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이에게 주는 교훈
늙은이에게 주는 교훈
딛2:1-4
바울은 디도서 1장 후반부에서 거짓선생들의 가르침에 대해 경계할 것을 교훈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서 \'저희의 입을 막을 것\'과 저들을 \'엄히 꾸짖을 것\'을 교훈했습니다. 이제 2장에서는 바른 가르침, 바른 교훈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1절을 보면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며\'라는 말은 \'가르치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제 디도에게 그레데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바른 교훈을 가르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을 보면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을 세부류로 나누고 있는데 첫째는 늙은남자와 늙은여자, 두번째는 젊은 남자와 젊은여자,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종들에게 가르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그 첫번째에 해당하는 늙은 남자와 늙은여자들에 대한 교훈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받는데는 나이가 상관이 없구나\"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새삼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유인가하면 사실 나이드신 분들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신 연륜과 인생의 풍부한 경험 때문에 쉽게 자신의 생각을 잘 바꾸지도 않을뿐더러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다고 해도 잘 수용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일명 \'고집\'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꺽으시는 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이말씀은 모든 나이드신분들에게 좋은 교훈의 말씀인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이든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는가?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먼저 나이드신 분들에게 첫째로 요구되어지는 것이 \'절제\'라고 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술에 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드셨다는 이유만으로 나이드신분들의 실수나 잘못이 그냥 덮혀져 버리는 경우를 종종봅니다.
젊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행동을 하면 되먹지 않았다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나이드신분들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덕스럽지 못한 행동을 할 때 \"늙으신 분이 딱하기도 하지 오죽 마음이 상하셨으면 저러실까?\"하면서 넘어가버리곤 합니다.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눈꼴시려서 못봐주겠다고 말하면서 나이드신 할머니께서 담배를 피우면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물론 제 말씀은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용납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또 남자는 피워도 되고 여자는 피워서 안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술과 담배를 삼가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나이드신 분들은 더더욱 절제하고 삼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나이가 드셨다는 이유만으로 잘못과 실수를 그냥 묻어 버릴때가 많다는 말입니다.
\"이 나이에 예수를 믿는다고는 말하지만 술마시는 낙도 없으면 어떻게 살지\"라는 말은 올바른 말씀이 아닙니다. 혹 이 가운데 그런분이 계시다면 이제부터라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사람은 예외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젊은 사람도 절제하고 삼가야겠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나이드신분들이 더욱 절제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절제\'란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술에 대한 부분이지만 사실은 그 범위가 좀 더 확대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술에 대한 부분은 3절에서 늙은 여자들에게 따로 교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이드신 분들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모든 것에 잘 절제할줄 아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에 나이드신 분들을 두고 \'참 곱게 늙으셨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단순히 외형적으로 그 분이 젊은시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런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고운모습을 지니고 있어도 매사에 절제하는 모습이 없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두고 곱게 늙으셨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절제할 줄 아는 것이 나이드신 분들의 아름다움입니다.
두 번째는 \'경건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존경할만한\'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모든일에 품위를 잃지 않음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만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고 해서 당장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동안 경건의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한평생 경건의 훈련을 쌓아 마침내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사람을 들라면 저는 야곱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할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파란만장한 생애였습니다. 더구나 그는 별로 존경을 받을만한 성품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래서 한평생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21절에서 야곱의 생애를 평가하기를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떠나가는 그 최후의 순간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떠났다고 합니다.
한평생 욕심과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오랜세월동안 경건의 훈련을 통해 남의 것을 빼앗앗던 삶에서 이제는 축복하고 자기의 것을 주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눈을 감는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감히 야곱의 생애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다가 주님께 갔습니다.
품위는 그저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세월동안 경건의 훈련을 쌓음으로서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드신 분들은 이런 품위를 유지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는 \'근신하며\'라고 했습니다. 근신이란 절제와 비슷한 말입니다. 이 말도 자신을 잘 조절하고 통제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적절히 통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하고 자기 기분내키는대로 행동을 하는데 있습니다. 또 급한 성격 때문에 자주 실수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숙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을 합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때에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밖으로 표현하고, 조금도 참을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베드로가 쓴 서신서를 보면 그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합니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과거에 통제되지 못했던 베드로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베드로의 모습을 그의 서신서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만큼 베드로가 성숙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는 자기 기분내키는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단계로까지 성숙되어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성숙한 사람일수록 함부로 행동을 해서는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줄 알아야 합니다.
네 번째는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라고 했습니다. 흔히 믿음과 사랑 다음에 나오는 단어는 소망인데 여기에서는 그 대신에 인내라는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사실 소망과 인내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즉 노년의 때는 소망이 가까이 있는 시각인 동시에 그 소망을 향해 인내해야 할 때입니다.
