 갚아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는 형제가 형제를, 동족이 동족을 배반하고 죽였던 골육상잔의 비극 앞에 서있다. 이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소원한다. 3.8선 보다도 더 철통같은 높은 담을 가슴의 한 복판에 쌓아온 지난 반세기가 정부의 햇볕정책에 발맞추어 남북회담, 경제교류, 북한동포돕기, 이산가족상봉, 금강산 관광 등으로 녹아 내리길 기대해 본다. \'포연은 서해안 일대에 자욱해도 \'햇볕\'은 못 가린다\'는 한겨레신문의 기사가 마음에 든다. 북한의 계속된 서해 북방 한계선 침범이 무력충돌이라는 불상사를 빚고 말았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제가지 통용 돼 왔던 북방 한계선을 넘어와 분쟁의 빌미를 만들고 더욱이 먼저 총격을 가한 도발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유엔 사에서 일방적으로 선포한 북방한계선을 인정할 수 없다면 평화적으로 항의해야지 군사적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남한은 우수한 선박과 전술로 상대방의 꼬리를 들이받아 승리를 거우었다고 즐거워하는 순간 북한군은 군사적 패배감에 젖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 둘 점은 속시원한 대응을 부추기는 세력들의 무모한 강경 몰이이다. 보수 여론의 지나친 추세는 삼가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기에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냉전구조가 해체되지 않으면 이런 사태는 앞으로 얼마든지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냉전구조가 꺼져가는 과정에서 이런 사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마침 6.25 제49주년이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신 주님의 말씀이 계신데 일곱 번씩 일곱 번을 지나온 세월이 49년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못된 아들의 종아리 대신 자기 다리에 피가 나도록 때렸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아들이 못 된 짓을 할 때마다 \'이것은 내 탓이요\'했다 한다. 교회가 통일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통일의 방향과 방법이 기독교 복음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복음은 평화의 복음이며 그 원칙은 화해이다. 통일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하고 평화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통일 문제를 평화문제와 연결시키는 과제가 교회의 사명이다.
평화는 적대관계와 원수관계를 해소하고 화해와 대화의 정신을 가질 때 이룩된다. 서로간의 오해와 편견 증오심을 청산하는 것이 화해의 조건이다. \'민족의 삶\'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교회가 해야 할 실천적인 역할들이 무엇인지를 6.25 제49주년과 서해안의 고조된 긴장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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