젊었을때에도 믿음과 소망과 인내로 살아야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 세가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북유럽의 기도의 성자로 불리워졌던 할레스비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죽음이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인생의 마지막을 그리스도인답게 정리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할레스비가 설교할 때 자주 어느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노르웨이에 사는 어느 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의탁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아는 친척을 찾아가서 같이 살자고 간청을 했지만 그 친척들은 냉담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늘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저의 죽음이 아름답기 위해서 줄곧 기도해왔거든요. 하나님이 제 마지막을 책임지실거예요.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고 저를 받아주세요\" 그러나 아무도 그 할머니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리스도인 부부가 이 할머니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젊은 부부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할머니의 젊은 부부의 자녀를 돌보며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본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 부부의 집은 그 할머니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날도 다른날과 다름없는 맑고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기도시간이 끝날시간이 지났는데 할머니가 식사하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젊은 부부는 할머니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방문을 여는 순간 그들의 눈에는 기도하면서 엎드린채 숨져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당신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죽음이 아릅답기 위해서 기도했거든요.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실것입니다.\"라는 할머니의 말이 그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한날의 삶을 살더라도 소망이 있어야 그 삶이 진지해집니다. 그리고 소망이 있는 사람일수록 믿음안에서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인내,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은 특별히 나이드신 분들에게 이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까? 그만큼 주님께 가야할 시간이 젊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문은 늙은 여자들에게 교훈합니다. 3절에 \"늙은 여자로는 이와같이 행실이 거룩하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 본문에서 늙은 남자에게 주는 교훈, 또 늙은 여자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 구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구분되어진 부분만 해당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열거한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어지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특히 늙은 남자는 이런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늙은 여자는 또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욱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늙은 여자에게 첫 번째 주는 교훈은 방금 살펴본바와 같이 행실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말로서 거룩하라는 것이 아니라 행실로 거룩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행실로 거룩해지는 문제를 남자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여자에게 적용을 시켰을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당시에도 집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사람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습니다. 특히 나이드신 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집안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나이드신 할머니의 모범된 삶은 자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행실에 거룩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참소치 말며\'라고 했습니다. 참소한다는 뜻은 \'말로서 실수를 하거나 남을 헐뜯지 말라\'는 뜻입니다. 흔히 여자가 나이가 들면 \'무거워 지는 것은 엉덩이요, 늘어나는 것은 수다뿐\'이라고 합니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 눌러 앉아서 도무지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수다를 늘어 놓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하고 싶어도 시간이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뒷치닥거리며, 집안일을 감당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다가 아이들이 장성하고, 가정의 경제도 어느정도 안정이 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아침에 이웃집에 건너가서 커피한잔 마시면서 세시간이고 네시간이고 마냥 앉아서 윗집에 누구는 어떻고, 아랫집에 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세대에 사는 집을 한바퀴 다 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잘라서 이번엔 이웃세대로 원정갑니다.
여러분! 말이 많아지다보면 자연히 실수를 하게 되고, 또 남을 헐뜯는 얘기가 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나이가 들어 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에 조심을 하고, 혀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선생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혀는 우리 지체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늙은 여자는 참소치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왜 이 말을 늙은 남자들에게 더 강조하지 않고 늙은여자들에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이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면 사도바울이 이 편지를 쓰던 주후 1세기를 전후해서 지중해권의 사람들, 특별히 여자들에게 해방의 기운이 처음으로 일어났던 때였습니다.
그 전에 여성들은 참으로 압박당하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당시 여인들이 완전히 자유로와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여인들에게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일먼저 여성들이 시작한 것이 음주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보면 여성해방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종 남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남성들이 했던 것을 여자들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이런 것을 가지고 여성해방, 혹은 여권신장을 말합니다. 여성의 권리는 자유롭게 술마시고 담배피우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뭏튼 이 당시에도 자신들에게 찾아온 조그마한 해방의 기운을 술로서 풀어보려는 여성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또 마시다 보니 이제는 술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흔히 하는말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조금 지나면 술이 술을 먹고, 마지막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하듯이 술을 자꾸 마시다보니 술에 취해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하는 여자들이 자꾸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방영하는 텔레비젼 프로 가운데 \'아침마당\'이라는 프로를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수요일날 아침에는 사람을 찾는 시간입니다. 그곳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가난했다는 것, 이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어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버지가 술을 몹씨 마시는 분이라는 것, 이것도 상당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어지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술은 남녀를 막론하고 엄청난 폐해를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가 되고\'했습니다. 이 말씀은 4절 상반절에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이들었다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풍부한 경험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수해야 합니다. 요즘 나이 드신 분들의 하루 일과가 무엇입니까? 젊은이들이 맞벌이 한답시고 손주들을 다 할머니에게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오전에 놀이터에 나가보면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계신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고 할머니는 따뜻한 곳에 쪼그리고 앉아계십니다. 이제 자신의 역할은 그저 손주들이나 보고 집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선한 것을 가르치고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라고 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자꾸 아들 눈치보고, 며느리 눈치보면서 살것이 아니라 좀더 당당하게 인생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수하고 가르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사람들에게 적용이 되어집니다. 오늘은 늙은 남자와 여자에 대해 교훈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 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한번 길들여진 습관이나 고정관념은 고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일수록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경륜과 경험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런 분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늙은 남자는 절제해야하며, 경건하고,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되어야 하고 늙은 여자는 행실이 거룩하고,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것과 선한 것을 가르치고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